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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차원 / 대상 16:34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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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차원
역대상 16 : 34 - 36
최인근 목사 (남산교회)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드린 감사의 기도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이스라엘에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 때에는 이 언약궤가 70여년 동안 변방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작업이 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놓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감격했고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너무나 감격해서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참 기막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으로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사울로부터도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기적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켜 놓고 나서 이 감격 의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다음과 같은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감사가 주어집니까?


첫째는 "과거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과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초라했든지 화려했든지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난날 가운데 뼈아팠던 일, 억울했던 일, 서운했던 일, 그리고 배은망덕했던 사람을 생각합니다.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를 하면서 압박과 고난의 삶을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광야에 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평화의 땅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결실입니까. 과거를 생각하면 꿈같은 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수확을 거두고 감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과거를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즉 "과거의 쓰라림을 잊지 말고 그 고난 가운데서 인도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과거를 생각하면 뼈가 저렸을 것입니다. 지나온 생애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똑같은 감회에 젖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지난날을 생각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축복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이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현재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현재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즉 "구원의 삶"입니다. 오늘 내가 "주 안에서 살고 있다"는 이것이 축복 입니다. 생각하면 감격할 일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밀턴은 말년에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고 보니 귀머거리, 소경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에디슨에게 하나님은 발명왕으로, 밀턴에게는『실낙원』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옛날 태어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임금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적같은 일입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현재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야 말로 하나님은 은혜로 사는게 아닙니까?  감사하는 성도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태어났을 때 그 환경, 그 삶이 어떠했습니까. 사람마다 다 다를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어르신들은 가난, 무지, 초라함 속에서 출생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6,25전쟁으로 무작정 피난 온 분들 많았을 것입니다. 대책 없이 고향을 떠난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까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날이 이렇게 왔듯이 장차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분명히 우리 의 앞날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 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장차 주어질 하 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그것도 없이 살면 그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우리의 감사는 항상 앞을 보며 사는 감사가 되어야합니다.

칼빈은 임종시 고통 속에서도 "오늘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과 족 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암송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세계는 위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가 중요합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는 마음, 나의 앞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있다고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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