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질그릇에 담긴 예수의 생명,송명희 / 고후 4:7-12

  • 잡초 잡초
  • 307
  • 0

첨부 1


제목 : 김명혁 목사 
제목 : "질그릇에 담긴 예수의 생명,송명희"
본문 : 고후4:7-12


오늘은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22번 째 설교를 합니다. 지금까지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부터는 교회역사에 나타난 인물들 중에서 주님을 증거하므로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송명희 시인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첫째, 송명희 시인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들어 소뇌를 다쳤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울지도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했습니다. 여물지 못한 계란처럼 아기 머리가 만지는 대로 푹푹 들어가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기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약한 몸과 술과 담배와 과로로 병이 들었고 어머니도 몸이 약해 아기에게 젖도 먹이지 못하고 우유도 사 먹이지 못했습니다. 쌀가루 끓인 물만 아기에게 억지로 떠 먹이곤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나는 일곱 살까지도 누워만 있다가 업으면 머리가 등 뒤로 고꾸라져 허리가 빠지고 목이 꺾일 듯한 고통을 느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은사 집회에 가서 안수 기도를 수 없이 받기도 했고 침 맞는 곳에 가서 머리와 팔 다리에 침을 꽂기도 해서 난 자지러지게 울기도 했다. 그때의 고통을 지금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음은 지독한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송명희씨는 열 살이 넘어가면서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18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목 이하의 전신이 마비된 조니 에릭슨이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반항했던 것처럼, 송명희씨도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불쑥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애기를 자연 유산도 잘 하면서, 왜 난 이렇게 났어? 나도 그렇게 유산해 버리지 왜 이렇게 나은 거야?” 송명희씨는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욕설을 퍼 붓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집이 싫었고 그런 세상이 싫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미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으며 비인간적인 안수기도를 받고 있노라면 그 고통이 나를 견딜 수 없도록 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타나지도 않고 뭔가 해주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향해 불신하며 원망하며 반항했다. 한없이 외로웠고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자살하려고 했다. 무조건 반항이었고 무조건 원망이었다. 미치고 싶었으나 미쳐지질 않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어렵게 구했던 그 남자의 사진도 찢어 버렸다. 모든 게 절망이었다.” 송명의 시인은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몸뿐 아니라 그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완전히 망가지고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둘째, 송명희 시인은 보배를 담은 고귀한 질그릇이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빛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몸에 담게 됩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던 깨어진 질그릇이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귀하게 쓰여지는 고귀한 그릇으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아마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누구에게 하늘의 빛을 부어주실까? 누구에게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실까? 누구에게 예수의 생명을 부어주실까 생각하시면서 사람들을 살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6).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힘 없고 연약하고 병들고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10:23,23). 저의 아들 철원이도 뇌수정이란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4년 동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고 마지막 일년동안은 시력까지 잃었었지만 주님은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셨고 하늘의 빛도 보여주셨습니다. 저의 아들 철원이는 가끔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

송명희씨가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교회 강단 밑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교회 강단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넋 나간 사람처럼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드릴께요.” 그런 기도를 한 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빛이 소녀 송명희 머리 위에서 밤낮으로 반짝거렸습니다. 사흘 뒤 밤 열 두시에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반짝이는 빛이 위로 올라가고 밝은 빛이 비추이면서 두루마리 같은 것이 눈 앞에 서더니 양쪽으로 펼쳐지고 이상한 글이 적혀 있을 것을 보았습니다. 한글도 영어도 한자도 일어도 아니었고 생전 처음 보는 글이었지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그 두루마리는 말려서 다시 올라가고 밝은 빛도 사라지고 다시 작은 빛이 반짝거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빛을 소녀 송명희에게 비추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해 1979년 10월 어느날 저녁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송명희씨는 자기가 죄인 것을 깨닫고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도 원망하고 반항하던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녀 송명희에게 아버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부터 소녀 송명희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질그릇에 그의 빛을 비추어 주셨고 아버지로 나타나주셨고 그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들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 이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것도 못 믿으면서 어떻게 나를 믿겠느냐?” 마음 속에서 사탄의 유혹이 일어나고 그래서 죄책감과 낙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이런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떤 때는 극심한 몸의 고통 중 자리에 누어 있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누어서 고통 중에 있는데 어두움 속에서 나무 토막이 나타나고 그 위에 손바닥이 올려지고 돌로 된 못이 박혀서 손바닥을 부수며 뚫고 나갔다. 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뼈에서 흰 진액이 나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주님의 못 박히신 손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소녀 송명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하나하나 나타나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값없는 은혜라 하여 가볍게 여길 만한 게 아니라 값이 너무나 커서 그 값을 붙일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격해서 울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 싶었으나 전할 사람이 없어서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시를 불러주셨고 시를 쓰게 했습니다. 소녀 송명희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주님이 깨어진 질그릇 같은 자기에게 주님 자신을 보여주셨고 주님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기쁨과 감격에 사로잡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일기장 한 장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문학에 소질이 없었던 나에게 문학을 가르치셨고 예술성을 불어넣으셨다. 시를 불러주시고 성경을 알려주셨다. 그 누구도 나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성경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셨고 주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나는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대로 노트에 시를 썼다. 그 비밀스런 은혜의 말씀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나는 주님과 울고 웃으며 그렇게 살았다.” 이 무렵 송명희 시인은 에바다란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시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귀를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맘을 열어주소서 주님의 뜻 깨달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입을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전할 수 있도록.”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면서도 이십대가 되면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휠체어도 없어서 교회도 못 가고 봉사도 전도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나요?” 그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믿었겠느냐? 너는 지금 기도로 나를 기쁘게 하고 있다. 내가 너를 반드시 들어 쓰리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람을 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안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늘 들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서글픔에 잠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연희동 집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희동 교회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 최인자 언니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친구도 집도 휠체어도 아무 것도 없어요!” 바로 그때 주님이 그에게 시를 불러 주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써라!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왼 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울먹이면서 시를 썼습니다.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꽉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 가금씩 주님은 그에게 심각해 지시곤 했는데 그때도 조금 심각해 지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써라!” 그런 공방전이 반복되다가 결국 하나님의 고집이 승리하셨습니다. 결국 송명희 시인은 그 유명한 “나”라는 시를 썼습니다. 


셋째, 송명희 시인은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이제 송명희 시인은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극동방송을 교회로 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극동 방송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극동방송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는 계속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시를 썼습니다. 그가 21살이 되던 1984년 8월 16일 극동방송에 가서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유관지 목사는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트에 써 놓은 시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1년 후인 1985년 5월 여운학 장로의 도움으로 규장에서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왼손으로 몽당 연필로 쓴 원고지 열 권 분량의 시와 왼손으로 몽당 색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을 표지로 한 송명희 시인의 시집 3권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송명희 시인의 영혼의 고백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너무 행복해서 울었습니다. 책만 봐도 눈물겹도록 기쁘고 감사한데 원고료로 백만원이 주어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번 돈이었습니다. 그 당시 송명희씨의 집은 전세금이 부족해서 50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송명희씨는 원고료가 나왔을 때 휠체어도 사고 전동타자기고 사고 빚도 갚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원고료 전부를 봉투째 자기가 교회로 삼고 있던 극동방송에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송명희 시인은 시로 간증으로 그리고 삶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고 있었습니다. 헌금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고무송씨가 “명희양에게 전동타자기를 주옵소서”란 제목의 기사를 「빛과 소금」지에 실리자 이름 모를 독자가 그에게 전동타자기를 생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듬 해인 1986년부터 하용조 목사가 기증한 휠체어를 타고 이 곳 저곳을 다니며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극동방송의 임경섭 부사장이 송명희 시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극동방송에 맡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뜻 밖의 제안에 송명희씨와 어머니는 당황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요.” 송명희씨는 놀란 토끼처럼 가슴이 뛰고 혀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긴장감이 돌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송명희씨는 순간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임경섭 장로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송명희씨를 덥석 껴 안았습니다. 후에 임경섭 장로는 극동방송에서 설교를 하면서 송명희 시인에 대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명희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드신 이대로 살겠어요.’ 여러분!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 이거 사지 육체 멀쩡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원망 불평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방송을 듣던 송명희씨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무슨 대단한 말도 아닌데 저 야단이지! 나는 그냥 할 말을 했을 뿐인데 뭐 그리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됐다고 저럴까?”
송명희 시인은 1985년 5월부터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1천 6백여회 집회를 인도하며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기쁨과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섭섭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서 가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가서 네 몸만 보여도 된다.” 그래서 그는 가서 몸만 보이기도 했습니다. 수 많은 장애인들을 찾아갔고 교도소와 소년원을 찾아갔고 큰 교회 작은 교회를 찾아갔고 미국, 일본, 대만, 유럽 곳곳을 찾아가서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자기에게 보여주시고 나타내 주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몸으로 영혼으로 증거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힘이 들고 너무 몸이 아파서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내,내가 이,이런 몸이 아,아니었다면 여,여기 오지 않았을 거,것입니다. 그,그 이름의 비,비밀은 그,그 이름 안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이름 안에 내가 있고 내가 그,그 이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10분 정도만 머뭇거리며 말해도 많은 사람들은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죄를 회개했습니다.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름”이란 제목의 시를 김혜은양이 노래로 부르겠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주님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 속에 자기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고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을 통해서 자기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연약한 질그릇 송명희 시인의 몸에 자기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주님에게 돌아온 사람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6년 전부터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지난 6년 동안 고통스런 투병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권사님과 아버지 장로님과 여동생의 극진한 사랑의 돌봄을 받으며 지금도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어머니와 잠시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든 몸으로, 누어있는 몸으로, 때로는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지니고 있는 몸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주님을 가장 순수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경직 목사님이 마지막 수년동안 몸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순수하게 증거한 것처럼 지금 송명희 시인은 주님을 가장 순수하고 가장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멀쩡한 사지 육체를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원망불평으로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높이고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