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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섬기는 교회/ 요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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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섬기는 교회
요13:12-17
대선교회 윤정현 목사


이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생존경쟁의 세상입니다. 높은 사람이 있으면 낮은 사람이 있고, 다스리는 자가 있으면 다스림을 받는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마다 다스리는 자가 되고 싶고 높은 자가 되고 싶고 강한 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처절한 싸움이 있는가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로마의 세력을 꺾고 최고의 권좌에 오르면 그의 좌 우편에 누가  앉을  것인가에 대한 제자들의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날까지 참고 기다릴 수 없었던 성급한 야고보와 요한이 아주 염치 좋게 어머니를 대동하고 와서 예수님에게 그 자리를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  자리는 그들 모두가 바라고 있던 자리라는 말입니다. 결국  알고 보면 제자들이 자기의 모든 생업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은  이런 야심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3년 동안 이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이들의 생각을 고쳐주시려고 여러 모양으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결국 그 중의 하나는 실망한 나머지 예수님을 팔아버리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높은 자리다툼을 벌리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교훈을 하시는데 그 교훈은 세상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훈과는 천지차이였습니다.

무슨 교훈입니까? 영광의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먼저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고 죽어야 한다 라고 하는 교훈입니다. "너희 중에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주려왔다"(마20:26-28)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교훈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늘 성만찬을 행하시는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유대의 관습은 그렇습니다.(눅7:44) 그 나라는 비가 오지 않아 땅에는 먼지가 많이 나고 주로 신는 신발은 샌들이라는 것인데 발이 얼마나 먼지가 많고 더럽고 냄새가 나겠습니까? 그런 발로 방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느 집이든지 밖에서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발을 씻는 일이었습니다. 그 집에 손님이 오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절입니다.

그러면 그 발을 누가 씻겨 줍니까? 주인이 들어오면 하인들이 발을 씻겨 줍니다. 손님이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발을 씻기는 종은 가장 비천한 종이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만찬석 자리에서 누가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까?  제자들이 아니라 스승이시며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만찬을 잡수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은 잠깐 빌려서 쓰는 장소이기 때문에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발을 씻길 종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씻겨야 하는데 서로 눈치나 보면서 선 듯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다 못한 예수님은 일어나시더니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대야에 친히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가룟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베드로에 이르기까지 쭉 발을 씻겨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고 황송하고 미안했겠습니까? 앉아있는 그 자리가 바늘방석과 같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4, 15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 말씀은 우리도 섬기는 자들로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이제는 좀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주와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 말은 옳다. 사실 내가 그렇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인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우리 제자들! 주님의 성도들이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도의 숙명이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숙명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성도의 숙명입니까? 제자들의 스승인 예수님께서 이렇게 먼저 더러운 발을 씻기셨는데 제자가 되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자들이 주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섬김이나 받으려고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자가 누구입니까? 스승의 본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까?

주님은 지금까지 제자들을 데리시고 전도하러 다니기도 하시고 사역을 해 오셨지만 제자들에게서는 남을 섬기는 그런 모습이 없었던 것입니다. 서로 자리다툼이나 하고  높은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였으면 하였지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섬기겠다는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과 행동은 제자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스승이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겨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과 함께 군중들을 향한 섬김과 봉사는 있었어도, 제자들끼리 서로를 향한 섬김과 봉사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바른 섬김이 무엇입니까? 바른 섬김이란 당연히 섬김을 받아야 할 자가 섬김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바른 섬김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섬김의 원리와는 정 반대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기는 것이 이 세상의 섬김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섬김의 주체는, 먼저 부름 받은 제자들이 서로서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 비해 은사를 더 많이 받은 자들이 그 받은 은사로 먼저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사란 남을 섬기고 봉사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4절 이하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들은 내가 노력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를 주신 자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른 섬김과 봉사의 자세를 가지고 받은 은사를 사용할 때, 그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섬김의 구체적인 대상을 교훈 해 주십니다. 14절 하반 절입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는 "너희도 서로"라는 것입니다. 일에 우선순위가 있듯이 섬김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우리 함께 신앙하고 생활하는 교회의 권속들 서로입니다.

갈6:10절에는 기회 있는 대로 우리 성도들이 착한 일을 해야 하는데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먼저 우리 믿는 권속들! 식구들에게 먼저 하라는 교훈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이 말씀은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은 한정된 몇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로 태어난 줄 아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섬김의 대상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복음을 설명해 주기만 하여도 주님께로 돌아 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될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만 못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자라서가 아니고 잘못된 약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에 그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니 우리 스스로가 종이 되어 섬기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섬겨야 하는 동기가 있습니다.  요일3:16절에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희생을 하셨으며 그 희생으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가지 더 있습니다. 출21:1-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은 히브리 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인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민족의 노예제도는 6년 동안 일하고 제 칠 년이 되면 자유를 줍니다. 그런데 혼자 들어 왔으면 혼자 나갈 것이고, 혼자 들어 왔으나 그 집에서 여자를 주어 장가도 가고 자식도 낳았으면 그 아내와 자식들은 두고 남자 혼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히브리 민족들의 법입니다. 그러나 종이 주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처자식을 너무나 사랑함으로 나는 나가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고합니다. 그리고 기둥에 귀를 대고 그 귀를 송곳으로 뚫습니다.

이것은 나는 상전이 좋아서 영원히 상전을 섬기겠다고 하는 표시입니다. 그는 이제 억압된 종이 아니라 자유의 몸이지만 주인이 너무나 좋아서 나는 주인을 영원히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도! 우리가 섬김의 삶을 사는 것도 누구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할 수 없어서 섬기는 종들이 아닙니다. 주님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아서 형제와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섬기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피 흘려 희생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를 사랑하셨는데 하는 것을 기억하고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섬기는 자는 자기의 섬김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마25:31절 이하를 보면 최후의 심판의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사람을 분별하는데 의인은 오른편에! 악인은 왼편에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때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이까?  언제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 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
까....." 이들은 이 땅에서 한 선한 일들에 대해서! 섬김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섬김이라는 것은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섬김이 바로 참된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들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여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들이 행한 선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대가를 바라고 섬기는 섬김은 참된 섬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여러분 주위에 작은 자들을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설교가인 오벨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젊었을 때 등산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눈 덮인 알자스 산을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 의식을 회복하여 보니 어떤 농부가 자기를 오막살이로 데려다가 상처를 싸매어 주고 살려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자기가 그 눈 덮인 계곡에서 죽지 않고 다시 살게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그 분이 자기를 도와준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기의 주소는 어떻게 됩니까? 당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시면 반드시 후일에 사례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목숨을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농부는 웃으면서, "저도 한가지 묻겠습니다. 저의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저도 저의 이름과 주소를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과 그 주소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답니다.

부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되셔서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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