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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보던 일을 셈하라 / 눅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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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조세제 목사
제목 :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16:1-8)



시작하는 말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태양력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있어 실감은 잘 안되겠지만, 11월의 마지막 주일이라 한해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공감은 어느 정도 우리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눅 16:1-8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가깝게는 2001년 11월 28일 수요일에 비유공부를 통해서 나누었고, 그 이전에도 설교를 한 바 있는 말씀이 다시 주어졌습니다.

본 론

1) 예수님의 비유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이야기들 중 한 부분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청지기를 주인이 불러 그 보던 일을 셈하게 하고 더 이상  청지기 사무를 보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맞게 된 상황 속에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청지기는 자신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나중의 삶을 위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부릅니다. 기름 100말  빚진 자에게 50말로, 밀 100석을 빚진 자에게 80석으로 각기 빚을 감해 주는 일을 저지릅니다.

  이 청지기가 옳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성경에(8절) 분명 '이 옳지 않은 청지기'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칭찬하였다'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무엇을 칭찬하였습니까? '지혜있게 하였다'는 것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지혜롭다'고 인정되어진 것입니다.

 
2) 청지기의 지혜

  1) 자신이 청지기임을 알았습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청직(廳直)에서 나온 말로, 청직의 한자 말은 관청 청(廳)과 곧을 직(直), 당할 직(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옛날에 있던 양반집 수청방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보거나 시중을 드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관리인'을 뜻하며 영어로 표현하자면 스튜어드(steward) 또는 메니저(manage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란 주인에게는 종이요, 다른 종에게는 주인입니다. 주인에게 있어 그는 타율적인 책임을 지며 다른 종에게는 자율적인 권한이 있게 됩니다. 책임과 권리의 갈등속에 있는 존재가 바로 청지기입니다.
  본문의 청지기는 자신의 존재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책임을 묻자 곧 시인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핑계대지 않고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우리들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입니다. 주인에게서 주어진 자율이 있지만 그것이 주인 앞에서 책임으로 물어질 때가 있음을 알야야 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 지위, 물질, 기업, 가정, 달란트등을 주셨습니다.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주인으로부터 받은 그 모든 은혜를 잘 관리해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주어진 은혜에 대하여 이렇게 책임과 권리의 긴장(tension)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 곧 청지기의 삶입니다.


  2) 한계를 아는 지혜

  이 비유를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주신 것도, 이 비유가 윤리적으로 해석될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해석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메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이 한 말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였을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청지기에게는 모든 것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을 것이며, 그 결과 내 직분은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건강도, 지위도, 재물도 다 한계가 있습니다. 없어지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하며, 때로는 옮겨가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이 재산, 이 지위가 항상 내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을 아는 지혜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인정한 종말에 대하여 아무런 연기 신청 없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 때는 있습니다. 죽음의 한계, 우주의 한계,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3) 마지막 기회를 선용하는 지혜

  이 사람의 지혜는 남은 시간, 남은 권한을 잘 선용할 생각을 합니다. 언제든지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 남은 기회입니다.

  6개월밖에 못산다고 선고받은 사람이 자신의 임박한 죽음 앞에 절망하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길가다가 좌판을 하는 어린 소녀를 보게 됩니다. 어린 소녀가 왜 거리로 나와서 장사를 해야하는 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 애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이야기하게 되었는 데, 그 어린 소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더랍니다. '그러면 6개월은 살잖아요. 우리 엄마는 한 달밖에 못산 데요' 그 소리를 듣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 영혼은 죽을 때까지 열심히, 성실히 살아감으로 생을 의미 있게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왕은 왕의 궁전 옆의 나봇의 포도원을 탐냅니다. 자신에게 이미 권력과 부와 명예와 지위 등의 절대적 특권과 소유가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있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없는 것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알고 , 그것을 제일로 아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은사가 제일이요, 내게 주신 분깃이 최고인줄 아는 사람이 제일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선용하는 지혜가 청지기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름 100말을 50말로 밀 100석을 80석으로 감해주었습니다.

  지금 만약 우리가 과거를 후회하고만 있다면, 이것은 오늘과 미래를 남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현재 가진 바의 가능성을 수습하여 그것을 통하여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까를 결정하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힘쓸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에게는 종말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종말 앞에 서서 마지막 계산을 받게 될 청지기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게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짧게는 이 한해의 마지막 부분에, 더 짧게는 모든 일의 끝자락에서 결산하게 되고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는 시점이 있음을 언제나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가 있다는 것이고 그 마지막 기회를 선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8절의 뒷 부분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시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는 말은 이 불의한 청지기로 지혜를 배우게 하는 데 좋은 교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악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한 세계의 것을 소재로 하여 지혜를 얻는 그러한 지혜로운 자가 될 때 어디서나 지혜로운 자가 돌 수 있습니다. 이 세대를 통하여서도 지혜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금의 것이 선하다, 악하다, 어떻다 할 것 없이 어찌하던 선한 일에 사용하십시오. '옳지 않은 청지기'였음에도 그는 지혜를 칭찬 받았습니다. 그 후에 그는 다시 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들이 온전치 못하여도 지혜로운 청지기의 모습으로 새 기회를 얻고 칭찬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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