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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하시는 일 / 요 9: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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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이 하시는 일 
본 문 : 요한복음 9 : 1 ∼ 7 
설교 : 곽선희목사 (소망교회)


스코틀랜드의 어느 한가한 농촌에 아버지 어머니가 갑자기 다 세상을 떠나 천애고아가 된 두 형제가 살았습니다. 이모저모로 살아보려고 했지만, 역시 여의치 않아서 어느 날 배가 고파서 수일을 굶고 나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제가 앉았다가 옆집 할아버지는 부자인데, 양이 수백 마리가 있는데 그 한 마리 쯤 없어지면 어떠하겠는가 싶어서 몰래 담을 넘어가서 새끼양 한 마리를 훔쳐다가 이것을 잡아서 오랜만에 주린 배를 채우고 포식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서툰 도둑질이 발각이 되어서 꼼짝 못하고 붙들려서 매를 맞게 되었는데―. 이 할아버지가 아주 고약한 분이셨습니다. 이 어린아이들 이마에다 양 도둑이라는 화인을 찍었습니다. ST라고 양 도둑이라고…. 동네사람들도 그것은 너무했다고 했지만, 여하튼 넘어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점점 자랐습니다. 형은 생각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이럴 수 있는가?’ 어쨌든 그는 동네를 떠나서 다른 마을로, 다른 마을로 전전긍긍하며 살았지만 늘 불만과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꾸 물어봅니다. 이마에 ST가 뭐냐고…. 그 뜻을 알만하면, 사람들이 또 자신을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분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다가 분과 화병에 죽어버렸습니다. 동생은 생각했습니다. 양 도둑질 한 것도 사실이요. 도둑놈이 된 것도 사실이다. 도둑놈보고 도둑이라 하는데 무엇이 잘못될 것이 없다. 그리고 착하게 진실하게 부지런하게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그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해서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이 할아버지 댁에 모여서 할아버지 사랑을 받고 할아버지와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어떤 날 자기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옆집 할아버지는 참 착한분인데요. 자세히 보니 이마에 ST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할아버지는 다 압니다. 그는 대답을 이렇게 했습니다. “너희들도 보는 바와 같이 그 할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 아니더냐? 그러니까― SAINT 성자란 뜻이다. 성자의 첫 자와 마지막 자가 SAINT S.T. 그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아..그렇구나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도둑놈이라고 써 붙인 그 화인 맞은 이마가 성자의 표시로 바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신학자이자 작가인 도로시 세이어라고 하는 분의 [Creed or chaos]라고 하는 유명한 저서에서 현실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 자세하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율법적 차원에서 보느냐 은혜적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죄의 실제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죄대로 사실입니다. 그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것을 변명을 합니다. 무엇 때문이라고 변명하기도 하고, 혹은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The end justifies the means(결과와 방법을 정당화 한다)- 이것은 유명한 철학적 이론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잘못되었어도, 결과만 좋으면 그 동안의 잘못은 다 정당화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또는 무엇 때문이고 무엇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합리화 될 수 있다. 정당화 하고, 변명하고 합리화 하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죄는 죄입니다. 도둑질은 도둑질입니다. 죄는 죄다. 확실한 죄다. 하나님 앞에 죄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도덕법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아무리 애써 보아도 여러분, 정말로 바르게 살려고 해보아도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압니다. 또, 죄인을 벌을 한다고 해서 바로 됩니까? 매질을 하고 감옥에 보낸다고 사람이 됩니까? 율법적 도덕적 법이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세 번째는 오직 은혜의 잠재적 능력을 인정하라. 오직 사랑만이 오직 은혜만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오직 사랑만이, 오직 은혜만이 변화를 시킬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나타나는 말씀 많은 문제 중에 문제요. 문제의 대표 중에 문제요. 깊은 해답을 주는 굉장히 복음적인 메시지가 이 속에 있습니다. 여기 한 불행한 대표자가 있습니다. 아마도 불행한 사람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자입니다. 그리고 40이 넘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얻어먹는 사람입니다. 자 이제 이 불행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본인에게 잘못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까?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자요. 누구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특별히 분명한 것은 자기 잘못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이유를 모릅니다. 아버지가 잘못한 것인지 부모가 잘못한 것인지,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인지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모릅니다. 여하튼 그는 내가 고난당하는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습니다. 이렇게 불행하게 출발해서 한평생을 불행하게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유명한 철학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이 사람의 불행이라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살고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고통이라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모릅니다. 미래의 보장도 없습니다. 여기에 +∝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사람들은 수군수군합니다. 이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동정의 대상이 아닌 신학적 토론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는 대로 뉘 죄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부모입니까? 왜 이 사람은 불행해 졌습니까? 까닭을 묻는 것입니다. 자, 이 불행한 사람을 앞에 놓고 이것이 할 말입니까? 얼마나 역겹고 고통스러운 비난입니까? 여러분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은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남의 고통에 대해서 세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남의 고통은 꼭 죄 때문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자기 고통은 죄 때문이 아니고 남의 고통은 그 사람의 죄 때문에 그가 당한다는 것이 사람 보통 사람들의 심사다. 또 하나, 이해에 대해서 아주 엄격하다. 자기의 잘못에는 아주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꼭 그러한 것이 인간의 오류다. 세 번째, 자신은 예외로 생각한다. 저 사람은 이런 죄를 지었지만 나는 아니요. 저 사람은 이런 불행이 있지만, 나는 아니요.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종교개혁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저들은 구체적인 대책은 없고 추상적인 말 뿐입니다. 무익한 논쟁을 벌입니다. 부모의 죄인가? 본인의 죄인가? 본인의 죄라면, 나기 전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부모의 죄라면 자신은 억울하지 않느냐? 뭐 이런, 추상적 토론은 끊임없이 벌입니다. 특별히 유대 사람들은 모든 고난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죄냐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섭섭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는 분이신 것을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선 능력이 계신 분이 아닙니까? 이 시각장애자를 보자마자 주여 이 사람을 고쳐주시옵소서. 저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나는 그게 맘에 안듭니다. 도대체 열 두 제가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 말은 없고 시비를 벌이고 있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나 오늘이나 이 사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수님의 접근방법 예수님의 해답을 들어봅시다.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신학적 토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고저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저 함이라.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역 차원에서 사건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어떤 분은 영화를 보면서 혹은, 전쟁영화나 서부영화를 볼 때 아주 조마조마 해서 손에 땀을 지고 벌벌 떨면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사람이 죽을까봐. 저 주연배우가 죽을까봐. 걱정이 되서 그럽니다. 제가 지금 이 시간에 말씀드립니다. 영화 감상법은 이렇습니다. 주연 배우는 절대 안 죽습니다. 안심하고 보십시오. 안 죽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그렇지 않습니까? 왜요? 그것이 작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지금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절대 안 죽습니다. 아무리 총을 쏘아도 주연배우는 안 죽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십시다. 저희 교인이면서 오늘 아침 1부 예배도 나오셨지만, 제가 본인의 이름을 대기가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좋은 이야기라서 했습니다. 장춘식 박사님. 몇 일 전에 제게 책을 보내오셨습니다. 본인이 쓰신 책을. 그 책 제목이 너무 맘에 듭니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몇 번, 몇 번 외워보며 저는 마음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격랑도 있고 바람도 있고 풍랑도 있고 뭐도 있지만,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책 제목이 너무나 맘에 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경륜을 생각하십시다. 골로새서 1장 25절에 보면,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내가 사도가 되었노라’ 사회적이고 국가적이고 우주적인 것만이 아니라. 개인 하나하나를 통해서도 내게 임한 하나님의 경륜. 큰 시나리오 속에 내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이루고저 하시는 큰 경륜이 있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 중요 한 것은 이 사람의 불행의 원인을 과거에서 묻지 않고 미래에서 해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자, 누구 때문입니까? 누구 때문입니까? 사회 때문입니까? 정치 때문입니까? 경제 때문입니까? 부모입니까? 본인입니까? 이것은 전부 과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앞의 일을 위하여….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풀터 신이라고 하는 주교가 있죠? 그의 책 중에 쓴 중요한 말씀을 제가 가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신비는 인간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괴로워 할 때 ‘무엇을 놓쳤느냐? 무엇을 잡았느냐.’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에 메입니다.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만 하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이 현실을 통해서 앞으로 무엇을 얻을 것이냐? 무엇을 잃을 것이냐?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높은 경륜을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니, 아주 서로 헤어졌던 애인이 또 만나고, 또 아주 헤어진 줄 알았는데, 또 만나고 마지막에 아주 명언을 하더군요. 우리의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선택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운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게 향하신 운명. 이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힙니다.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갇힐 이유가 없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았습니다. 죽게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나올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Happy End가 왔습니까? 보십시오. 요셉이라는 사람은 17살에 형님에게 팔려서 노예생활을 갑니다. 노예생활 감옥생활 그 말 할 수 없는 13년의 고생을 치루었지만, 그가 총리대신이 되면서 가정을 구원하고 민족을 구원하고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가 왜 그 고생을 해야 했습니까?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갑니다. 왜 들어가는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나올 때 얼마나 영광스럽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이 사람과 예수님이 만날 때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각장애자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시는 대로 시각장애자는 귀가 밝습니다. 청각이 아주 예민합니다. 보통사람보다 몇 배 예민합니다. 보지 못하는 대신 잘 듣습니다. 옆에서들 시비하고 있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이 시각장애자가 저였다면 가만히 안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들은 죄인이 아니더냐? 어째서 시비를 벌이는 거냐? 한바탕 화를 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내 눈을 뜨게 해주세요.”라는 말도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붙들고, 오늘따라 이상한 일을 하십니다. 보통 눈을 만지시며 눈을 뜨라고 하시는데 오늘은 그게 아닙니다. 침을 뱉어서 흙을 이겨서 눈에다 탁 발랐습니다. 아니, 시각 장애자의 눈은 눈도 아닙니까? 먼지만 들어가도 아픈데, 여기에 진흙을 넣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을 참는 마음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참았을 까요? 나는 못 참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당장 눈을 뜨라고 하지도 않으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 씻으면 어떻게 된다는 말도 없습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지팡이를 들고 실로암까지 갑니다. 아무 말 없이 갑니다. 나 이거 참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 일진이 사납다. 한 푼 번 것도 없이 이게 무슨 꼴이람. 그리고 여하튼 가보자. 의심도 하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로암까지 가서 자기 손으로 눈을 씻고 눈을 떳습니다. 그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모든 불합리한 것을 참았습니다. 모든 비난도 참았습니다. 모든 의심도 극복했습니다. 오직 조용하게 위대한 믿음으로 위대한 순종을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게 됩니다. 여러분, 요즘 와서 우리가 많은 어려운 일들을 당합니다. 흔히 인재라고 합니다. 천재냐? 인재냐? 이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뭔가 잘못했죠. 그러나 우리는 원인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래도 고난이라고 하는 현실은 있습니다. 한 가지 잊지 마십시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다. 나는 무가치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는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목적 없는 고난을 당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는 목적이 있습니다. 내게는 대책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대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그 지혜와 능력 그 속에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여러분, 오늘이 있으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이 있기 위해 어제가 있었습니다. 아니, 내일을 위해 오늘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그리고 조용히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귀하고 위대한 역사는 앞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언젠가는 다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은 역사적이고 대단히 귀중한 날입니다. 제가 북녘 땅에 무려 12번을 다녀왔지만 그 교회에 갈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을 만나고 늘 종종 이야기 했습니다. 한 번 서울에 오십시오. 오십시오. 했는데, 못 오셨습니다. 오늘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제 우리는 과거는 묻지 마십시다. 왜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는지 묻지 마십시다. 우리 앞에는 밝은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 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이 있었다고, 오늘을 위해서 지난날이 있었다고,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서 다 소화해 버리고 오로지 믿고 순종하면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때때로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왜 내게만 고난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지만, 주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그 말씀을 믿고 오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있기 위해 지난날이 있었음을 압니다. 앞에 있는 약속의 땅을 위해 오늘이 있음을 믿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모두 순종하고 겸손히 주님의 큰 역사를 창조해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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