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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을 딛고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서라 (막 5: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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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딛고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서라(막 5:35-43)
최석환 목사 (서해중앙교회)


우리주위에는 삶의 고통 때문에 희망을 버리고 절망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새로운 삶과 생명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첫째,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을 찾는 기회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회당장의 지위에 있던 야이로가 사랑하는 딸을 구하기 위해 예수앞에 엎드렸다. 그는 사회적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어가고 있는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소망을 예수께 두고 예수께 엎드렸다. 유대 사회나 한국사회에서 체면을 중시한다.

회당장이 체면을 벌리 수 있던 것은 인생의 절박한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고통이 없다면 결코 예수 앞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시 119:71). 그러고 보면 인생의 고통이 우리를 낮아지게 하고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것이다.

회당장은 예수의 발앞에 엎드려 딸을 살려 줄 것은 많이 간구했다(막 5:23). 그는 예수의 치유의 권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최후의 희망을 예수께 걸고 엎드렸다. 회당장이 엎드려 믿음을 갖고 간구하니 예수께서 응답하셨다. 회당장은 예수를 만났고 예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회당장은 예수를 자기 딸이 누워있는 집으로 모셔가려 조바심을 내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던 중 혈루병의 한 여인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었다.

예수께서 발 걸음을 멈추고 누가 내 옷을 손을 대었느냐고 하시며 둘러 보셨다. 더구나 이때 야이로의 딸은 죽어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예수께서 혈루병 여인을 위해 멈추는 그 순간 이미 야이로의 딸은 죽었음을 알았다.

주님은 혈루병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치유하고 축복했다. 그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달려와 딸이 죽었다고 알렸다. 사랑하는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야이로는 극심한 슬픔에 빠졌다. 상황은 끝나고 희망은 사라졌다.

둘째, 절망속에서도 믿어라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곁에서 들으시고 그 말들을 무시하시고 슬픔에 젖은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셨다. 즉 절망의 순간에도 체념하지 말고 계속믿으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야이로가 그의 믿음을 잃어버리기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 하며 기도할 때 더 어려운 일이 생겨서 믿음을 저버릴 수 가 있다. 가끔 하나님의 손길이 지체될 때 우리는 신앙을 의심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최후의 절망은 무엇인가.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의 참혹한 죽음앞에 오늘도 주님은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 주님은친구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서 그 무덤앞에 가서 돌을 치우라 했을 때 마르다는 벌써 썩은 냄새가 난다하며 믿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길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했다(요 11:40).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기적을 낳는다. 절망은 육체적 죽음보다 더 무서운 영적인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단절된 영원한 멸망인 지옥에 가게 된다.

셋째, 절망을 딛고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서라

예수님과 야이로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직업적인 울음꾼들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다.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통곡하며 우는가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니 저희가 비웃었다. 신자들의 죽음은 단지 잠에 불과하다. 육체가 부활의 순간까지 쉬는 것이다(살전 4:13-14).

그러나 그 영은 죽을 때 육체를 떠나 영적인 실제의 몸을 갖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빌 1:20-23). 육체는 예수의 재림과 부활때까지 잠잔다(고전 15:51-58). 우리는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를 죽음으로 떠나 보내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다.

부활의 위대하신 주님은 죽음 건너편에 있는 부활의 소망을 약속하셨다. 예수는 야이로와 세 제자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죽음 속에 있는 어린 딸에게 "달리다굼"하셨다. 즉 소녀야 일어나라는 아람어 말씀이다. 그 말씀에 소녀의 영이 몸으로 되돌아왔다(눅 8:55).

죽어 있던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살아날 것이다(요 5:24-25).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순간 그 말씀은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다.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좌절하고 앞이 깜깜할 때 부활의 주님은 어김없이 우리곁에 다가 오신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달리다굼 하셨다. 즉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딸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최악의 절망속에도 주님을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달리다굼하시며 절망에서 일어나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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