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의 능력을 사용하라(롬1:16-17)

  • 잡초 잡초
  • 359
  • 0

첨부 1


제목 : 복음의 능력을 사용하라(롬1:16-17) 
이름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세상에는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소리의 홍수입니다. 뉴스의 홍수입니다. 매일 시간마다 뉴스를 전하는데 그 다음날도 보면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매일. . .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소리들이 우리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는 소리는 별로 없습니다. 어떤 정치인의 부정이야기 비리 이야기 등등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무감각합니다. 듣고 나면 실망이 됩니다.
들어서 귀를 버리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귀로 들었는데 왜, 비위가 상합니까? 이상합니다. 귀로 들었는데 입맛이 떨어지는 소리들도 있습니다.
안 들은 만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차이는 들음에 있었다.
무엇을 듣는가는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최우선권을 두며 살아야 한다.
영적인 사람이 되느냐 세속적인 사람이 되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그러나 제대로 듣기만 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소리가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복음입니다.

기독교는 소식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졌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게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마틴 루터는 "복음이란 토론이나 논쟁이 아니요, 장엄한 선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소리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믿음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1. 우리는 '좋은 소식'(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Good News, 헬, 유앙겔리온)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틴데일은 '복음'이라는 헬라어의 뜻은 "좋고, 기쁘고, 반갑고, 즐거운 소식으로 듣는 이를 황홀케 하고 , 노래하게 하고 , 춤추며, 뛰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전쟁을 하면 멀리 나가서 전쟁을 합니다. 그 전쟁에서 이기면 그 소식을 빨리 전하는 전령이 몇 일을 걸려서, 아니면 말을 타고, 뛰어서 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온 성내는 북, 꽹과리치고 먹고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 납니다.
복음은 승리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으면 춤추고 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승리는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인류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승리입니다.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사함 받습니다. 이 사건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고 천국가는 사건입니다. 지난 2002월드컵 사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02월드컵때 브라운관으로 비친 한 관중은 남자인데 나무 좋아서 눈물을 닦아가면서 우는 것입니다. 아이처럼. .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너무 모진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눈물까지는 흘리지는 않았는데. . .
월드컵에서 승리를 해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 . 복음의 승리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런 엄청난 소식을 가진 종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종교는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도 좋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참선을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구원은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잠시의 즐거움과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바르게 사는 자부심속에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생명 없는 종교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귀한 것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보아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하나님은 복음을 성경에만 쓰신 것이 아니다. 나무 위에, 꽃들 위에, 구름 위에, 별들 위에 쓰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식을 이렇게 많은 곳에 기록해 두셨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찾지를 못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요, 우리의 아버지는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와는 다른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종교입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60평짜리 아파트 + 외제 고급 승용차 와 평생건강중 어느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말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생명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농사- 먹고 살려고 있는 것입니다. 병원- 병들어 죽지 않을려고 있는 것입니다.
음식만드는 공장- 먹고 살려고 건축회사-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짓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육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영적인 생명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육신의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습니다.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우리중에 생명의 종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잘못된 믿음입니다.


2. 믿어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본문에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능력은 '뒤나미스' 일반적으로 힘 세력을 의미합니다.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적을 의미합니다. 이 힘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믿는자에게'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짠법입니다. 아무리 복음이라는 것이 좋아도 믿지 않는데 무슨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친구 집에서 큰 벽시계를 구경했습니다.
친구는 삼대째 내려오는 '가보'라면서 그 시계의 내력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조부께서 75년간이나 그 시계 소리를 들으시면서 주무시고 일어나셨으며,
부친께서 75년을 더 사용하셨고, 자기 자신도 어려서 그 시계를 보고 학교에 다녔다면서
정확해서 믿을 만한 시계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런데 그 벽시계에는 바늘이 빠지고 없었습니다. 태엽을 감아주니 똑딱거리는 소리는 나는데 바늘이 없으니 시간을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금으로 만들었으면 무슨 소용이 있고, 은으로 만들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오래되고 과거에 잘 맞았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이 몇 시인가를 알려주지 못하는 벽시계! 바늘 없는 벽시계, 시간을 알리지 못하는 시계,
삼대, 오대를 믿어 왔어도 보여줄 믿음이 없는 교인은 이것은 이 시계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복음은 처음 예수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초신자용 교리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어떤 교인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초보적인 말씀을 우리같은 교인들에게 말한다'고 자존심을 상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언제나, 날마다 믿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복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실을 늘 고백하며 살 때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믿음을 너무 쉽게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교회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복음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살아가게 하는 본질적인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때 죄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복음에 대한 믿음의 고백 앞에서 마귀는 물러갑니다. 이 복음의 고백을 할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복음은 전해질 때 본래의 목적을 다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죄인을 용서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꾸는 사랑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0-22) '예수'-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나님은 그 이름속에 당신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구원할 것이다. 내백성을'
예수님은 복음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우리가 먼저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먼저 구원받은 우리에게 전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나일리츠 박사는 전도의 정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어디에 가면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전도라 했습니다. 빵을 얻어먹어 본 경험이 있는 거지라면 얼마든지 다른 거지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소개 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가끔 구걸하는 사람들이 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매우 당당합니다. 지폐를, 그것도 배추잎사귀를 달라고 합니다. 만약에 배추 잎사귀를 주면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그런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생명수, 생명의 떡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명의 떡, 생명수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목말라 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인생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예수님께 갑시다. 거기에 가면 목마름이 해결됩니다.' 왜,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까?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죄입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죄악의 Action을 취하지 않았는데 . .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떤 전도지에 보면 앞장에 "지옥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물음표! 'Question mark'가 있습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뒷장을 보면 "당신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뭐 깨달아지는 것 없습니까? 사람들은 지옥가지 않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죄를 지을 까봐 조심 조심합니다. 매우 바리새인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지옥간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땀나게 하는 말씀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 그래도 가만히 계실렵니까?
가령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암병이 걸렸는데 어떤 약을 먹고 깨끗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면,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약에 대한 소식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가서 전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만 고침 받고 그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입니다. 이기주의요, 살인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천국의 길을 발견하고 예수 안 믿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전도하지 않는 다면 이것은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죄 중에도 큰 중죄입니다.

99년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오션사이드에서 10세 소녀를 납치해 모텔에서 강간한 뒤 소녀의 집 근처에 버린 한 30세 남자 납치범 저몬 캐리(30)가 최근 법원에서 425년형의 선고받았다. 판사가 보니 그렇게 하고도 전혀 잘못한 기색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형이라는 것입니다.
이 뉴스 기사를 읽고 복음을 전하지 않은 죄가 얼마나 중형인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 까요? 두 말 할 것 없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입소문이 무서운 것입니다. 소문이 퍼지려면 누군가의 입에서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입으로 예수님에 관하여 말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전도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되는 집안은 자기 며느리 자랑, 시어머니 자랑. . .을 잘합니다. 물론 며느리에게는 언제나 힘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되는 집안은 자기 가정에 대해 불평과 불만이 많습니다. 자기 집안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부흥되는 교회들을 보면, 이구동성으로 자기 교회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부흥되지 못하는 교회는 교회의 안좋은 점만 늘 생각하고 소문을 냅니다. 누워서 침밷기입니다. 누워서 침밷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입으로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한번 나가면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일하라고 직분을 세워 주셨는 데(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성가대로) 일년에 한 사람도 데리고 나오지 못하고 어찌 그 교회가 어떻게 부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어찌 주님 앞에 감히 얼굴을 들고 설 수 있겠습니까?
복음전도는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합니까?
세례 요한이 자기의 두 제자 안드레와 요한에게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안드레가 그의 육신의 형제인 베드로에게 메시야를 증거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전도는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고 또 가장 쉬운 전도 방법입니다.
빌립은 그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결국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고구마 전도법'으로 알려진 김기동 집사는 영생을 주시기를 작정된 자(행 13:48)
는 믿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람을 고구마로 생각하고 익었나 안 익었나 찔러본다는 것입
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알고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암송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믿어야 능력이 됩니다. 전해야 복음이 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냉장고 속에 있는 떡이 배부르게 못하듯이, 알고만 있는 복음이 무슨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벌써 금년도 반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복음의 역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