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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취없이 흘러간다면 / 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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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자취없이 흘러간다면
본 문 : 아가서 1:1-7
박세종 목사 (울산소망교회)


2002년도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한해 동안 살아왔던 나의 발자취와 삶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겨야 할 시기입니다.
산다는 것은 세월과 함께 흘러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인생이 흘러만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을 정의해 보면
첫 번째> 무엇인가를 얻은 것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무엇인가를 남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아가서1:1∼7절까지의 말씀으로 자취없이 흘러가시렵니까?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아가서를 읽다보면 어떤 장면에서는 오메 거시기혀여! 하는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인이 되기까지는 읽지 못하게 하였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 간의 대화하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읽으면 굉장히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게 됩니다. 소망의 성도 여러분 아가서를 읽으시면 우리 주님께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구나를 발견하고 감사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아가서 1장에는 포도원을 지키라는 책임 맡은 어느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에게는 불평이 많았습니다. "내가 어째서 포도원을 지키는 사람이 되란 말인가?" 하며 한탄을 하였습니다. 기쁨도 없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6절에서 보면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오라며 포도원 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얼마나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으면 "내가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였겠습니까?
철학자 칼힐티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하는 날" 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복된 인생을 발견하시는 행복한 아침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보람된 일일까요?
사람이 살면서 사람을 한번도 미워하지 않으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찰스 웨슬레 목사님도 일생 동안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를 강하게 결단하고 신앙 생활을 한다면 죽기 직전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J. Calvin은 사람을 가리켜 완전히 타락한 존재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다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오히려 문제를 터뜨리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면 미움이 솟아나고 꿈속에서까지 사람을 시기, 질투 하는 꿈을 꾸어서야 되겠습니까?

창 50:20-21을 들어보세요. 요셉의 말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누구입니까?
자신을 땅 속 깊고 깊은. 빈 우물 속에 쳐넣고는 굶겨 죽이려 했었던 자들입니다.
돈도 받고 노예로 팔았던 자들이고 어째보면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소에 가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10명이나 되는 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은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요셉이 그들을 노예로 팔아버릴 수도 있고 아예! 감옥소에 집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세요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며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을 정도입니다.
고난을 이기려는 투지와 인내도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려는 최선의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일 강조하신 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70번씩 7번이라도 해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용서였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왜 위대합니까?
용서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모욕하는 자들로 용서하셨습니다.
기억하세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김석균 전도사님은 이런 복음 성가를 작사·작곡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미워한 사람이 있고 오늘 나와 다툰 사람 있으며
오늘 내가 시기한 사람 있으니 난 주님을 사랑 안한 사람
나를 미워한 사람을 용서못했고 내게 화낸 사람을 이해 못했고
나를 시기한 사람을 싫어했으니 난 주님을 사랑 안한 사람
매일 이렇게 살아가면서 입술로 주님을 사랑한다하니
난 참으로 행함이 없는 사람 주님을 사랑 안 할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
2002년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냥 흘러가도록 그 아무런 흔적도 없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시렵니까?
불만과 불평이 나와 어깨동무하도록 방치하시렵니까?
아닙니다.
입을 열어 축복하며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으면서 보람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그 날 상급 받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계2:10에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가서 1장에는 포도원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포도원이란 내가 일하고 있는 곳, 내가 서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포도원 입니다.
·선생님에게는 학교가 포도원 입니다.
·군인에게는 부대가 포도원 입니다.
·장사하는 분들에게는 상점이 포도원 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포도원 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Q가 있는데
첫째는 I.Q이고 둘째는 E.Q입니다.
I.Q는 그 사람이 얼마나 똑똑하며 분석력·이해력이 있는 가를 보는 지능지수이고,
E.Q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하여 얼마나 강한 열정을 갖고 있느냐가 E.Q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학창시절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재주가 뛰어나고 재능이 뛰어난,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그들보다 승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제가 주어진 사명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교육은 매우 발랄하고 발전된 교육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학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에 이르기 까지 매우 발전하였습니다.
저희가 공부했던 1970년대와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의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왜? 범죄는 늘어만 가는 것입니까?
기억하세요!
우리의 교육이 너무나도 I.Q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불타올라야 할 가슴과 가슴들은 냉동고처럼 얼어 붙어있습니다.
머리에는 이해력, 분석력, 판단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속에 사명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여름의 태양처럼 뜨거워야 합니다.
타오르면서 자신의 몸을 녹이는 촛불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소나무의 송진이 타오르듯이 파닥 소리를 내며 타올라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였습니다.
제일 염려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공부가 뒤떨어지는 학생이 아닙니다.
핑클의 효리나 유리처럼 잘 생기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개그 콘서트에 나오는 옥동자처럼 입술이 두껍고 얼굴이 부르터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정열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열정이 있어 보세요. 눈에서는 빛이 납니다. 발걸음에는 힘이 솟아 납니다. 이 가슴속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담대함의 용기가 솟아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자기 사명에 만족해하는 사람은 겨우 15%에 불과 하다고 합니다. 85%에 속한 사람은 그저 만족도 없고 보람도 없고, 감격과 기쁨도 모르고 불만하고 불평하면서 불행하게 산다고 합니다.

아가서 1장에 나오는 포도원 지기를 보세요.
"나의 오빠들이 나를 오히려 포도원 지기를 삼았노라" 얼굴만 검게 그을렸을 뿐이지 지켜야 할 포도원은 지키지를 못하였습니다.
왜 못 지켰을까요?
그의 가슴속에 불만과 불평을 가득 차 있는데 무슨 일을 재미로 하였겠습니까?
옛말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핑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불만이 생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불평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벌써 2002년 12월 8일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살펴보십시다. 포도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격이 있는지, 감사가 있는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주여! 올해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제가 이 나무를 다시 살려 놓겠나이다. 울부짖으면서 다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던 농부처럼 다시 한번 충성된 자리로 나아가다가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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