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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방법을 믿음의 방법으로 바꾸라 / 창 12:10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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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방법을 믿음의 방법으로 바꾸라
창세기 12장 10-20
김홍진 목사 (천안외대청년부)


  1924년 파리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올림픽의 꽃'인 100m달리기 결승전 경기가 주일로 잡혔습니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영국의 에릭리 선수는 출전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이유는 "주일은 경기를 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일 성수를 위한 에릭리의 결단에 온갖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영국인들은 '조국을 배반한 자' '옹졸한 신앙인'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며칠 후 에릭리는 중거리 400m달리기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중거리는 자신의 주종목이 어니었습니다. 에릭리는 처음부터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습니다. 관중들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렇게 달리다가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릭리는 예상을 뒤엎고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기자들이 우승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음 2백m는 내가 뛰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백m는 하나님이 직접 달리셨습니다" 영국인들은 에릭리의 용기와 투철한 신앙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에릭리는 주일성수를 통해 '금메달'과 '영광'을 동시에 얻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인간적인 방법이 나오려고 합니다. 주일날 달리기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될까? 하면서 세상과 타협을 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할 것인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할 것인가 갈등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결국 결과가 비참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법은 결과를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믿습니까?(아멘). 믿음의 방법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브람이 믿음의 방법에서 떠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다가 비참해지는 모습의 내용입니다. 12장 1절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 하란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미지의 땅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하고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12장 10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한 땅을 뒤로하고 먼저 살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아내 사래더러 "당신은 너무 아름답소 애굽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당신을 취할 줄 모르니 "나를 오빠라고 하시오"라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궁리를 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거짓을 서로 작정하고 애굽에 도착했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애굽인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바로왕에게 고합니다. 사래를 아브람에게서 빼앗아 바로의 궁으로 끌고 갔습니다. 살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애굽에 내려갔는데 문제가 더욱 복잡해져갑니다. 아내도 빼앗기고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극적으로 살아남게 되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는 성경 본문을 통하여 아브람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신앙생활 할 때의 겪게 되는  비참함을 보면서 믿음의 방법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첫째 생각해볼 문제는 왜 인간적인 방법이 나오게 될까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인간적인 방법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지 않을 때 인간적인 방법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인간적인 방법이 발동합니다.

  아브람의 인간적인 방법을 보십시오. 10절에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그렇게 잘 부르던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남방 기근이 없는 기름진 땅으로 옮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부르고 의지했던 아브람이 오히려 큰 기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자기 방법으로 이사를 합니다.

  왜 믿음의 사람이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소홀히 하고 철저히 믿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12장 4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움직일 때마다, 이사할 때마다, 어디를 갈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4절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그랬습니다.
  7절에 가나안 세겜 땅에 정착해서도 하나님께 먼저 단을 쌓았습니다.
  8절에 다시 벧엘에 옮겨 거할 때도 하나님께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10절에 기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묻어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아브람이 믿었다면, 왜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기근이 있나요? 나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 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왜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우리의 삶에 기근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쉽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해결 방법은 비극임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방법으로 살 때 이것이 살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에게 한 교우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나는 지금의 이 고통과 문제, 여러 가지 쌓여있는 걱정에서 어떻게 헤어나야 할 지 정말 앞이 캄캄할 뿐입니다" 그러자 웨슬레 목사는 창가에서 저 멀리 소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돌담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그 교우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님,저 소가 왜 저렇게 고개를 들고 돌담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는지 알겠습니까?" "글쎄요, 왜 그럴까요?" 그러자 웨슬레 목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 소는 돌담을 뚫고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고개를 쳐들고 담 위로 보는 것입니다. 저 소처럼 형제님도 앞에 막힌 걱정과 문제의 담 그 너머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담의 앞뿐만이 아니라 너머, 위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법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 데 쏟는 정렬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문제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나오려고 할 때 항상 점검해야 할 것은 내가 주님을 부르는 것을 소홀히 했나? 예배의 재단이 꺼지지 않았나?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나?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지 않을 때 인간적인 방법이 나오게 됩니다.

  믿음의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법은 고난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힘든 여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삶에 고난과 역경과 문제가 있을 때 오직 믿음의 방법으로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믿음을 잃어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쓸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믿음으로 살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하나님의 사명을 잊어버립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어디서 사는 것입니까? 7절을 보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했습니다. 믿음이 식어지고 인간적인 방법이 나올 때 하나님이 주신 뜻과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약속도 잃어버립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살 때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푸로레스코 목사가 공산당에게 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심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자 공산당들은 목사를 회유시키기 위하여 비인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그의 11살 짜리 아들을 그의 앞에서 발가벗기고 거꾸로 매달아 끓는 물을 코에 부어넣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푸로레스코 목사는 자기가 고문을 당하는 것은 견딜 수 있는데 아들이 고문을 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고문을 당하던 11살 짜리 아들이 외쳤다.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나는 배신자가 된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시고 싶지 않아요." 푸로레스코 목사는 아들의 이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힘을 내어 끝까지 공산당에게 항거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평안할 때 믿음의 방법으로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음의 방법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편한 방법을 먼저 찾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사명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법은 눈물도 있습니다. 아픔도 있습니다. 기근을 이겨나가야 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믿습니까? (아멘)

  2) 믿음으로 살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염려가 생깁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기 시작할 대 나타나는 것이 염려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축복도 염려거리가 됩니다. 아브람의 아내가 미인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 때가 65세인데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의 축복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다보니 염려로 변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염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티코를 타고 다녀도 믿음으로 살면 감사입니다. 그러나 그랜저를 타고 다녀도 인간적으로 사고가 날 걱정만 하면 염려가 됩니다. 자식도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믿음으로 키우면 감사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각만 하고 걱정만 하면 자식도 염려거리입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살면서 모든 상황을 감사의 조건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믿음으로 살지 않고 인간적이 방법으로 살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생깁니다. 애굽에 내려갔는데 신변에 위협을 느낍니다.

  12절 "애굽 사람들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아브람은 인간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아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애굽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취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법으로 살 때 담대함입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살 때 사명을 찾고, 염려가 변하여 감사의 조건이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담대한 인생이 됩니다. 찬송가 434장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사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어려운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이 노래는 패니크로스비라는 맹인 여인이 쓴 노래입니다. 페니 크로스비는 6개월 때 가정부의 잘못으로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기도해주고 신앙으로 키웁니다. 페니크로스비는 성인이 되어서 자기의 눈을 멀게 한 가정부의 이야기를 듣고 항상 원망스러웠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니 늘 가정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닫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지, 내가 눈을 볼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거야라고 믿음의 방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페니크로스비에게는 육의 눈은 볼 수 없지만 영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고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터인데 세상에서 더렵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또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녀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가 쓴 시가 2000편이 넘습니다. 그중에 우리 찬송가에 12편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법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면 모든 것이 염려와 불평꺼리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법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의 조건입니다. 할렐루야!

  셋째, 인간적인 방법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제단을 상실하자 말씀을 상실하자 기도가 끊겨지자 믿음의 방법에서 떠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게 된 아브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1) 믿음의 방법으로 살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죄를 짓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13절 "원컨데 그대는 나의 여동생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아브람의 거짓말이 나타납니다.

  사실상 사래는 11장 29절에 보면 아브람의 이복동생입니다. 이복동생이기 때문에 사래를 여동생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자기 아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여동생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진짜 순 참 거짓말입니다.

  제가 학교에 있는데 학생들이 학교에서 늦게 도착했습니다. 수업에 지각을 했습니다. 이유는 자기들이 타고온 승용차가 빵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래서 바퀴를 갈아끼우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입니다.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알겠다고 하고 수업을 다 마치고 제가 그 차를 타고 늦게 온 4명의 지각생들에게 그랬습니다. 자 멀리 떨어져서 의자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한 장 씩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어느 쪽 바퀴가 빵꾸가 났는가 적으라고 했습니다. 다 달랐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탈로가 나게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면 정직할 수 있고 자신이 있습니다.

  믿음의 방법에서 떠난 인간적인 방법은 거짓이란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자기도 거짓을 했지만 아내도 거짓의 동조자로 만들었습니다.

  2) 믿음의 방법으로 살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이기적인 삶을 삽니다.

  13절 "원컨데 그대는 나의 여동생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여기서 믿음의 방법에서 떠난 아브람의 이기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를 미끼로 삼아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바로의 손에 끌려 정조를 빼앗기고 청순한 몸을 빼앗겨도 심지어 남의 아내가 되어도 자기의 목숨은 건지겠다는 아부람의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아내를 팔아먹는 아브람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남자망신 다 시키고 있어요.
 
  그러면 아브람만 문제가 있느냐? 사래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는 흔히 말하기를 일심동체라 합니다. 적어도 남편이 믿음의 방법에서 떠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거짓을 말하고 아내를 보호해주지 않을 때 깨우쳐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내 사래뿐입니다. 그러나 사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순종이 아니라 공범입니다.

  아내를 속이는데 함께 수궁해 준 사실과 거짓말에 열심히 동참한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바로 앞에 끄려가서 "나는 아브람의 아내입니다. 나를 해하지 마십시오, 나를 취하지 마소서" 라는 말 한 마디도 않고 바로의 침상까지 따라간 사실입니다.

  남편이 믿음의 방법에서 떠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선한 믿음의 방법으로 이끌어 줄 때 참 아내가 아니겠습니까?

  믿음의 방법에서 떠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 때 죄가 다가옴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죄를 짓게 됩니다.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심지어 아내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방법을 버린 인간적인 방법은 비극을 가져옵니다.
 
<결론: 오늘의 말씀을 생가해보십시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아브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인간적인 방법을 쓴 것은 사실 살아볼려고 몸부림치다보니, 믿음의 방법을 잠시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의 결과는 거짓의 죄로 끝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으로 끝납니다. 아내도 빼앗겼습니다. 곡식도 얻지 못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아브람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나요? 믿음의 방법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오늘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자기는 살겠다고 아내를 내동댕이 쳤지만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를 불쌍히 여기사 그들을 바로에서부터 극적으로 구해주셨습니다. 다시 회복하사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해 주셨습니다. 목축을 통해 기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다시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다시 부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다가 다시 믿음의 방법으로 돌아왔습니다. 제단을 회복했고 기도를 회복했고 믿음의 삶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일시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지도 못했지만 지금까지 연명하며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회개하고 돌아와 오직 믿음의 방법으로 살기를 고대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법에서 떠나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거짓과 속임수를 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극입니다. 그래서 오직 살 길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믿음의 방법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믿음의 방법은 조금 진도가 늦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고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선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순간적으로는 바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입니다. 믿음의 방법은 우리에게 더욱 힘든 생활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감사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우리에게 평안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통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법은 우리의 인생의 영원한 살 길 입니다.
                        <기도>

(찬송)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신실 할신주 오신실 하신주 내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너를 버리지도
약속하셨던 주님 그약속을 지키사 이후로 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허밍 :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았습니까? 실망시키지 않으신 주니앞에서 믿음의 방법으로 살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산 것을 회개합시.

(찬송)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인간적인 방법으로살지 안하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힘이되신 여호와를 믿고 사는 방법입니다.
  주님 내가 이젠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나의힘이되신 여화와를 믿는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찬송)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자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자 어두움의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나의 심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만 바라볼지라
  주여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찬송)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믿음의 장애요소는 의심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적인입니다.









설교 전 멘트와 찬양

  저는 지난 한 두 주간 푸른침례교회의 설교를 부탁받고 내내 그리고 오늘도 나오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예배를 통해서 강사목사가 받았던 동일한 영감과 동일한 은혜와 동일한 감격을 우리 성도들에게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강단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오늘 말씀 위에 하나니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그저 주시는 축복이지만 은혜는 그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사모하고 간구하고 매달릴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새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서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을 통해서 영적인 뜨거움이 불일듯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찬양>  하나님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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