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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적 소수가 됩시다 / 눅 1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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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백봉태 목사 (연희교회)
Subject : 창조적 소수가 됩시다 / 눅12:22-32 


  역사의 발전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전체 인류사회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할 때 수많은 대중들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지만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서, 그런 가운데 그처럼 사회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 내는 소수의 사람을 가리켜서 창조적 소수라고 합니다. 여기서 창조적 소수의 사람들은 진취적이며 변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항상 자기가 처해 있는 사회 상황의 문제점을 예의주시하며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욕을 갖습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 즉 대중들은 현상유지적(現狀維持的) 사고방식에 젖어 있어서 주어진 환경에 이끌려 가거나 적응하는데 급급할 뿐입니다. 이런 현상 유지적인 대중들은 변화의 능력도 없지만,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고 싫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만 역사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는 것이 아놀드 토인비와 같은 역사학자들이 보는 인류 역사의 발전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런 역사관은 인본주의적인 철학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역사와 사회 발전의 개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창조적 소수라고 하는 용어와 개념만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까지 인류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발전해 온 것은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기독교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사용해 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 나라의 창조적 소수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누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던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적은 숫자의 제자들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러나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참된 제자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향한 격려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나를 믿으라”고도 하셨습니다만, 더 많은 경우에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신자(信者)라고 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제자(弟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단지 예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는  차원의 신자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그 분부하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의 현실을 보면 신자는 많으나 제자는 적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자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들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사람’(마16:24)인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의 길은 때로는 고독하며 때로는 세상에서 손해를 보아야 하며 또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제자의 길은 영생의 길이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위대하고 가치 있는 길이기에 기꺼이 그 길을 따라 가고자 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 제자이며, 그런 예수님의 참 제자들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창조적 소수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그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에 의무적으로 다니는 사람들 가지고서는 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배우며 그 분부하신 대로 힘써 지키고자 하는 참된 제자들, 즉 창조적 소수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창조적 소수가 된다는 것은 때로는 고독한 일이며 고난과 시련이 따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안이한 대중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보다도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 나라의 창조적 소수가 되고자 하는 적은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을 누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예. ‘너희 아버지’라고 예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의 맥락 속에서 예수님이 예수님을 따르는  적은 무리들에게 너희 아버지라고 할 때 그것은 좀더 특별한 의미를 갖고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롤 작정하고 하나님 나라의 창조적 소수가 되기를 결단한 적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그야말로 참으로 친밀하고 사랑이 많은 친아버지로 인식이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적당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그렇게 감격스럽고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세상이 걸어가는 것과 반대되는 소수의 길을 선택한 참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체험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친아버지로 경험이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대충 믿고 대충 살아가는 대중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별로 피부에 와 닿는 큰 의미도 없고 큰 격려가 되지도 않는 말씀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창조적 소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은 항상 살아서 역사하는 위대한 약속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주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을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위로와 도우심을 늘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다 살아가는 대중의 삶을 버리고 더러는 고난과 희생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기에 그 나라를 위한 창조적 소수가 되기를 결단하고 살았던 적은 무리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장차 그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급으로 주실 것이라고 예수님은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2003년이라는 새해를 맞이했습니다만, 어제까지의 우리의 삶은 창조적 소수에 속한 삶이었습니까? 아니면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살아가는 대중적(大衆的)인 삶이었습니까? 아무쪼록 이제 금년에는 우리 연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창조적 소수들로 변화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무쪼록 이 세상의 것들보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적은 무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에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쓰임 받는 창조적 소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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