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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이면 충분합니다 / 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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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 1:1-11
제목 / 당신이면 충분합니다
설교 / 전충현 목사 (영암교회)


우리는 흔히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요즘은 <작은 것>들이 설 땅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의 경우도 보십시오 !
집집마다 점점 더 커다란 가전제품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한 동안 경차가 많이 보급될 것 같더니만 이제는 자동차 메이커마다 경차를 기피하고 있답니다.
<교회>도 대형교회를 선호합니다.
<백화점>이나 <상가>도 그렇습니다.
<병원>도, <약국>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대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처럼 모든 것이 점점 <대형화>되어가면서 은연중에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된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것, 큰 것>은 좋은 것이고, <적은 것, 작은 것>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작은 것, 적은 것을 결코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작은 것, 적은 것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대단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정말 우리 안에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정말 우리가 버려야 할 생각입니다.
나 한 사람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라는 사람 !
그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가심에 있어서 <느헤미야> 한 사람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치시고 싸매심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100% 헌신된 한 사람 !
그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당신이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 최대의 저주는 <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한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한 저주는 정말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땅의 부부들로 하여금 그렇게도 많이 갈라지게 하는지 아십니까 ?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라는 그 말 한 마디 !
그 말 한 마디가 그렇게도 많은 부부들로 하여금 헤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그것은 <사탄의 장난>입니다.
우리 인생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려는 사탄의 장난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오히려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도미노 게임>을 보셨습니까 ?
아주 작은 힘 하나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처럼 우리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이 조국>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
<이 교회>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
<여러분의 가문과 가정>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
<여러분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
그녀는 어느 한적한 시골의 <지극히 평범한 한 여인>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베드로>라는 사람 ?
그 역시 평생을 고기잡이로 살아온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세>라는 사람 ?
그는 <인생 황혼기>에 이미 접어든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보십시오 !
한결같이 저들 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셨지 않습니까 ?
하나님께 100% 헌신된 한 사람 !
그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라는 사람 !
그는 유대인으로서 바벨론 <포로 3세>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때에 예루살렘 성이 무너져 내렸고, 그의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그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것입니다.

타국에서의 포로생활 !
그 생활이 어떠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참> !
그 한 마디로 그것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참한 삶의 정황 !
그런 정황 가운데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
그 무엇보다도 그것은 <위로>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이름 <느헤미야>도 여러분,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
그것은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름에 걸맞는 인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커다란 위로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제는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보십시오 !
하나님께 100% 헌신된 사람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늘 느헤미야의 세 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다른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
그가 조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형편과 예루살렘 도성의 형편을 묻고 있지 않습니까 ?

그가 지금 머물고 있는 <바벨론>은 조국으로부터 무려 1,300Km 정도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포로 1세>도 아닙니다.
그는 <포로 3세>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미 <바벨론 문화>에 젖을 대로 젖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바벨론 왕궁>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답답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
그가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런데도 보십시오 !
무려 1,300Km 정도나 떨어져 있는 조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그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출발점>은 어디입니까 ?
그것은 <관심>입니다.
관심이 없이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시작>은 <관심>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칼>이 아닙니다.
그것은 <총>도 아닙니다.
그것은 <무관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으면 우리는 이미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 밖에 버려진 나 !
그런 나라면 이 땅에서의 삶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와 <아픔들> !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이겠습니까 ?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관심>입니다.
바로 그 무관심이 우리의 가정을 깨어버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무관심이 <혈육>의 관계를 깨어버립니다.
무관심이 <친구>의 관계를 깨어버립니다.
무관심이 <이웃>의 관계를 깨어버립니다.
심지어는 무관심이 <하나님>과의 관계 마저 소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 늘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
가까이 오라 !
가까이 오라 !
그리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
보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집니다.
마음이 멀어지면 <관심>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아무리 험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계시지 마십시오 !
거기는 너무 위험한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께 100% 헌신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심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것이라면 우리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가정을 새롭게 하고,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하고, 우리 조국을 새롭게 함에 있어서 우리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여러분과 저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느헤미야>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모습은 그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불행을 보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
조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환난을 겪고 있고, 예루살렘 도성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가 울고 있지 않습니까 ?

사실 <눈물>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무엇때문입니까 ?
누군가가 나를 비웃었다고 !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고 !
누군가가 나의 자존심을 짓밟아버렸다고 !
우리는 대체로 이런 것들로 <눈물>을 흘립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 <느헤미야의 눈물>은 그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던 눈물은 <다른 사람의 아픔>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나의 아픔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그런 아픔을 겪게 되었는가 ?
왜 바보 같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가 ?
그처럼 <아픔의 원인>만을 파고드는 사람 !
그러기에 <지금의 아픔>은 당신이 너무나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열심히 지적해주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놓고 눈물을 흘릴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느헤미야의 경우를 보십시오 !
조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지금 커다란 환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느헤미야 !
예루살렘 도성이 다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접한 느헤미야 !
그가 오늘 누구를 책망하고 있습니까 ?
그것은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를 새롭게 하심에 있어서 이 한 사람이면 충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
IMF 환난을 겪으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험한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누구누구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문제의 사람이 누구였는지 ?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을 책망하는 소리는 이 땅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직면한 그 상황을 놓고 목놓아 우는 정치인이 있었다고 하는 소리는 이제까지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한 교회가 지금 상당한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 교인들이 목회자를 배척하고, 교회는 지금 마구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교회 !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얼만 전부터는 제가 알고 있는 교회가 그런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소식이 제게 들려왔을 때 저는 느헤미야처럼 울었어야 했습니다.
한 교회가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 것을 보면서 제 가슴도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목사님께 무슨 문제가 있은 것은 아니었을까 ?
성도들에게도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었을꺼야 !
저는 그것을 열심히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양비론의 입장에 서서 이 쪽도 저 쪽도 비판하는 모습만이 제 안에 가득했음을 이 시간 여러분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하나님께 100% 헌신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눈물 !
그것은 이제 <저의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제 안이 그런 모습으로 채워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저 한 사람을 통해서도 크게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제는 그런 모습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느헤미야>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은 그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안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
그가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느헤미야 !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
그런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의 삶 속에 기도로 가득 채우지 아니하면 그 모습은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느헤미야 !
그는 단순한 <의리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의리의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으로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
그런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 !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
결국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
그는 지금 왕궁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
그가 지금 <술 관원>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 않습니까 ?
왕을 독살시키려는 온갖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자리 !
그가 앉아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였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였겠습니까 ?
그가 그처럼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그가 누리고 있는 <권력>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처럼 그는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만이 조국의 상황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 !
이런 사람 하나면 충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지금 여러분이 접하고 있는 소식은 무엇입니까 ?
한 가정이 지금 깨어지기 직전입니까 ?
한 회사가 지금 마구 흔들리고 있습니까 ?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어찌하고 있습니까 ?
여러분이 지닌 그 어떤 것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까 ?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그 어떤 힘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지금 그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로 우리가 내려앉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 !
그런 사람은 <천 명>이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100% 헌신된 사람 !
그런 사람 <하나>면 충분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시지요 !
느헤미야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베풀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6절 말씀도 보시지요 !
그는 지금 <주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 기도하는 것으로 그는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6절 말씀의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조국이 그토록 아픔을 겪고 있는 문제를 놓고 그가 지금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
그의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여기 이런 사람 <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쓰셨습니다.
그 역사는 <회복의 역사>였습니다.
그 역사는 <치유의 역사>였습니다.
그처럼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를 새롭게 쓰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지금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져 있는가 ?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
이런 것들은 전혀 상관하지 아니하십니다.
문제 해결의 결정적 열쇠는 우리가 하나님께 100% 헌신된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찬양예배> 때 우리가 확인하겠습니다마는, 아말렉 군대를 물리쳐 이기게 하시는데 있어서 <모세> 한 사람으로 충분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선지자 850명을 물리치시는데도 <엘리야> 한 사람으로 충분했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에서 이스라엘을 지켜 내는데도 <히스기야> 한 사람의 기도로 충분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함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 !
그 분 <한 분>으로 충분했습니다.

모두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우리가 온전히 붙잡히기만 하면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
하나님께 우리가 온전히 붙잡히기만 하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붙잡히면 우리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나 하나로 인해서 그처럼 회복되어지고 치유되어지는 역사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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