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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 이름 / 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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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예레미야20:1-6
◎ 제 목 :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 이름 


"내 사랑하는 그 이름 예수 복된 예수 내 귀에 음악 같도다. 예수 복된 예수
아 귀하다 그의 이름 갈보리산에 어린양 귀한 생명 버리셨네 예수 복된 예수"
어떤 사람이 이름이 그럴듯한데 하는 행동이 시원찮을 때 "이름이 아깝다" 혹은 "이름 바꿔라"라고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는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비젼이거나, 낳을 때에 특별한 추억을 이름에 넣음으로 그 이름을 기억하면서 삶을 이겨나가라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예를 들면 역대상4장에 나오는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힘들게 낳았다"라는 뜻으로 그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데 야베스는 그 이름을 생각하면서 "나는 어머니 죽일 뻔하고, 어머니의 근심속에 태어났으니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의 복을 받되 지경이 넓어지고,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이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대로 다 응답받았습니다.

본문에 "바스훌"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전의 총감독을 맡은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평화' 혹은 '권세를 확장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과연 성전의 총책임자가 되어 그의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백성들에게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므로 이 성읍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선포하였을 때 바스훌 제사장은 예레미야를 목에 착고를 채우고 감금하였다가 그 이튿날 풀어 주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의 이름을 "마골밋사빕"이라 지어주었습니다. 즉 "사방으로부터 오는 공포" "사면초가"라는 뜻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서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6절에서도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너희 집도 모두 포로가 되고 너도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죽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바스훌이라는 너무나 좋은 이름을 가진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름에 걸 맞는 지위에 올랐으면 그것을 잘 지켜야지! 받은 권력을 남용하여 이름 값을 하지 못하므로 좋은 이름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너무 귀한 이름들이 주어집니다. 그 이름 값을 잘 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聖徒(성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요. 하나님께로부터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신자와 구별된 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눔과 섬김의 생활이 되어야 하고, 경건치 못한 행동을 자제할 줄 아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14-16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2.Christion(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자라는 뜻으로 사도행전11:26에 안디옥에 사는 사람들이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처럼 산다고 해서 처음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까?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삽니까?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름듣기에 부끄럽지는 않으십니까?
3.양(羊)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를 양이라고 한 곳은 참으로 많습니다. 시편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예수 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양(羊)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10:10)고 하십니다. 
내가 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양에게 목자는 절대적입니다. 목자 없는 양을 생각할 수 없고, 목자 없는 양은 전혀 희망이 없는 양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편 중에 23편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목자 이께네 내사 마 답답할 기이 없대이 시퍼런 풀 구디 내 디비 자고 쪼매 쉿다 갈 도랑까로 델꼬 가신다. 내 정신 챙기시사 올케 살아라 카심은 다 지 양반 체면 때문이라 카네. 내 죽을 뻔한 골짜구디 껌껌한 데서도 간띠가 부가 잘 댕기는 것은 그 빽이 여사가 아인기라. 주의 몽디와 짝대기가 내를 지키시고 내 직일놈 문디 앞에서 내 기 세아 주신다 아이가! 사는기 아무리 복잡다 캐 싸도 저 양반이 맨날 지키 주신다 카이끼네 내사 우짜든지 그 옆에 딱 붙이가 죽어도 안 떠날란다."(경상도버젼) 양이 목자를 따르니 그 양은 아주 풍성함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로 소개하므로 온전히 따를 것을 말씀하시고 게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요한복음10:11) 그러므로 우리에게 붙여진 양(羊)이라는 이름은 목자를 절대적으로 따를 때 그 이름 값을 하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오셔서 그 목자의 사명을 위임하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 님 자신이 하시던 목자의 사명을 특별히 세운 사람들에게 위임하심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주님께서는 목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목사(牧師)입니다.
목사(牧師)의 목(牧)은 칠 목자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을 목양(牧羊)이라 하는데 양을 친다는 뜻입니다. 목사는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목자인줄 믿고 따르는 자는 양의 이름에 걸 맞는 풍성하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교인들이 누구인지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때가 언제인지 돌이켜 보십시오. 십중팔구는 목사와 나와의 관계가 목자와 양으로서의 관계가 분명할 때입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불행한때는 역시 목회자를 불신하거나, 다투거나, 목회자를 괴롭힐 때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아닌 같은 양의 관계이거나, 같은 목자의 관계일 때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하면 "지나 내나 똑같지!"할 때입니다.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생각은 목자와 양은 별종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비유를 해 보겠는데 오해를 하지 마시고 끝까지 들으시기 바랍니다.
목자는 사람이고, 양은 짐승입니다. 기분 나쁘시지요. 그러나 끝까지 들으시면 기분이 전혀 나쁘시지 않습니다. 
사람과 개가 경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가 이겼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개와 경주에서 진 사람을 가르켜 "저거 짐승만도 못하네"하였습니다.
다시 경주를 하여 있는 힘을 다해 달렸는데 개와 사람이 동시에 골인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 "저거 짐승이네, 짐승하고 같은 인간이네"라고 합니다.
다시 경주를 하는데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렸더니 개를 이겼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를 가르켜 말하기를 "저거는 짐승보다 더한 놈이네"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있을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애초에 사람과 개가 경주를 한다는 그 자체가 인격모독입니다. 어떻게 사람과 개가 경주를 합니까? 사람과 짐승은 경주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차원이 다릅니다.
목자와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경쟁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위임하신 목자이고, 주님으로부터 위임을 맡은 그 목자의 가르침을 받는 양이 어떻게 경쟁하고 다투고, 얼굴을 붉히고, 불신하고 괴롭힐 수 있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신뢰성을 가지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해집니다. 풍성해집니다. 안정적입니다.
겸손하게 받아먹으십시오. 양은 젖을 먹을 때 앞발을 꿇고 먹는다고 하지요.

그 외에도 예수 믿는 자에게 붙여진 이름은 많습니다.
베드로전서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름이든지 믿는 자에게 붙여진 이름은 주님의 원하시는 바요. 우리의 미래를 보증하는 것이므로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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