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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못된 귀 / 딤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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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잘못된 귀 - 딤후 4:3~4 
 

우리는 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습니다.
귀가 없이는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귀에 대해 하신 말씀, 귀와 연관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디모데후서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나의 귀는 잘못되어 있지 않은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통 귀가 있으면 당연히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귀가 있는데도 잘 들리지 않거나, 전혀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청각장애자, 또는 귀머거리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도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청각장애에 관한 말씀은 아닙니다.
일부러 듣지 않으려 하거나, 듣고도 못들은 척 하는 일, 또는 듣기 좋은 것만 찾아서 들으려고 하는, 잘못된 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영적 귀머거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잘못된 귀를 가진 사람, 영적 귀머거리는 어떠한 사람들인가를 살펴 보면서, 바로 나에게는 그러한 요소가 없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3절 말씀 첫 머리에 "때가 이르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원문인 헬라어 성경에는 "때가 이르리니"라는 말씀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더 있습니다.
이 "왜냐하면"이라는 말은 바로 앞 귀절 말씀들과 연관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일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교회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가르치면서, 특히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 잘못하는 사람들을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오늘 읽은 본문 말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넣어서 본문 말씀을 2절 말씀부터 다시 읽어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왜냐하면, 때가 이르면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으려 하고, ...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려 하기 때문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에서 또 "때가 이르리니"라는 말씀도 함께 생각해 보면, 보통 "때가 이르면", "때가 되면"이라는 말은, 말세나 세상 종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말세가 되면 될수록', '세상 심판 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이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심판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세상이 악해지고, 올바른 믿음생활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려워진다는 것이 무슨 초대교회 때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아 사자밥이 된다거나,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나 공산치하에서 받았던 것 같은 그런 물리적인, 외적인 어려움도 포함되겠지만, 앞으로 오는 시대에는 그러한 어려움도 어려움이려니와, 그 보다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마귀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음흉한 궤계를, 어떻게 이겨내느냐하는 어려움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깨끗이 살아 보려고 해도, 우리의 주위 환경이 나를 깨끗한 채로 놔 두지를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정한 돈을 주고 받게 만드는 주위 환경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잡지책 뿐만 아니라 명작이라는 소설책도 펼치면, 군데군데 아직은 몰라도 될 장면들이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정상적인 학생생활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나마 책도 잘 읽지 않습니다.
컴퓨터라는 아주 유용한 기계가, 이상한 일들에 이용되면서, 학생들과 청년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렸습니다.

이제는 올바른 생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말씀의 바로 앞장 디모데후서 3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3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점점 이렇게 어려워지니까 미리미리, 잘못하는 사람들, 엉뚱한데로 빠지는 사람들을 권면하고, 미리 잘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앞으로 사람들이 영적 귀머거리들이 될지도 모르니, 말씀 전파를 열심히 하고, 인내로써 가르치기에 힘쓰고, 잘못하는 사람들을 잘 권면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귀머거리가 되고, 잘못된 귀를 가지게 되는 것도, 역시 마귀 사단의 음흉한 궤계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올바르게 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귀를 가질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이제 점점 바른 교훈 받기를 거절하게 됩니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의 뜻은, 건전한 가르침을 견디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건전한 가르침이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본 뜻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 생명록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없습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설사 교회에 와서도, 호기심과 허망한 충동으로만 종교적 만족을 얻으려 할 뿐,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아직 깨달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 좋은 말씀이네요" 정도로 그치고 맙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마음 속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아멘"의 확신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모습을 꾸밀 수는 있으나 돌아서면 그 뿐입니다.
세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령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 중에는 때때로 그런 일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을, 즐거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와 한 적은 없었습니까?
가르침을 바로 받기가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적은 없었습니까?

이사야서 42장 1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듣지 못해,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고, 결국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을 안타까와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사야서 42장 18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아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외면하게 될 때, 그만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와서 3절 말씀을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라 했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하는 이 말씀은, 곧 듣기 좋은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가려운 귀를 긁어 줄 만한 말, 가려운 귀에 만족할 만한 그런 말, 내 욕심에 알맞는 그런 말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고, 듣기 싫고, 내 구미에 당기지 않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듣고 싶은 것 듣고, 보고 싶은 것 보는데 웬 참견이냐!'
그러나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기 싫어도 나의 믿음 성장을 위하여 보아야만 하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 나를 즐겁게 해 줄 말만 찾아 듣고 희희낙락할 때, 나의 영혼은 병들게 됩니다.

텔리비젼, CD음반, 인터넷, 등등 열심히 보고, 읽고, 들으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 읽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성경을 자주 읽는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도, 그저 내가 좋아하는 귀절만 찾아서, 고린도전서 13장 같은 부분은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읽어 볼 뿐, 심지어 일주일 내내, 성경책 한 번 펼쳐 보지도 않고, 주일날 아침에만 먼지 쌓인 성경책을 찾아들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는 그런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만, "후탁교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탁교인"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주일날 교회에 들고왔던 성경책을 다시 집에 가지고 간 후, 책상 위 한 쪽 구석에 놓아 둡니다.
그리고는 일주일 동안 성경책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아서, 다음 주일날 교회에 가기 위해 성경책을 찾으니,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먼지를 후-하고 붑니다.
그리고는 탁탁 텁니다.
이런 분을 가리켜서 "후탁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지금까지 "후탁교인"은 없으셨겠지만, 앞으로도 이와같은 "후탁교인"은 생겨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권면하면, 실제로는 별로 읽지 않는 사람이 그저 하는 말은 "성경책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어!"라고 합니다.
읽고 또 읽고, 자꾸 읽어봐야 무슨 뜻인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터인데,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합니다.

설교 말씀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날 설교 제목이 무엇인지, 본문 말씀이 어디인지, 설교 주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도, 설교 내용을 평합니다.

한 번은 제가 전도사 때 설교하면서,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다가, 군것질이 하고 싶어서 엄마 지갑에서 1원짜리 동전을 몰래 가져가다가 들켜서 야단맞은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내용이 그날 설교를 듣지 못한 다른 성도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말이 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유, 우리 전도사님 어렸을 때 고생 많이 하셨대", "어렸을 때 1원짜리 동전 훔치려다 혼난 적이 있대".
왜 그런 내용이 나왔는지는 모르고, 그냥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이리저리 말하다가, 나중엔 점점 불어나서 "우리 전도사님 젊었을 때 도둑놈이셨대".
결국 이상한 말만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도움되는 말로 나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도, 듣기 싫다고 귀를 막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고 올바르게 행하도록 일러주는데도, 돌아서서는 입을 쭈뼛대고, 뒷쪽으로 눈을 흘깁니다.
그저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만 해 주면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은 평생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디 완전한 사람 있습니까?
잘못 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지요.
자기가 잘못하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다음엔 올바르게 고쳐가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모르고, 거듭해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지적해 주고 도와줘서 바로잡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지적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을 멀리하고 싫어하게 되면, 결국 나는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고쳐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 주위에 그저 내가 잘한다고 치켜세워주는 사람들로만 둘러 쌓여서, 나는 결국,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되는데, 사실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무리 바른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 해도, 아무도 듣지 않으니 어찌하느냐하고 한탄했습니다.
예레미아 6장 8절 말씀에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라고 경고하였고, 예레미아 6장 10절 말씀에서는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라고 탄식하였습니다.

내 욕심에 따라 듣고 싶은 것은 열심히, 즐겁게 들으면서도, 정작 나의 영혼을 위하여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외면하여 듣지 아니할 때, 어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4절 말씀을 보면,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른 교훈,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아니하고, 무시하고, 듣기 좋은 말만 따르고, 거짓 스승들을 가까이하게 될 때, 진리에서 떠나게 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지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게 됩니다.
결국 복음 진리에서 아주 떠나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한때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신다고 날짜까지 장담했던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사술에, 왜 많은 사람들이 미혹당했습니까?
지금도 간혹 예수님께서 재림 날짜를 연기하셨다고까지 말하면서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일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마귀의 장난이라고 하면서, 마귀나 귀신을 하나님보다도 더 두려워하여야 할 존재로 만들면서, 마귀숭배의 전단계를 형성하고 있는 베뢰아파의 귀신론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모여드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올바른 교훈에, 제대로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참된 복음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소위 무식의 소치인 것입니다.
참된 진리 말씀에 늘 귀기울이고 있다면, 말씀에 어긋난 이러한 이단 사설을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며, 복음 진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거짓 스승을 따를리 없고, 허탄한 이야기에 몰두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읽는 시간이 귀한 것이고, 성경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일정 기간 이수하고 나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공부는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며,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야만, 어떠한 이단 사술에도 미혹되지 않으며, 또한 믿음 생활을 규모있게, 분명하게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의 비밀들을 깨닫고 적용시켜 나가는 활력있는 믿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를 계속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외치는 소리만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지 않는데도, 그런 것은 지적하지 않고 - "구원을 얻었다", "전쟁은 없다", "멸망당하지 않는다", "샬롬! 샬롬! 평화! 평화!", "이스라엘 나라가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금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멸망당하고, 이 땅이 황폐해 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짓 선지자들의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청종치 않아,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거짓 선지자들이 많아지고, 많은 좋은 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방해를 받습니다.
주일만 되면 무슨 특별한 일이 생겨서 부득불 회사에 가야 하고, 결혼식장에 가야 하고, 모처럼 매일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읽으려고 시간을 정해놓고 시작하려는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급한 전화가 와서 성경 읽는 시간을 방해받고, 하필이면 그 시간에 아이가 아프다고 칭얼대고, 오늘은 철야기도회에 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는데, 하필이면 오늘 시어머니께서 오시겠다고 전화가 오고, 그런가 하면 "나는 재림 예수다. 나에게 오면 더이상 힘들게 살 필요없이 온갖 제약들로부터 자유로와 진다"고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점점 더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듣기가 힘들어 가는 세상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때 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닫고, 그대로 지키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지막 때 일수록 좁지만 바른 길로 가며, 마지막 때 일수록 듣기 좋은 말보다는 귀에 쓰지만 약이 되는 말씀을 경청하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Αμη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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