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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들이 애급에 판자라 / 창 4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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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애급에 판자라 
창 45:1-15
김영태 목사 (청북교회)


사람들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만만하지를 않습니다. 오늘도 살아가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어쩔줄 몰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자신에게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질투하며 이것이 분노로 나타나게 되지요. 왜 나만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남들은 다 행복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한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근심거리가 없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하며 사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모든 문제를 잘 극복하며 사는 사람들은 본인의 아픔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바꾸며 그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행복해진 사람들을 보면은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모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피땀  흘리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남들이 잘되는 것이 싫습니다.

건강한 것도 싫고 웃는 것도 싫고 가족끼리 행복해 하는 모습도 싫습니다. 이러한 증오가 도를 넘으면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번에 대구에서 불을 지른 사람도 이러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죽는 다는 것이 억울해서 같이 죽기로 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 한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증오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분노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평온하게 그리고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어 우리를 흐뭇하게 합니다. 그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이 형을 속이고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 살 때 외삼촌의 딸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 사랑 받지 못하는 레아의  태를 열어서 자녀를 낳게 하지만 라헬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고민 속에 있던 라헬이 자기 몸종을 남편에게 주지요. 거기에 질세라 레아도 자기 몸종을 야곱에게 줍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는 아들10명에 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셔서 야곱의 12번째 자녀요 11번째 아들로 라헬에게는 첫아들로 태어난 것이 요셉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더욱이 요셉은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사랑이 가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그만 고향으로 돌아오는 광야 길에서 라헬이 아기를 낳다가 죽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친어머니를 잃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요셉의 고된 인생길이 시작이 됩니다. 게모 밑에서 자라면서 거친 형들의 미움을 받으며 삽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편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원인이 된 것은 그의 꿈 때문입니다.  어린 요셉은 단순해서 자기의 꿈 이야기를 그대로 가족들에게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듣는 형들에게는 기분 나쁜 꿈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게된다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지 않아도 미워 죽겠는데 자기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게된다 하니까 꿈 이야기지만 보통 기분 나뿐 이야기가 아닙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은 요셉은 죽을 뻔한 자리에서 그래도 제일 큰 형 르우벤과 유다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애급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가지요. 어린 나이에 그가 당한 일들은 분노를 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에게는 한이 맺혔을 것이고 좌절과 갈등이 수없이 교차되며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갈등을 잘 극복하고 성공을 합니다. 애급의 총리가 되고 그의 가족들을 애급으로 불러다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원수가 된 그의 형들과 그의 가족들까지 다 불러서 돌보아 주는 것이 요셉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의 신앙입니다. 그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의 처지를 오히려 긍적 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적응하여 불행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을 오히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사랑하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축복 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원망하고 짜증을 부리는 것입니까?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며 낙심한다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은 불평을 낳고 원망은 원망의 그림자를 더 크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나무 밑에서 동쪽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무 밑이지만 동쪽을 향해 앉은 이 사람에게는 따뜻한 햇빛이 비쳐 왔습니다. 이 사람은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해 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지자 이 사람에게는 그늘이 졌습니다. 그늘이 지자 이 사람은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원망하고 해를 원망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그렇게 투덜대지 말고 당신이 일어나서 자리를 옮겨 보시오 그러면 햇  빛이 비칠 것 아니오 하고 갔습니다 나에게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어진 현실 속에서 한탄만 하고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현실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며 변화되어 사는 사람입니까? 요셉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화되어 긍적적으로 산 사람입니다.

1.그는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칼을 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로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 갚는 것까지 금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원수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가르치면서 자신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셉은 원수들이 되는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용서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 갈 때  울지를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그는 울지를 않았습니다.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갈 때도 울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형을 만나는 순간 그는 대성통곡을 합니다. 원수 앞에서 대성 통곡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는 형제들을 용서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형들의 잘못을 다 잊었습니다. 그 형들과 입을 맞추며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사랑이 악을 이깁니다. 사랑이 분노를 잠재우게 됩니다. 사랑이 갈등을 이기게 합니다. 요셉은 사랑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그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 맡기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배신을 당했지만. 사람에게는 버림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이 애급으로 팔려간 후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더라 는 말씀 이 계속 이어 집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이방 사람인 보디발이 알아 볼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다면 본인이 왜 모르겠습니까? 그는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이방 나라의 종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이 하셔서 그의 하는 일을 축복하시고 그 일로 사람들에게 사랑 받게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하는 일들이 얼마나 인정을 받습니까? 보디발이 그의 모든 것을 맡길만큼 인정을 받습니다. 전옥이 감옥의 열쇠를 다 맡길만큼 인정을 받습니다. 바로가 나라의 전체를 맡길만큼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그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3,하나님은 그에게 선한 뜻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선 한 뜻이 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고난이지만 그러나 결코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급에 판자라” 여기서 끝나면 분노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마소서 한탄하지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무슨 말예요 하나님의 뜻이 있어 나를 애급으로 보냈다는 말입니다. 내가 애급에 온 것은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당신들의 손을 빌린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이삭에게 약속하시고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것을 이루려고 당신들의 손을 빌려서 나를 애급으로 먼저 보냈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하니까 고통이, 고통이 아닙니다. 원수가, 원수가 아닙니다. 다 용서 할 수 있습니다. 다 받아 들일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된 것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불행해진 것 가운데, 내가 불구가 된 것 가운데, 내가 병든 것 가운데, 내가 가난해진 것 가운데, 내 사업이 망한 것 가운데, 내가 진급이 안된 것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애급에 판자라 그곳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요셉처럼 여러분 모두가 귀하게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당신들이 애급에 판자라
창45:1-15
2003,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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