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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로부터의 출애굽 / 느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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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느헤미야 1:1-9
제 목 : 죄로부터의 출애굽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하기에 앞서서 상황을 분석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산을 가는데 그 곳의 온도는 어떠하며 기후는 어떠한지 잘 알고 준비를 해야 산 정상에 오르는 것에 문제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등산장비를 파는 곳에 가면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음. 상황에 따라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만약에 서울에 있는 남산을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곳을 올라가는데는 침낭이나 거창한 등산화나 냄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설악산을 등반한다고 하면 많은 준비가 있어야 정상 등산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설에 일가족이 그리 높지 않은 산에서 추위에 죽었습니다. 이유는 산에 대해서 잘 몰랐고, 그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터라 쉽게 생각하고 가벼운 옷만으로 산에 오른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준비는 가야할 곳에 대한 사정 이해와 철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선교사들도 같은 맥락에서 준비하고 파송을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 곳이 어떠한 곳인지 충분히 알지 못해도 어느 곳이든지 보내시면 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미리 모든 준비와 교육을 받고서 파견을 합니다. 그래야 수고에 따른 효율을 얻게 되기 때문이며 쓸데없는 힘의 낭비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과 미래를 철저히 분석하고 진단하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본문 속에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실제 모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핀들리 에지는 그의 명저 <기독교의 생명력>에서 놀라운 예언을 했습니다. "미국 교회라는 배가 갑판 위에서는 축제가 벌어져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는지는 모르나, 배 아래에서는 물이 새는 구멍이 커져서 많은 물이 배 안으로 일려 들어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펌프로 퍼내야 하는 형편으로서, 점점 침몰해 가는 배와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예언은 미국 교회가 가장 왕성하던 1965년에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예언은 적중되어 많은 교회가, 교단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형교단이 거의 예외없이 교인 수가 매년 줄어들고 교회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하게도 1970년대에 한국교회가 한참 부흥하던 시기에 지각있는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한국교회의 쇠퇴가능성을 예고한 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는 그 예측이 적중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90년대 들어서 어느 교단이나 기독교의 성장세가 둔화 또는 쇠퇴의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94년 이후에는 매년 4-3% 이산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다른 보고서에 의하면 IMF의 영향으로 3천여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보여주는 소망이 줄어들고, 그러다보니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경이니 10년 후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준비하지 않으면 않됩니다. 왜 하나님의 지체들인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가 물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 심각하게 묻고 준비되지 아니하면 앞으로 미래가 정말이지 불투명하고 어두워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본문에서 우리와 같은 심정의 느헤미야를 보게됩니다. 자기 민족의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인데 자기 모국의 영적인 쇠퇴를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답답해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이 파괴되었고, 그가 장성할 때에는 바벨론에 의해 통치받는 수모를 겪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는 바사왕의 술 따르는 관원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풍습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외국인이었던 그가 이런 위치에 있게된 것을 보면 그는 참으로 신실한 사람이요 믿을만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변 사름으로부터 이처럼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의 인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첫째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환난을 당했고, 능욕을 당했으며, 둘째는 예루살렘 성과 성문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주권이 수치를 당할 지경으로 땅에 떨어지는 수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지금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찾고 물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가? 왜 하나님의 백성이 무기력해지고 있는가? 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부끄럽게 끌려가고 있는가? 이것은 곧 나를 향한 물음입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변을 온전히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쓰임받지 못하는가?

무언가 변화 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 통곡하는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회개하고 기도하고 무언가 영적인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이끄는 영적인 리더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문제들을 찾아보고 우리의 영적인 쇠퇴의 이유를 본문에서 찾아보길 원합니다.

( 본 론 )

(1)이스라엘의 영적인 힘이 무뎌지고 종교성이 무너진 이유 가운데서도 오늘날 우리 주변의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의 교회가 무기력해진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6절을 볼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앙이 시간이 가고 오래되다 보니까 또는 조직이 없어서 저절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7절에는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였습니다. 그의 멸망을 왕하 24:18-25:21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시드기야의 상태를 보면 대하 36:13에 시드기야가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 마저도 크게 범죄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쇠퇴와 몰락으 앞에는 반드시 지도자나 백성들 할 것 없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불순종과 욕심에 사로잡혀 죄악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하나님나라의 쇠퇴를 가져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시며 승리를 허락하시지만, 내가 하나님의 것을 경홀히 여기면 영적인 재산을 잃고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사 삼손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갖고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위대한, 가공할만한 힘을 부여받은 사사입니다. 왜 삼손을 보내시고 그러한 힘을 부여하셨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와 능력 가운데도 삼손은 하나님의 것을 경홀히 여기는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이방여인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그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나실인의 서원 때문이란 것을 가지고 이방여인과 마치 수수께끼하듯이 장난을 치게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의 말씀과 약속을 귀하게 여겨다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경홀히 여긴 삼손은 그의 종말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롯의 사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롯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창19:14에 보면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 승리하는 신앙인과 미숙한 신앙인, 늘 실패하는 신앙인의 차이는 간단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나타납니다. 말씀을 듣고 가까이 가까이 하는 자리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아니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교회도 그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 영적인 경건과 능력이 있는 교호히는 예배 시작 10분 전만해도 주위에 사람모습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반면에 예배 시간이 되었는데도 교회 밖에 사람들이 서성거리면 미숙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국교회의 무기력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모습도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앞세울 때는 결코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당히 세상에 타협하고 하나님의 기준과 질서보다 세상의 것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늘 보도되는 타락의 현장에는 기독교인들이 끼어 있음을 보게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보도를 볼 때 큰 사건에 걸려서 조사받고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을 보게됩니다. 몇 년전에 일어났던 옷로비 사건을 통해 참으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부끄러움을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서로 성경에 손을 언고 사실만을 이야기하겠다고 해놓고 서로가 다른 말을 할 때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누구 하나님이 진짜냐"하면서, "하나님도 헤깔리시나 보다"라고 하면서 비아냥 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이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우리도 바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크리스챤에게 돌을 던질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내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 크리스챤 검사의 말에 의하면 일년동안 해결해야 하는 수천 건의 사건 중에서 기독교교인들과 관련된 숫자는 우리나라 기독교인구비율을 넘어선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기독교인이 비율적으로 전 국민의 30%라면 범죄 비율도 그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아니 오히려 그 정도도 못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실제로는 기 비율보다 훨씬 많다고 하니 암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쾌락과 욕심, 인간적인 유익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도 뒤에 제껴두고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 영적인 불감증이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된 모습에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복되지 아니하고는 아무리 우리가 커다란 소망을 가질지라도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계획이 크실지라도 우리는 빈 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로부터의 출애굽을 선포합시다. 다시는 영적인 무기력함 속에서 세상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우리의 죄된 모습을 고백하고 출애굽을 선언하며 변화된 크리스챤이 되어서 소망과 빛을 전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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