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 / 수 14:6-15

  • 잡초 잡초
  • 441
  • 0

첨부 1


본문 / 수 14:6-15
제목 /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
본문 / 전충현 목사 (영암교회)


미국의 어느 신문 기자가 같은 시대, 같은 지방 살았던 두 가문을 비교 분석한 것을 신문에 실은 적이 있습니다.

한 가문은 18세기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전개했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집안이었습니다.
그 가문은 20세기 후반까지 학장 14명, 대학교수 100여명, 변호사 100여명, 판사 30명, 의사 60명을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100명이 넘는 성직자, 선교사, 신학자와 60여명의 저술가를 배출해 냈습니다.

다른 한 가문은 <쥬크 가>입니다.
이 가문은 앞서 말씀드린 가문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18세기이래 극빈자가 300여명, 도둑이 60여명, 유죄판결을 받은 범법자를
무려 130여명이나 배출했습니다.
직업교육을 받은 사람이 고작 20여명, 그 중에서 10명은 교도소에서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살인범이 7명이나 되었답니다.

우리는 여기 이 보고서를 통해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네 인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내 후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의도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려고 하는 부모는 이 땅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자기 자식들에게만은 그 짓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겠습니까 ?
나의 불행과 어두움의 그림자를 그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잘못된 습관과 유전은 우리 대에서 끝나야 합니다.
그리 선하지 못한 우리네 모습은 정말 우리 대에서 끝내버리고 우리는 이제 아름답고 복된 내일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여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과연 어떤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었는지를 이 시간 함께 살피면서 오늘 우리는 우리 자손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를 정리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갈렙은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
갈렙은 그것을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는 말입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말입니다.
그의 그런 삶은 그 자신만의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모세까지도 그가 그렇게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서 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0절 말씀도 보십시오 !
40년 동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을 생존케 하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12절 말씀도 보십시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나에게 주소서 !
그가 그리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거기 12절 마지막 부분도 보십시오 !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
그가 그리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성도 여러분 !  보이십니까 ?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살아가는 여기 이 사람의 모습이 말입니다.
삶의 모든 정황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연결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여기 이 사람 !
그는 누가 보아도 <믿음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행동함에 있어서 대원칙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말하거나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 말씀도 보십시오 !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주위 모든 사람들도 그리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네 삶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
이것을 우리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돈과 시간을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 ?
  생의 커다란 위기를 만났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열심히 붙잡는가 ?
여기 이 두 가지를 보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의 원칙>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
언제나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느냐는 말입니다.

갈렙이 오늘 하나님을 향하여 달라고 요구한 땅, <헤브론> !
그 땅은 누구도 원치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 땅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땅은 앞으로 많은 수고와 땀이 요구되는 땅입니다.

더군다나 그 땅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
그는 일찍이 <정탐꾼>이 되어서 그 땅을 밟아본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보았습니다.
그 땅의 사람들이 얼마나 <큰 사람들>인지를 말입니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았을 때, 그는 자기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보십시오 !
그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가 기피하고 있는 땅을 자신에게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

지극히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오늘 크게 실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믿음 없는 눈>으로 보았을 때에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갈렙이라는 사람은 그 땅을 <45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헤브론> !
그 땅이 어떤 땅이었습니까 ?
그곳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죽어서 묻혀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 땅은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라헬>이 묻혀 있는 아주 중요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갈렙은 그 땅의 <영적인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오늘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고난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 <영적인 가치>가 충분한 땅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습니까 ?
오늘 우리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도대체 무엇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지난 총선 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대권을 잡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
오늘 우리가 그런 심정으로 붙잡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이 <영적인 가치>가 있는 것 맞습니까 ?

무더운 여름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가 만났습니다.
둘이는 그 동안의 안부를 물으면서 한적한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 커다란 바나나 나무 한 그루가 뿌리채 뽑혀 있는 것입니다.
약삭빠른 토끼가 먼저 말합니다.
  우리 똑같이 나누어 갖자 !
거북이도 그렇게 하자면서 짧은 목을 끄덕였습니다.
토끼가 팔을 걷어붙이고 바나나 나무의 절반을 싹둑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뿌리가 달린 쪽을 거북이에게 던져주고, 바나나 열매가 달린 쪽은 자기가 챙겨서 쏜살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북이는 몹시도 언짢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뿌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땅을 파고 그 뿌리를 심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이 이야기의 결국>은 무엇이겠습니까 ?
<약삭빠른 토끼>가 먹은 바나나는 그 때 그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거북이>가 먹은 바나나는 그 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거북이>는 해마다 바나나를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
<생각의 속도>가 우리네 인생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는 요즘 !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 !
그것은 어찌보면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처럼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우직스럽게 앞만 바라보며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인생 !
거기에 <많은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그처럼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 !
그것은 <나 하나만의 인생>을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
<출 20:6>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  구약성경 113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여기 이 축복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
오늘 우리가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쓰디쓴 기억과 상처들을 물려주지 마십시오 !
그것은 우리 대(代)로 충분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믿음>을 물려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갈렙은 용기를 물려주었습니다.
민수기 13장에 보시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그 내용을 보고하는 장면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때 그 분위기는 그리 고무적이지 않았습니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거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읍 또한 얼마나 견고하고 큰 지 모릅니다.
  우리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제 끝났습니다.
저들의 부정적인 보고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생각,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까 ?
<두려움>이라고 하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저 <방어적인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피하게 하고 자꾸만 멀리 도망가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있는 곳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은 <원망>과 <탄식> 같은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런 지경에 머물고 있을 때 <갈렙>이 보여준 행동은 참으로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니까 ?
그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입니다.
<갈렙>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나머지 <자신의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은 우리의 땅이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여호와를 거역하지 마십시오 !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들을 두려워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모습은 그 때 거기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4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피고 있는 본문은 바로 그 때 그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
오늘 본문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입니까 ?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기피하고 싶은 땅 !
그러기에 누구도 달라고 하지 않는 땅 !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할지 모르는 땅 !
아니 어쩌면 죽음을 대가로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는 땅 !
그 땅을 놓고 이제는 나이 85세나 된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그가 그리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참으로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40세일 때 보여준 용기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까 ?
그의 용기는 그의 인생 어느 한 순간에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용기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할 또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살다보면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에 떨만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을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지금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 하고 있습니까 ?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관련해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평범한 죽음>, <비겁한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믿음의 후손들에게 <비겁함>을 물려주고 죽어 가는 것 !
사실은 우리가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구상에 아주 작은 나라인 우리 나라의 역사만을 놓고라도 보십시오 !
비겁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참으로 용기 있는 모습으로 그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

그런데 어떻습니까 ?
그들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과 자세가 어떠냐는 말입니다.

후손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평생을 살아가게 한 사람들 !
그들은 모두가 <비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손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가게 한 사람들 !
그들은 모두가 <용기 있는 삶>을 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
  내가 이렇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았노라 !
  나는 결코 비겁하게 살지 않았노라 !
  나는 정말 용기 있게 살았노라 !
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
오늘 우리가 <그 어떤 생의 위기>를 만났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요동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우리의 연약함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 인생을 삼켜버릴 수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인생>을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모두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더 이상 자녀들에게 <두려움>을 물려주지 마십시오 !
세상에 물려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을 물려주십니까 ?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럴 때마다 너무나 오랫동안 실패가 있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어떻게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
과연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지 ?
<비겁함>으로부터 벗어나 어떻게 자유할 수 있는지 ?
이제는 우리가 그것을 자녀들에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유산을 남겨주려고 어떤 부모들은 수단과 방법까지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까지 앉아 있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 나라 그룹 총수들을 통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지 않습니까 ?
그런 모습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회장 목사>가 자기 아들에게 <당회장 자리>를 물려주는 모습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물려주는데 열심입니다.
그러기에 일본에 가면 몇 대째 운영되어 온 <우동집>이라든가 <구두방>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까 ?
저는 오늘 그것을 <두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용기>였습니다.
<재산>과 <자리>와 <직업> !
세상 사람들이 흔히 물려주고 있는 그것들은 <자녀들의 내일>과 <자녀들의 영적인 생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험한 세상을 <용기 있게> <믿음으로> 헤쳐나가는 모습 !
<영원한 생명>, <영원한 시간>을 바라보며 당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 !
어떻습니까 ?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

자녀들의 삶이 진정 그런 모습이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먼저 그런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이제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속이고 빼앗는 일이 많은 이 혼탁한 사회 속에서
<정의롭고> <당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 !
바로 그 모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모습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