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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심을 방해하는 것들 / 출 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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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부르심을 방해하는 것들(1)
본 문 : 출4:1-17
설 교 : 김영주 목사 - 기쁨의교회


하나님이 불러주셨다는 것--특권이요, 감격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부르심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이 길이 쉬운 길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길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회사도 괜찮은 회사 들어가려면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일에 어찌 장애물이 없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뜨거운 마음으로 부르심에 응답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물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르심의 길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부르심의 길을 가는데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원합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부정적 태도입니다.

1절 보시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이 짧은 말속에 무려 세 번이나 부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아니하며, .....아니하고....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은 된다고 하셨는데 모세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고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는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데 순종할 수 없죠. 문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모세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순종해 보지도 않고, 가보지도 않고, 아무 것도 안 했으면서 안 될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예상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부르심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은 이런 부정적인 태도들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들은 마치 영적인 숨통을 죄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런 부정적인 것의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세 번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모두 다 자신과 연관되어있습니다.
모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내가 다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내가 전하고, 내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격이 안 되는데, 나는 실력이 안 되는데, 나는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이 부르신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못하겠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우리 능력 갖고 일하라고 했습니까?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능력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능력 없다는 것, 하나님도 아신 단 말입니다.

본문에서 조금 올라가서 출3:16,18절을 봅시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분명히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라, 네가 말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모세는 말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까지 책임질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다 해야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순종이요, 나머지는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순종으로 진행되고,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미리 안될 것이다 생각합니다. 못한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모세가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다 하셨거든요.

예를 들어봅시다. "너는 지팡이를 들어 홍해 바다를 가르키라!" 이게 뭐가 어려워요? 지팡이가 무겁습니까? 관절염이 있습니까? 이일은 무슨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뭐가 어렵습니까? 그냥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한 것은 이것밖에 없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동풍을 불게하셔서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만들었습니다. 바다를 마른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쉬운 것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쉽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자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냥 순종하세요. 뭐, 능력이 없습니다. 경험이 없습니다. 자신 없습니다. 안될 것입니다.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순종하세요. 순종하면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자신의 약점 때문입니다.

10절부터 17절까지는 모세가 말을 못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10절만 보시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기서 말을 못한다는 말은 일상적인 말을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언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언변,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언변을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내가 가서 말을 잘해야 하는데 말을 잘못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의 말을 잘못 전달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약점이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가서 '말'을 하라고 했단 말입니다. 말하는 것이 제일 자신 없는데 말을 통해서 일하라고 하니까 더 난감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자신 있는 것을 시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잘 안다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에 장애물이 됩니다.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지식, 경험, 생각대로 해버리는 것입니다. 의사가 신유의 능력 제일 잘 안 믿고, 과학자가 기적을 제일 못 믿습니다. 성경의 기적을 반대하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배웠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실패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자신 없는 것, 제일 못하는 것, 제일 경험 없는 것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맡기면 두려우니까 기도하게 되거든요. 하나님께 묻게되거든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장 약한 것은 역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죽을 맛이거든요. 도저히 자신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약한 것을 통해 큰 일을 일으키십니다. 가장 자신 없는 것을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예) 제가 처음 교육전도사를 할 때입니다. 다른 부서는 자신 있는데 제일 자신 없는 부서가 아동부입니다. 중,고등부나 청년부, 대학부는 이미 여러 번 교사도 해봤고 나름대로 효과도 있었는데 아동부는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교육전도사 뽑는다고 해서 갔는데 두 사람이 갔는데 한 사람은 고등부를 맡기고 저에게는 아동부--그것도 소년부(초등학교5-6학년)를 맡기더란 말입니다. 그때 속으로 그랬습니다.

나도 고등부를 맡기면 잘할텐데, 자신 있는데.... 고등부를 맡은 전도사님이 무척 부럽더라구요. 그리고 집에 왔는데 참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부담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 목사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소년부가 제일 하기 어려운 부서니까 기도 많이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대원 생이니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전도사님이 잘해서 좋은 결과가 나와야 내년에도 신대원 생들을 전도사님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제일 자신 없는 부서를 맡겨놓고 부담은 엄청 주시는 거예요. 왜 하필이면 소년부인가? 중등부나 고등부는 잘 할 수 있는데.....어떻게 보면 첫 사역인데.....

참 고민되더라구요. 게다가 교사 중에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신학교 졸업하신 여 집사님, 주일 학교를 몇 년째하고 있는 집사님부부, 그리고 대학부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 빼고 주일학교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새파란 교육전도사가 알긴 뭘 얼마나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게 되더라구요. 공부하게 되고, 연구하게 되고, 열심을 내게 되더라구요. 실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하자!' 했는데 그게 먹혔습니다. 토요일, 주일 교회주변 시내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사들이 별 반응도 없고, 말을 해도 잘 움직이지 않더라구요.

그때는 매일 한 시간씩 주일학교와 교사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부교사들이 헌신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여기 저기서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총동원 주일을 했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온 거예요. 그때부터 교사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들이 먼저 우리 총동원 주일 한번 더합시다. 해서 예전에 없던 총동원 주일을 한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연말에 부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올해 교육부에서는 소년부를 가장 걱정했는데 오히려 소년부가 제일 잘됐다"
거기서 제가 가장 중요한 사역의 원리들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중요한 사역의 힘이 됩니다. 보너스도 있더라구요. 그 소년부에서 좋은 믿음의 동역자, 후원자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금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토대가 되어서 나중에 고등부, 대학부, 전임, 부목사까지 한 교회에서 하게된 유일한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년부가 아니었다면 저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사역의 실패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깨달은 게 뭔지 아십니까? 가장 자신 없는 부서가 사실은 가장 많은 축복이 숨겨져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만일 불순종했다면 이런 축복들을 가졌겠어요? 그래서 저는 누가 '자신 없습니다'. '한번도 안 해봤습니다'. '못하겠습니다'. 하면 믿지 않습니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자아가 쎈 거예요.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 없어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축복이 숨겨져 있는데....... 굴러 들어온 복을 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숨겨져 있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자신 없는 일을 시키시면 분명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한 축복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세요. 그 부분을 훈련시켜 더 크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으세요. 나중에 모세를 보시면 가장 자신 없다는 그 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그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에서 구해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자신 없는 부분에서가 아니라 가장 자신 있는 부분에서입니다. 인간관계 자신 있어 하는 사람은 꼭 그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 당합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그 말 때문에 화를 당합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은 그 얼굴 때문에 어려움 당합니다. 건강 자신 있는 사람, 그 건강 때문에 눈물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약점을 쓰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신자가 짓는 최고의 죄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르심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자기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들만 짓는 죄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니까 불러서 구원 얻게 하시고,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일을 맡기셨다는 것도 자체가 축복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딤전1:12-15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구구절절이 감동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직분을 맡겨주신 것, 나를 충성되이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이나, 도리어 나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너무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이제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고백입니까? 이런 감격이 있어야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나 데마나, 에서 같은 사람들은 다 부르심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간 사람입니다. 이들 중에 행복한 사람 있나 보십시오. 다들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부르심을 거절하고 자기 맘대로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죄책감 때문에 목메어 자살했고, 창자가 터져 나와 죽었습니다.

히12:16-17절은 에서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배 좀 불러보려고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팟 죽 한 그릇에 장자의 특권을 팔아버렸습니다. 부르심을 거절했습니다. 배도 고팠겠지만 장자가 된다는 것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배고픔은 해결되었는지 모르지만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거절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조금 더 벌어보려다가 신앙을 팔아먹지 않습니까?
조금 더 배부르게 살아보려고 하다가 신앙을 까먹는 분 없습니까?
조금 편하게 살아보려고 하다가 신앙 팔아먹는 분 없습니까?
수고의 짐, 부담감, 십자가 덜어보려고 하다가 신앙을 팔아 넘기는 분 없습니까? 그런 인생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부담이나 짐도 조금은 갖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지만 감당할 만큼의 부담은 약이 됩니다. 축복입니다.
편하게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지 못합니다. 능력은 수고하고, 희생할 때 나오는 것이지 편한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좀 편해보려고 하다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개척교회는 잘 안 오려고 한답니다. 가면 땅 사야하고, 건축해야 하고, 작정헌금, 건축 헌금 할 것 같으니까 부담되거든요. 다 지어 논 교회들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개척교회들도 건축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빚을 내어 무리하게 건축들을 합니다.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합니다. 지금 우리교회 정도면 건축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건축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를 한번 잘 둘러보세요. 교회 건축하는 데 전심으로 헌신했던 사람들에 하나님의 축복을 안 받은 사람 있나? 대충 믿고, 편하게 믿는 사람들 말고, 헌신했던 사람들 한번 보세요. 건강의 복을 주시든, 자녀의 복을 주시든, 뭔가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이런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헌신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들어도 부르심의 길을 가십시오. 그 길이 행복의 길이요, 그 길이 축복의 길입니다.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내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출4:1-17

지난 순장 임명식 때 임명받는 자들이 했던 특송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하나님이 불러주셨다는 것--특권이요, 감격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부르심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이 길이 쉬운 길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길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회사도 괜찮은 회사 들어가려면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일에 어찌 장애물이 없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뜨거운 마음으로 부르심에 응답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물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르심의 길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부르심의 길을 가는데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원합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부정적 태도입니다.
1절 보시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이 짧은 말속에 무려 세 번이나 부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아니하며, .....아니하고....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은 된다고 하셨는데 모세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고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는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데 순종할 수 없죠. 문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모세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순종해 보지도 않고, 가보지도 않고, 아무 것도 안 했으면서 안 될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예상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부르심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은 이런 부정적인 태도들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들은 마치 영적인 숨통을 죄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런 부정적인 것의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세 번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모두 다 자신과 연관되어있습니다.
모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내가 다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내가 전하고, 내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격이 안 되는데, 나는 실력이 안 되는데, 나는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이 부르신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못하겠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우리 능력 갖고 일하라고 했습니까?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능력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능력 없다는 것, 하나님도 아신 단 말입니다.

본문에서 조금 올라가서 출3:16,18절을 봅시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분명히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라, 네가 말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모세는 말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까지 책임질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다 해야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순종이요, 나머지는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순종으로 진행되고,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미리 안될 것이다 생각합니다. 못한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모세가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다 하셨거든요.

예를 들어봅시다. "너는 지팡이를 들어 홍해 바다를 가르키라!" 이게 뭐가 어려워요? 지팡이가 무겁습니까? 관절염이 있습니까? 이일은 무슨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뭐가 어렵습니까? 그냥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한 것은 이것밖에 없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동풍을 불게하셔서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만들었습니다. 바다를 마른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쉬운 것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쉽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자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노아를 아십니까? 방주를 짓기까지 노아는 평생 배라는 것의 그림자도 못 본 사람입니다.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당시엔 배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창6:14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러면서 구체적인 치수와 방법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3층 짜리 배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한일은 무엇입니까? 순종한 것입니다.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꼭 모든 능력을 다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문제될 것 없습니다. 주님이 능력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갑자기 내가 알려 줄테니 가서 3층 짜리 배를 만들어라 하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주님 저는 전공이 조선이 아니고 건축입니다. 저는 국문학을 전공했는데요, 배는 한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못합니다. 설계도도 그리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시키시죠! 이것입니까? 아니면, 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말씀만 하세요! 이것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냥 순종하세요. 뭐, 능력이 없습니다. 경험이 없습니다. 자신 없습니다. 안될 것입니다.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순종하세요. 순종하면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자신의 약점 때문입니다.
10절부터 17절까지는 모세가 말을 못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10절만 보시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기서 말을 못한다는 말은 일상적인 말을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언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언변,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언변을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내가 가서 말을 잘해야 하는데 말을 잘못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의 말을 잘못 전달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약점이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가서 '말'을 하라고 했단 말입니다. 말하는 것이 제일 자신 없는데 말을 통해서 일하라고 하니까 더 난감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자신 있는 것을 시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잘 안다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에 장애물이 됩니다.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지식, 경험, 생각대로 해버리는 것입니다. 의사가 신유의 능력 제일 잘 안 믿고, 과학자가 기적을 제일 못 믿습니다. 성경의 기적을 반대하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배웠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실패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자신 없는 것, 제일 못하는 것, 제일 경험 없는 것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맡기면 두려우니까 기도하게 되거든요. 하나님께 묻게되거든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장 약한 것은 역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죽을 맛이거든요. 도저히 자신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약한 것을 통해 큰 일을 일으키십니다. 가장 자신 없는 것을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예) 제가 처음 교육전도사를 할 때입니다. 다른 부서는 자신 있는데 제일 자신 없는 부서가 아동부입니다. 중,고등부나 청년부, 대학부는 이미 여러 번 교사도 해봤고 나름대로 효과도 있었는데 아동부는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교육전도사 뽑는다고 해서 갔는데 두 사람이 갔는데 한 사람은 고등부를 맡기고 저에게는 아동부--그것도 소년부(초등학교5-6학년)를 맡기더란 말입니다. 그때 속으로 그랬습니다.

나도 고등부를 맡기면 잘할텐데, 자신 있는데.... 고등부를 맡은 전도사님이 무척 부럽더라구요. 그리고 집에 왔는데 참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부담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 목사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소년부가 제일 하기 어려운 부서니까 기도 많이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대원 생이니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전도사님이 잘해서 좋은 결과가 나와야 내년에도 신대원 생들을 전도사님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제일 자신 없는 부서를 맡겨놓고 부담은 엄청 주시는 거예요. 왜 하필이면 소년부인가? 중등부나 고등부는 잘 할 수 있는데.....어떻게 보면 첫 사역인데.....

참 고민되더라구요. 게다가 교사 중에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신학교 졸업하신 여 집사님, 주일 학교를 몇 년째하고 있는 집사님부부, 그리고 대학부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 빼고 주일학교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새파란 교육전도사가 알긴 뭘 얼마나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게 되더라구요. 공부하게 되고, 연구하게 되고, 열심을 내게 되더라구요. 실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하자!' 했는데 그게 먹혔습니다. 토요일, 주일 교회주변 시내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사들이 별 반응도 없고, 말을 해도 잘 움직이지 않더라구요.

그때는 매일 한 시간씩 주일학교와 교사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부교사들이 헌신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여기 저기서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총동원 주일을 했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온 거예요. 그때부터 교사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들이 먼저 우리 총동원 주일 한번 더합시다. 해서 예전에 없던 총동원 주일을 한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연말에 부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올해 교육부에서는 소년부를 가장 걱정했는데 오히려 소년부가 제일 잘됐다"
거기서 제가 가장 중요한 사역의 원리들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중요한 사역의 힘이 됩니다. 보너스도 있더라구요. 그 소년부에서 좋은 믿음의 동역자, 후원자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금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토대가 되어서 나중에 고등부, 대학부, 전임, 부목사까지 한 교회에서 하게된 유일한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년부가 아니었다면 저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사역의 실패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깨달은 게 뭔지 아십니까? 가장 자신 없는 부서가 사실은 가장 많은 축복이 숨겨져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만일 불순종했다면 이런 축복들을 가졌겠어요? 그래서 저는 누가 '자신 없습니다'. '한번도 안 해봤습니다'. '못하겠습니다'. 하면 믿지 않습니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자아가 쎈 거예요.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 없어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축복이 숨겨져 있는데....... 굴러 들어온 복을 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숨겨져 있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자신 없는 일을 시키시면 분명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한 축복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세요. 그 부분을 훈련시켜 더 크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으세요. 나중에 모세를 보시면 가장 자신 없다는 그 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그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에서 구해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자신 없는 부분에서가 아니라 가장 자신 있는 부분에서입니다. 인간관계 자신 있어 하는 사람은 꼭 그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 당합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그 말 때문에 화를 당합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은 그 얼굴 때문에 어려움 당합니다. 건강 자신 있는 사람, 그 건강 때문에 눈물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약점을 쓰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신자가 짓는 최고의 죄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르심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자기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들만 짓는 죄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니까 불러서 구원 얻게 하시고,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일을 맡기셨다는 것도 자체가 축복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딤전1:12-15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구구절절이 감동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직분을 맡겨주신 것, 나를 충성되이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이나, 도리어 나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너무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이제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고백입니까? 이런 감격이 있어야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나 데마나, 에서 같은 사람들은 다 부르심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간 사람입니다. 이들 중에 행복한 사람 있나 보십시오. 다들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부르심을 거절하고 자기 맘대로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죄책감 때문에 목메어 자살했고, 창자가 터져 나와 죽었습니다.

히12:16-17절은 에서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배 좀 불러보려고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팟 죽 한 그릇에 장자의 특권을 팔아버렸습니다. 부르심을 거절했습니다. 배도 고팠겠지만 장자가 된다는 것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배고픔은 해결되었는지 모르지만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거절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조금 더 벌어보려다가 신앙을 팔아먹지 않습니까?
조금 더 배부르게 살아보려고 하다가 신앙을 까먹는 분 없습니까?
조금 편하게 살아보려고 하다가 신앙 팔아먹는 분 없습니까?
수고의 짐, 부담감, 십자가 덜어보려고 하다가 신앙을 팔아 넘기는 분 없습니까? 그런 인생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부담이나 짐도 조금은 갖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지만 감당할 만큼의 부담은 약이 됩니다. 축복입니다.
편하게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지 못합니다. 능력은 수고하고, 희생할 때 나오는 것이지 편한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좀 편해보려고 하다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개척교회는 잘 안 오려고 한답니다. 가면 땅 사야하고, 건축해야 하고, 작정헌금, 건축 헌금 할 것 같으니까 부담되거든요. 다 지어 논 교회들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개척교회들도 건축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빚을 내어 무리하게 건축들을 합니다.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합니다. 지금 우리교회 정도면 건축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건축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를 한번 잘 둘러보세요. 교회 건축하는 데 전심으로 헌신했던 사람들에 하나님의 축복을 안 받은 사람 있나? 대충 믿고, 편하게 믿는 사람들 말고, 헌신했던 사람들 한번 보세요. 건강의 복을 주시든, 자녀의 복을 주시든, 뭔가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이런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헌신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들어도 부르심의 길을 가십시오. 그 길이 행복의 길이요, 그 길이 축복의 길입니다.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내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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