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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 문이라 / 요 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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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고신일목사
설교일자 : 2003년 3월 9일
설교장소 : 기둥교회
제  목 : 나는 … 문이라
성경본문 : 요한복음 10장 1~1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장 1~10절) 

<목회기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살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심을 기억하고
경건히 지내는 사순절의 첫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세상에 어울려 살면서 떨치지 못하고
죄 지은 모든 것을 자복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복된 주일에 예배드리기 위해 원근각처에서 모였습니다.
모인 이들의 형편과 사정이 다릅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신령한 은혜를 내리셔서
감동과 감격을 안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병들어 나오지 못한 이들에게 건강을 허락하시고
군대에 나간 젊은이들과 해외에 나가 있는 기둥교회 모든 식구들에게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주장하셔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대의 힘있고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가시고기]라는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을 소개합니다.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살고 있는 것, 그것이 복입니다.
오늘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기간입니다.
<교회력>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중요한 기념일
또는 축일(祝日)…등을 기록한 달력을 말합니다.
 
올해의 사순절은 '참회의 수요일'(Ash Wednesday)인 지난 3월 5일부터 시작해서
종려주일을 거쳐 4월 19일까지 계속됩니다.
주일을 제외한 40일간 이어지는 사순절은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결정돼
교회 역사에 깊은 뿌리를 내린 중요한 절기입니다.
40일이란 날자는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한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교회는 이때 헌신, 희생, 섬김, 고난, 영적 권위…등의 의미가 담겨 있는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 절기에 [절식]이나 [금식]을 했습니다.
음식의 양을 줄이거나 반찬의 종류를 줄여 절식을 했고
아예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을 했습니다.
이렇게 절식이나 금식을 하면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왔습니다.
처음에는 물고기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도 금지 됐습니다.
8세기 이후에 이런 규정은 많이 완화돼 14세기에 이르러서는
금식기도 대신에 절식기도까지 허용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엔 연극, 무용, 결혼, 오락, 연회… 등은 여전히 금지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회적 여건과 경제 활동 등을 고려해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보내려는 노력을 하고
금식이나 절식은 고난주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형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순절 기간에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 절제된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사순절 기간에 맞춰 사회관 기공식을 했고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배정된 대로 최선을 다해 기도회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범사에 절약하고 절제하면서 사순절을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과하는
[문]에 대한 말씀을 드리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오기까지 통과한 문이 몇 개나 되십니까?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나왔을 것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고,
신문이 배달됐다면 신문을 가지러 문밖에 나갔다 다시 들어왔을 것입니다.
아침을 먹고 이를 닦기 위해 화장실 문을 들어갔다 나왔을 것이고
교회에 오기 위해 문을 나왔을 것이고
자동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차문을 열고 닫았을 것이고
교회의 문을 통과하고 예배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최소한 10번 이상 문을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문(門)>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 갈 때는 "쉼"과 "안전" 그리고 "보호"의 입구가 됩니다.
반대로,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는 "새로운 출발"과 "시작"이라는 설레임과 함께
"위험"에 노출이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떤 문은 들어가고 싶은 문이고 어떤 문은 들어가고 싶지 않은 문이 있습니다.
어떤 문은 들어가야 하고 어떤 문은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되는 문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을 드나드십니까?
이 [문]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유대 팔레스틴 지역의 [양들의 공동체]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는 양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양을 기르는데 목장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으로 몇 마리 혹은 몇 십 마리의 양을 길렀습니다.
그러니까 많지 않은 자기 소유의 양에는
애완동물처럼 이름을 붙여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의 각각의 이름과 특성을 알고 있습니다(요10:3).
당연히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었고(요10:3, 4, 27),
목자들이 부르는 소리에 따랐습니다.
 
밤중이 되면, 양을 많이 기르는 목자는 자기의 개인 우리에 양을 넣었고
몇 마리 혹은 몇 십마리의 양을 기르는 목자는
마을의 공동우리에 맡겨 양을 관리했습니다.
그 공동우리에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었습니다.(3절 참조)
아침이 되면 목자들이 자기 양을 찾으러 우리에 갔고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목자가 그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가
양의 이름을 불러 자기 양을 데리고 나가 풀을 뜯게 하였습니다.
 
 
목숨을 버리는 목자, 예수님
 
목자들은 양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때로는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스스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10절).
예수님은 스스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이신,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은 스스로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7절에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하셨는데
2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요10:1)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과 함께 알고 있어야 이해가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양의 문이라'(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무도 '양의 우리'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문, 생명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한 사람의 생명도 천국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한다고 힘썼던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물론 모양을 보여 주신 것은 아닙니다.
직접 인간 역사에 개입하셨고 사람들을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중보자로 세상에 보내 주섰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죄의 대가인 죽음(롬6:23)을 예수님께서 대신하여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교회가, 목회자들이, 신학자들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 되심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강조하지 않고
막연히 하나님에 대해서만 가르칩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잘 못된 것입니다.
막연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신(神)으로서의 하나님만을 가르친다면… 그렇게 배운다면…
그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같아질 위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사울'이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에 대해 말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는 예수를 믿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없애기 위해
다메섹을 향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을 향하는 도중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대로 행해야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고,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누구든지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I am the gate) 누구든지(whoever)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enters through me) 
구원을 얻고(will be saved) …"(요10: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라는 말씀은 여러 문 중에 하나가 아니라 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곧 그 문 자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whoever, 요10:9), 제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믿는 자 마다(whoever believes, 요3:16)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하는 자마다(요10:9)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요14:6)…입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 어떤 종족…, 잘 난 사람…
미리 선택받은 어떤 사람…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습니다.
 
일부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일부 신학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구든지"를 자기들 맘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왜곡이요, 성경의 모독이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말씀대로 믿어야 하며…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에 누구도, 한 생명도 버림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그래서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 같이…
모두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구원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성경공부를 많이 했어도, 신학을 공부했어도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가 되었어도, 봉사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 주고, 헌금 많이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해야 구원 받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요1:12, 갈3:26)가 되고
예수 믿어야 영생(요3:16)을 얻고
예수 믿어야 천국 백성(빌3:20)이 되고
예수 믿어야 하나님이 내 안에(요일4:15)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고,
예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고난 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사순절을 보내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문은 누구에게든,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문]이십니다(the gate).
그 [문]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 문을 들어가는 방법은 ;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으신 분은
이 시간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간에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음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예수 믿음으로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미국 영주권, 시민권 때문에… 골치 아픕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 시민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 중에 미국에 가서 미국 사람으로 살려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면 미국 국가를 부를 줄 알아야 하고
미국 역사, 영어…등의 시험을 봐야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격을 갖추고 시험에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되면
한국 주민등록은 말소되고 호적에도 줄이 그어져
한국 사람으로서의 신분이 없어집니다.
<영주권>은 한국에 주민등록은 없지만
호적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미국 영주권>을 가진 사람은 미국에서 살아도 좋다,
사업을 해도 좋다…하는 신분보장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총리, 장관이 된 사람… 중에
영주권과 시민권을 갖고 있어 문제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미국에 살면서 공부를 했고 영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둘째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저는 공부를 다 마치고 나서 미국 영주권을 포기했습니다.
영주권을 반납하러 미국 대사관에 갔을 때
제 둘째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부모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18세가 되어 미국 시민으로 남을 것인지, 한국 시민으로 남을 것인지
본인이 결정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주권을 반납하러 왔다"고 했더니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제게 "영주권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니
저기 의자에 앉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오시지요"하더군요.
어쨌든 저는 영주권을 반납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괜히 영주권을 포기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있어야 장관이나 총리에 이름이 오르내릴텐데…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입니다.
우리는 벌써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결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은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 추해져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변함 없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챤신문 2003.3.10일자 참조)
 
미국의 센디에고의 어느 집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전화는 월남 전쟁에 나간 아들에게 온 전화였습니다.
그 아들은 말하기를 "어머니 제가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 갈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 기뻐서
"얘야, 전화는 무슨 전화야 빨리 오너라.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들을 군에 보내면 얼마나 보고싶은지 아시나요?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요.
    저도 요즈음 얼마 전 해병대에 입대한 큰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아들에게는 소식이 없어 얼마나 걱정 되었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 아들에게 편지를 받고는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 군인의 어머니는 전쟁터에 나갔던 아들이니 얼마나 보고싶었겠습니까!
그래서 아들에게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은
"그런데 어머니 집에 갈 때 한 친구를 데려 가겠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데려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데 그 친구는 월남 전쟁에서 부상을 하여
한 눈을 실명하고 팔과 다리 하나씩이 없는 불구자입니다.
오갈 데가 없어 제가 데리고 살까 합니다."
"아무튼 데려 오너라. 고생들 했으니 집에와
한 일주일쯤 푹 쉬게 해주어라."
"어머니 일주일은 안됩니다."
"한 달 정도면 되겠니?"
"아니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합니다.
"얘야, 네가 그 친구를 평생 데리고 산다는 것은
정말 기특한 생각이다마는 생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단다.
그런 불구자와 평생을 같이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드는지 모른단다.
처음에는 불쌍한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찮아 질 수도 있어서
처음에 가졌던 좋은 감정까지 망치는 경우가 흔하단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고 만단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덜컥 끊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경찰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어젯밤에 센디애고 호텔 12층에서
투신 자살을 했으니 사체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부모는 너무 놀라서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죽은 그 아들을 본 순간
그 어머니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다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한 눈이 없고 한 팔과 한 다리가 잘려 나간
가련한 그 친구는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전쟁 중에 몸이 불구가 되어 집에 오면서
불구의 아들을 받아 주고 평생 변함이 없이 사랑해 줄 부모를 찾았던 것인데
어머니는 그것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 사랑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어떤 모양으로 추해져도
가난해도, 잘 되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고, 찬앙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하라고, 성경신학원 등록하여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펼치기 위해 사회관을 건축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녀들이 해달라는 것이 많아 귀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자녀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귀찮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부모님이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살아계시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살아 있으므로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일터에 문제가 있고, 부담스러운 일이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아무 부담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성경공부 해라. 기도해라. 봉사해라, 사회관 짓자…"
기둥교회는 정신이 없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살았기 때문에 생명있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었으면 요구하지 않습니다.
기둥교회가 죽은 교회라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버리시지도, 거절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며
예수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이며
예수 믿음으로 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주 안에서 당당하게 승리자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살려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을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생명 주심을 감사합니다.
구원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케 하시고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는 저희들
그 사랑을 끊을 자가 없는 것을 분명 믿고 사는 저희들
담대하게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이, 식구들이, 교회에서 하는 일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았음에 부담스러운 일이요,
살았음에 맡겨 주시는 일인 줄로 믿고 감사드립니다.
기둥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정성된 예물을 구별하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03년 3월 9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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