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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는 훈련 / 창 29:15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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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철 목사
▶ 본문 : 창 29:15-30
▶ 제목 : 기다리는 훈련 

(창 29:15-30)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찌니라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야곱의 하란에서의 삶은 감격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집을 떠나 올 때는 그가 과연 안전히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겠는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출발했지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무사히 라반의 집에 도착해서 친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위로를 받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감격도 잠간뿐 그는 냉혹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그 때 야곱은 라반의 딸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말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생각해 보니 손해 볼 것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 딸
여러분, 7년이라는 세월이 짧습니까?
그것도 한푼도 받지 않고 7년을 그냥 일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7년을 잘 기다렸습니다.
오직 일념, 무엇입니까?, 라헬과 결혼하는 날만 기다리면서 그 7년을 잘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7년 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신랑이 신부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첫날 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 결혼식 풍속은 잔치를 베풀 때 신부에게는 베일을 씌었고 또 신랑이 술에 취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야곱이 신부가 바뀐 것을 알지 못했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쨋튼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입니다.
그래서 라반에게 항의했습니다.
"외삼촌이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그랬더니 라반이 말하기를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그러니 레아와 7일을 채우라. 그러면 라헬도 주리니 그것을 위하여 네가 7년을 더 봉사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그 당시는 일부다처제가 성행하던 때이니까, 야곱이 7일 동안 레아를 위한 기간을 채우고, 7일 후에는 또다시 라헬에게로 들어가 그를 아내로 삼습니다.
그래서 졸지에 아내가 둘이 되고,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서는 7년을 더 라반에게 봉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외삼촌 집에서 14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봉사만 하고 지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셔서 그를 무사히 라반의 집에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라반의 집에 와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라반의 집에 올 때처럼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딱 맞아 떨어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라반의 집에 와 있으면서 늘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랬지만 당분간은 거기 있어야 했고 또 결혼도 해야 했기 때문에 라헬을 위해서 7년을 그곳에서 보낼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지만 7년이 지나서 일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사기결혼을 당해서 7년을 더 묵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후에 고향에 돌아갈 만큼의 돈을 모으기 위해서 6년을 더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릅니다.
그는 잠깐만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마 야곱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는가?
도대체 나에게 약속을 하신 하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단 말인가?
왜 나를 이곳에 이렇게 처박아 두시는 것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야곱의 질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도,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고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우리들도 때로는 그런 질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일이 꼬일 때,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엉클어지고 뒤죽박죽이 될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야곱에게 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왜 야곱을 하란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하란에서는 그로 하여금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리도록 하셨습니까?

거기에 대한 성경적인 대답은 하나님이 그를 훈련시키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무슨 훈련을 시키시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여러 가지 훈련이 있지만 특별히 기다리는 훈련을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하란에서의 20년은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장차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하란이라는 장소를 택하시고 라반이라는 혹독한 사람을 훈련자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여러 가지 훈련을 시키셨는데,
먼저 남을 속이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라반에게 속임을 당해서 아내가 바꿔치기 당함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가장하여 축복을 받았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를 철저히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나중에 라반에 의해서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받는 속임을 받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철저히 '속이는 것은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내가 남을 속이면 나도 남에게 속임을 받게 되고, 남에게 해를 끼치면 나도 남에게 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대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남에게 어떤 부당한 것을 당하고 또 손해를 받았으면, 나는 남에게 그렇게 한 것이 없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라반의 거짓된 행동을 통해 그의 거짓된 성품을 철저히 훈련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사실 이 훈련이 하나님의 훈련의 주 훈련이었습니다.

야곱이 왜 아버지를 속이고 간사한 방법으로 형의 축복을 가로챘습니까?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축복을 못 받을까봐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적을 위해서 방법을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가정에 큰 분란이 되었고 자기도 부모 곁을 떠나야만 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기다리지 못한 불신을 철저히 훈련시키시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하란에서 20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이 20년을 다른 꾀 부리지 않고 잘 참고 견디니까 다시 그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셨던 것을 그 뒤에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훈련시키시되 특별히 기다리는 법을 훈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의 대부분의 문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왜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입니다.
리브가가 왜 야곱을 시켜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였습니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실수도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지 못함으로 일어납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이 제일 못 하는 것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외국 관광지에 가보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말이라지요?
또 외국에 나가 보면 어디를 가나 줄을 서야 하는데, 그 줄을 서는 일에 제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줄을 서서 좀 기다리라고 하면 안달을 합니다.

이런 것이 신앙생활에도 배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에 그러지 않았어요?

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그리고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씁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
고생을 하게 됩니다. 힘든 인생을 삽니다. 그리고 일은 더 늦어집니다.
야곱의 생애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찬송가 작곡가인 필립 브룩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제 삶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으실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실낙원을 쓴 밀턴이 있습니다.
그는 크롬웰과 함께 영국에서 종교혁명을 일으켜 영국을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해서, 크롬웰은 죽고 자기는 정치범으로 사형수가 되었다가 겨우 석방된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마지막에는 무르익은 신앙의 소유자가 되었는데, 그가 실낙원을 쓸 무렵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역행해서 만들어 가는 것보다는 내 속에서 이루어져가도록 대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깨달았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다릴 줄 알 때까지는 아직까지 신앙이 덜 된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잘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 애가서 3:26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원치 않는 멍에를 메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질병의 멍에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떤 때는 가난의 멍에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떤 때는 고독의 멍에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면서 잠잠히 기다리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멍에를 메고 잘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그 멍에를 벗기실 때가 있고, 그렇게 해서 멍에를 벗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격을 갖춘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야곱과 같이 멍에를 메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에게 속임을 당하고 불필요하게 시간만 보낸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결코 뜻 없이 시간을 허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뜻 없이 우리를 고난에 빠뜨리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시는 분 아니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시키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알고 하나님이 메어 주신 멍에를 잘 메고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잘 참고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훈련을 잘 마치시고 온전한 인격으로 성숙케 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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