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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으로 아름답워지기를 원하세요? / 창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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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답워지기를 원하세요?  (창세기 6:5-7)
김홍진 목사 (천안외대 대학부)


  한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왕에게 아기가 없었습니다. 왕비는 기도하여 아이를 나았습니다. 그 아이는 예쁜 공주였습니다. 어느날 엄마 왕비가 죽었습니다. 새왕비가 들어왔습니다. 새왕비는 늘 거울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항상 거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은 왕비님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된 이후에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다우니” 물어보면 이젠 이 거울은 “백설공주요”라고 대답 했습니다. 새왕비는 이것을 질투하여 백설공주를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백설공주 이야기 전반부입니다. 이 동화는 이미 초등학교 때 마스터 했을 것입니다.

  이 왕비와 같이 모든 인간은 아마도 아름다워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왕비처럼 모든 여성들은 아마도 아름다움을 위해 오늘도 가꿉니다. 남자들은 멋을 위해 자신을 다듬어 갑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멋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신 처음 말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31절에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감탄사는 아름답고 멋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6장 5절에서 6절을 보면 그 인간을 보고 하나님은 한탄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이 악함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학생여러분, 당신을 보시는 하나님의 평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당신의 모습에 감탄할까요? 아니면 당신의 추함을 보고 한탄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참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 무엇이며, 아름다워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생각해 볼 것은 아름다움의 중심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보시며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전체의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하나님의 감탄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탄사는 본문 창세기 6장 5절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이 한탄하셨습니다.

  결국 마음이 더러워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움과 멋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뭐가 중요합니까? 뭐가 아름다워야 합니까?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옛날 노래 가사에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여자지” 뭐가 중요하다는 겁니까? 마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학생들은 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외모가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젊은 학생들이 만들어낸 신조가 뭐여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리가 기냐? 짧으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롱다리 솟다리입니다. 요즘 그것도 모자라서 무슨 말이 등장 했나요? 장롱다리까지 등장했습니다. 장롱다리가 얼마나 짭습니까?(웃음). 장롱다리보다 더 짧은 다리가 있다는데 뭔지 아십니까? 리모콘 다리랍니다.(웃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외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정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아름다워진다”고 했습니다.

  때는 여름이라 교회에 한 여 중학생이 배곱티를 입고 왔습니다. 그래서 한 집사님이 보기가 하도 민망해서 “아니 학생 외모가 단정해야지 하나님이 보시면 뭐라하실까?” 하면서 학생을 나무랬습니다. 학생이 말하기를 “집사님 나를 하나님이 보신다면 기분좋아하실 거예요.” “아니 어찌 그렇단 말인가?” “집사님 성경도 모르시나요?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잖아요?”(웃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름다움의 기준은 마음의 생각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보시면서 뭐라고 하실까요? 감탄사를 발하실까요? 아니면 한탄사를 발하실까요? 여러분의 마음은 더러워져 있지 않습니까?

  전지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아십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내 추함과 악함과 죄악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속을 삿삿이 파헤치며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잠언4장 23절에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은 생명이 마음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삶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니면 내 놓기에 부끄럽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얼마나 퇴색되어 버렸을까요?

  둘째, 그렇다면 아름다웠던 인간의 마음 상태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성경은 어떻게 변했다고 말합니까? 창세기 6장 5절에 “인간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타락하기 이전에는 외모도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들은 마음에 계획하는 것이 악합니다. 그것도 항상 악합니다. 마음의 생각도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 지은 인간은 악해지기 때문에 외모로도 미워집니다. 죄 지은 인간의 마음이 악해지자 외모도 아름다움을 잃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당신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낳았을 때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웠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찌그러진 깡통처럼 당신의 내심을 본다면 흉몰이 아니던가요? 언제 그렇게 변해 버렸을까? 처음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왜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악하게 되었을까요? 로마서8장 28절에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마음이 악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자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변해버렸을까요? 29절에 보면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교만한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니님을 떠난 인간은 이렇게 타락해 버렸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욕심에 이끌려 악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과 5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은 욕심에 이끌려 마음이 악을 따라갑니다. 마음이 죄를 따라갑니다.

  이 세상에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거짓말을 배워서 합니까? 속이는 것 배웁니까? 미워하는 것 배웁니까? 살인하는 것 배웁니까? 질투하는 것 배웁니까? 배우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자기가 죄를 짓는 것을 보고서 51편에 고백하는 말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죄라는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마음에 더러운 죄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고 가출해서 도망 다니는 중학생을 상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이 아니고 몇 번째입니다. 그를 잡아다 놓으면 도망가고 학교를 가지 않고 또 탈선하여 학생의 신분을 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부모를 거역하기도 합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폭력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계속하느냐?” 묻자 학생의 대답이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물론 환경적인 가정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신이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타락한 마음 속에서 움틀어 나오는 죄악의 요소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죄에 의하여 이미 때가 묻어 있지 않았던가요?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까요?

  셋째 참으로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미 죄에 의해 상처난 마음, 욕심에 이끌려 타락한 마음, 수많은 걱정과 염려에 의하여 상실된 마음,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마음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의 아름다움을 위l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보았습니까? 본래 여자들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특히 외모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화장을 합니다. 원래 화장이라는 것이 20대 결혼 정년기에 있는 여자들이 조금 얼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도와주는 것이 화장의 본 의도였다고 합니다. 이게 자꾸만 변질되어 온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그러는데 20대가 하는 것을 화장이라고 하고, 30대가 하는 것을 치장이라고 한다고 구래요. 40대는 분장을 한다고 그래요. 50대가 되면 변장을 한다고 구래요(웃음). 60대가 되면 환장을 한다고 그래요(웃음). 

  그러나 여러분 참으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습니다. 마음의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내적인 마음보다는 외모에 관심이 더 많지 않나요?
 
  그래서 어떤 아이는 자기 턱이 맘이 안 든다고 성형수술을 받았어요. 그렇게 성공했으면 다행인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의사를 향하여 3천 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어요. 그렇게 해서 법정에서 승소한들 젊음이 돌아오겠어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길이라도 있나요? 일그러진 턱이 돌아오기라도 하겠어요? 턱도 없는 일입니다. (웃음)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성형수술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아름답게 수술할 수 있습니까? 더러운 마음, 악한 마음, 음흉한 마음, 속이는 마음, 이 모든 죄악된 마음을 수술해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마음의 죄를 씻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수술이 필요합니다.

  성형수술을 스스로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의사가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스스로 수술하여 아름답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이미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씻어도 또 죄가 나옵니다. 그래서 완전히 우리의 죄를 청산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치료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창조 때 인간의 아름다움 그 모습을 회복시키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더러운 죄를 십자가로 다 가져가시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죄악을 완전히 씻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의 모든 죄를 정결케 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죄와 미움과 속임과 거짓과 위선과 가식과 모순과 가면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청산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9절에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한다”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회개하는 순간 우리 주님은 당신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해주십니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면 깨끗한 마음, 정결한 마음, 백옥과 같은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맺는 말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의 성형수술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죄악된 마음을 가지고 추한 몰골로 인생을 맥없이 기쁨 없이 추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타락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할 용기, 죄를 청산할 결단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다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당신은 예수님으로 마음이 채워지면서 당신 속에 있는 모든 죄악이 사라지게 됩니다. 당신의 죄를 예수님께 회개하면 모든 죄를 완전히 청산해 주십니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소유하면 마음이 성형수술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더러운 죄라할지라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예수님이 피가 당신의 마음을 정결케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합니다.

  언제부터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더러워졌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넣어주셨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마음은 청순함과 정결함을 상실해 버리고 추한 꼴로 변해버리지 않았던가요. 그 때마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시고 한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해야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창조 때의 그 아름다움을 되찾으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청시간
                  (찬송가 338장 오르간 연주)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누구든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보십니다. 숨겨진 죄까지 살피십니다. 마음의 생각의 악함까지 보십니다. 모든 마음의 계획과 허물까지도 보십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왜 이런 모양이 되었나 한심스럽지 않았던가요? 원래 당신의 마음은 그렇게 추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추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물들었습니다

  당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젠 당신이 원했던 그런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하고 싶지 않으세요.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신다면 당신의 더러운 죄악은 완전히 사라지고 당신의 마음과 몸은 아름답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목사님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신 앞에 자랑스럽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서고 싶습니다. 그런 학생을 위해서 기도를 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나도 예수님 믿고 죄를 청산하고 구원받고 싶습니다. 아름다움 모습으로 구원받고 싶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런 학생들 손을 한 번 번쩍 들어보세요. 네, 제가 기도해 드릴께요.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번쩍 손을 들었다 내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 네 그 손도 보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손을 보시고 당신을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손을 드신 분들 그 결심이 진실이라면 이렇게 저의 기도를 따라하시면서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셔들이십시오.

  하나님,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부패했고, 내 삶은 죄로 범벅되어 있습니다. 나의 죄를 회개하오니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들입니다. 내 마음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내 속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에 진정으로 모셨다면 성경은 말하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아름답게 보아주십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 가운데 이미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죄로 말미암아 또 더러워진 마음, 구겨진 영혼이 있다면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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