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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에 들어갈 자 / 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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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23일 - 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천국에 들어갈 자( 마태복음 18:1-4)


1. 제자들의 관심/누가 크냐, 예수님의 관심/천국에 들어 가는 것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그때>라는 표현들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9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는 주로 앞에서 말한 내용과 다른 내용이나 주제로 전환될 때에 <그때>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그때>라는 말은 평소에 말하는 <그때>-원어로는 ‘토테’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때->라고 시작되고 있는데 여기서의 <그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때>와는 다른 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앞에서 나온 사건과 시기적으로 일치되는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at that time~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어느 때이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9장에도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 9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차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 베드로가 1순위인가, 요한이 1순위인가, 누가 서열 1,2,3위에 오를 것인가 하는 토론들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도 예수님의 수난을 이야기 했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시 누가 크냐하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2절, 23절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도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크냐는 논쟁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렇게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예수님에게까지 나아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실 그때입니다. 죽음을 논하는 가장 엄숙한 때였습니다. 얼마나 비장하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생각하고 십자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질 것인가 하는 방안들을 궁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자들은 무엇을 했다고요? ‘천국에서 누가 크냐,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냐.’하는 논쟁을 했습니다. 자기네들끼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니까 예수님에게까지 가지고 와서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참 한심한 노릇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딴 짓을 하고 있었던 제자들의 그 모습이 오늘 나의 모습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병들어 죽어가는 아버지의 병상 곁에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살릴 것인가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죽으면 누가 상속을 더 많이 받을 것인가하고 싸우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이 뭡니까? ‘누가 크냐’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서열 1위에 앉을 것인가, 이것이 제자들의 관심이었습니다.

제자들만 그렇습니까? 우리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크냐, 누가 큰 집에 사느냐, 누가 더 멋진 옷을 입느냐, 누가 더 좋은 차를 타느냐, 누가 더 큰 권세를 잡느냐, 누가 더 많은 돈을 버느냐, 이것이 이 세상에서만 끝나지 아니하고 천국에까지 연결되어서 천국에서도 누가 크냐,하고 온통 누가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느냐는 여기에 관심이 쏠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 마을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세요. 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하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첫 번째 관심은 <천국에서 큰 자>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천국에서 큰 자니, 작은 자니 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천국>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만 세상이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거기만 세상이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보다 더 밝고, 더 넓고, 더 오래 살 수 있는 이 세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만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마련해 놓으시고 우리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고, 그 나라를 소망하며 준비하고, 그 나라에 참여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본능적인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이 세상만 세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놓은 천국, 그 아름다운 나라가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요, 거기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아무리 인물이 아랑드롱처럼 잘 생기고, 머리가 아인슈타인처럼 똑똑하고, 성품이 좋고, 몸무게가 3.5㎏가 아니라 10㎏정도 나가면 뭘합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태어나야지, 죽어서 나오면 뱃속에서의 그 자랑이, 뱃속에서의 그 아름다움이, 뱃속에서의 좋은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고, 아무리 잘 생기고, 아무리 부유하고,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지고, 아무리 높은 지식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천국으로 태어나지 못하면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삶은 이 땅에서 살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삶은 다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죽어서 이 땅에 나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아무리 모든 행복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은 다 허무하고 무의미할 뿐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오래있지 못하고 조산으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인큐베이터 속에서 자란다고 할지라도, 미숙아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살아서 나오는 것이 축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좀 일찍 세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좀 힘들게 살아도, 천국에 태어나 영원히 산다고 하면 그것이 최고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나를 위해서 마련되어 있음을 확실히 믿고,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성경은 전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당시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욱하고 있지만 전부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천국이 있음을 확실히 믿고 그 나라에 들어가서 웃을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웃는 자가 참 승리자가 아니라 천국에 가서 웃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 입니다.


2. 천국에 들어 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하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거기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그 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잘라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해야만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헌금을 많이 해야 된다, 전도를 많이 해야 된다, 기도를 해야 된다, 봉사를 해야 된다, 착하게 살아야 된다...’이렇게 무엇을 하고하고 자꾸 해야만 천국에 들어가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부자이며 관원이었던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고백했는데, 천국은 무엇을 해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극락에 가려면 공덕을 쌓아야 됩니다. 시주를 많이해야 되고, 불공을 드리고, 삼천 배 기도를 해야 되고, 선행을 해야만 그 공덕이 쌓여서 극락에 들어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천국은 무엇을 해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되어집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to do~"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는데 있지 않고 ‘to be~"입니다. 무엇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날 때 무엇을 해서 태어났습니까? 입장료내고 태어났습니까? 수능시험 보고 태어났습니까? 내가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인터뷰를 해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허락을 받아서 태어났습니까? 자격시험을 치고 태어났습니까? 무엇을 해서 내가 자녀로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되니까 자연적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천국백성도, 하나님의 자녀도, 무엇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는 죄가 없기 때문에 <죄가 없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하는데 어린아이가 죄가 없던가요? 어린아이라고해서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선하게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소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은데,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선한 사람도 되고, 악한 사람도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악하게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도 말하기를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지어진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시기심이 많던가요.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가 젖을 먹고 있는데, 다른 아이를 안고 젖을 물려보세요. 먼저 젖 먹던 아이가 얼마나 시기를 하고 밀어내는지, 모두가 자기 중심적이요, 이기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말의 초점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모든 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습니까? 이것은 어린아이와 부모의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1)어린아이는 부모를 절대 의지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절대 의존합니다. 세상에서 어린아이처럼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짐승들은 새끼를 낳으면 몇 분 안에 비틀거리며 걷다가, 조금 있으면 뜁니다. 스스로 어미의 젖을 찾아서 먹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구실 하기까지 키우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까? 이처럼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어린아이도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합니다. 어린아이는 절대 자기를 믿지 않습니다. 부모만 신뢰합니다.
마치 나무 뿌리가 땅을 의존하듯이, 물고기가 물을 의존하듯이, 어린아이는 부모를 의존하는 것이 본능입니다. 부모를 의존하지 않는 아이는 그때부터 죽는 것입니다. 생명에서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신뢰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아십니까? 부모가 이 세상에서 최고인줄 압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줄로 압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인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가면서 내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부모를 아주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을 합니다. 나이가 더 들어 40~50대가 되어야 아, 부모님의 말씀이 맞구나, 부모님은 지혜로우시구나 하고 깨닫지, 지금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부모는 세대차이가 나고 모르는 부모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는 부모는 절대적입니다. 부모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줄로 압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부모의 가난도 알고, 부모의 무능도 알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만 있으면 다 만족합니다. 아무리 좋은 장난감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 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 합니다. 돈도 모릅니다. 명예도 모릅니다.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부모만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있으면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나, 살 집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모든 것을 다 책임질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부모를 믿고 신뢰하듯이 예수님을 이렇게 믿고 신뢰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염려와 근심을 다 맡겨버리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만족하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기쁨이 되는 자, 이런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까? 물론 다른 여러 설명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신뢰하며 나가는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이들에게 천국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예수님을 믿고 따라갑니까? 예수님만이 정말 나의 최고가 되어집니까? 예수님만 있으면 만족합니까? 예수님만 있으면 기쁨이 넘칩니까? 예수님이 내 모든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이것이 어린아이의 믿음이요,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을 최고인 줄 믿고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여서 주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너는 정말 천국에 들어갈 만한 어린아이구나 하고 말씀하시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어린아이는 부모의 말을 절대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을 잘 믿고 순종합니다. 부모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믿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믿어버립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들이 맛있는 사탕 하나에, 과자 하나에, 유괴되어서 끌려가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특별히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부모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사람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한마디 말을 하면 복잡하게 해석을 해서 받아들입니다. 그 이면에 무슨 뜻이 있는지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런 순종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보세요. 가데스 바네아에 왔을 때 이제 올라가면 가나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올라가면 가나안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 그래도 우리가 올라갈 땅을 한번 보아야겠다고, 우리가 상대할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봐야지, 별별 이유를 대다가 정탐을 보내고 결국 그들은 멸망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대로 믿고, 올라가려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표현하기를 <온전히 순종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가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서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들은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시는 편지와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복되게 살아갈 수 있다하는 이 모든 축복이 약속되어진 하나님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요즘은 이메일로 편지를 많이 주고 받지만 예전에는 ‘아버님 전상서’라고 편지를 많이 썼는데, 아버지가 자녀에게 편지를 쓸 때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많이 해서 사전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겨우 알 수 있는 편지를 쓰는 아버지가 있습니까? 또 아버지가 편지를 쓸 때는 전혀 실행할 수 없는, 골탕먹이는 어려운 내용만 써 놓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의 편지는 쉽습니다.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읽어보면 다 이해가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상하게 비비꼬고 , 내게 맞추려고 하니까 이게 어렵게 되어져 잇지, 정말 아버지가 나에게 주시는 사랑의 편지라는 것을 믿고 읽으면 성경말씀은 다 이해가 되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이것은 성경이니까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니까 지킬 수 없지, 지키려고 하면 다 지킬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이 나오면 아,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셨구나, 그렇게 믿어버려야지, 엿새 만에 어떻게 창조를 했나, 아, 자꾸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물 위를 걸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신데 물 위를 못 걷겠나, 물 위를 걸으셨다고 믿어 버리세요. 죽은 자를 살리셨다면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살리셨겠지 하고 믿어버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여 오신다면 예수님이 지금까지 안 오셨는데 언제 오시겠나,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 버리세요.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기도하고, 질병에 걸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우리의 모든 질병도 다 가지고 가셨다고 그대로 믿어 버리고, 믿음으로 십자가 밑에 맡겨버려서 건강되찾고, 남을 구제하는 것은 다 뿌리는 것이라고 했으니 뿌리는 것 다 거둘 줄 믿고 열심히 뿌리고,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씀처럼 믿어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춥니다.

어린아이들은 겸손합니다. 4절에 예수님께서 해석하시기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라고 했는데 어린아이는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커가면서 교만하고,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어린아이들은 겸손합니다. 돈을 좀 모으면 돈이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 지위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공부를 좀 하면 그 학식이 교만하게 만듭니다. 사춘기가 되어서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알게되면 아, 내 외모가 이렇구나 하고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 가지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 나셨다는 베들레헴에 가면 콘스탄틴 대제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은 큰데 출입구는 하나 밖에 없고, 그 출입구도 좁고 낮아서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면, 태어나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면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하리를 굽히고 겸손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재물 때문에 그 재물이 자기를 교만하게 만들어서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지위와 명예 때문에 그것이 자기를 교만하게 만들어서 신앙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많은 학식 때문에 그 학식이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가지 기적을 수용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은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아무리 많은 학식을 가지고,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겸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본체이신 그 분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바울도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나는 사도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교만할 근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는 생명이 내 것입니까? 내 것이라고 하면 내가 내 마음대로 오래 살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 건강, 내 것입니까? 물질, 다 내 것입니까? 내게 있는 지혜, 내 것입니까?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잠시 내게 맡겨 두셨다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실 때 다 놓고 갈 수 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3. 과거의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런데 내 것 아닌, 남의 것,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내가 자랑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교회 옆에 있는 부산은행에 가 보세요. 거기에는 아마 지금도 수십 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직원들이 내가 돈 많이 가겼다고 자랑하던가요?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돈은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객들이 맡겨놓은 돈이기 때문에 절대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겸손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두 단어가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돌이켜>하는 말과 <결단코>하는 말입니다. <돌이킨다>는 말은 ‘돌아서다’라는 말이고 좀 더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에서 돌어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디에서 돌아서라는 말입니까? 우리의 참부모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돈 의지하고, 건강 의지하고, 사람 의지하고, 권세 의지하고,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는 삶에서 돌아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의심하고 토를 달고 불순종했던 삶에서 돌아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아니하고 가진 것 때문에 교만하고, 자랑했던 삶에서 돌아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결단코>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결단코>란 말의 원어는 ‘우 메’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중 부정으로 되어 있는데요. 우-라는 말은 ‘아니요’라는 뜻이고, 메-라는 말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니, 아니라는 말을 이중적으로 사용해서 <절대로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만을 믿고 가진 것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교만한 삶에서 돌아서서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만 의지하고,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어린아이가 겸손한 것처럼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삶이 되도록 돌아서지 아니하면 결단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과거의 삶에서 자녀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순종하듯이, 낮추듯이, 그와 같은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만 신뢰하고, 순종하고, 자기를 낮추는 삶이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가지, 그렇지 않고는 결단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돌이킬 것 돌이켜서 정말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천국에 들어갈 자가 되고 난 다음에, 자기를 낮추고 봉사해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한 저주입니다. 천국에 못 들어가면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것, 죽어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 보다도 더한 불행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천국이 있음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만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어린아이들처럼 하나님 아버지만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들처럼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해서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고, 섬기고, 베풀고, 심어서 천국에서 다 큰 자로 설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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