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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족하며 삽시다 /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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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빌립보서 4:10-13
제목:만족하며 삽시다
설교 :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사람이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한가?’ 를 지수를 내는데 네 가지 질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예라는 답을 하면 총점 100점으로 내어봅니다. 네 가지 질문은 1) 외향적이고 변화에 대하여 유연한가? 2) 우울하거나 가라앉은 기분으로부터 회복이 빠르고 스스로를 잘 통제한다고 생각하는가? 3) 건강, 돈, 안전, 자유 등의 조건에 만족한가? 4)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스스로의 기대치에 부응하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가? 입니다. 이 원리대로가 아니더라도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지난 연말(02년)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 40%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고 나이든 사람일수록 즐겁지도 않고 행복하지 않다고 답하였답니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제안이 있습니다.

첫째,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에게 시간을 쏟아라.
둘째, 친밀한 소수가 겉도는 다수보다 낫다.
셋째, 흥미와 취미를 추구하라.
넷째, 과거나 미래에 살지 말라. 오늘 하루 하루를 복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성취 가능한 목표를 세우라.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만족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만족이 없다면 모든 것을 갖추었어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한대로 매사에 만족하고 살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만족하게 삽시다. 왜 만족하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경건에 유익이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6절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유익이라” 하였습니다. 경건이라 할 때 금욕적이고 세상을 초월하여 사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사람도 만나고 놀기도 합니다. 경건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진짜 예수쟁이를 경건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야고보서 1:27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경건이라 할 때에 이기주의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밖에 없습니다. 내가 먹고 내가 쓰고 싶은데 언제 남을 돌볼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 잘못하는 이들은 언제든지 자기 중심의 사람입니다. 바쁘다고 말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한 이에게 어떻게 교회에 나오지 못하셨어요. 예, 제가 요즈음 너무 바쁩니다. 주일에 바쁘다는 말은 자기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맞지 않습니다. 주일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날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입니다. 경건은 다른 이를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고 희생하는 사람을 경건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경건 생활을 자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4:8절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하게 살면 유익합니다.


1.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시편 147:1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말이 없으면 삭막합니다.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삶이란 우리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들은 단 둘만의 시간이 있습니다. 경건이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게 하기에 유익합니다.


3. 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됩니다.

우리가 때로 낙심하게 될 때에 그분 예수께서 격려하여 주십니다. 내가 연약할 때에 새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이런 경건생활을 자꾸 연습 하여야 합니다. 육체의 연습, 즉 운동하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 겁니까? 그런데 경건의 연습은 더 좋다는 말입니다. 기도생활, 성경공부, 성령 안에서 사는 일, 모두가 경건 연습입니다. 경건을 위하여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아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원망이나 불평 대신에 감사하고 만족하게 살아가는 훈련을 계속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였습니다. 전보다 경건하게 지키는 교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락을 금하고 유흥장이나 쾌락을 찾는 곳을 피하는 기간이 사순절 기간이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지켜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복음서를 중심으로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 정신을 본받아 영혼구원에 집중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헌혈을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참회의 기도를 합니다. 금식도 합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어떠한 경우라도 남이나 환경을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불평도 그쳐야 합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경건입니다.

둘째, 만족하게 살면 행복해집니다.

만족이 행복입니다. 불만은 불행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소유에 있다고 보는 이가 있습니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면 행복하리라고 본다는 말입니다. 돈을 갖고 싶은데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부터 걱정입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은행에 맡겨봅니다. 그런데 이자 이율이 낮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장이자를 주었습니다. 이익이 남지 아니하니까 투자한답시고 부동산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풀리지 아니합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최고의 행복은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역사를 보세요. 권세와 영화를 누리던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가진 것으로 다른 이들을 핍박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이 만족하게 사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려면 만족하게 살아야 합니다. 고대 희랍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나무통속에서 살면서 세상을 향해 큰소리 쳤습니다. 어느 날 엄격하기로 유명한 당대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왔습니다. “디오게네스 선생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요. 내가 무엇이라도 들어주겠소 무엇이 불만이어서 그 통 속에서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거요? 소원을 말하시오” 라고 말하니까, 그는 잠에서 덜 깬 눈을 부시시 뜨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대왕이시여 소원이 있습니다. 딱 한 가지요. 지금 선 자리에서 조금만 비켜주세요. 대왕의 그림자가 해를 가리워 제가 조금 춥습니다.” 이 말을 듣던 왕의 수행원들이 벌꺽 화를 냈습니다. 이런 발칙한 놈이 있나 감히 어느 존전이라고 통속에 누워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그때 알렉산더 왕은 손을 들어 말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들은 화를 내지 마세요. 저 친구는 아주 멋진 친구야. 만약 내가 알렉산더만 아니었다면 나도 저런 통속에서 살 거야.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던지 만족함이 있으면 행복한 겁니다. 현대인들이 가진 게 부족하여서 행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만족함이 없기에 행복하지 못한 겁니다. 얼마 전에 로스앤젤리스 타임스지가 여론조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미국인 62%가 미국이 크게 잘못돼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7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행복은 만족에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이후에 인간적으로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핍박이요, 환란입니다. 옥에 갇히고 굶주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족하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당대에 지성계를 대표할 정도로 뛰어나고 법을 준수하는데 완벽하였으며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층의 신분을 지닌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고통이 있었습니다. 육신의 가시였습니다. 간질병입니다. 지랄병이라고 하는 고칠 수 없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응답이 왔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겁니다. 족한 줄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 자족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공부합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가 공부하여야 합니다. 경험이 먼저가 아니라 공부가 먼저입니다. 이론이 먼저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어떤 친구가 바둑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못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그때부터 이분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였답니다. 책을 사다 놓고 비디오를 보면서 선생님을 모시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후에 만났습니다. 한판 붙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겼습니다. 원리대로 공부한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 없이 경험한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원리대로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부만 해서는 안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보고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보아야 합니다. 음식 맛도 맛좋다라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먹어 보아야 압니다.

세 번째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처음 잘하던 것도 안 하면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만족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계속적으로 시행하다 보면 몸에 만족하게 사는 비결을 터득하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학문을 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족함이 없다면 이는 행복한 게 아닙니다.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생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웃는 것이요, 둘째는 노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노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족하고 사는 게 진정한 행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만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마음에 욕심이라는 게 자리잡고 있으면 만족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앤드류 카네기 같은 대부호도 누가 묻기를 지금 얼마나 많은 돈을 벌면 만족하겠느냐 라고 질문을 던지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은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는 속담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만족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탄일이 있었습니다. 이야기하다가 택시주인이 차 한대가 있으면 얼마를 번다는 겁니다. 그런데 돈이 생겼을 때 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망하게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문호 괴테는 말하기를 증오를 적극적인 불만으로 질투는 소극적인 불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근원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고 말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얼굴부터 다릅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세요. 화장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보이는 이가 있고 최고급으로 화장을 하였어도 아름답지 못한 이가 있습니다. 누군가요?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불만이 가득합니다. 말끝마다 불평스러운 말을 합니다. 다른 이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좋지 못하게 만듭니다. 욕심이 없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길 수 없습니다. 미국인 관광객이 종교 분야에 유명한 존경받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폴란드로 갔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방에 들어가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책이 있을 뿐입니다. 너무나 초라하게 보이기에 방문자가 묻습니다. 선생님 가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구라니요? 그러면 친구여 그대의 가구는 어디에 있소. 미국인은 가구요 저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인데요 라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였더니, 그 학자도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우리는 고향 천성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여행에는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잠시 스쳐 가는 현실에 세상 것만을 취하려 할 게 아니라 신령한 영적인 것을 소유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영적인 욕심을 가져야 유익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은 버려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행복하려면 소유는 늘어나고 욕망은 줄어드는 것이랍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가운데서 애굽에서 해방 받고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비교적 광야생활에서 불편 없이 지나는데 그들에게 왜 불행이 왔습니까? 그 하나는 원망과 불평 시비와 비판이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욕심과 정욕이었습니다. 끝없는 욕심이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부자 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도대체 얼마만큼 있으면 되겠습니까? 욕심을 버리면 만족하게 됩니다.

다음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갑자기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때가 마침 대구 지하철 화재로 인하여 눈물바다가 되었을 때입니다. 뭐라고 하는가 하면 아니 전철 타고 가다가 죽어 시체도 찾지 못하도록 사라진 사람도 있는데 그것 갖고 뭘 그렇게 애쓰느냐고 말합니다. 이 땅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좋은 형편입니다. 우리는 왜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합니까? 부정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사람이 16세까지 자신에 관하여 17만 3천 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불과 1만 6천 개인데 하루평균 부정적인 메시지는 296개 긍정적인 것은 불과 27개라고 합니다. 또 5세까지 아니라는 단어를 천 개 이상 듣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긍정보다 부정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마, 가지마, 막지마, 놀지마, ∼마마 ∼마마가 얼마입니까? 여기에서 부정적인 게 체질화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마음에 만족함이 있게 될 겁니다.

우리는 왕보다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왕이라도 겨울에 딸기를 어떻게 먹습니까? 진시황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이미 타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만족이 옵니다. 그리고 웃음꽃이 활짝 피게 될 겁니다. 웃음이 있는 삶은 삶의 길을 찾게 됩니다. 좋은 일이 생깁니다.

성공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카네기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즐거운듯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워라. 어깨를 쭉 펴고 심호흡을 하라. 그리고 나서 노래를 부르라. 노래가 아니면 휘파람이라도 불자. 휘바람이 아니라면 콧노래라도 불러라. 그러면 우울함, 불면증, 육체의 연약했던 부분이 건강하게 되어질 겁니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에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라도 웃고 만족하게 살아갑시다. 호랑이는 입에 이빨은 있으나 뿔은 없습니다. 소는 뿔이 있으나 입이 약합니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야 합니다.


2. 매사를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적이고 빛나는 삶을 살라고 이 세상에 보냈습니다. 실패하고 울며 살라고 보낸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 그곳에 가는 과정이기에 잘 견뎌야 합니다. 꼭 기억 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에 형통하게 하십니다. 형통함이 없을 때에는 만사가 유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매사를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평과 원망은 스스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전염병같이 훨훨 퍼져나갑니다. 유전됩니다. 믿음으로 주께 맡기오니 생각밖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될 겁니다.


3.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감정에 사로잡히면 분노하게 되고 불평하게 됩니다. 불평 스러운 성격은 건강한 육체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불평이란 애타는 상태입니다. 불만이 가득하여 이곳 저곳에 다 애를 태우는 화풀이를 종종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가 우울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자신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쁨이 있게 됩니다. 세상이 복잡한 것 같아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의 그룹은 기뻐하며 만족하게 사는 이들이 있고, 다른 부류는 불평과 불만가운데서 남을 탓하고 사는 이가 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지하철 안에 불을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이 모두 원망스럽다는 겁니다. 자기가 잘못되는 게 잘 사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남을 유익하게 하고 자기 자신이 만족하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 신비하고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많다고 봅니다. 다른 점은 기쁨으로 사는 겁니다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사람이 성령충만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근심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찬송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성령충만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세요. 죽음의 순간에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고 입에서는 용서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남을 용서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남을 정죄하고 원한을 품고 살아가기에 만족이 없습니다. 은혜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러느냐 원칙이 아니다 틀렸습니다. 이보다 은혜로운 마음은 그럴 수도 있겠다 안됐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도 은혜로와야합니다. 그러면서 감사하고 좋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

늘의 시대는 참으로 무섭고 삭막합니다. 모두 다 원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만족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족하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를 주장하여주셔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가 울 때 우리는 웃고 그들이 괴롭다고 한탄할 때에 우리는 만족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만족하게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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