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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낫고자 하느냐? / 요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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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낫고자 하느냐?
성경본문 : 요한복음 5장 1~9절
설  교 자 : 고신일목사 (기둥교회)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한복음 5장 1~9절) 
<목회기도>
 
하나님, 2003년을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무섭고 험합니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에 살며 믿음 가지고 천국의 소망으로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지만
새롭게 시작되는 이 주간과 이 주간에 시작되는 3월은
건강하고 평안하며 감사가 넘치는 날들이 되기 원합니다.
오늘 기둥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초신자로부터 목사,
태중의 아이로부터 노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심령들마다 말씀 중에, 기도 중에, 찬양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세상을 향해 나갈 때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귀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객지에 나가 있고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귀한 예배를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시기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찬양대, 오케스트라 단원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찬양을 부를 수 있음에,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한 날도 주안에서 평안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총리 후보들은 자신이나 자식 중에 하나 정도는 군대에 안가야 하는지…
요즘 저는 군대에 관련된 단어만 나오면 신경이 예민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우리 집을 살펴보니
저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상이용사가 되셨고
저는 해병대에 다녀왔고,  제 아들도 해병대에 들어 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집안은 총리가 될 사람은 없는 '별 볼일 없는' 집안인가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 볼 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볼 일밖에 없는 것도 복이라 생각하며 위로 받습니다.
 
옆의 분들에게 "이 한 주간도 평안하고 복되시기 바랍니다"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하고 여러분을 귀중히 여기고,
병들어 아파서 1년을 앓고, 5년을 앓고, 10년을 앓아 누워도
사업에 실패하고 돈 못 벌어도 한숨쉬고 탄식하고 앉아 하늘만 보고 있어도
'곁에 있을 사람'이… 있다고 믿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그런 사람이, 가족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병들어 5년을 앓고,
사업에 실패하여 거지꼴이 되어도 여전히 친구라고 가까이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건강하게 사니까… 지금 사람처럼 사사니까… 지금 정신이 온전하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병들고 실패하고 가진 것 없고 초라해져도
그 사람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가족으로 여겨 줄까요?
 
반대로 여러분은 누구와 가깝게 지내십니까?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지금 만날 수 있는 사람, 가족, 친구…
그들이 실패하고 가진 것 없어 거지꼴이 되고
아파서 누워 있기를 1년, 5년,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습니까?
쉽게 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
 
오늘 본문(요 5:1~9) 말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입니다. 그 사람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 1절에 보면 그 시기는 명절(Jewish festival)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2절에 나오는 [양문, Sheep Gate]은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문으로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중건할 때 건축한 문입니다.(참조, 느3:1)
  희생 제물에 쓰여질 양들이 이 문을 통하여 성전 안에 반입되었기 때문에
  그 문을 양문(Sheep Gate)이라고 했습니다.
- 베데스다(Bethesda)라는 말은
  고전 히브리어가 아니고 아람어(Aramic)에서 온 말입니다.
  (NIV영문성경에도 Aramic이라고 되어 있음)
  보통 히브리어에서 '벧'(beth)자가 붙으면 '집'이란 뜻입니다.
  - '베들레헴'(창48:7)하면 '레헴'이 떡이니까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 벧세다(요1:44) = 고기 잡는 집
- 벧세메스(삼상 6:9) = 태양의 집
- 벧스안(수17:11, 삿1:27) = 조용한 집
- 벧엘(창28:18, 35:6) = 하나님의 집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 또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정확치는 않으나 이 베데스다 연못은
[간헐천]으로 가끔 물이 움직였던 모양입니다.
'간헐천'이라는 것은 일정한 간격 또는 불확실한 간격으로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분출하는 연못 또는 온천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연못이 움직이는 것을 천사가 와서 움직인다고 믿었고
그 지방 전승에 따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병자들에게 비참한 경쟁의 상황을 조장하는
이런 미신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얘기는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지
실제 그랬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을 잃어버리고 인간적 가능성이 없어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반드시 낫는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의존해보는 것입니다.
한번 들어가나 보자고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연못가 사람들의 마지막 미신적인 소원일 뿐입니다.
 
그래도 자기 몸을 가눌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베데스다 연못 주변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만 병이 낫는다고 할 때
그 연못에 모여든 많은 환자들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염려해서
다른 사람 먼저 물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것 같습니까.
어찌되었든 베데스다 주변의 환경은 살벌한 분위기입니다.
이곳에서는 사랑이라든지, 격려라든지 하는 것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남보다 내가 앞서야 한다는,
먼저 뛰어 들어야 한다는 경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먼저 들어가야 병을 고치겠기에 사람들의 마음에
다른 사람의 사정을 돌볼 틈이 없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런 그들 중 한 사람, 38년 동안 누워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사람은 대답합니다.
    "…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말은 "제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라는 말입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의 불행은
병들었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 아닙니다.
정말 불행은 자기 주변에 자신을 걱정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날 사람도 없고 만나 주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질병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만나신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유대인의 명절 때(요5:1)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절과는 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고향으로, 주로 시골로 내려갑니다.
- 그러나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모두 성전이 있는 도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명절을 하나님께 나와 성전에 모여 예배드림으로 지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구가 많지 않았던 그 옛날에도
최하 5만명 정도는 예루살렘이 모였다고 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15만명 정도로 추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데도
38년 된 병자에게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7절에 보면 "… 사람이 없어…"라고 했습니다.
영문성경에 보면 "I have no one~"  - NIV -
                "I don't have anyone~"  - SEB - 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사람, 자기편이 되어 줄, 자기를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환자는 자기 주변에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도와 줄 사람,
자기편이 되어 줄 사람을 갖지 못한 그 사람을 만나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려울 때 말벗이 되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줄 사람이 있습니까?
저 사람은 틀림없이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실패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돈 못벌어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정말 있으십니까?
반대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믿을 만한 사람, 의지할 만한 사람이십니까?
예수 믿는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아무도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따뜻함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에서 운영하는 2개의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점심 급식을 받는 분들 가운데
"잘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분들이 10분의 1도 안됩니다.
교회에서 복지관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 중 상당액이 쓰여집니다.
그럼에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펼쳐야 합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 가운데 나병환자들을 위해 매달 보조비를 보냅니다.
우리가 보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병이 치유되면
우리 교회에 와서 청소라도 하기를 바라고 도와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냥 베푸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우리는 베푼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에게 다가와 손잡아 주시는 예수님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합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살다 보면 세상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안되는 것 투성이입니다.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좀 잘 되면 안다고 찾아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연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안되는 것 같으면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평생 함께 지내자고 했던 사람들이 등돌리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절망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실망했다', '절망했다'라는 말은 마지막에 하는 말입니다.
자식이 속을 썩여도 ' 절망'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건 못하건, 건강하건 약하건,
비록 장애가 있더라도 절망치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 스스로에게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절망은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범죄 한 것 중에 가장 큰 죄가
하나님을 향해 절망하고, 자신들을 향해 절망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엔 그 절망이 원망으로 변하여 나타났습니다.
 
 
일어나라(Get up!)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그 병자는 "낫기를 원하지만, 저 물에 뛰어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들어 저 물에 집어 넣어 줄 사람이 내겐 아무도 없습니다."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새로운, 전혀 믿을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고 명령하셨습니다.
38년 동안 병들어 있었고,
지금 일어날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명하십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일어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믿고 일어났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어도 경험적으로 불가능해도
하나님 말씀에 믿고 순종하며 일어날 때 일어났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믿고 일어났습니다.
그 병자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무시했다면 그의 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씀대로 믿고·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라"하신 것은
베데스다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베데스다의 논리를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데스다의 방법은 물이 움직일 때 다른 사람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의 논리를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을 고쳐 주신 것은
권위와 능력, 은혜와 자비가 풍성한 말씀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걸을 수 있어서, 돈이 있고 말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능력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논리, 세상의 논리대로
그들의 방법대로 고침 받게 하셨다면 병자는 고침을 받았더라도
여전히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여전히 남보다 앞서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돌볼 여유 없이
자기가 앞장 서기 위해, 먼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은 자격이 없으나, 불가능한 것 같으나…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 받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여러분 가운데 복권을 사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정말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복권을 사면 안됩니다.
복권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사기 치는 일입니다.
국민들이 복권을 사면 몇 퍼센트의 사람에게만 당첨된 돈을 주고
나머지는 정부가 돈을 챙기는 것입니다.
복권에 혹 당첨되었다 하더라도 그 돈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으로 복권을 사고 실망한 사연이 담긴 것입니다.
복권을 사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대구에서 있었던 지하철 참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사고가 난 기관사가 마스컨 키(Master controller key)를 빼서 혼자 대피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던지, 자기만 살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베데스다의 방법입니다.
성경은 베데스다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적인 경쟁의 논리대로 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따라
이 세상에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어나라'는 것은 세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안되고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했지만…
'일어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들어라(Pick up!)
 
일어나라 하시고 네 자리를 들라고 하셨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Pick up your mat.)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자리]는 옛 생활을 가리킵니다.
이 병자는 38년 동안 그 자리를 의지하고 살아왔습니다.
자리를 거두어 들이는 것은 낡은 옛 생활, 묵은 습관,
죄 된 삶에서 떠나는 것, 돌아가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새로운 삶을 살려면 낡은 옛 생활, 묵은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자리, 지금까지의 생각의 자리, 마음의 자리, 머물던 자리,
습관, 태도, 익숙함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깔았던 매트(mat)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걸어가라(Walk!)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Walk)"고 하셨습니다.
일어났고, 자리를 걷었으면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믿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집을 주겠다, 옷을 주겠다, 직장을 잡아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누웠던 환자가 일어나 걸을 수 있으면 다 해결된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희망 없이 누운 38년 된 환자를 만나신 것처럼
오늘 예배의 자리, 은혜의 집에 모인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하신
약속대로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영육간에 병든 이에게, 경제적으로 병든 이에게, 일어날 희망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데스다의 방법 대로 고쳐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일어나라" 하십니다.
믿음으로 "네 자리를 들어라" 하십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라" 하십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배우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다 되도록 수학 공식 몰라서 풀지 못해도
  영어 단어를 많이 외우지 못했어도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 가정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  남편, 아내, 자녀들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 여러분의 일, 사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험하고 한심해도 사는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일어나 걸으십시오.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평안해 질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함께 찬양하십시다.

일어나 걸어라

 
<2003년 2월 23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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