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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밀과 가라지 / 사 40:12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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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 종 화 (경동교회)
  제목 : 밀과 가라지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40:12 ~ 14, 21-22, 25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았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느냐? 누가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고,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고,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았느냐?  누가 주의 영을 헤아릴 수 있겠으며, 주의 조언자가 되어 그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가 누구와 의논하시는가? 누가 그를 깨우쳐 드리며, 공평의 도리를 가르쳐 드리는가? 누가 그에게 지식을 가르쳐 드리며, 슬기로운 처세술을 가르쳐 드리는가?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서신서의 말씀: 고린도전서 1:5 ~ 9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서, 모든 면에서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한 것이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떠한 은혜의 선물에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여러분을 끝까지 굳게 세워 주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가지게 해주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태복음서 13:24 ~ 30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그것과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거둘 때가 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내버려 두어라. 거둘 때에, 내가 일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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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은 성서 봉독을 통해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비유 하나를 들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에 관한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성서 가운데서 마태, 마가, 누가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세 복음서가 취급하고 설명해주는 예수님의 언행들이 요한복음과는 달리 서로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개의 말씀들은 편집상의 차이는 약간 있습니다만, 근본적인 내용은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이야기가 세 복음서에 다 실려 있거나, 혹은 두 복음서에 같이 실려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께서 들으신 비유의 말씀, 가라지와 밀에 관한 비유는 마태복음 한 곳에만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줌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 비유는, 자기 밭에다가 하나님이 좋은 씨를 뿌리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하나님이 뿌린 좋은 씨앗, 소위 밀 옆에다가 가라지 씨앗을 뿌리고 갔습니다. 나중에 봤더니 가리지도 싹이 나고 밀도 싹이 났습니다. 둘이 자라면 쉬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이삭을 맺을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는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한테 묻습니다. 가라지를 어떻게 할까요? 뽑아 버릴까요?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그냥 두어라.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당연히 뽑아서 불에 태워야 마땅하지만, 그것을 뽑으려다가 밀까지 손상될까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악을 뿌리 뽑으려다가 선도 다칠까봐 걱정이 되니, 그대로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추수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를 분리하여서, 가라지는 다 태우고 알곡은 곳간에 들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내용의 전부입니다.

사실 우리 성서 말씀 전체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첫 번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으며, 나중에 종말이 되면 새로운 에덴, 하나님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코 선만 지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 악마의 나라가 도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밀만 있는 게 아니고, 누가 뿌렸든지 간에 가라지라 이름하는 엄청난 악의 현실이, 악의 뿌리가 곳곳에 심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테스트하려고 악을 만드셨습니까? 선만 주실 일이지, 왜 악을 주셨습니까? 건강만 주실 일이지, 왜 질병이 있게 하셨습니까? 삶만 있으면 좋겠는데, 왜 죽음까지 있습니까? 웃음만 있으면 됐지, 왜 울음까지 주십니까? 당연한 질문과 항의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직접 답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한테는 웃음만 아니라 울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 있는가 하면 악이 범람합니다. 선과 악이 충돌합니다. 이런 현실은 천지창조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아마 계속될 겁니다. 오늘 얘기대로 하나님께서 오셔서 마지막 심판을 하실 때까지는 가라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나라 밖의 일을 먼저 생각해보십시다. 중동에서 풍겨나고 있는 비참한 전쟁의 냄새,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한 섬, 노든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전쟁,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21세기에도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선을 선포하는 종교가 총을 들고 전쟁을 합니다. 자기는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고 합니다. 나는 밀이고 너는 가라지라고 규정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있지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 얘기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저는 일본말을 잘 못합니다만, 일본 사람들의 풍습을 보여주는 “시 찌꼬 산”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7, 5, 3이라는 말입니다. 제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애를 낳으면 부모들이 세 살 때 신사에 가서 아이의 복을 빌어줍니다. 특별히 남자 아이는 세 살과 다섯 살 때 복을 빌어주고, 여자 아이들은 세 살과 일곱 살 때 복을 빌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매년 11월 15일에 축제가 이루어집니다. 칠 오 삼, 시 찌꼬 산이라는 축제를 벌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일본 부모들한테 결혼이나 장례식 등을 어디서 치르고 싶은지를 물으면, 그들은 결혼은 기독교 교회에서, 아이들 축복은 신사에서, 장례식은 불교의 절에 가서 하고 싶다고 합니다. 기독교, 불교, 신사. 일본사람들은 아마 자기들 방식대로 종교 간의 평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어이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믿고, 또 절에 가면 가는 것이지, 아니면 회심을 해서 종교를 바꾸면 바꾸는 것이지, 일본 사람들처럼 모든 종교를 다 흡수해서 용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일본에서는 종교 전쟁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 땅에서도 교회가 성장하고, 불교가 융성하지만, 그러나 종교 전쟁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듣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런 현실을 사는 우리가 오늘 비유 말씀에서 들어야 할 중요한 것은 “내가 마지막에 알곡으로 주님께 바쳐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나와 다른 사고방식, 나와 다른 체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심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알곡을 거두는 데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딸 아들, 자기가 뿌린 씨앗,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믿는 사람들이 행여 악 때문에 죽을까봐 악을 놓아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뿌린 씨앗에서 알곡을 거두고 싶어 하십니다. 알곡을 하나님 나라로 거두어들일 때 피조물과 함께 창조의 축제를 펼치고 싶어 하십니다. 이름하여 재창조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표명되었습니다.

자 다시 우리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악한 마귀가 가라지 씨를 뿌리는 걸 허용하셨습니까? 저는 그 답변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악의 씨앗을 뿌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밀 씨앗만 뿌렸고, 밤에 자는 사이에 원수라 이름하는 누군가가 와서 가라지 씨앗을 뿌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선한 창조입니다. 그러나 그 선한 창조가 오늘 가라지 때문에 도전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악에 물들지 않고 선한 씨앗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선한 씨앗을 뿌린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산과 바다와 물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이사야서가 우회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하늘을 손의 뼘 가지고 재어본 일이 있느냐? 온 땅의 티끌을 다 모아서 되로 재어본 일은 있느냐? 어깨 저울로 산들의 무게를 달아본 일은 있느냐? 이런 것 없으면 산과 언덕과 물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인간까지 창조한 나의 창조의 신비를 어느 악과도 비교하지 말라.” 오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생 동안 여러 가지를 경험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여쭤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히 악과 선이 공존합니다. 종교와 종교 간에도 이념과 체제 간에도 나라와 나라 간에도 서로 존재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떻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저 자신 속에 아름다운 신앙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 목사인 저에게도 불신의 악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한테 선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하면 악을 행하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둘이 제 안에서 싸웁니다.

저의 고민이 뭐냐 하면, 차라리 오른쪽이 선이고 왼쪽이 악이어서 명확하게 선악이 구분될 수 있다면,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한쪽을 잘라버리고 반쪽만으로도 구원을 받고 싶은데, 제 속에 선과 악이 어떻게 뒤섞였는지 결코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을 명확히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악을 자를 수가 없습니다. 하루는 선했다, 하루는 악했다 합니다.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저한테 차라리 선만 주시지 왜 이렇게 악까지 주셨습니까? 저의 삶 속에 이렇게 선과 악이, 밀과 가라지처럼 섞여 있으니, 악을 뽑으려고 하다가는 제 목숨을 뽑아야 할 지경입니다. 이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이 고민이 오늘 이 비유에 나온 하늘나라의 밭의 고민과 똑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가 우화 하나를 여러분께 예로 듭니다. 프랑스 작가인 라 퐁테느가 우화를 많이 썼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잘 아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하는 우화도 있습니다. 고양이 때문에 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고양이 이름은 로테랄주스입니다. 이 고양이에게 너무나 많은 쥐가 잡아먹혔습니다. 쥐들은 전전긍긍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양이한테 잡히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장로격이 되는 쥐가 쥐의 전체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비상회의를 소집해놓고 고양이한테 잡혀먹지 않는 방법을 간구하자고 했습니다. 아무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로격 되는 쥐가 대안을 만들었습니다. 고양이한테 방울을 달자. 그래서 고양이가 나타나면, 목에 달린 방울소리를 듣고 피하자. 다들 좋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 다 동의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가서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가 남았습니다. 당신이 가겠냐고 모인 쥐에게 하나 하나 다 묻는데, “나는 빠르지 않으니까 갔다가는 잡혀 죽을 것입니다,” “나는 힘이 없어 못가겠습니다” 하면서 회의장을 하나씩 하나씩 떠납니다. 마지막에 장로격이 되는 쥐도 “나도 할 수 없겠구먼” 하면서 회의장을 떠납니다. 정작 그 일을 할 쥐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위기를 많이 얘기합니다. 개인의 위기도 많이 얘기합니다. 가정의 위기도 다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진단이 없어서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전쟁이 나쁘다는 것도 다 압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으리라는 것도 다 압니다. 진단과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가서 파국을 막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가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습니까? 아무도 달 수 없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악을 박멸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방울을 달 사람이 없어서 온 세상이 괴롭습니다. 누가 방울 달고 싶습니까?

오늘 예수의 말씀대로 하면 방울은 하나님이 직접 다십니다. 언제 다시느냐 하면, 모든 인간이 다, 악인도 선인도 다 십자가에 죽을 때 그때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공평하신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육신이 죽는 건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태양빛을 주시고 물도 똑같이 주십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가라지나 밀이나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아서 다 불쏘시개로 쓰든지 사료용으로 씁니다. 밀도 마찬가지입니다. 밀의 이삭만 곳간에 모으고, 그 줄기는 쏘시개로 또는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은 가라지와 똑같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단 하나입니다. 가라지에서는 알맹이를 거두지 않고 불에 태우지만 밀에서는 하나님이 알맹이를 거두십니다. 자기 싹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인이 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뿌려주신 하나님의 씨앗은 알곡과 가라지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자라나 나중에 알알이 맺힌 알곡을 맺어야 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추수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처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인간의 비극을 경험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다 죽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악인도 선인도. 단, 차이 하나는 죽은 다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이라 이름하는 알곡을 거두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거 하나만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한 씨앗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씨앗이 제 속에서, 우리 가정 속에서, 우리 교회 속에서, 이 세상 속에서, 악한 가라지 때문에 그 생명이 끊어지지 않도록, 알곡이 없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십시다. 하나님은 그 힘을 반드시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에 이르게 될 때에 그 힘을 결정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그때가 되어야만 그 힘을 경험하게 됩니까. 그게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알알이 맺힌 열매를 거둔 부활의 복을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겠으니 우리의 알곡을 아직도 가라지가 횡횡하는 이 현실 속에서 보호하며 키워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한테 가라지가 없이 알곡만 있으면 재미없을 겁니다. 죄악이 하나도 없고 의만 있고 선만 있으면 그 세상 무엇 하러 삽니까? 그런 세상은 이미 하나님 나라일 겁니다. 오늘 세상은 사실은 이렇게 죄악이 횡횡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미리 주셨으니 이 알곡을 가꾸십시다. 이것이 오늘 주는 부활의 복입니다.

우리한테 오신 부활의 주님,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주변이 어둡다고 비극적 절망 속에 살아가지 마십시다. 부활하신 주가 지금 우리한테 오십니다. 감사 찬양하며 살아가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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