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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칼럼] 왜 하나님은 아말렉 군대를 비참하게 죽이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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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아말렉 군대를 비참하게 죽이시는가? 
충주소망감리교회
담임목사-이강무


칼럼 - 왜 하나님은 아말렉군대를 비참하게 죽이시는가?

<1>
신실한 교우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다.
'어찌하여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을 침입할 때 아말렉
군대를 비참하게 학살 시키고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시는가?'

목사님들로부터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대부분 설명하길 하나님의 역사
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단호히 제거하셨다는 정도의 답인데, 글세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고 사랑의 하나님이 그렇게 무자비 하게 적을 무찌를 수가 있으신건
지 의문이 간다는 말이다. 
이러한 질문은 성서를 읽다 보면 무수히 할 수 있는 질문이고, 이러한 질문을 하는 분은 믿
음이 없는 분이 아니고 더 잘 믿으려고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맹목적인 신앙인들보다 더 하
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물론 단순한 사람이 한 질문도 아니다. 대학까지 나오시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으로 신앙의 연륜도 비교적 깊은 분의 질문으로 쉽게 접어둘
성질의 것이 아닌 아주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다. 우리는 이런 류의 질문을 존중하게 생각하
고 성실하게 답변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한국교회와 성도가 질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2>
성서를 이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성서도 하나의 쓰여진 책으로서 편집되고 인쇄되어 우리에게 읽혀지는 것이지, 하늘에서 어
느날 갑자 떨어진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술하는 사가(史家)는 사가들의 입장이 있다.
민족이 주체가 되어 민족의 입장에서 역사를 쓰면 '민족사관(民族史觀)'이 된다. 그리고 민중
의 편에서 민중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면 '민중사관(民衆史觀)'이 된다. 식민통
치자가 통치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면 '식민사관(植民史觀)'이 된다.
이처럼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어느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던지 자기의 관점이 반드시 있
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신앙의 관점에서 기록한 것으로서 구태여 말한
다면 '신앙사관(信仰史觀)'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3>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성도들이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안에서 체험한 하
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하심과 섭리하심을 기록한 신험체험서이다. 여기에는 고귀한 신앙체
험이 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인생들의 승리의 개가가 있다.  뿐만아니
라 여기엔 사람들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초과학적 신비의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
날도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신비적 체험을 하며 영
적으로 크게 변화되어 새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신앙사건을 일으키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며 우리 삶의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는다.


<4>
그런데 이러한 성서를 너무 과학적으로 사실적으로 혹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성
서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많은 무리가 따른다. 어떤이들은 고고학적으로 연구하여
연대기를 맞추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들은 나름대로 열심있는 신앙인들로서 하나님
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증거할려고 하는 몸부림 자체는 훌륭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서는 우리의 3차원적 과학정신으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초과학적 하나님의 신비의 사건이요, 예측할 수 없는 4차원적 세계관인 것이다. 어린아
이 실력으로 아무리 우주를 잘 설명한다 해도 역시 어린아이 짓이지 어른들의 보기엔 미숙
한 행동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과학지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또한 문자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성서는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체험한 신앙인이 기록한 것이다. 신앙인은 하
나님을 증거하는데 있어 자기의 주관이 들어갈 수 있다. 가령 예를 든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록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나의 적들을 무참하게 학살 하셨다고 열정적으로 보도할
수도 있다. 이는 이 기록을 하면서 믿지 않는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역사
를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주관적으로 자신이 체험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
로 우린 여기서 성경을 기록한자가 잘 기록했거나 잘못기록했나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대단한 믿음임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을 사
는 우리들도 그러한 믿음으로 역경과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5>
성서는 사건(fact)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meanning)가
중요한 것이다. 사건 하나 하나에 매이면 성서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과 더불어 형성된 피나는 기록이며, 저들의 얼과 현실과의 투쟁에서
이루어진 사건의 기록이다. 이책은 우리의 역사책에서 보는 것 같은 연대사적인 서술이 아
니라, 철저히 삶에서 몸부림치면서 형성된 그 민족 신앙의 집약이며 동시에 민족사이다.
그리고 성서의 편자는 여러 전설이나 민담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최초의 잘못된 역사를 거
듭 강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그 잘못이란 하나님께 도전하는 인간 역사이다. 이 잘못되어
가는 역사의 종국적 파멸 이전에 개입하는 하나님의 뜻은 후에 주제가 되는 구원사적 사관
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주는 의미는 새 시대의 출발은 역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건(fact)이 가져다 주는 의미(meanning)를 잘 이해하고 성서(text)가 오늘 우리의 삶
(context)에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겸손히 생각할 때, 오늘 우리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
님이 승리로 이끄셨다는 그들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도우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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