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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 고정하자 / 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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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전준식 목사 
제목 : 예수께 고정하자
본문 : 히브리서 3장 1절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순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아이들이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순종에 대한 점수를 준다면 상 중 하에서 얼마쯤 되는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들 녀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집은 상이에요. 왜? 우리 아이들만큼 엄마 아빠 말 안 듣는 아이들도 드물 거 같은데 어떻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니? 왜 우리가 상인데? 솔직히 우리들도 부모님께 순종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순종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뭔데? 엄마와 아빠가 싸우기 때문이래요. 우리 집도 싸우는데? 맞아요. 우리 엄마 아빠도 싸우지요.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는 일년에 한번 정도 싸우지만 우리 친구들 중에는 일주일에 한번 씩 싸우는 사람이 있대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보고자라는 것이 그 아이의 생각을 결정짓는 구나. 그렇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자라는가 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행동을 낫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나의 행동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환경이 흔들려서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흔들리기 때문에 환경이 보이고 원치 않는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생일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책상 앞에 써 두었던 글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는 책 상 앞에 나의 다짐을 적어 두고 늘 바라보았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 문구를 보고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게을러 질 때마다 그 문구를 보고 다시 부지런함을 회복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구를 24시간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순간 순간 그 문구를 보고 내가 가는 방향을 점검합니다. 마치 이것은 조종사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종사는 도착지에 도착 할 때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 할 때 만 긴장합니다. 나머지는 비행기 방향을 목적지에 고정하고 나서 책을 보고 차도 마시고 승객이 있는 곳으로 나와 인사도 합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 기체가 흔들리면 다시 키를 잡고 방향을 점검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을 향하여 고정시켜 놓으면 우리는 거기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청년 시절이 품었던 아름다운 마음을 지금도 품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그것을 잊어 버렸습니까? 상황이 그 아름다운 생각들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보고 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과학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 할 수 있는 칲을 개발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침이 내 몸에 간직하여서 처음 가졌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 칲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에 가졌던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잊지 않는 신림교회 성도가 되십시오. 안수 받을 때 가졌던 그 첫 마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이것은 주님을 바라볼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누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1절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 라고 시작합니다. 이 접속사는 어떤 말씀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까? 2장 18절에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편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난 받고 시험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시작이 2장 18절을 그대로 받아서 고난 받는 백성들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난 받는 백성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클레이 주석가는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입는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주석하기도 했습니다. 또 바클레이는 이렇게 주석을 했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은 하늘의 부르심 안에서 나누는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불러서 여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번 차지 정부에 입각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가 전혀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는데 부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인터뷰를 할 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황스럽다 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불러주었으니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물을 깁고 있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부르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못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이런 베드로처럼 전혀 예상하고 있지도 않는 우리를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당황스럽지만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이 곳에 나와 앉아 계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형제는 예배 마치고 나가면서 제 손을 붙잡고 이런 말씀을 했어요. 목사님! 성경 말씀이 제 마음에 바로 바로 꽂혀요.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부르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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