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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곳에 주의 영광 가득하소서 / 사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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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주의 영광 가득하소서
사 6:1-8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1. 예배당은 성전이어야 한다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80년대 한국 교회의 신학적 이슈 중의 하나가 聖俗 이원론의 문제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속 분리를 반대하며 그 일치의 가능성을 주장했었습니다. 그 성경적 원리는 성육신의 교리였습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 . ."(요 1:14)란 말씀으로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기에 이제 더 이상 거룩함과 세속이 구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 사상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 훼퍼에서 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사회신학자인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에서 절정을 이룬 세속주의 신학의 영향이었습니다.

당시 보수주의 신학교를 다녔던 저였지만 그런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탐독하면서 적지 않게 많은 영향을 입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가운데 가장 크게 거부감을 가졌던 것 중의 하나가 예배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엔 더 이상 성전은 없다,' '어디서든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모이면 곧 예배이고 그곳이 성전이다,' '그렇기에 주일에 반드시 예배드리려고 교회에만 올 필요도 없고,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아니면 야외에서든 형편대로 예배드리면 주일 성수가 된다' 등의 주장에 쉽게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유학 중에 미국 교회를 다녀봤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국 교회의 예배당은 대부분 "성전"이란 의미의 sanctuary란 표찰을 입구 문 위에 붙여둔 것을 보았습니다. 뿐 아니라 그들의 예배 의상 문화에 놀랐습니다. 평소 입고 다니는 모습은 케쥬얼합니다. 그런데 예배 시는 모두 신사 숙녀가 되어 정장을 하고, 화장을 하고, 새 신을 신고, 향수를 날리며 예배당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만큼 평상시와 예배시가 얼마나 다른가를 크게 의식하며 예배당이 성전임을 인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모든 곳이 하나님의 전임을 알면서도 동시에 예배당도 하나님의 성전임을 옳게 인식하며 드나들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산에서도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고, 광야에서도 그의 영광을 보았으나, 성전가운데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광을 가장 기뻐하며 그 성전에 임재하시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표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2. 이가봇 성전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백성이 나아와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오셔서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징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막 시대나 성전 시대에서나 그 곳이 여호와의 전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야 했습니다. 구약시대엔 그것이 매우 뚜렷하였습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 29:42-43)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 7:1-3)
그러던 것이 점차 희미해져갔습니다. 사무엘이 어린 시절 즉 엘리 사사 시대엔 그 영광이 너무 희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렇게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그 결과가 결국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전하게되었고 하나님의 궤를 탈취당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 그의 자부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죽으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17-22)

오늘 설교 본문의 시작에서 볼 때 이사야가 웃시야 임금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기까지는 그 성전에 주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이 성전되기 위해서는 예배당에 주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위에 주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간구하며 주의 영광을 찾아야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부르짓었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여기서 "주의 영광"은 "주의 얼굴"을 의미합니다. 모세에겐 주의 영광은 곧 주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의 얼굴 모양이 아니라 주의 얼굴이 자기와 자기 백성을 향하여 살피신다는 증거를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주의 영광 가득하소서!"는 주님의 얼굴이 이곳에 모인 자들을 살펴주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4-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곳에 왔다 가실 때마다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든지 나를 지키시며 나의 산성이시며 바위시며 힘이 되실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3. 주의 영광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이사야서에 온 땅에 충만한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는 발을 가리고 남은 두 날개로 날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광을 보면 천사들조차도 그들의 얼굴과 발을 가릴 정도로 모든 피조물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주의 영광을 보면서 자기 죄를 느끼면서 부끄러워 울부짓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절)

그렇습니다. 주의 영광이 이곳에 가득하면 우리들은 부끄러워집니다.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됩니다. 심지어 죽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존재를 잊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주의 치료가 시작됩니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6-7)

뿐 아니라 비로소 우리의 삶의 길의 의미와 옳은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4. 마무리하면서

성도 여러분! 올해의 교회 표어가 이것입니다 - "이곳에 주의 영광 가득하소서!"

이 표어가 우리들의 간절한 간구가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 성전을 올라오는 자마다 올라올 때마다 주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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