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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 고후 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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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3월9일 주일)   
본문 : 고후 6:4-10
설교 : 김광일 목사 (해운대감리교회)


  하루는 어떤 세무서원이 목사님 가정에 방문을 했습니다.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무서원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가정에는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목사님이 선뜻 대답하셨습니다. "예, 우리는 엄청 부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되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예, 저는 우선 하늘 나라에 영원토록 살아갈 좋은 스카이 맨션 한 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자상한 아내가 있고, 의좋게 살아가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거기다 오늘밤에 아무 걱정 없이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세무세원은 더 안 들어도 알겠다는 듯이 목사님의 말씀을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엄청난 부자네요. 그러나 세금은 매길 것이 없겠습니다."

  삶의 만족과 행복은 소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이 가졌는지 적게 가졌는지 거기에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비록 내가 적게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는 사람은 마음에 감격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진정한 삶의 만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바울의 생애는 부요함이 넘쳤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니 "나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굶으면 배가 고팠고, 병들면 아팠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음이 심히 답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 있는 나'를 알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 내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비록 나는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이지만, 세상을 이길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주 안에서 부요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부족함이 없으며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삶은,


  첫째로, 어떠한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작고한 미국의 유명한 흑인 여가수 마리안 앤더슨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한 세기에 날까 말까할 정도로 유명한 성악가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안 앤더슨이 처음으로 독창회를 열었을 때입니다. 그녀의 독창회가 끝났을 때 온갖 신문들이 앞뒤를 다투어서 혹독한 평가를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노래이냐? 도대체 소프라노냐? 앨토냐? 베이스냐?"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그 혹독한 평가를 읽고서 통곡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에게 두 번 다시 노래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딸을 달래었습니다. "얘야, 너는 어찌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인정을 받으려고 하느냐? 도대체 너를 나쁘게 평가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느냐?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면서 너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느냐? 모든 사람들에게서 똑같이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한 생각이란다." 마리안 앤더슨은 어머니의 말에 다시금 용기를 얻어서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일하다보면 우리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소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모략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믿음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그 외양간이 더럽혀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깨끗합니다. 그러나 소가 있으면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무슨 비난을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바르게 믿으려 하고 열심히 충성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비난도 생기고 또 오해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서 똑같이 칭찬 받으려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사는 자들은 어떠한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람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후 4세기 중엽 크리소스톰이라는 유명한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무척이나 잘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몰려왔습니다. 크리소스톰도 핍박자들의 손에 붙들렸습니다. 그런데 핍박자들은 크리소스톰을 붙들어 놓고 어떻게 처리해야 될 줄을 몰라서 매우 고심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두 번 다시 입을 열어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매우 때려서 내보냅시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안됩니다. 기독교인들은 매를 맞으면 자기가 예수 때문에 핍박받는 것이라고 더 좋아합니다. 그러니 매로 때리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깊은 감옥 속에 종신토록 가두어 놓읍시다." 그랬더니 또 다른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안됩니다. 그러면 기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생겼다고 오히려 좋아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멀리 유배를 보내어 버리십시다." 그랬더니 또 다른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또 그곳에 가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그는 더 좋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따지지 말고 굶겨 죽이든지 불태워 죽이든지 빨리 처단해 버리십시다." 그 의견마저도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안됩니다. 그러면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예수 때문에 순교했다고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크리소스톰 한 사람을 처리하지 못해 엄청 고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군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어떠한 핍박과 시련도 하나님의 일군을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환난이 있습니까? 시련이 있습니까?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련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인내하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에 끝까지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 답게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쳔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감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영국 대부호 캐리씨에게는 죠지와 윌리암이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으며 장래가 크게 촉망되어 가문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형 '죠지'는 돈도 많이 벌었고 국회의원까지 되어 부자로서 정치가로도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출세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모두 마다하고 난데없이 인도의 선교사로 지망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놀라서 강력하게 만류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친구들은 '굴러 들어온 행운과 명예를 저버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비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대영 백과사전에 두 사람을 나란히 소개하고 있는데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무려 1페이지 반을 할애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나 죠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윌리엄 케리의 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케리는 자신의 명예를 얻기 위해 선교사로 간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와 명성이 예약되어 있는 길보다 그리스도인으로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영적 감격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순간 부와 명성을 떨치며 사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영원히 빛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은혜와 감격을 가진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샘솟듯 넘쳐 오르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바울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울은 무명한 자 같았습니다. 죽는 자 같았습니다. 또 근심하는 자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적인 평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울은 참된 사람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임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감격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감격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헌신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남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간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일군이다"라는 자부심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 감격 때문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환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감격 때문에 삭개오는 자기의 재산을 다 처분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감격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옥합을 아낌없이 예수님을 위해 깨뜨려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 이 감격이 우리의 감격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만이 누릴 수 있으며, 주님 안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놀라운 감격 때문에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지 마시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다윗의 신앙고백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바울 의식을 가짐으로 언제나 승리하며 살아가는 멋진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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