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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잘 사는 길을 아십니까? / 갈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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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함께 잘 사는 길을 아십니까?  (성완석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벌써 3월입니다. 참 빨리 지나가지요. 한해 한해를, 한달 한달을 잘 사는 가장 좋은 비결은 한 해를 나에게 주신 내 인생의 마지막 해라고 생각하며 살고, 한달 한달을 내가 사는 마지막 달이라고 생각하며 산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 복된 한달이 되고, 복된 한해가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어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직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한달을 어떻게 살고, 한해를 어떻게 살것인가? 이것을 분명하게 알고 정리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할만큼 자유를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1절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랬어요. 미국의 독립 혁명 지도자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내게 자유를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오" 그만큼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영국의 식민지로 모든 주권을 빼앗긴 적이 있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독립전쟁을 한 것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역사학자 719명이 모여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클린턴까지 총 41명을 심층 분석하고 연구하여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평가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1위가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링컨은 많이 배운 대통령도 아니었고, 경제를 부흥시켜 잘 살게 만들어준 대통령도 아니었고, 국가의 헌법을 제정한 대통령도 아니었지만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최고의 대통령으로 선정 된 거예요.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세상의 악한 것들의 종 되지 아니하고, 욕심의 종 되지 아니하고, 불행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축복과 자유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죄 문제 해결받고, 이미 용서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든지 죄를 지을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로마서 6:17-18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었으나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악한 생각을 몰아내고 마음을 비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빈집의 비유에 보면, 귀신이 나가고 잘 정리되고 청소되었지만 주인이 없는 빈집을 보고 악한 동무들을 데리고 들어와 그 사람의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잖아요? 죄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마다, 의의 종노릇하는 것을 배워야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지요. 돈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 사용되면 돈 때문에 불행해지고, 돈 때문에 많은 비극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가 남용되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죄의 종노릇하는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의의 종노릇하고 말씀의 종노릇 할 때 우리의 자유는 지켜지게 됩니다. 그래서 13절 "오직 서로 종노릇하라" 무엇으로? 사랑으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기회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두 가지로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에게는 영적인 열매를 거두는 기회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육체의 소욕과 본능대로 방탕하고 타락하는 기회로 삼아 버립니다. 자유는 우리에게 주신 기회예요.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어느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가 위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교회에는 다녔지만 술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위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지난날을 회개하고, 술을 끊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했고, 수술을 받기 전에는 온 교회가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고, 수술을 받은 후 회복기가 참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6개월은 의사의 지시대로만 식사를 해야 한다고 처방을 받습니다. 그런데 경과가 너무 좋아서 한 달만에 퇴원을 하고, 회복이 엄청나게 빨랐어요. 두 달이 되던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게 되는데, 처음에는 조심하여서 조금씩 마셔보니 별탈이 없었어요. 결국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폭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한 달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은혜받고, 응답받았는데, 조금만 나아지면 그만 멀어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더라는 거예요. 어려울 때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금 나아지면 다시 범죄하고,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경우가 많더라는 거예요. 자유라는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고,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주님 주시는 기회를 좋은 것으로 남기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고보면 우리 주변에 죄의 종 되어지고, 질병의 종되어져서 인생을 포기할만큼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광주에 사는 59세 된 김모씨는 책 외판원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란한 가정으로 살아왔는데, 10년 전에 시력을 잃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윌슨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30살 된 딸과 27살 된 아들까지 모두 윌슨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됩니다. 아들이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에게 "더 이상 어머니에게 짐이 되기 싫으니 나를 좀 죽여주세요" 과일 장사를 해서 온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 보기에도 민망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자기를 죽여 달라고 매일 애원하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목 졸라 죽였고, 자신도 자살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경찰에 검거된 일이 있었습니다. 암으로 투병하다가 자살을 한 일도 있었는데, 한 환자는 위암과 직장암으로 10년째 투병하다가 병실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고, 어떤 분은 뇌종양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2000여 만원의 병원비가 없어서 결국 자살의 길을 택하게 되었더라는 거예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 하루 평균 18명 이상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1년이라고 생각하면 6천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예요. 요즈음은 지하철로 뛰어들어 죽는 사람이 늘어가는데 역무원이 늘 살피지마는 갑자기 뛰어드는 사람은 도저히 다른 대책이 없다는 거예요. 대통령의 아들가운데 필로폰 상습투약으로 여러 차례 구속 된 박모씨가 경찰에 붙잡혀 왔을 때, 제발 교도소에 보내달라고 하소연을 했어요. 집에서 혼자 있으면 필로폰 생각이 간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차라리 교도소에서 지내고 싶다는 거예요. 마약뿐만 아니라 죄악의 종이 되고, 악한 습관의 종이 되고, 도박의 종이 되고, 술이나 담배의 종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옥에 간다고 해결이 되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 전부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개혁이라는 말입니다. 개혁이라고 하는 말은 본래로 돌아가고,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누가 과연 개혁을 주도할 것이냐? 개혁을 주도해 나갈 사람들이 자기 본연의 자리에 바로 서있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바꾸어져야 하고, 내가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개혁되어야 하고, 경제나 사회 구조가 개혁되어야 하고, 어떤 제도가 바꾸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먼저는 내가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성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개혁의 시작점이 자기 개혁으로부터 출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판단하고 충고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바꾸기란 몹시 어려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개혁하려고 하는 것만 가지고는 결국 실패합니다. 내가 바꾸어지고, 내가 개혁되어지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바꾸어지고 변화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하면서 오네시모에 대하여 말하기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주인의 돈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쳤다가 바울을 만나 변화된 것입니다. 당시 주인을 도망친 종은 주인에게 붙들리면 사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고 변화되어서 바울을 돕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해를 끼치고 도망한 문제의 사람이 아니라 유익한 사람이 되었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예수믿게 하시고, 감당할 만한 능력과 함께 직분을 맡겨 세우셨습니다. 우리를 향해 기대하시는 바가 있더라는 것이지요.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복음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지존파 같은 살인자들도 복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무작정 사람을 죽인 이유가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 때문이었는데,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게 되니까 생각이 바꾸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고려 염업 회장인 이광경 집사의 간증입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사업까지도 날로 번창하고, 정계 재계에 인정을 받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지나친 폭음과 과로로 인해 위장이 거의 그 기능을 잃어버렸고, 위장에 큰 구멍이 나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6시간에 걸쳐 위와 십이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보통 3일이면 가스가 나오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열흘이 지날 때까지 안나오는 거예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수술하고 가스 안 나오면 죽는 거예요. 그런데 잘라내고, 꿰매고, 치료할 수는 있는데, 의학적으로 가스가 나오도록 도와 줄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기다리는 길밖에 없는데, 10일이나 가스가 안 나오는 거예요. 걱정만 하다가 믿음이 있는 아내가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아내가 그렇게 전도했지마는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살았던 지난날의 잘못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간절히 회개하면서 "내 생명을 살려주시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하나님께 충성하겠습니다" 그래도 가스가 안 나오더라는 거예요. 다음날 새벽,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렇게 기다렸던 가스가 드디어 나왔는데, 병실 안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큰 대포소리를 내면서 가스가 나온 거예요. 퇴원해서는 교회에 등록을 하고, 죽을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교회에서 어떻게 봉사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교회 차량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남는 사람이 아니에요. 해외까지 사업체가 있는 회장입니다. 그런데 은혜에 감사하여서 봉사했더니 사업은 사업대로 잘 되고, 건강도 누리고,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은 인생을 바꾸어줍니다. 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의정부에서 목회를 하는 45살의 어느 목사님이 20년 전에 주먹과 마약으로 살았던 전과 6범의 깡패 출신이었는데, 교도소에서 우연히 주일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는 동안 마음에 감동이 된 거예요. 출소 이후, 바르게 살기로 결심을 했는데, 후배들이 찾아와 자꾸 마약을 건네주는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후배들과 같이 마약을 했다가 다시 쫓겨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도망 다니다가 기도원에 가게 되었는데, 하루에 5번 있는 예배에 참석을 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된 거예요.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후에 믿음을 갖게 되었고, 출소 후,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는데, 목회를 하면서 교도소의 정신교육 강사로 나가 말씀을 전합니다. 재소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출소 뒤에도 몇 달 동안이나, 어떨 때는 1,2년씩 함께 지내며 나쁜 길로 돌아가지 않도록 보살펴주고 있다고 합니다. 말씀은 인생을 바꾸어줍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마다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질병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온갖 저주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가난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누가 손을 대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피카소의 작품 중에 "황소 머리"라는 조각은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이 작품에 피카소의 예술성과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료가 되는 자전거는 피카소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냥 주워 온 자전거를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작품으로 변화 시킨거예요. 누가 손을 대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족들 위해서 늘 기도하지마는 변화될 기미가 안 보일 때 낙심이 되고 힘이 빠집니다. 기도하다가도, 믿음으로 살다가도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불신앙에 빠지고, 자녀들이 타락하고 죄악에 빠졌다가도, 주님의 능력이 붙드시고 감동하시면 새 사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죄의 종된 자리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손길이 여러분에게 닿고, 여러분의 인생에 닿고, 여러분의 걸어가는 길에 함께 하시기만 하면 버림받은 사람이라도, 아무 쓸모없는 저주받은 인생이라도 새롭게 변화되어 존귀한 인생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생각도 주님께 붙들린 바가 되고, 내 몸도 주님께 붙들린 바가 되고, 내 가정도 주님께 붙들린 바가 되고, 내 사업장도 주님 앞에 주님께 붙들린 바가 되면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채워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마세요. 이 시간부터 순종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결단하고 실천하면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크신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의 인생과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주변에까지 복을 끼치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모든 역사가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철저하게 섬기는 자로 사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명예가 아니에요. 지위가 한 단계씩 높아져 가는 것이 아니에요. 직분받고 경력이 늘어갈수록 종의 자세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셨어요. 사람은 큰 것, 위대한 것 좋아합니다. 종이 되라는 말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는 종이 위대한 자입니다. 섬기는 자,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크게 섬기면 큰 사람이 됩니다. 


  영국 속담에 "하루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동안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달 동안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일년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일평생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늘 갈등하며 살게 되고, 늘 불만족 속에서 살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위치나 직분이 문제가 아니에요. 섬기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섬기며 사는 곳에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헨리 나우엔 교수를 아실 것입니다.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지낸 분입니다. 1985년 라르쉬라는 정신지체아들의 한 수양회에 초청을 받아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수양회는 침묵 수양회로, 사흘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만 그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발도 씻어 주고, 밥도 해 주고, 돌보아 주면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거절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결국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토론토 근처의 데이 브레이크 커뮤니티(Day 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 공동체에 들어가서 섬기는 삶을 시작합니다. 크고 거창한 곳도 아니에요. 6명의 정신지체아들을 섬기기 위해 교수직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1996년에 헨리 나우엔은 이 세상을 떠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섬김이 곧 행복이고 섬김이 곧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돈이 꼭 필요할 때 돈이 한 뭉치 생기면 그 돈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돈을 도둑이 와서 들고 가 버리면 그 기쁨도 빼앗겨 버리는 거예요. 건강하여서 무엇이나 할 수 있을 때는 성취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질병이 와서 건강을 잃어버리면 그 기쁨도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환경이나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세상이 다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기쁨은 환경이나 세상이 빼앗을 수 없어요. 이 기쁨과 평안이야말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것들입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정금이 나오기까지 용광로에 녹여서 찌꺼기를 버리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단련하고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때로는 걸러내시기도 하고, 연단하시기도 하더라는 거예요. 이런 저런 고난과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한 단계 올려 주시고 키워 주시더라는 거예요. 고난 없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혼해서 때가 되면 아이가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문제예요. 그런데 아이를 뱃속에 담고 다니는 일이 보통입니까? 아이를 낳는 일은 또 얼마나 힘이듭니까? 낳아 놓는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려면 결혼 안 하면 됩니다. 아이를 안 낳으면 됩니다. 왜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아이를 낳습니까? 새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정입니다. 고통없이 그런 은혜와 축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힘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면서, 첫째, 칼을 상징하는 물리적 힘이 있고, 두 번째는 재산과 돈을 상징하는 경제력이 있고, 세 번째는 사람을 교화하고, 가르치는 설득의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힘이든지 가진 자가 누구냐? 이것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힘을 가진 자가 영의 사람이냐, 육의 사람이냐에 따라서 그 힘이 유익과 축복이 될 수도 있고, 불의 도구가 될 수도 있더라는 거예요. 잘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불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를 향하여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했어요. 주님 앞에 받은 것이 무엇이든지 나에게 주신 은사, 나에게 주신 재능을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잘 활용하여서 주님께 사랑받는 선한 도구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행여라도 내가 불의의 도구가 되지 아니하고 의의 병기로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주님을 섬길 뿐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5절을 같이 받들어 읽겠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처음부터 나쁜 사람 없어요. 살아가다 보면 사람이 변질 될 수 있는데, 왜 변질이 되고, 왜 다투는 사람이 되고, 악역의 주인공이 되느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지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명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물학자들이 온대지방에 사는 꿀벌을 열대지방을 옮겨 놓았더니 처음에는 열심히 꿀을 따더니 겨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꿀벌들이 꿀을 모으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일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는 습성이 생기더라는 거예요. 꿀벌들이 열심히 꿀을 모으는 목표를 잃어버리고 나니 사람을 쏘더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중단하고 잃어버리면 서로를 판단하게 되고 갈등하게 되고, 서로 다투게 됩니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도 큰 문제를 만들게 되는 거예요. 일단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려워요. 서로 물고 뜯는 가슴 아픈 일을 서슴없이 하는 거예요. 벌은 꿀을 따야 하고 교회는 전도로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교회의 근본 목표인데,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듯이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문제가 생기고, 서로 갈등하게 되고, 서로 물고 찢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 사람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작은 일이, 정말 하찮은 일이 큰 싸움이 되는 이유는 다른 것 없어요.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내 생각만 주장하기 때문이에요. 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생각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겸손히 나보다 상대를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옵니다. 상대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 남편은 아내를 더 좋게 보고, 아내는 남편을 더 낫게 여기고, 며느리는 경험 많으신 시어머니를 더 좋게 보고, 또 시어머니는 지식 있고 학벌 있는 며느리를 좋게 보고, 서로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나보다 좋게 여기는 곳에는 다툼이 없어요.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하면 평안과 화목이 임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우리 모두 겸손해져서 서로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되야합니다. 그것이 주님 보실 때 아름답고 좋은 거예요. 갖춘 사람이나 좀 덜 갖춘 사람이나, 힘있는 자나 힘없는 자가 서로서로 귀하게 여기줄 아는 마음, 이것이 참 믿음이고, 주님을 닮아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은혜위에 은혜를 덧입기 원한다면, 지금까지 받은 은혜보다 더 큰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그릇 준비하면 되요. 겸손한 그릇, 주님 보실 때 주시고자하는 마음이 생길만한 겸손한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면 주님 더 큰 것으로, 귀한 것으로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면 있는 것도 빼앗기고, 겸손하면 더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겸손하면 복을 받는데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질의 복도 받고, 승리의 복도 받고, 인생 성공의 복도 받고, 건강의 복도 받고, 영생의 복도 받습니다. 잠언서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한 믿음 가지면 물질도 주시겠다고 했어요. 겸손한 믿음 가지면 영광이 있다고 했어요. 영생의 복도 주신다고 했어요. 고린도전서 10: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저와 여러분이 믿음안에서 조심스럽게 인생을 열어 나가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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