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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닫힌 문을 열려면 / 수 5: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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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닫힌 문을 열려면
성경> 수5:13-6:16
찬송> 214, 277장
설교> 장산교회 이정우 목사


● 들어가는 말 - 만물이 약동하는 봄

성도 여러분, 오늘은 3월 첫 주일입니다. 3월에 한번 쯤 꽃샘추위가 남아있겠지만 이제는 완전한 봄이 왔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시장에는 벌써 향긋한 봄나물이 나와 있고 산과 들, 그리고 길 가의 가로수에는 파릇한 새순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미 매화는 만발하였고 곧 개나리, 벚꽃, 목련 꽃을 보게 될 것입니다.

3월의 대지가 움이 트고 순을 내듯이 우리교회도 3월부터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곧 정기심방도 시작되고 또 성경공부반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지난 한 해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실 분에 넘치는 은혜였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렇게 함께 외치고 기도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2년 보다 더욱 큰 은혜, 더욱 큰 역사를 주옵소서!”
“더욱 성숙하는 한 해가 되게 해 주옵소서”

지난주간에 새가족심방을 하면서 심방을 받는 가정에서 “목사님, 장산교회 얼마나 모입니까?”하고 물어왔습니다. 저희 교회가 요사이 얼마 정도 출석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300-350명 사이를 오가는 것 같습니다. 평균 320명 선을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320명 선이라고 말씀을 드리니,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셨고 몇 교회를 거쳐 오셨던 집사님이어서 그런지 “그 정도일 때가 가장 재미있을 때입니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역자 생활을 현재까지 햇수로는 20년째가 되었는데 섬겼던 교회는 100명 정도의 교회에서 2,000명이 넘는 교회까지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이 집사님의 말씀이 맞아요. (100명 정도의 교회에 있어보니 처음에는 모르겠는데 한 두 달 지나니 금방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그 사람이 그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부산에서 우리 교단에서는 제일 크다는 교회에 있어보니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제가 7년 동안 있으면서 각 교구를 다 맡아보았고 또 뒤에는 교회행정과 새가족을 담당했기 때문에 교인들을 가장 많이 아는 편인데 그래도 몰라서 실수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목회학을 배울 때에도 한 목사가 효과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최대의 숫자가 300명 정도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적어도 100명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늘었기 때문에 우리교회 성도들 간에도 서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을 보내면 우리가 모르는 사람도 없고 생각나지 않을 사람도 없을 정도의 숫자가 지금 우리교회 출석 교인들 숫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숫자를 그대로 유지해 나가면 가장 재미있는 교회가 우리교회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교회에 더 이상 새가족들이 오지 않기를 원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 빈익빈 부익부

제가 이제까지 한 말은 다 우리의 생각이요, 우리의 편의를 중심으로 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만 좋아라고 하나님의 최대의 명령인 복음 전하는 일을 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달란트비유를 통하여 하신 말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을 깊이 새겨야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영적 빈익빈 부익부’의 원리를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요사이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목회의 현장을 두고 생각해 볼 때가 많습니다.
요사이 새벽기도회 말씀이 민수기의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고생하다가 이제 광야생활을 마감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광야 38년동안 이들이 참 많이 고생했는데 가나안에 입성하려다가 강력한 적들을 만납니다. 아모리 땅을 지나고 또 바산을 거치는데 이들은 보통 강력한 적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을 가볍게 이기고 전진하게 되거든요. 그리고는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모압 평지에 진을 치는데 모압 나라의 발락이라는 왕이 겁을 집어먹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발락이 주술가 발람을 불러 저주케 하였는데 심지어 저주까지도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제게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의 원리가 ‘영적 빈익빈 부익부’였습니다.
“그래 이스라엘이 항상 이랬던 것 아니지, 영적으로 이들이 힘을 얻고 그 힘에 탄력이 붙었을 때 강력하게 전진을 했던 거야!”

여러분, 이 법칙은 저에게나 여러분에게나 똑 같이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춤하면 여러분의 영적 낙오가 시작될 것이요 또 교회는 침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행복한 교회, 행복한 성도”라고 외쳐도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나 교회는 다시 그 기회를 잡으려면 배나 더 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사라’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28:19-20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대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제자를 삼기위해 가는 것과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양육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가 우리의 관심사요 기도의 제목이어야 할 것입니다.


●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오늘 성경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너고 이제 여리고 성으로 접근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바산, 모압을 지나 조금 전에 요단강마저 기적적으로 건넜습니다. 이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기세로 계속 전진해 가나안을 점령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내신 구원을 성취하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여리고라는 성이 그 중요한 시점에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리고 성은 가나안을 점령하는데 첫 관문입니다. 다시 말해 여리고를 점령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한 땅은 밟아 볼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리고는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6:1에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지금 이스라엘과 같은 처지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넘어야 하는 큰 성을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은 너무 견고해 보입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성인 것 같습니다.

지난주일에 금년 한 해에 우리가 교회로 인도해 복음을 듣게 하자는 의미로 초청 대상자를 작정하여 제출하도록 하였습니다. 제출한 사람의 숫자는 제가 부끄러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보고를 받고 당장 머리에 떠올린 생각이 “이거 정말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길 일이로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영적 빈익빈이 시작 되겠구나!’였습니다.

그래 우리 교회 앞에, 우리 성도들의 앞에 다시 한 번 무너뜨려야할 여리고와 같은 것이 있구나. 모두가 다 전도하는 것을이 어렵게 여기거나 또 아예 마음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은 영적으로 무슨 뜻이냐면 이제 더 아이 낳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입니다.

저는 지난주 중에 TV에서 아주 흥미있는 프로를 보았습니다. 40세가 되는 여성이 아이를 10명이나 낳았고 그리고 아직도 그만 낳겠다고 하지 않고 쌍둥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가정이어서 더욱 관심있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부흥 시키는 것도 참 여러 방법이 있구나!?)※구미 고아읍 교회, 김석태목사님, 엄계숙사모님.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지혜로운 것 같으나 사실은 어리석다는 사실입니다.
요사이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아기를 낳지 않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것도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해야하는데, 심지어 임신이 되었는데도 낙태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아기를 낳기 싫다는 것이지요.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사실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같은 시대에 아이를 그렇게 많이 두면 어떻게 다 키우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마음속에는 내가 어느 정도는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갖다 붙이기는 아이들도 불행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집을 보니 넉넉하지는 않지만 전혀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과외는 못시키고 아이들 공부 잘한다는 말은 한번도 안나왔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래서 이들 중에 불행하게 살 아이들은 한 사람도 없게 보였습니다.(‘저런 집의 딸들을 며느리로 삼으면 참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오히려 건강해 보였고 잡념도 없어 보였습니다. 건강은 혹 타고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를 양육하는데 정신이 없으니 요사이 부인들에게 있는 우울증이니 무력증이니 하는 것은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욕심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가진 성도로서의 삶 역시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해야할 본연의 사명, 영적인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에 우리의 정신을 쏟는다면 그것으로 인해 만족하게 될 것이지만,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쓸데없는 것으로 걱정 근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 사실

그러나 우리는 본문 6:1에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라는 말씀에서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첫째,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여리고의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정탐꾼들이 라합에게서 듣고 여호수아에게 보고했던 내용입니다. 라합이 정탐꾼에게 한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2:9-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선포하러 가는 일에는 사탄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의 길을 사탄이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가 사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탄에게 속지 마십시오. 물론 그는 우리보다 강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에게는 맥을 추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복음서에 보니 사탄은  자기의 활동을 하다가도 예수님만 보면 꼬리를 감춘 개처럼 두려워했습니다. 거라사인의 땅에는 힘이 세고 포악한 귀신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그 귀신도 예수님을 보자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막5:7)
그는 자신이 처음에는 강한 듯 위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은 전권대사로서 나아 갈 때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2)둘째, 여리고는 그 성문을 굳게 닫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혔고 아예 출입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싸움에 질 것이 뻔하니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냥 성문만 굳게 잠그고 있으면 제 풀에 지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리고는 총 공격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쳐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은 모두 그 문을 굳게 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친한데 복음을 전하면 열려있던 마음의 문도 닫아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 하는데 복음만 전하면 딴 생각을 하고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믿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합니다. “너 다른 이야기는 다 좋은데 예수 말만 좀 꺼내지 마라”고 말입니다.
특히, 아파트 단지의 전도를 나가보면 본문의 말씀은 실감합니다.(전도대원 중에 삼정그린코아에 전도를 나갔는데 정말 이 말씀이 실감나더라고 했습니다.)
“정말 우리의 전도의 문은 닫혔고, 우리 태신자의 마음의 문은 굳게 닫힌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더 큰 문제는 전도를 해 보지도 않는데 있습니다. 아예 안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믿을 것은 안 믿고 안 믿어도 좋을 것은 믿는 것입니다. 저 성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성문을 열려면 

닫혀 진 태신자의 마음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태신자를 묶고 있는 사탄의 사슬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라합처럼 멸망 받을 성 중에서 구원받는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1)하나님이 싸우신다는 확신

먼저 우리는 본문에서 여호수아의 군대가 앞서기 전에 여호와의 군대가 앞선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5:13절에 여리고로 진군하는 여호수아 앞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든 채 마주 섰습니다. 여호수아는 물었습니다. “우리 편이가 적의 편인가?”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는 여호와의 군대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사람들의 집단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여호와의 군대라는 말뜻입니다.  그러니 주저하거나 겁먹지 말고 담대히 전진하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걸음이 우리만의 걸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의 여러 행로에 우리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특히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제자들에게 마28:17-20/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바울에게 행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여호와의 군대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군대는 싸움을 하는 집단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싸우신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적인 전투, 곧 복음의 전선에서는 주님이 주님의 군대로 직접 싸우심을 믿으십시오.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2) 말씀대로 순종하라

그리고 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가르쳐 준 대로 여리고 함락 작전을 시행합니다. 그 과정을 보면 우리는 우리가 싸울 싸움의 원리도 알 수 있습니다.


①말씀대로

6절에 보면 일반 백성들 앞에 언약궤가 먼저 갔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진행 순서 : 무장한 사람들 -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제사장들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 나머지 무사들 - 백성들(6:8-9)
이 사실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 갈 수 있는지 먼저 살펴봅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봅시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시하신 것이 고작 성을 돌라는 것입니다. 너무 우습지 않습니까? 유치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기에 순종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전도는 마음 먹고 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어떻게 판단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나의 생각과 이유는 너무 많고  하나님의 생각과 이유는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하라는 대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② 기도하라

여리고를 돌되 침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
저는 여기서 침묵은 기도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영적 전투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태신자의 심령이 길가라도, 돌밭이라도, 가시덤불이라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심령은 하나님이 돌려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의 심령에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으로 더욱 기도하십시다.

③ 외쳐라 - 제 7일째 나팔 함성 /
그러나 7일째 되는 날은 계속 침묵을 하면 안됩니다. 함성을 질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은 입을 열어 말하는 것입니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특히 오늘의 본문은 마지막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나팔 소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렀고 백성들은 함께 소리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옛 우리 속담에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문화권에서 나온 속담입니다. 이제 우리는 ‘노는 입에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가면 있고 안나가면 없다” “말하면 있고 말 안하면 없다”


● 맺으면서

주중에 극동방송을 통해 의미 있는 말을 들고 새겼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마음은 모두가 다 선교지요, 그리스도가 있는 마음은 모두가 선교사다”

이 말을 통하여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선교지를 너무 가까이에 둔 선교사들이 아닙니까?

우리의 대상자 중에는 도저히 함께 이 세상에서 멸망 받아서는 안 될 여리고 성 안의 라합과 그의 일가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의 깃발을 높이 들고 하나님의 군대로써 복음으로 무장해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아들여 창에 붉은 줄이 있는 곳은 구원으로 이끕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기뻐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역사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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