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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금생활의 원리 / 고후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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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곽주환 목사님 (구로중앙교회)
제목 : 헌금생활의 원리 
본문 : 고린도후서 9:6-8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주머니에 열쇠와 수첩과 지갑은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지갑이니라. 물질을 좋아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공통된 모습인가 보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심을 달리던 은행 현금 수송차량의 뒷 문이 열리면서 약 4억 3천만원이 길 바닥에 떨어져 시민들이 때아닌 돈벼락을 맞았다. 세 번째 돈 자루가 떨어지고 나서야 사태를 깨달았다. 첫 번째 자루는 한 부부가 주어 고스란히 돌려줬고, 두 번재 자루는 길바닥에 흩어지면서 행인들이 주어갔고, 세 번째 자루는 주은 사람이 차에 싣고 집으로 가서 돈을 세고 있던 도중 경찰에 압수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는가 보다. 어느 교회의 교인이 숨을 거두게 되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급히 달려가서 그 환자를 민망히 여겨 손을 잡고 기도해 주려고 했더니 그냥 해달라는 것이다. 기도 후 숨졌기에 수의를 입히려고 이불을 걷었는데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있기에 펴 봤더니 금고 열쇠였다. 그것을 놓칠까봐 목사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다가 세상을 떠나가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나라의 속담에 부모는 자식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고, 자식도 부모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다. 자식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다. 돈있어야 효도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주변을 보라. 규모도 없이 돈을 사용하고 싶어서 신용카드를 마음 껏 쓰고서 갚지 못하는 돈이 수 조원에 이른다. 카드사용으로 인하여 엄청난 범죄의 사건이 우리 주변에 자주 일어난다.

이같이 돈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이 물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살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물질이 좋기는 좋지만 물질을 너무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 오히려 많은 근심에 억눌린 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 신화 중에 나오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마이더스 왕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마이더스 왕에게 낯선 신이 찾아와 소원을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주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래서 이 왕은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 소원을 말하자마자 왕이 만지는 모든 것은 다 황금으로 변했다. 신이 난 왕은 하루 종일 황금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다가 마침내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가 만지는 모든 사람들이 황금으로 변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황혼녘에 절규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물질이 좋아서 물질을 따라가다보니 자식도 잃고, 부모도 잃고, 친구도 잃고, 자기가 마시고 싶은 한 모금의 물도 마실 수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모습을 얼마나 자주 찾아볼 수 있는가? 물질 때문에 믿음조차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물질이 좋다고 하여 물질을 사랑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질이 좋다고 하여 가족도 친구도 친척도 버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 중요한 물질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돈을 사랑하면 사람을 이용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돈을 이용한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돈은 이용의 대상이다. 돈을 사랑하면 반드시 사람을 이용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을 이용한다.

세계에서 부자로 유명한 록펠러는 33세가 되었을 때 최초로 자기 인생에서 100만 불의 순수한 이익을 얻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그는 53세까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에게 이상한 병이 생겨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몸이 점점 말라가는 병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 당시 사업은 너무 잘돼서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괴로운 인생을 보내야 했다. 그는 밤새 괴로워하다가 한 순간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그 다음부터 달라졌다. 그 후에 그는 교회를 위하여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재산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잘 먹게되고 55세를 넘기지 못하던 사람이 98세까지 살았다.

물질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마이더스 왕과 같다. 물질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면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물질은 믿음의 표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으로 물질을 사용하여야 한다.

가인과 아벨이 똑같이 제사를 지냈다. 가인은 농산물로, 아벨은 양의 제사를 지냈다.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하나님이 육식을 좋아하시고 채식을 싫어하셔서 그러셨는가? 아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물질은 내 믿음의 고백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믿음의 표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고희 감사예배를 드리는 어느 권사님이 백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헌금으로 갖고 내 사무실을 찾았다. 그렇게 넉넉하게 사시는 분도 아니다. 이 권사님이 고백하기를, 지금까지 칠십 평생을 하나님이 지켜주셨는데 그 고희 잔칫날 식구들 모여서 기쁜 시간을 갖는 것 보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표현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우리 교회 교인들은 고희 잔치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묵직하게 헌금을 바치면서 믿음의 표현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입으로 감사하다는 표현보다는 물질로 구체적인 우리의 표현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고희를 지나면서 먹고 즐기는 시간에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우리의 믿음인가?

아들 결혼을 앞에 둔 권사님이 신랑 신부를 데리고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하나님께 정성으로 마련된 헌금을 두둑하게 준비해서 왔다. 그렇게 여유있게 사는 분도 아니다. 신랑신부에게 안수기도해 달라고 해서 정성껏 기도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서 얼마나 마음이 기뻤는지 모른다. 자식을 위해서 혼수감을 몇천만원씩 들여서 준비하고, 자식의 집 장만을 위해서 몇천만원씩 들여서 준비하면서 자식이 이렇게 성장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하나님께 묵직하게 바치면서 믿음의 표현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혼수를 준비했다고 그 가정이 행복한가? 좋은 집을 마련해 주었다고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겠는가? 먼저 부모님의 이러한 믿음의 표현이 자식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어느 권사님이 십일조 일천만원을 갖고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직장에 다니면서 퇴직금을 중간정산하여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친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셔서 직장에 잘 다니게 되었는데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바친다는 고백이다.

물질은 분명히 내 믿음의 표현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물질을 구별하여 바친다는 것 자체가 벌써 믿음의 표현이 아닌가?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바칠 때에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 억지로 하지 말라.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을 보신다. 기쁜 마음을 보신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다.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바치기를 원하신다.

주일헌금 바치는 것은 예수님에게 점심 식사 한끼 대접하는 심정으로 바치라. 여러분이 예수님에게 라면을 대접하고 싶으면 2000원 바치고, 설렁탕 대접하고 싶으면 5천원 바치고, 웬만큼 먹으려면 만원 정도는 줘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에게 점심식사 대접하는 마음으로 바치라. 이것이 곧 우리 믿음의 표현이다.

또한 물질을 바칠 때에 인색하게 바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너무 인색하면 친구가 없다. 너무 인색하면 외로운 인생을 지나게 된다. 믿음 좋은 가정에서 자부를 맞아 드렸다. 추수때가 되어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는데 추수의 열 중에 하나를 바친다. 쌀을 되에 담아서 십분의 일을 계산한다. 되박에 쌀을 가득 부은 후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 친다. 그리고 옆으로 흔든다. 그러자 시집온 자부가 어머니 벌써 되박이 가득찼는데요라고 말하자 시어머니가 큰 소리로 네 믿음의 분량이 그것 밖에 안되느냐고 큰 소리를 친다. 왜 그렇게 하나님에게 인색하느냐고 소리친다. 계속해서 시어머니는 위 아래로 흔들고, 양옆으로 흔든다. 쌀을 위에서 아래로 꾹꾹 누른다. 그리고는 쌀을 재서 정성으로 바치는 시어머니의 믿음을 본받게 된다. 하나님께 인생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얼마나 후한가?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후한가? 그러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인색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성도들 중에 나중에 내가 좀더 여유가 있으면 하지.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 때가 되어도 역시 못한다. 지금 어떤 형편에 있든지 지금 형편에서 인색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라. 이것이 바로 헌금 생활의 원리이다. 내일이면 늦는다. 지금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내일 풍성한 물질이 있을 때에 아까워서 바치지 못한다. 지금부터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인색하지 않게 바치는 습관을 드리라.

이렇게 할 때에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진리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얼마나 심어 두었는가? 반드시 거두게 되어 있다. 이 땅에 모아둔 재물 때문에 분쟁도 생기고, 갈등도 생기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도 생기지만 하나님 나라에 모아둔 재물은 적절한 때에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여! 할 수 있는 데로 부자가 되시오! 할 수 있는 데로 저축하시오! 할 수 있는데로 주를 위하여 바치며 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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