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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있는 것으로 섬깁시다 / 왕상 17: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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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는 것으로 섬깁시다
열왕기상 17: 8-16
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돈을 많이 가진 아버지가 재산의 대부분을 금으로 바꾸어서 뒷동산 고목나무 밑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 중에서 가장 진실하고 효도하는 아들에게 그것을 물려 주려고 묘책을 궁리하였습니다. 마침 세 아들에게는 젖먹이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맏아들을 불러서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얘야, 내가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얼마 못 살 것 같구나. 그러니 너의 자식을 뒷동산 고목나무 밑에 묻고 그 아이가 먹던 젖을 내가 먹도록 해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기운을 좀 차릴 것 같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권유를 듣고 ‘늙은이가 망령도 분수가 있지,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자고 금지옥엽같이 귀한 아들을 죽이라는 말이냐’고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불러서 큰 아들에게 했던 그대로 말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도 역시 ‘마음은 간절하지만 귀여운 자식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막내 아들을 불러서 형들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막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아버지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던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영영 다시 뵈올 수 없지만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평화스럽게 잠자고 있는 자식의 얼굴을 보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결단을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서 아버지가 일러주신 그 나무 밑에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파고 있는데 무엇인가 걸리는 것같은 소리가 나서 계속 파 보았더니 커다란 금덩이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숲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가까이 와서 “내가 너희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이것은 너희를 시험해 보기 위한 계획이었으니까 그 황금을 가지고 가서 열심히 잘 살아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주시기 위해서 달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그 자식이 먹던 젖을 달라고 한 것은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주겠다>는 아버지의 강한 의지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시기 전에 무엇을 달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도 리브가에게 선물을 주고, 이삭의 아내가 되는 엄청난 축복을 주기 위하여 <내게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리브가가 물을 엘리에셀에게 주었을 때 바로 그 장소에서 많은 은금패물을 받게 되었고, 나귀 등에 가득 실어왔던 그 모든 선물을 다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족장의 아내가 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열국의 어머니>가 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시기 위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내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목이 말라서나 말을 걸기 위해서 물을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주시기 위해서>,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내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무엇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우리가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실 때에, 드리라고 하실 때에 순종해서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금년에도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누군가를 통해서 봉사하라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고 ‘내가 복 받을 기회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기회를 내 것으로 삼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채널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천천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쓰실 것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고, 황충이 먹지 않게 하시고,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복을 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물질의 복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물질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겠다고 성경 여러 곳에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서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물질적으로 부유하여서 남에게 나눠주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은 3년 6개월 동안 가뭄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사르밧 여인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복을 주시기 위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실 때에 드림으로, 남은 기간 동안 그의 집에 먹을 것이 끊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굶주릴 때에도 그의 가정은 풍족한 삶을 살아 갈 수 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전에 <달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바치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의도를 잘 알고 순종하여서 리브가가 받았던 복, 사마리아 여인이 받았던 복, 사르밧 여인이 받았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집니다. 북쪽 이스라엘에는 여러 왕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아합>이라는 왕은 이방 두로 지방에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내가 시집오면서 자기들이 섬기던 <바알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만 바알을 섬길 뿐 아니라 남편 아합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아합이 바알을 열심히 섬기니까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방신을 섬기지 말라고 여러번 경고를 하셨지만 듣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아합에게 하나님은 마침내 징계를 하시는데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우로(雨露)가 오지 아니하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비교적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에도 비가 2-3개월만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제한급수를 하고 아우성인데, 비가 적게 오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상상을 해 보세요. 이스라엘 나라의 대부분의 수분은 이슬로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슬같이 적은 이슬이 아니고, 밤에 농작물이 흠뻑 젖을만큼 이슬이 내려서 농작물이 그 이슬을 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비뿐만이 아니라 이슬까지 내리지 않기를 3년 6개월 동안이었으니까 상상을 해 보세요. 산천에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다 말라 버렸을 것입니다.

사르밧이라는 동네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어린 외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여인이 있었는데,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한 줌의 밀가루와 몇 방울의 기름으로 마지막 끼니를 때우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그런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목마르니까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그 땅에서 물을 달라는 것은 아주 무례한, 염치없는 요구였습니다. 그 가뭄에 물이 제대로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아무말 하지 않고 물을 주기 위해 집으로 갑니다. 집으로 가는 여인의 뒤에서 엘리야는 또 말했습니다. “물을 가져 올 때 떡도 하나 가지고 오세요.”

보통 사람같았으면 화가 났을 것입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염치도 없이 물달라, 떡달라 하느냐고 화를 내었을 것이지만 이 여인은 다른 말 하지 않고 자기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나에게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가루 조금과 기름 몇 방울이 있는데 이것으로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나면 죽음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엘리야는 “그것으로 떡을 구워서 먼저 나로 먹게 하고, 남은 것 있으면 당신과 아이가 먹도록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떡 한조각을 자기가 먼저 먹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 아닙니까? 우리같으면 뭐라고 했겠습니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염치도 없이 뻔뻔스럽게 군다고 별별 욕을 다 퍼 부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그 가루와 기름은 자기 자식과 자기가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남은 것을 드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시의 엘리야는 보통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왕의 미움을 받아서 이스라엘에서 쫓겨 다니다가 숨을 곳이 없어서 이제는 이방나라인 시돈까지 와서 숨어 있는데 그렇게 숨어있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며 대접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시돈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 왕비의 고향, 모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마지막 남은 먹을 것을 엘리야에게 드린다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고, 또한 엘리야에게 드렸다가 알려지면 아합왕에게 죽음을 면키 어려우니 드릴 수도 없는 이런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엘리야의 말대로 여인은 떡을 구워 엘리야에게 먼저 드렸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이방에 살고있는 이 여인에게, 그것도 남편도 없이 어린 외아들을 데리고 마지막 남은 떡 하나 먹고 죽으려하는 이 가난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 떡을 달라고 요구 하셨겠습까? 정말 필요했다면 당시 부자들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부자들에게 떡을 달라고 하면 더 많은 떡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필 이처럼 가난한 여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물과 떡을 달라고 했겠습니까? 너 먹기 전에 나에게 먼저 달라고 했겠습니까? 그 여인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 여인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서 심부름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세뱃돈을 주기 위해서 절하라고 시킬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축복하시기 위해서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2. 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지지 맙시다.

제가 교회를 담임하면서 교회에 필요한 비품을 마련할 때나, 성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재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직접 드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건축을 하면 헌금하는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출석이 준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오는 축복의 기회를 발로 차 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내게 어떤 봉사의 일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전을 짓는 일은 다윗왕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은 너무도 기뻐하시면서 <내 종 다윗이 내 집을 지겠다니 내가 다윗의 집을 지어 주겠다. 내가 그의 자녀를 책임져 주겠다. 그의 왕권이 계속되게 해 주겠다>는 엄청난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때,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며 충성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윗에게 주셨던 그 놀라운 은총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마지막 떡까지 가져오라는 무례한 요구를 받았지마는 순종함으로 인하여, 3년 6개월의 가뭄이 계속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도 굶어죽지 아니하고, 힘들어할 때 힘들지 아니하고, 그의 집에는 양식이 끊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그 여인은 그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양산복지타운을 위시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밭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씨를 뿌릴 수 있는 밭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축복의 기회들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20년 전에 지어진 교회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장애를 가진 분이나 연세드신 어른들이 출입하기가 불편합니다. 교회가 할 수 있지만 성도들에게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 <심을 밭>으로 삼았습니다.

얼마 전에 집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와서 자기가 살아 온 삶을 되돌아 보면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 없고, 세상떠날 때에 자녀들에게 이런이런 일을 하라고 당부한다해도 잘 할 것 같지가 않아서 어려운 결단이지만 엘리베이터를 자기가 설치하겠다며 상담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으로서는 그렇게 부유한 형편도 아닌데다, 먹을 것 먹지 않고, 쓸 것 쓰지 않고 어렵게 마련한 것을 드린다는 것이 참 힘든 결단이지마는 정말 복된 결정을 하셨노라고, 이것만이 집사님의 생애에 영원히 남는 것이요, 자녀들에게 복을 물려주는 기회라고 말씀드리고 간절히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심을 수 있는 밭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리산 수양관에 기념교회를 세웠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그 교회에 갈 때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생각하고 부모님의 신앙을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 교회를 볼 때마다 아무개가 저 교회를 세웠다며 주님 오시는 날까지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도 그것만이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 일에 쓰임받는 일꾼되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3. 내게 있는 것으로 섬깁시다.

금년은 사역하는 해입니다. 일하는 해입니다. 내게 있는 달란트대로 하나님을 한번 섬겨 보세요.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입니다. 뿌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을 얻는 기회입니다.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떡 한 조각까지 드렸던 여인처럼 내게 있는 것으로 주님을 섬겨서 여인이 받은 복 뿐만이 아니라 섬김의 모델이 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물질적인 달란트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서 내가 받은 달란트대로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성도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물질의 은총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로마의 어거스트 대제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데 유명한 해적단이 백성을 괴롭혀서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왕은 해적단 괴수의 목을 잘라오는 사람에게 후한 상급을 주겠다고 전국에 공포를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찾아와서 왕이 찾는 해적의 목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 해적괴수의 목을 바칠 수 있느냐고, 그 비법이 무엇이냐고 왕이 물었더니 자기가 바로 그 해적괴수인데 자기 목을 왕에게 드리겠다고 합니다. 상급은 받지 않을 테니까 한번만 용서해 주면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도 기특해서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느냐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는 남을 해치고 재산을 강탈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부터 남은 삶은 남에게 유익한 사람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고 왕을 잘 섬기다가 후일에 유명한 해군 사령관까지 되었습니다.

나의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르밧 여인은 텅 빈 가루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통에 있던 가루는 누가 다 먹은 것입니까? 전부 자기가 먹은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쓴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겨우 한 웅큼의 가루나마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시간과, 내 물질과, 내 힘을 어디에다 다 쏟아 왔습니까? 내 가루 통은 얼마나 비어 있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습니까? 이제 남은 한 웅큼의 시간이나마 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은 한 웅큼의 물질이나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은 한 웅큼의 힘이지마는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루통에 넘치도록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뮬러는 그의 90회 생신 때에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쳤다. 그리고 모든 것을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리하여 부족한 것을 모르며 일생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모든 것을 받는 길이 됩니다. 주의 일에 바치면 너의 가루통은 언제나 넘치게 채워주마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것을 몰라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부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적으로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몰라서 이 풍성함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3만 2천 5백 가지의 약속들을 성경에 마련해 놓으셨는데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다면 다 복되게 살아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 내게 있는 적은 물질이지만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여인처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루통과 기름병을 넘치도록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4. 믿음으로 드릴 때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이 9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서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아멘> 엘리야는 지금 북쪽 이스라엘 그릴 시냇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면 하나님께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여인에게 너를 공궤하도록 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공궤가 뭡니까? 식사를 대접하도록 해 놓았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엘리야를 공궤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는지, 아니면 엘리야를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마지막 떡을 요구하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르밧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한 말 <너 먹을 것 먼저 나에게 주면 너의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여인은 자기가 먹지 않고 먼저 하나님에게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 속에 물질적으로 복받을 수 있는 길들을 수없이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주님 앞에 드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놀라운 기적과 경험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명령하십니다. 네게 있는 그 마지막 네 건강을 하나님을 위해서 쓰라고, 네게 있는 그 마지막 물질을 교회를 위해서 쓰라고, 네게 있는 그 마지막 시간을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네게 있는 그 마지막 힘을 내게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그 마지막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여인이 마지막 것을 자기와 어린 외아들이 먹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그들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심어서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흉년이 다 하기까지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고 남에게까지 나누어주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르밧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네 마지막 가루와 기름을 사용하라고,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서 이 여인이 받았던 영육 간에 받았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뭄처럼 어렵다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늘 경험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풍성한 삶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르밧 여인이 그 외아들에게 이 가적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치며 살았더니 이런 놀라운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성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간증거리가 되어지고, 하나님 선교의 모델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백성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관원이며 부자인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엎드려 말합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계명을 지켜라.”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켰습니다.” “훌륭하다. 그러나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너의 많은 물질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청년은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부담스러워서 슬픈 기색을 띠면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돌아가는 청년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이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가 “선생님, 저희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쫓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서, 이 세상에서 백 배나 받게 될 것이요,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을 것이다.>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더니 백 배가 뭡니까? 그를 기념하는 교회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어지고, 그를 연구하는 학자가 얼마며, 오늘도 이 지구 상에서 베드로의 신앙을 본받자는 설교가 몇 편이나 선포되고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 드렸더니 받되 상상할 수 없는 만큼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한 웅큼의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고 그에게 마르지 아니하는 가루통을 하럭해 주신 것처럼 금년 2003년도, 사역의 해에 특별히 이번 주의 말씀은 물질적으로 받은 달란트가 있다고 하면 이것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주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여서 사르밧 여인이 받았던 은혜처럼 가루통이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 베드로가 받았던 백 배의 놀라운 은총을 늘 경험하여서 물질적으로 풍성하여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꾸어주고 복되게 살아가고, 많이 심어서 또 거두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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