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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입니까? (3) / 눅 14: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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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제자입니까?(3)
본 문 : 누가복음 14:25-35
설 교 : 김학현 목사 (예은교회)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예수님을 따르던 두 부류의 사람들, 무리들과 제자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제자는 그 중심에 예수님을 담고 있는 사람들로, 주님을 가장 사랑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이며, 자기의 십자가를 마땅히 감당하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제자로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들며 그들이 왜 제자로서 성공했고, 실패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중에 그 조건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그 조건에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했습니다. 자, 그럼 성공한 제자들과 그렇지 못했던 제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공한 제자들

흔히 우리가 수제자(首弟子)라고 일컫는 베드로는 성공한 제자입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안드레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공한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소명장면을 [마4:18-20]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본문 (33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자신의 소유의 전부인 그물보다 주님의 명령을 귀중히 여겨 따랐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세리 마태는 어땠을까요? [마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세관과 그의 업무를 몽땅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 나섭니다.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성공한 제자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성공한 제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직접제자는 아니었지만 성공한 제자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그의 이후 삶은 완전히 예수님께 위탁된 삶이었습니다. [빌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써 난 의라”

예전에 누리던 부와 명예, 예전에 알던 초등학문 모두를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박사 학위 여럿 가진 헬라철학의 대가였지만, 그는 그 모든 학문을 분토처럼 여겼습니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의 십자가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지만 십자가 짐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후11:23-27]에 보면 옥에 갇히고, 매를 수없이 맞아 죽을 뻔하고, 40에서 하나 모자라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 태장을 맞고, 돌에 맞고 파선하고, 자지 못하고, 굶주리고 헐벗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자기를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었기에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실패한 제자들

성경에는 성공한 제자들뿐 아니라 실패한 제자들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가룟 유다입니다. 그의 실패는 돈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적 욕망을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는 주님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던 사람입니다. 즉, 보상을 바라고 주님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그 보상이 무엇입니까? 정치적 야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인 분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제자 됨에서 가장 걸림돌은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예수님을 믿으려는 사람이 오늘날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는 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으면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회개하거나, 아니면 유다처럼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배반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도 유다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처자는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부자청년은 어떻습니까?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는 그렇게 신앙적으로 자라왔기에 영생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방법을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마지막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것은 물질이었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좇으라”(마19:21)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즉, 소유권 이전등기를 주님께 내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 즉 자신의 소유까지도 주인이 주님이란 걸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바울이 했던 것은 이 청년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절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라는 걸 다할 수 있지만 물질만큼은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결국 제자로서 실패합니다.

바울 사도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있습니다. 그도 제자로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는 [몬1:24]에서 바울에게 마가나 누가와 같이 동역자로 인정받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과 함께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충성을 했기에 얻은 동역자의 칭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딤후4:10]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합니다. 더 이상 동역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의 세상으로 간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세상을 주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본문은 말합니다. 부모나 친척, 심지어는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성공 혹은 실패의 원인

제자로서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그 원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공한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였습니다. 부모를 포기한 사람, 처자를 포기한 사람, 삶의 터전을 포기한 사람, 배를 포기한 사람, 직업을 포기한 사람, 지식을 포기한 사람 등 무엇인가를 포기했습니다. 즉, 자기부인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주님은 지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넌 나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느냐?”고. 주님을 사랑하려면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베드로는 훗날 이런 고백을 합니다.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그는 버린 사람이기에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인, 가룟 유다, 부자청년, 데마 모두 주님을 따르긴 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항상 그런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평상시에는 믿음을 모르지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건축헌금을 드려봐야 그 믿음을 알고, 목회자가 병원에 입원해 봐야 성도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법정은 [무소유]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무소유가 불가(佛家)의 가르침이라고 치부하면 곤란합니다. 그것은 곧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불교의 진리는 버리는 것 자체를 득도(得道)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버리고 나서 무엇을 찾느냐가 중요합니다. 본문 (33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마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바로 그것입니다.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불교는 버리는 것만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야 함을 말합니다. 주님 때문에 버린 사람, 그가 바로 제자입니다. 여러분, 다시 묻습니다. 제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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