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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타(Star)와 살기, 스타로 살기 / 마 2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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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스타(Star)와 살기, 스타로 살기
본 문 : 마태복음 20:29-34
설 교 : 김학현 목사 (예은교회)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다간....” 참으로 노랫말이 아름다운 유행가입니다. 별처럼 아름다운 것은 사랑만이 아닙니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흔히 연예인이나 유명 스포츠선수를 ‘스타’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스타는 남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스타입니다. 여러분 모두 스타로 사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계2:28]에 보면 이긴 자들에게 새벽별을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새벽별이란 예수님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이 허락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연예인 스타를 쫓아다니는 행동만으로도 행복한 소년소녀들이 있듯이, 예수님 한 분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이요, 작은 예수로 사는 게 행복입니다. 즉, 스타(예수님)와 함께 사는 게 행복이요, 스타로(예수님처럼) 사는 게 행복입니다.

이미 지난시간에 우리의 생애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하며 예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음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예배로 드리는 삶인 우리의 생활을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멈추십시오(Stop)

오늘날은 멈출지 몰라 문제입니다. 멈출 때 멈춰야 합니다. 아무리 고급세단이라 할지라도 브레이크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런 차는 줘도 안 갖겠습니다. 누가 주지도 않을 테지만... 서야할 때 서는 차가 좋은 차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고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쉼을 아는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눈먼 이들 앞에 멈추어 서십니다. 주님이 멈추어 서실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이런 면에서 아름다운 삶의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출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는 빈부나 귀천이 없습니다. 안 쉬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출23:12]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심지어는 동물도 쉬게 하라고 합니다. 쉴 새 없이 일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인생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식일은 그냥 쉰다고 하는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민28:25] “제 칠 일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도 쉬었으니 나도 쉬어야 한다고만 말하지 성회로 모이라는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런 인생은 예배에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내 바쁜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성공하는 예배자입니다. 할일이 없을 때만 예배드리는 게 아니고 할일이 많지만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갈 길이 바쁘시지만 멈추어 서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잖습니까. 잠깐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생각하십시오(Think)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애인 생각에 밤을 지새웁니다. 주님은 주님을 생각하도록 명령하십니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잠깐 지나치는 생각의 스침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가 밤새 뒤척이며 애인 생각을 하듯, 그리스도인은 주님 생각에 잠을 설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하기 위해서는 멈춰서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선택할 때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실 때, 항상 그들의 삶의 현장 앞에 멈춰 서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어부로써 일하는 갈릴리 호숫가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보시고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택할 생각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각을 마치자 명령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나다 엉겁결에 그들을 택하신 게 아닙니다. 이미 그 짧은 순간에 멈추어 서서 그들의 앞으로의 생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멈춰 서시고 두 눈먼 이들을 생각하십니다.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있습니까? 돌을 던지기 전에 그의 입장을 생각하십시오. 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욕먹을 짓을 한 것은 아닌지 먼저 생각하십시오.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까? 욕이나 삿대질부터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창조물인 상대방의 존귀성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이런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삶이 힘듭니까? 더 힘든 삶을 사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죄가 유혹합니까? 재물이 유혹합니까? 성경 [눅17:32]은 말씀합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인정하십시오(Acknowledge)

생각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은 자초지종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만났을 때, 실은 그 사건이나 사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곧 생각의 문제이고, 인식의 문제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인식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멈춰 서서 생각하고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멱살잡이부터 하지 않습니다. 그를 생각해보면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부도를 만났어도 더욱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의 부도라는 문제는 같습니다. 그러나 반응이 다릅니다. 그것은 그 부도에 대하여 느낀 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잘못을 했기 때문이며 경영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면 더욱 신앙적으로 매달리게 됩니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도 주님은 깊숙이 개입하시고 계시다는 걸 빨리 인정하십시오. 우연이란 없습니다.

본문은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로 가실 때, 눈먼 이 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멈춰 서서 (마20:33)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요구를 알아보는 질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요구가 눈뜨는 것임을 모르시기 때문에 물으시는 게 아닙니다. 아시지만 다시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이런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행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 하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이런 자세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예배자요, 성공하는 인생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반응하십시오(Respond)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반응은 항상 앞의 세 단계를 거친 후 이뤄집니다. 다시 본문입니다. 여리고로 가시다가 눈먼 이 둘을 만난 예수님 일행의 이야기입니다. 길가에 앉았던 두 눈먼 이들은 작심하고 그곳에 앉아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웅성거리며 예수님 일행이 오는 소리가 들리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칩니다. 그것은 몸부림이요 절규입니다.

그러나 같이 가던 무리들이 그들을 꾸짖어 잠잠하라고 합니다. 제자가 아니라 무리들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필요 때문에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물으십니다. 무리와 예수님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왜 반응이 다를까요? 무리는 스타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타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 앞에 서십니다(Stop). 그리고 그들을 생각하여(Think), 아픔을 물으시고 눈을 떠야 한다는 필요를 인정하십니다(Acknowledge). 그러기에 눈을 만져 고쳐주시는 반응이 나옵니다(Respond).

반대로 무리들은 멈추지도 앉았고, 나름대로 생각할 때 주님은 빨리 가셔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즉시 반응해 버린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으니 그들의 요구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반응이 제대로 된 반응일리 없습니다. 사람은 항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대하여 네 가지(STAR) 단계를 거칠 때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미 스타와 함께 살도록, 또 스타로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사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하나님은 바벨론을 새벽 별 같이 빛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주받습니다. 스타가 스타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스타입니다. 스타로 사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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