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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변화시켜라 /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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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5:13-16 
제목 : 세상을 변화시켜라
설교 :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서 이 자리에 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요즈음 제 설교 제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분은 없습니까?

사실 그리스도의 군사 된 우리들은 그 분의 지시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동안 너무 훈련되지 않은 군사들이라 명령형의 제목만 봐도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명령의 내용도 엄청납니다. 주님께서는 전혀 우리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당신의 계획만 집착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긴 우리가 한들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고려하지 않고 전능하신 당신 수준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여러분은 어떠했습니까? 숙제는 쌓여만 가는데 점점 더 많은 과제가 나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배우는 과목이 당신 것밖에 없는 줄 아시는지 선생님마다 만만찮은 숙제를 내어주실 때 여러분의 기분은 어떠했습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다고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상관은 판매 할당량을 어마어마하게 정해놓고 확실한 방안도 없이 그것을 달성하기를 기대한다고 통고합니다. 가격은 낮추고 순익은 높이 잡아놓고 전체 수익은 늘려야 한다고 통고합니다. 이제 이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다.

심지어는 주일날 교회에 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 주간동안 세상에 시달린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포근하게 감싸주는 위로의 설교를 기대하는데 목사님은 우리의 입장을 알기나 하는지 늘 명령형의 설교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더니 “대가를 지불하라”고 다그칩니다. 오늘은 “세상을 변화시켜라”고 엄청난 명령형의 설교제목을 잡아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슈퍼스타도 아닌데 말입니다. 봄비 내리는 날이라 몸이 무겁고 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말입니다.

하긴 잘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특히 올 들어서 나타난 이변은 아닙니다. 물론 명령형으로 주일설교제목이 바뀐 것은 몇 주 되었지만 설교란 본래 신앙인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불변하고 그 기준은 높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한마디로 요약해서 “아버지의 거룩하심처럼 너희도 거룩 하라. 아버지의 자비하심처럼 너희도 자비하라” 이게 설교가 여러분에게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사업을 해도 윤리적이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기도생활에도 앞장 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변세계에 복음전도의 영향을 미치라는 설교는 이 시대 성도들이 받는 대표적인 스트레스의 주범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잃고” 있는 자들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로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모두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출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사입니다. 그들을 도와서 그리스도께 인도 하십시오”라고 설교합니다.

들어보면 설교자의 말이 잘못되지는 않았습니다. 누가 과연 잘못되었다고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적이며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치에 맞는 말들입니다. 다만 그 명령을 듣는 우리는 오늘도 간신히 이 자리에 나아와 있다는 사실을 아마 설교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빼고는 모두 좋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직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만 하고 끝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대책 없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시며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필요한 정보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소위 산상보훈이라는 귀한 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로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의 산상 설교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단정히 하라는 권고를 여기저기에서 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권고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순종 할 때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산상 보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 중에서도 으뜸가는 설교에서 주님은 우리가 읽은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소금으로 빛으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소금은 무슨 일을 합니까? 요즈음은 고혈압이 겁나서 음식에 제대로 간도 못하고 심심하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입니다. 소금 통에 손을 뻗치는 것이 예전처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뛰어넘는 소금의 주된 용도가 있습니다. 소금 하면 갈증을 일으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맥주 집에서는 비스킷을 줘도 짭짤하게 해서 주죠? 땅콩을 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짭짤한 것 먹고 나서 또 맥주 시키도록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의 짠맛은 동시에 음식의 맛을 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소금 간이 없는 음식을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겁니다. 간이 싱겁다 싶으면 누구나 소금을 찾습니다. 그리고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냉장고가 생기기 전에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소금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생선이고 육포를 알맞게 소금에 절여서 오랜 기간 보존했습니다.

이처럼 소금을 갈증을 일으키고 음식의 맛을 더하며 부패를 막아줍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 하셨을 때 이중 무엇을 마음에 두고 말씀하셨을까요? 아니면 이 모두를 마음에 두시면서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말씀 하셨을까요?

어쩌면 소금이 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셨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이와 같은 비상한 세상에서 평안하게 그러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적 갈급함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좀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관심이 생겼습니다. 내 속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정신적 갈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이 집 밖에 나가서 신앙을 대담하게 실천해 나갈 때 보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그들은 우리에게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구 참사에서 고명딸을 잃은 어떤 목사님은 앞장서서 사고를 수습하는 일에 지금 일하고 있는 것을 어제 국민일보를 통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 사람들은 그런 의문들을 가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장례식장에 까지도 성도들은 어떻게 합니까? 찬송을 합니다. 보통 사람이라고 하면 의문을 갖도록 만드는 일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과격해 보이는 생각과 권면으로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신앙인들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들은 사회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도덕적인 부패를 막기도 합니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 환경문제에 대해서, 가족 붕괴에 대해서 바른 입장을 취할 때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쩌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을 때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두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소금을 들어 말씀하신 의도 속에는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소금은 그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소금 자체의 짠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소금 노릇을 할려고 하면 소금은 뭐가 대상인 물체에 뿌려져야만 한다는 것 생각해 보십시오.

소금으로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꼭 명심하십시오.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소금 맛을 내어야 합니다. 확실한 짠맛과 동시에 세상 사람들에게 충분히 다가서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주님하신 말씀도 마찬가지 입니다. 소금이 짠 맛이 없고 품질이 나쁘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갈증을 일으킬 수도 없고 맛을 더하여 주지도 못하며 썩는 것을 막아줄 수도 없습니다. 소금을 칠 수 있으나 그 짠 맛이 사라지면 쓸모가 없어 땅에 버려져 짓밟힐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엄청 나게 짠 맛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어딘가에 부어지지 않으면 소금은 그 역할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마니 속에 들어있는 소금은 소금 값 뛰어오를 때 한몫 할지 몰지만 소금의 본래 기능은 다할 수가 없습니다. 식탁위에 올려져 있는 소금통은 거기에 그대로 있는 한은 식탁 장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래적인 기능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불행히도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별히 주일날이면 그런 노력은 돋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멋있는 식탁 장식품 이상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나이가 얼마가 되든지 짠맛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뭔가 읽을거리를 좀 다오”라고 다가오시던 은퇴를 앞둔 교수님을 저는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나이에 뭔가 더 알고 싶어 하는, 주님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노 교수의 모습에서 나이가 들어도 저런 신자가 되어야지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이를 초월해서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소원이 있어야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신앙인다운 짠 맛은 한 번의 결단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매일 매일 영적인 훈련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여기는 단번에 충전되는 첨단 기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매일 매일 읽고, 시시 때때로 기도하는 무릎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짠 맛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는 형제자매들이 가면을 벗고 서로에게 진실해지기를 소원하는 소그룹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서로의 고백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가지고 말거리를 삼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생겨납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소그룹은 아직도 소그룹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있는 상처나 염려를 내어 놓고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구역은 아직도 구역다운 구역이 아닙니다. 형제자매의 아픔을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마십시오.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볼 때에 판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는 일은 무슨 살인을 해서가 아닙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부터 멀어집니까? 침묵해야하는 순간에 입을 열기 때문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귀에 다른 사람의 험담을 들려주면 정색하고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서 그 말이 중단 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형제자매가 기도의 자리에서 내어놓은 일을 가지고 여러분 나가서 떠벌리게 되면 신앙의 공동체 아름다운 핵심은 사라져가게 됩니다. 형제자매의 아픔을 가지고말거리를 삼지 않는 진실한 교제를 나누는, 우리의 모임의 수준을 높여가야만 합니다.

신앙인의 짠 맛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동체에서 헌신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울산교회 한번 가보자,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자’ 그런데서는 여러분 자신의 신앙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울산교회 한 멤버로서 소속될 것을 결단하고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여기저기 안타까운 모습들을 계속해서 볼 수 있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로서 흠도 티도 주름잡힌 것이 없이 내 한 생명 드릴 것이다.’라고 결단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야만이 울산교회 좋은교회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송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서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나누려고 노력 하십시오. 실패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면서 짠맛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한결같은 짠 맛은 자신을 훈련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짠 맛을 더해주는 마술지팡이는 없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그러면 그 분의 말씀은 여러분의 삶에 등불이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여러분 자신을 내어 맡기십시오. 열심을 내십시오. 가족에게도, 구역원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끼치는 성도들 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고 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그때 여러분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갈증을 일으키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저 사람처럼 거룩하게 살겠다는 소원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갖도록 할 것입니다. 서로 접촉하는 만큼 도덕적인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서 더욱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십시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때 짠 맛을 잃지 않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러면 빛은 무슨 일을 합니까? 빛이 비취면 어두움이 사라지고 만물이 밝히 보입니다. 우리는 빛을 통해서 무엇이든 보게 되고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라고 고린도후서 4장 5절, 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 예수그리스도에게 나타나는 그 영광의 빛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얼굴을 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되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얼굴을 보고 우리 모습을 보고, 행동을 보고 우리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추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복된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습니다. 그 말씀을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기회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목사가 설교하는 자리에 앉아서 들어볼 수 있는 기회조차도 제대로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하나님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긍휼을 나타내는 사람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긍휼하신 분으로 그들은 생각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친절한 행동으로 다가섭니까?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친절하신 분이라고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온유하며, 겸손합니까?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된 우리들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 때에 우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용서와 은혜를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나타내 보여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것입니다. 빛이 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드러나야만 합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감추일 수 없이 드러나야만 합니다. 등잔의 불도 등경위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비췰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진리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며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중심 사상을 솔직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울산교회는 최소한 네 가지 영적인 원리를 설명할 수 있도록 누구나 새 생명훈련을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보에 여러분들이 보시면 새생명 훈련 모집이 나와 있습니다. 제 41기 새생명훈련, 3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41기 훈련이 실시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울산교회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새생명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왜 여러분 새생명 훈련 할 때마다 스트레스 받고 나서 받을 것 뭐 있습니까? 받고 전도에 참여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매 맞고 말 듣습니까? 말 듣고 매 안 맞는게 낫지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죄가 무엇인지 일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주시는 용서와 새 삶을 누리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는 훈련을 새생명 훈련은 여러분에게 제공해 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저사람 뭔가 틀려’하고 추측은 하겠지마는, 뭔가 틀리는데 고개를 갸웃뚱 하면서도 영원히 그들에게 미지의 사건과 같이 남을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을 그들은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인생이 끝날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자신이 솔직하고 일관된 삶을 살기만 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수 있어?’라고 물어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믿는 진리를 전달해 주면된다고 마음 편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짠 맛을 잃지 않는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갈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짠 맛을 유지하는 삶에만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그 삶의 현장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는 영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다가서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지옥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알아듣고 결단 할 수 있도록 분명한 말로 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16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나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들의 하늘 아버지를 찬양할”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평가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소금은 짠 맛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선이든 배추든 거기에 뿌려져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접촉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거리를 두지 말고 다가서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그들과 다른 특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소금의 짠 맛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밝히 비추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특징이 있습니까? 분명한 짠 맛이 남아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맛을 전달할 대상과 충분히 가까이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특징을 분명하고 은혜롭게 전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41기 새생명 훈련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1기 2기 3기 4기 훈련을 받았다손 치더라도 지금 그 훈련이 의도하는 전도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훈련소에 입소해야만 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서 진실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진실, 긍휼, 희생은 영향력 있는 신앙인이 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소금의 짠 맛을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어두움을 비취는 빛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특색을 유지하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명령을 처음 들으면 엄청나 보이지만 주께서는 여러분 안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주셨습니다. 짠 맛을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비추십시오.그러면 여러분은 온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주의 백성들 될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서 밝게 비췰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같은평범한 신앙인을 사용하셔서 여러분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한 주간도 하나님의 손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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