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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의 소식을 들었는가? / 사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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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6:1-8
제목 / 죽음의 소식을 들었는가 ?
설교 / 전충현 목사 (영암교회)


지난 <화요일> 대구에서 우리에게 들려온 참담한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
무려 133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의 <죽음의 소식>을 말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T.V.를 통해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저는 도무지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을 통해서 사랑하는 <딸>이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소리 !
그 소리는 마치 <제 아이의 소리>로 제 귀에 들렸습니다.
그러니 그 소리를 듣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부탁한다는 <며느리>의 울부짖는 소리 !
그 소리를 듣던 <시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떠했겠구요 !

죽음의 그 소식을 들으시면서 여러분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
우리가 살아있다고 해서 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
정말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니 우리가 지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것>이라면 이런 참담한 사건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렇게 <화마>에 휩쓸려 나의 생을 마감하리라 !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저들 가운데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참담한 소식>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
성도 여러분 !
그것은 <우리네 남은 인생>을 다시 설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죽음을 본 사람은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죽음을 본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도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더욱 열심히 갈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자주 보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자주 보는 사람 !
그런 사람들은 인생을 훨씬 더 진지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엄청난 죽음 앞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겠습니까 ?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사야> !
그도 오늘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죽음은 <누구의 죽음>입니까 ?
<본문 1절> 말씀을 보시지요 !
그것은 <웃시야>왕의 죽음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사야> !
그는 <웃시야>왕의 <사촌>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800여년 전에 <사촌>이었다면 그 관계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이사야>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국가적>으로 대단히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앗시리아>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닥칠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니 이사야의 마음은 찢어지고 아팠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순간에 이사야가 오늘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무엇인가 ?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한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그 가슴이 슬픔으로 가득 찼던 이사야 !
그가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성전>을 찾은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
그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전> !
<성전>에 그가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들은 우리 !
우리가 오늘 제일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님의 집>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기지 못할 슬픔>을 당하면 <술>을 찾거나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사람>을 찾습니다.
하지만 <술>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놓고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바로 그 때에 <술>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 
알고 계십니까 ?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그 어떤 <어려움>의 순간이 !
도무지 이겨내지 못할 그 어떤 <아픔>의 순간이 !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슬픔>의 바로 그 순간이 !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로 그 좋은 기회 !
그 좋은 기회를 <술>은 우리로 하여금 다 놓쳐버리게 합니다.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 앞에서 여러분께서 찾아갈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눈에 <그 사람>이 크게 보이면 보일수록 상대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눈에 작게 보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
<그 만남>보다 더 귀한 만남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
<그 만남>은 우리의 찢기고 상한 심령을 치유하기에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이제껏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하셨습니까 ?
사랑하는 <아들>이 죽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말입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모두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은 사람들 !
그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화>를 <축복>으로 바꾼 사람들이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노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
저들은 모두가 그런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15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아버님을 잃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주무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저희 가족들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30대 초반에는 제게 유일한 <누님>을 심장판막증이라는 병으로 잃었습니다.
<누님>은 사랑하는 <남편>과 <딸> 하나, 그리고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들> 둘을 남기고 그렇게 먼저 갔습니다.
<2차 수술>을 받기 위해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던 누님은 그 날을 넘기지 못하고 <영안실>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위로가 된 것은 <오직 하나> !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님>과 <누님>은 지금 천국에 가 계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저로 하여금 <천국의 소망>을 가슴에 품게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 앞에서 <하나님의 전>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여기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 존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여기에서 보내고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즉
<영원한 시간>이 준비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은 바로 그 삶을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심장>도 뛰지 않을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삼켜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존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다른 집>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집을 <영원한 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5:1> 말씀을 같이 보시지요 !  신약성경 290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
여기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우리가 여기 이 말씀 말고 또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죽음의 소식 앞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하나님의 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 !
그 만남으로 인해서 <상한 가슴>, <찢겨진 가슴>이 위로 받고 고침 받는 역사가 <대구 참사현장>으로부터 <이 나라 전역>에 가득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한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이사야가 취한 <두 번째 행동>은 <회개>였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

성도 여러분 !  보이십니까 ?
<하나님의 전>을 찾아 그가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 !
그는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존재>인지를 그제서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은 이것입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 우리는 내가 <죄 많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우리는 <당대의 의인>인 것처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 !
그런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죄된 모습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죄도 그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나 이제 겸손하리라 !
  내 인생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고 말하리라 !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 진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죽음의 소식 앞에서 오늘 우리 안에 회복해야 할 모습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죄를 정리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들어서 쓰십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싸움을 잘 하는 군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거룩한 군대>입니다.
그러기에 <강한 군사>로서 오늘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
그렇다면 <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음>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대구 참사>로 인해서 그 가슴이 찢어지고 아픈 사람들 모두에게 이 복음이 전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은 저들 모두에게 <강인한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번 참사로 인해서 사랑하는 <며느리>를 떠나보내고 어린 손주 셋을 떠 안게 되신 <어느 할머님>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어느 아버님> !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어느 남편> !
한 솥의 밥을 먹으며 그 동안 운동을 같이 하던 <친구들>을 한꺼번에 다 잃어버린 대구 카톨릭 대학교 <어느 학생> !
저들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강인한 정신>, <강인한 마음>입니다.
저들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들 모두에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그 만남이 가져다주는 <죄 사함의 은총>이 저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로 인해서 저들 모두가 <강한 군대>, <강한 인생>으로 거듭 태어나는 기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사야가 취한 <또 다른 행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가 응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
거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성도 여러분 ! 
보이십니까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고 계시는 모습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 !
여기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 !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구주로 모셔들이기만 하면 <영원한 시간>, <영원한 생명>, <영원한 세계>는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 !
여기 이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전>을 찾았던 이사야 !
그는 하나님의 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나를 보내소서 !
거기 그리 이사야가 응답하고 있지 않습니까 ?

엄청난 참사 소식을 접한 우리가 오늘 지니고 있어야 할 모습도 이것입니다.
그저 <분주한 인생>을 살던 우리 !
그러기에 죽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던 우리 !
그런 우리네 인생은 이제까지 <나만을 아는 인생>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참사 소식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더 이상 <내 가족>, <내 장래>, <내 소망>, <내 욕심>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서 살아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사사로운 감정 싸움>이나 할 때가 아닙니다.
<대구 참사>와 같은 그런 엄청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
<성수대교> 붕괴 사건 !
폭파사건 !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 않습니까 ?

더군다나 지금은 <전쟁의 소문>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가 나만을 위해서 살 때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
그것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만족할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
하나님의 여기 이 말씀은 지금 그 어떤 다른 나라로 파송할 선교사만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전쟁의 소문>은 점점 높아만 가는데, 아직도 여기 이 땅의 삶이 모든 것인 줄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 !
그들에게 다가갈 사람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이제는 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결코 우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교육, 스포츠, 인터넷 등 !
사회 모든 분야에서 <누구를 보낼꼬> 하시면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엄청난 죽음의 소식 앞에 서 있는 우리 !
우리가 이제는 응답해야 합니다.
나를 보내소서 !
이사야 선지가 그리 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이렇게 응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더 이상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천국시민>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들은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전혀 존재 가치가 없는 선교회 !
그런 선교회는 우리 안에 하나도 없기를 저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관들마다 살아서 왕성하게 움직이는 공동체 !
그야말로 <행동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 !
여기 이 <믿음의 동산>이 그런 공동체가 되어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고전 3:9> 말씀을 보실래요 ?  신약성경 265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발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보십시오 !
우리는 <하나님의 발>이요, <하나님의 동역자>라 하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예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손>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발>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은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자로 우리가 오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우리는 <땅의 벌레>나 주워먹는 그런 <병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우리는 분명히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병아리>처럼 땅이나 쪼아대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독수리>처럼 하늘을 나는 인생 !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인생>이 그런 인생이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의 인생>이 그런 인생을 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
그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인생이 그런 인생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넓은 가슴>을 가지고, 그 가슴에 <보다 넓은 세상>을 품고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대구 참사>로 인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
저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은총>이 임하기를 말입니다.

이번 기회가 저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만남으로 인한 <회개의 역사>와 <사죄의 은총>이 저들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로 인해 저들의 삶의 현장 속에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 
알고 계십니까 ?
<항복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
그것이 곧 우리가 항복하는 것입니다.
항복하는 것 !
그것은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항복>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 <첫 번째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맛보게 합니다.
<두 번째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맛보게 합니다.
<세 번째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여기 이 축복이 <대구 참사>로 인해서 가족을 잃은 모든 사람들과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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