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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기는 비용 / 엡 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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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섬기는 비용
성경말씀 : 엡4:1-16    번호 : 3


선교사업은 '고비용 저효율'사업입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 경제 원리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효율성을 논하지 않습니다. 선교사역은 대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주고 또 주는 것이 바로 선교사역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켰던 지난날을 추억하면서 두 번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사역에 대하여 "내가 너희를 섬기는 일에 많은 비용을 들었는데, 복음을 전하는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후원하는 여러 교회에서 탈취(奪取)해온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 섬기는 일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선교사역을 위하여 많은 비용이 들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값없이 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비용을 후원해준 후원교회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재정에 관한 지출 결의나 청구서에는 대금, 요금, 비용 등의 내역이 있습니다. 간혹 이런 용어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쓰는 이가 있습니다. 대금(代金)이란 말은 받는 만큼 주는 겁니다. 물건을 내가 받고 그 물건에 해당하는 금액을 값으로 치르는 것입니다. 요금(料金)은 물건을 받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빌려서 사용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보든지 땀흘려 수고에 대한 대가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금을 지불할 때도 있고 요금을 지불할 때도 있는데 두 가지의 공통점은 '받는 만큼 준다'는 것입니다. 비용(費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것은 받은 것도 없이 쓰는 거예요. 계산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물건이든 수고한 것이든 그 한 것만큼 정확하게 계산해서 돈을 주어야 하는데 비용은 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끝없이 쓸데가 있습니다. 소모성입니다. 아무 것도 생산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금(金)은 주고받는 거래지만 비(費)는 그 행위와 관계없는 곳에서 조달하여 쓰는 것입니다.

복음전도를 위하여 쓰여지는 돈은 말씀대금이 아닙니다. 강단사용료가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는 믿음과 은혜로 받고 전하는 이는 사랑으로 거저 주는 것입니다. 선교와 섬김의 비용은 선교사와 피 선교자가 서로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라 제3자가 후원하는 후원금으로 충당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믿음으로 은혜로 거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선교를 후원하셨기에 우리가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그들의 선교현장에서 수입을 얻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대가를 아무 것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교후원국과 선교후원교회와 후원자들이 조건 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물질을 보내주고 만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랑의 힘을 입어 선교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 섬기는 일에 후원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러 복음을 전하는 기간이 18개월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고 그들과 함께 천막을 제조하는 일로 생활비를 벌어 썼는데(행18:1-3)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이때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에서 보내온 후원금이 전달되었는데 이것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일생 잊을 수가 없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 도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서, 실라는 빌립보에서 각각 성도들이 정성껏 모아준 연보를 가지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후원하기 위하여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행18:5).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증거로 선교사를 위하여 그들의 물질을 바쳤던 것입니다(고후8:1-5). 사도바울은 그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새 힘을 얻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려고 다른 교회들에게서 비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다른 교회에서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표준 새번역).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은 넉넉한 대도시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부유층이 사는 교회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환란의 시련을 당하는 교회였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3. 떳떳한 사역을 위하여 후원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바울이 만일 복음을 전하는 선교지에서 생활비를 조달하였다면  마음껏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가 기쁨과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이고 넉넉한 후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물질의 후원이 선교사에게 전달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학교를 세워주고 병원을 세워주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내일의 일꾼들을 길러내는 일은 복음 전도를 위한 큰 힘이 됩니다.

선교사역에는 여러분의 기도와 함께 많은 물질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작은 돈이 없어서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땀 우리의 눈물 우리의 시간 우리의 정성 우리의 사랑, 관심을 담아서 선교의 열정으로 선교후원금을 보내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에게 힘과 위로와 소망이 될 수 있는 해외선교주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를 섬기며 교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것을 우리가 알게 하시고,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것을 맡겨주시겠다고 했사오니 우리교회가 선교사역의 작은 부분에 동참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교단의 중심이 되게 하시고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일에 우리의 보람과 기쁨이 더하게 하시고, 마게도니아 교회처럼 궁핍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여 선교사역을 후원하여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종들이 되게 하옵시고 우리선교사들이 떳떳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  화

1. 선교사의 하는 일

우리는 일찍이 미국 선교사들과 그리고 구호기관을 통하여 먹을 것을, 입을 것을, 그리고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래 전에 연세 많으신 목사님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제가 한번은 "목사님 선교사들이 선교현장에서 고민이 참 많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에 그 피선교지 대표들과 함께 서로 동역하는 가운데 자주 속는다는 거예요. 돈을 많이 주면 그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미자립 교회에 선교비로 후원되면 좋은데 세워놓은 사람들이 중간에서 자꾸 착복하고 또 별것도 아닌 일에 돈을 자꾸 달라고 해서 쓰다보니까 속는 일이 많다 또 특별히 동남아에 가난한 나라에 그런 일들이 많다 그런 얘기를 합디다." 하고 제가 얘기를 했더니 연세 많으신 목사님이 "속아도 괜찮어. 우리도 옛날에 교회를 통해서 구호기관을 통해서 미국사람들이 전해주는 것 이리저리 빼먹는 횡령하는 사람들 많이 있었는데 그래도 결국 그들이 복음과 만나니까 변화되고 그들을 통하여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거 나누어 다가 예수 믿고 그거 받아서 먹다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는데 속아줘도 괜찮아. 손해봐도 괜찮아.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해." 그 얘기를 들으면서 백퍼센트 동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 선교사는 인내해야하고 선교를 후원하는 일도 깊이 길게 생각해 봐야되겠다 하고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미국에 다음가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 하고 후원하는 한국교회가 옛날에 피선교지였다는 사실이 세계에 많은 사람들에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는 이제 받는 교회 받는 나라가 아니라 주는 교회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와서 선교사들이 6.25를 전후해서 해방을 전후해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교에는 많은 비용이 소모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워주는 일이나 병원을 세워주는 일이나 또한 고아원을 경영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일이나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이들을 먹여주고 입혀 주는 일들은 엄청난 비용을 소모하면서도 아무런 생산적인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직접 전도가 불가능한 회교권, 불교의 나라, 그리고 사회주의 권 나라에는 목사요, 선교사요 하는 신분을 밝힐 수 가 없고 그곳에 가서 전도하다가는 쫓겨날 뿐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의 비용은 훨씬 더 많이 소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네팔에 고아원을 경영하고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우리 선교본부가 있습니다. 물론 그 나라에서는 정보기관을 통하여 신분을 확인하고 있겠지만 겉으로 그들의 신분은 사회사업가입니다. 의사입니다. 교육자입니다. 그곳에 '호산나' 라고 하는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그 호산나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후원금을 적절하게 배정하고 그 나라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지도자로 가르치고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그리고 어렵지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결신자들 중심으로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카메룬에는 우리가 보낸 의사 김 형 선교사가 카메룬뿐 아니라 인근 다른 나라까지 의료선교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병원을 설립하려고 준비하고 그곳에 도착하여 선교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불교 국가 태국에 아무도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데 10여 년전에 프로 축구선수였던 오필환 선교사는 집사의 몸으로써 자기의 화려한 생활이 보장되어있던 선수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와 함께 태국으로 가서 방센 스포츠 선교센타를 설립하고 전국각지의 어린아이들을 모아서 그곳에서 합숙하며 학교를 보내주고 축구를 훈련시켜서 이제는 백 여명의 아이들 가운데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들 스스로가 태국의 오지 뿐 아니라 라오스까지 건너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배출시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네팔에서 태국에서 10여 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사역했고 생명과 땀을 부었고 태국교회에 후원금을 보냈지만 거기서 우리는 단 하나의 선물을 취한 적이 없고 때론 일년이 넘도록 감사의 인사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짐을 간증으로 들으며 우리는 내가 먹는 것보다 내가 입는 것보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보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2. 연말연시 모금 현황

며칠 전에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의 모금성과를 보고한 통계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국가가 이사회 전체에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돈을 함께 모아서 사회복지 시설들에게 적절하게 배분해주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12월과 1월 연말 두 달 동안 모금한 그 모금 액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광역시라고 하면 전국에서 제일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입니다. 인천, 부산, 대전, 광주 등이 광역시입니다. 이 광역시에서 올 연말에 모금한 것이 작년에 비교해서 60퍼센트에서 70퍼센트밖에 달성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광역시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혜택을 덜 받고 상대적으로 좀 가난한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이러한 지방자치단체는 120%에서 130% 모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수치로 비교하면 부자동네는 작년보다 반밖에 내지 않고 가난한 동네는 작년보다 20~30%더 냈으니까 부자동네보다 배는 더 냈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서울은 어떻습니까, 서울의 제일 부자동네가 어디입니까 서초구와 강남구입니다. 동대문구에서 742건에 2억 5천만 원을 모금했는데 서초구가 6건에 1230만 원을 모금했습니다. 용산구가 639건에 8억 원을 모금했는데 강남구가 407건에 6억 원을 모금했습니다. 제일 부자동네가 서울에서 제일 조금 냈다는 거예요. 아마 경제적인 부요함으로 따진다면 다른 구보다는 열 배. 스무 배. 백 배씩 잘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 모금에 실무를 맡은 분은 "대도시나 부자동네에서 더 많은 기부금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는 정반대입니다. 어렵고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웃사랑이 더 깊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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