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은 프랜시스` / 고후 5:17-19

  • 잡초 잡초
  • 335
  • 0

첨부 1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23)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은 프랜시스" 
고후5:17-19


오늘은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23번 째 설교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깨어진 질그릇 속에 예수의 생명을 담고 살면서 예수님을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증거하고 있는 송명희 시인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설교를 들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녹화된 동영상의 설교를 제가 듣고 보았는데 성가대원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강퍅한 우리들의 마음에 눈물의 감동을 줄 정도로 고통 중에서도 주님을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증거하며 사는 송명희 시인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증거하므로 수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라고 기도한 성 프랜시스입니다. 그는 기독교와 세계 역사에 가장 깊은 감동과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한경직 목사가 가난과 사랑과 봉사와 화평의 사람이 된 데는 그 누구보다 성 프랜시스의 영향을 받은 데 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가 1929년 미국 유학 시절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진학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처절한 기도를 드릴 때 그는 신학과 철학 서적의 독서를 중단하고 성 프랜시스의 글을 읽으며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습니다. 한경직 목사의 비움과 버림과 청빈의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고 그의 전도와 사랑과 봉사와 화평의 삶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성 프랜시스의 삶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프랜시스는 버림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프랜시스는 1182년 2월 이태리 앗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산도 평안한 삶도 세상의 향락도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도 모두 버린 채 한 평생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방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산모가 너무 오래 진통을 했지만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한 순례자의 말대로 산모를 호화로운 침실에서 마구간으로 옮기자 아기가 곧 태어났습니다. 예수님 닮은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하늘의 섭리였는지 모릅니다. 프랜시스가 21세 되던 해 어느 동굴 속에 들어가서 깊은 명상과 기도에 빠졌는데 그 때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 자기를 헌신했고 세상의 것을 모두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글자 그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네가 온전하고자 할 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19:21).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10:8-10). 프랜시스는 두 벌 옷을 가지지 않고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프랜시스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포기했고 세상의 향락도 포기했고 아버지의 유산과 상속권을 포기했고 아버지 자신까지도 포기했습니다.

키토 감독이 주관하는 재판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유산과 상속권을 박탈하겠다고 말하자 프랜시스는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들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남은 것은 팬티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주시했는데 프랜시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팬티까지 홀랑 벗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참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장내에서는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불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페트로 베르나드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으나 이제부터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흐느끼는 사람들 중에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쏟던 아릿다운 12세 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나중에 프랜시스를 따라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어머니가 된 성녀 클라라였습니다.

프랜시스는 버림과 청빈을 그를 따르는 형제들의 삶의 첫째 규칙으로 삼았습니다. “누구나 자기 소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형제단에 들어 올 수 있다. 거친 수도복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불의한 재물을 버려야 한다. 남을 헐뜯고 미워하는 악마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즐기는 쾌락을 버려야 한다. 사람을 속이는 거짓을 버려야 한다.” 프랜시스는 자기는 가난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절대 청빈과 완전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지식과 학문도 버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지식과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도 한 때는 책을 모아보고 싶은 유혹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무식하게 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합니다. 지식처럼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없고, 지식처럼 사람의 정신을 흐뜨러 놓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한경직 목사가 박사와 교수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신학교 3년 과정만 공부하고 귀국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신의주로 돌아와서 목회하게 된 것이 프랜시스의 영향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평화의 도구로 사는 삶은 버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님이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평화의 도구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의 화평이 되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도 하늘의 부요함도 자기의 생명도 자기의 살과 피도 모두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으셨습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프랜시스는 주님의 벌거벗은 버림의 삶을 설교하기 위해서 가끔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벌거벗은 알몸으로 설교했습니다. 처음에는 비웃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통곡을 하면서 회개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버림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둘째,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하는 동정과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동정하고 품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마땅히 섬겨야 할 주인이었고 특히 문둥병자나 버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는 문둥병자 수용소를 찾아가서 그들의 손에 일일이 입을 맞추며 그들을 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아니 이단들에게도 미쳤고 사나운 이리에게도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아니 해와 달과 별들에게도 미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가 친구이든, 원수이든, 살인자이든, 강도이든 반드시 형제로서 맞아 들여야 합니다.” 프랜시스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39-44). 어느날 문둥병자 수용소에 성질이 사납고 포악한 환자 한 사람이 그를 간호해주는 형제들에게 대들면서 욕을 퍼부었습니다. “이 더러운 위선자들아, 나는 저주 받은 문둥이다. 예수의 사랑도 너희들의 사랑도 다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몸에 흐르고 있는 고름을 손 바닥으로 흝어서 형제들에게 뿌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을 본 프랜시스는 그에게 다가가서 욕을 퍼 붓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계속해서 욕을 퍼 붓는 그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고름 투성이의 몸뚱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어라.” 프랜시스는 아무 말하지 않고 깨끗한 물에다 향초를 넣어 불에 따듯하게 데운 다음, 그 물로 문둥병자의 몸을 머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씻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프랜시스의 손이 닿는 데마다 그의 피부에서 더러운 고름이 걷히고 상처들이 깨끗하게 아물어졌고 동시에 그의 영혼도 깨끗하게 씻어지면서 그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고 울면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프랜시스의 사랑은 모든 포악함과 더러움과 미움을 녹여버리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사역에는 많은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귀신이 쫓겨가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기적을 그의 전도의 방편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기적을 이용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만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고 전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에게 나타난 기적은 모두 그의 사랑에서 비롯한 부산물들 뿐이었습니다.

굽비오라는 마을에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사나운 늑대 한 마리가 밤 마다 내려와서 사람들을 두려움에 쌓이게 하곤 했습니다. 프랜시스가 이 늑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맨 먼저 느낀 것은 그 늑대에 대한 동정심이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먹이를 삼키는 야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참하게 사냥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한 마리 늑대의 모습이었습니다. 프랜시스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무릇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선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해치고 있는 그 늑대가 그처럼 무섭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필경 어떤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무서워하고 있는 저 늑대를 통하여 사랑은 어떤 악이나 두려움도 없애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여러분들 눈 앞에서 실제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늑대가 있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늑대가 살고 있는 바위틈 가까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게 하고 프랜시스는 마을 청년 한 사람과 함께 늑대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바로 그때 눈에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늑대 한 마리가 이빨을 벌리고 당장 덤벼들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이는 죽은 꼴이 되어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며 늑대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늑대는 프랜시스의 행동이 의외라는 듯 약간 주춤했지만 계속해서 으르렁 거리고 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계속 늑대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눈으로 조용히 늑대를 바라다 보았습니다. 한동안 숨막히는 긴장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프랜시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형제 늑대여!” 너무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늑대의 으르렁 소리가 그쳤습니다. “형제 늑대여, 나는 우리의 형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이처럼 찾아 온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네가 마을로 내려와서 다정하게 살았으면 하고 있다. 자, 네 생각은 어떠냐? 나하고 약속하지 않겠니?” 그런 다음 늑대를 향해 손을 내 밀었습니다. 늑대는 저쪽 마을 사람들을 한 번 건네다 본 후 천천히 다가와서 프랜시스가 내 민 손에 자기의 앞발 하나를 들어 올렸습니다. 프랜시스의 눈길과 늑대의 눈길이 마주쳤고 프랜시스와 늑대는 서로 무슨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주고 받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드디어 프랜시스는 몸을 구푸리고 늑대의 목을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늑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프랜시스의 깊고 넓은 영성과 사랑에 감복하여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늑대는 곧 프랜시스를 따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굽비오 마을로 내려와서 2년 동안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친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프랜시스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은 물론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 사랑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미움과 고통을 용해시켜 도리어 그것들을 생명의 자양분으로 뒤바꿔버리곤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짐승들과 새들을 향해 형제 자매라고 불렀고 해와 달과 별들까지도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설교했습니다. 어느날 프랜시스의 일행이 간나리오라는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때 언덕 위 숲 속에서 참새 떼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프랜시스는 일행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저 참새 자매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오겠습니다.” 프랜시스는 언덕으로 올라가서 참새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참새 자매들이여,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잠시 조용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요란스럽게 지저귀던 새들이 일제히 소리를 그치고 조용해졌습니다. “나의 작은 자매들이여, 여러분들은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매들을 만들어 이 땅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깃털로 옷 입혀 주셨고, 두 날개를 활짝 펴서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며, 농사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또 아름다움 숲 속을 보금자리로 삼고 살도록 편안히 자고 깰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여러분들의 목소리처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새들은 프랜시스가 설교하는 동안 머리를 갸우둥 하고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강변교회 성도들처럼 고개를 갸우둥 하고 조용히 열심히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자, 아까는 여러분 마음대로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찬양하여 봅시다.” 그러자 그토록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듣던 참새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참새들을 작은 자매라고 부르며 사랑했고 특히 종달새와 비들기를 귀엽고 순결한 자매들이고 부르며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프랜시스가 사람들은 물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설교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신비주의가 아니었고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뿐이었습니다. 시편 148편은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향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이여 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시148:3-13). 프랜시스는 사람과 피조물 모두를 사랑하는 동정과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셋째, 프랜시스는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면서 살았다.

그는 우주와 모든 것을 사랑했는데 고통과 죽음까지도 사랑했습니다. “나는 가난이란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비애는 나의 자매이고 고통과 죽음도 나의 자매입니다.” 그는 가난과 고통을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았고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고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했고 주님의 삶을 문자 그대로 닮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난을 옷으로 삼고 고난을 양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물론 그가 고행 자체를 예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은 고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프랜시스가 가난과 고통을 사랑한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삶은 주님 사랑에 깊이 빠진 삶이었고 주님과의 깊은 기도에 빠진 삶이었습니다. 그의 말년은 주님과의 깊은 기도와 교제에 빠진 삶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2년 전 라베르나 산에 들어가 깊은 기도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도대체 당신은 누구이오며 작은 벌레 같은 저는 무엇입니까? 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한 가지는 할 수 있다면 당신께서 수난에서 당하셨던 그 고통을 제 영혼과 육체도 체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또 한 가지는 그 어떤 고통도 사랑으로 감내할 수 있는 극치의 사랑을 제게도 넘치게 주옵소서.” 바로 그때였습니다. 프랜시스의 몸에는 마치 불덩어리를 댄 것 같은 고통이 일어나 그는 그만 까무라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시간 이상 정신을 잃고 쓸어져 있다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두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상처가 생겼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그리스도와 꼭 같은 상처를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가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죽기까지 극심한 몸과 영혼의 고통을 지니며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그의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몸과 영혼의 고통은 극심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무한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1226년 10월 3일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주님이 벌거벗은 몸으로 죽으셨던 것처럼 자기도 벌거벗은 몸으로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이 그에게서 옷들을 모두 벗겨내고 그를 맨 땅위에 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애원합니다. 당신은 나의 피난처, 나의 모든 것,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소서. 나에게 입혀주신 당신의 성총으로 이 몸이 의인들에게 둘러 싸이리이다.” 그리고 둘러 서 있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는 형제들과 여기 없는 형제들의 죄들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하고서 눈을 감았습니다. “오, 나의 자매 죽음이여.”

프랜시스가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닙니다. 신비로운 일입니다. 신비주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사신 삶과 사도 바울이 사신 삶을 따르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으로 우리 때문에 가난 자체가 되셨고 영광스러우신 분으로 고통자체가 되시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고백했고(고후4:10),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난을 기뻐한다고 고백했으며(고후12:10), 마지막에는 예수의 흔적을 몸에 가진다고 고백했습니다(갈6:17). 여기 ‘예수의 흔적’은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당한 핍박으로 인해서 몸에 지니게 된 상처의 흔적을 말합니다. 돌에 맞음의 흔적 매 맞음의 흔적을 말합니다. 프랜시스는 주님을 너무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다가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너무 높은 수준의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너무 낮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너무나 주님 닮은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주님 닮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하트라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백년마다 한번씩 만 프랜시스와 같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다면 인류의 구원은 보장되고도 남을 것이다.” 만약 제가 어거스틴을 공부한 만큼 성 프랜시스를 공부하고 그의 글을 오래 전에 읽었다면 나의 삶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지금도 너무 늦지는 않다고 생각해 봅니다. 나도 프랜시스처럼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주님 사랑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짊어지고 가난과 고통이 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 프랜시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몇 십분의 일이라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