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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자가 되라 / 마 2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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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김상복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20:20-28
제목 : 큰 자가 되라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 . .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지난 주간에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신학연맹 이사회를 하던 중에 대구 지하철 참사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세 종류의 인간이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남에게 짐이 되고 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이번에 참사를 일으킨 그 사람도 정신적, 신체적 문제로 너무 힘든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너무 힘이 드니까 분노가 들끓게 되었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분노를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쏟아내어 무수히 죽고 다치게 한 것입니다. 그는 60세가 되기까지 자기에게만 짐이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큰 짐 덩어리가 된 채로 인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둘째는 남에게 짐도,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저 자기 한 사람과 겨우 자기 식구를 위해 살아가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복을 나눠주지도 않습니다. 남을 섬기며 산다는 것이 시간과 돈이 드는데 이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자기의 시간과 돈과 몸과 노력을 들여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해롭게 하며 살던 내가, 또는 남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고 나만을 위해 살았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유익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먼저 가정을 한 번 살펴보십시다. 혹시 식구들에게 부담을 주며 살아왔습니까? 나 때문에 식구들이 힘들어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그저 내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았습니까? 아니면 내가 가족들에게 축복이 되는 삶을 살아왔습니까? 아니면 어떤 때는 축복이 되고 어떤 때는 저주가 되었습니까? 어제는 축복이었는데 오늘은 저주여서 다 까먹으셨습니까? 오늘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세배대의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베대는 갈릴리 지방의 어부였는데, 작은 고깃배 주인 정도가 아니라 어업 회사를 차려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먹고 살게 해 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돈을 많이 번 것 같아요.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젊은이 예배에서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라도 비즈니스의 은사가 있으면 젊었을 때 사업을 시작하십시오. 그래서 혼자만 먹고 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직장을 주면서 사십시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청년들끼리 팀이 되어서 회사를 두 개나 세웠습니다. 하나는 건축회사이고 하나는 식당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유익을 주면서 산다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세배대의 가정은 갈릴리에 회사를 두고 어부들을 고용해서 열심히 사업하여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도 집을 두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거하시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요한에게 자기 어머니를 부탁하셨는데, 성경에 보면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7)고 하였습니다. 세배대의 아들 요한은 갈릴리 사람이지만 그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었거든요. 베드로도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첫 번째 소식이 그 집으로 간 것입니다. 그곳에 요한이 있었고 베드로도 있었고 예수님의 어머니도 있었으니까요. 세배대는 그렇게 자기 집을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배대의 가정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세배대의 가정이 왜 그렇게 했는지 이제 와서 보니까 자기 나름대로의 꿍꿍이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 세베대의 부인이 큰 아들, 작은 아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와서 땅에 넙죽 엎으려 절을 합니다. 다른 때와 달라서 예수님께서 물어 보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제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했는지 아시지요? 예수님이 그 동안 잡수시고 일하신 것 다 제가 후원회를 조직해서 댄 것 아닙니까? 집까지 내어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새 예수님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 같은데, 이제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제 큰 아들은 오른 쪽에, 작은 아들은 왼쪽에 앉혀 주셔서 예수님 왕국의 통치자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분이지만 다른 분들은 상관하지 마시고 그저 제 두 아들을 잘 챙겨주세요.”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살지요. 내 자식을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세요. “네가 지금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르고 구하는구나. 오른 쪽에 앉느냐 왼쪽에 앉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는 것이니 그런 것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 나중에 하나님이 너에게 높은 자리를 줄지 낮은 자리를 줄지, 영광을 줄지 부를 줄지 명예를 줄지, 그런 것들에 집착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지 네 이익만 추구하는 인생은 아직도 멀었다. 먼저 심고 나서 그런 것을 구해야지 벌써부터 그것만을 요구해서 되겠는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시겠느냐?”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한 세배대의 아내와 두 아들들에게 예수님의 잔을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가 있어야 영광의 부활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활과 영광과 권세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반드시 쓴잔을 마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왕이 될 때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쓴잔을 마셔야 되는데 너도 그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그런데 세배대의 가족은 그 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왕의 좌우에 앉는 것만이 관심사라서 “무슨 잔이든 마시겠습니다”라고 쉽게 대답합니다.

  여러분! 그 잔이 무슨 잔인지 아십니까? 고난의 잔입니다. 십자가의 잔입니다. 고난과 십자가와 희생과 눈물과 땀이 심어질 때 거기에서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지 그 영광이 저절로 오는 겁니까? 아마 이들이 요즘에 태어났다면 재벌기업의 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목적달성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려는 열정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가는 사람이 이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내 목적을 위해서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성공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하고 있구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안다. 지금 너희가 원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겠다는 것이구나. 그게 네 삶의 목적이구나. 어떻게 그렇게 이 세상의 집권자들과 생각이 똑같느냐?” 여러분!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서 사셨습니까? “제가 하나님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잘 되어야지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요. 인생이 어려우니까 종종 힘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믿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모든 다른 종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우주적 원리를 만드셨어요.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이 원리를 아는 사람들은 열심히 심어 많은 것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인생목적은 다릅니다. 26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심는 대로 거둡니다. 잘 심으면 잘 거두고 자주 심으면 자주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그러나 그 거둔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건강과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열심히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제는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시간과 남은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겠습니까? 나 한 사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겠습니까? 나 한 사람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살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는 것이 좋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면 “먹고 입고 마시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된다”고 하였고 성경을 그것에 동의하고 권하고 있어요. 문제는 우리 삶의 궁극적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이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일을 일으키거나, 이웃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시간과 재주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이웃을 섬기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특별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 으뜸이 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으뜸이 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권력으로 국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그 건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 낙심한 자를 일으켜 주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사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어떻게 가족에게 유익을 주며 사셨습니까? 직장에서 어떻게 유익을 끼치며 사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어떻게 다른 지체들을 복되게 하며 사셨습니까? 권력이나 명예나 돈이나 지위나 인기를 여러분이 가졌다면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위대한 자가 되기를 원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라.” 우리가 위대해지는 그 순간을 통해서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라는 것입니다. 섬기라는 것입니다.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라는 것입니다.

  ‘발런티어 21’이라는 단체가 “자원봉사는 21세기의 유행(fashion)이다!” 라는 아주 멋진 슬로건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유행을 좋아합니다. 21세기의 유행은 남는 시간, 남는 에너지, 남는 건강과 재주와 돈 등 남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한국 땅에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자원봉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유행입니다. 누가 위대한 사람입니까?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돈을 가지고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 재주를 가지고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랑스럽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 자신이 섬기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간단합니다. 눌리고 병든 자들, 힘도 돈도 명예도 없어 사회의 무시를 받는 자들을 일으켜주고 위대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방법으로 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절). 예수님의 이 인생 목적이 우리의 인생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돌이켜 봅시다. 늘 남에게 짐이 되지는 않았는지, 나 때문에 남들이 힘들어하고, 나 때문에 남들이 낙심을 하고, 나를 돕느라고 남들이 힘들어하는 삶의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남들에게 손해도, 유익도 끼치지 않으면서 그저 나 한 사람 겨우 챙기는 삶의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건강과 물질과 재주와 믿음이 왕성해서 여러분 주위 사람들에게 그 복을 나눠주는 삶의 모습이었습니까?

  우리 교회가 성남 복지회관을 시작했을 때 사실 교회에 재정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본당 건축을 앞두고 그곳에 몇 억을 넣어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이론도 많았습니다. “목사님, 아직 때가 아닙니다. 교회부터 지어야지요. 어떻게 이 상황에 지역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가 어렵지만 그래도 지역사회를 섬기자”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어려운 지역주민들이 복지회관을 통해 하루에 한 끼라도 제대로 마음껏 드시게 하자는 것이지요. 어느 81세 되신 할머니는 혼자 사시니까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답니다. 그런데 할렐루야 교회에서 복지관을 통해서 점심을 차려주니까 하루 한 끼라도 충실하게 먹을 수 있고, 그곳에서 우리 성도들이 말도 걸어주고, 침도 놓아주고, 머리도 다듬어주고, 운동하도록 도와주니까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힘이 들어도 그 곳에 와서 웃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웃음이 없던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섬김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해 주셨고, 여러분이 그곳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수업을 해 주었고, 그 분들을 웃겨 주셨고, 안아 주셨고, 심지어 목욕까지 시켜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참된 기쁨은 섬김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저도 예수님처럼 큰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섬기는 자, 남에게 축복과 은혜가 되는 자로 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저를 도전하여 주옵소서. 저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은 가정에 축복이 되고 있습니까? 교회에 축복이 되고 있습니까? 직장에 축복이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고 섬기는 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행복해져 있습니다. 여러분! 남은 생애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 자가 되십시오. 많은 사람들에게 꼭 축복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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