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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 살리는 고난에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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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10:7-15
◎ 제목 : 생명 살리는 고난에 동참하자 
◎ 설교 : 강재식 목사 (구미등대교회)


얼마전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해 너무나 많은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되었으며, 이로 인해 희생자 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죽은 아들의 유치원 졸업장을 든 채 오열하는 아버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딸의 장례식에 그 딸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는 어머니, 아내를 잃고 몸부림치는 남편등 죽은자들의 사연하나 하나가 우리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였습니다. 다시는 이런 인재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참사가운데서 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감동적인 사연이 있는데, 그것은 그런 엄청난 위험 속에서도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진 자들에 사연입니다. 그 중에는 학생들도 있고, 소방관들, 경찰들도 있었습니다. 다른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어떤이는 자기 목숨을 잃어버린 자도 있었고, 또 크게 다친 자도 있었습니다.
남의 목숨을 위해 고난을 스스로 자처하고, 죽음을 무릅쓴다는 것은 참으로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이는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하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을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기도 하는 각박한 생활 속에서, 남의 목숨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인생은 너무나 귀하고, 값진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십시오. 그 분은 이 땅에 태어나신 목적 그 자체가 당신의 목숨을 희생시켜 이 땅에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고, 그의 생애는 자신을 위한 삶은 하나도 없고 온통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만 있었습니다.
결국 그 분은 죄가 없으시면서 온갖 고초와 멸시와 천대를 받고 결국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생애를 마칩니다.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였습니다.
예수 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해 생명을 버리노라"(11)
그리스도의 엄청난 고난과 아픔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순절은 바로 우리를 위해 엄청난 고난과 희생을 치르신 예수 님의 고난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그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 은혜를 느끼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보면 서구에 교회들을 보면 십자가를 만들어 짊어지고 행진을 하기도 하고, 손에 못은 박아볼 수 없으니까 바늘 같은 것으로 찔러 보면서 예수 님의 그 고난이 얼마나 아팠던가를 자청해서 경험을 해 봅니다. 또 금식을 하면서 고난에 참여하면서 깊이 죄를 회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값진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헌신의 계기로 삼습니다. 물론 좋습니다. 사순절을 의미있게 보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사순절의 경험은 예수 님처럼 고난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우리 또한 고난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님의 고난으로 인해 생명을 살린 것과 같이, 우리도 사순절의 경험하는 고난을 통해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고난을 경험해야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요?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고난에 대해서 현실적이고 실리적으로 접근해 나가보도록 합시다.

우리 시대에 현실적으로 큰 고통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어떨 때 괴롭고 힘듭니까? 병이 들었을 때입니까? 사고로 몸을 다쳤을 때입니까?
뭐니뭐니해도 현실에 큰 고난은 돈이 없을 때입니다. 병이 들었을 때 돈이 있으면 치료라도 할 수 있습니다. 병이 들었는데 치료비가 없으면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병이 들지 않아도 돈이 없으면 괴롭습니다. 실패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 다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고통은 돈이 없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것이 고통이고 고난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스스로 내어놓는다면 그것은 고난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 돈을 주님을 위해 내오 놓으면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돈을 내어놓으면, 거기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벌이는 사업이 무엇입니까? 성전건축입니다. 성전건축의 목표는 영혼추수 즉 생명 살리기 위해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돈을 성전건축을 위해 내어놓음으로 고통을 스스로 경험하고, 그 돈은 성전건축에 쓰여져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순절 기간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성전건축을 위해 물질적인 헌금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생명 살리는 일을 한다면 사순절의 의미는 더욱 값지지 않겠습니까?

사순절이 시작되는 이 주일에 저는 여러분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그 중에 한 가지이든 두 가지이든, 전부이든 여러분들의 마음의 감동이 되는대로,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대로 시행해 주시기 바라고, 꼭 이 방법만이 의미 있는 사순절을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재산의 일부 혹은 전부를 건축을 위해 헌금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의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요!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살리게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2.십의 이조하기입니다. 물론 십일조 하지 않는 분은 먼저 십일조하는 일부터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십일조 하시는 분은 이 사순절 기간에라도 십의 이조를 함으로 고난에 동참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생 하면 더욱 좋겠지만 사순절 기간만이라도 해 보시면 값진 고난이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3.모든 씀씀이를 절약하여 건축을 위한 헌금을 드립시다. 한끼 금식하여 그 값만큼 건축헌금으로, 그것이 액수가 적다고 부끄러워 말고, 봉투에다 "한끼 금식하여 건축헌금 드립니다"라고 적어 드리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반찬 한가지 줄여 건축헌금 드립니다." "외식을 포기하고 건축헌금 드립니다." "옷 사 입을 계획을 포기하고 건축헌금 드립니다." "고기대신 나물 먹고 건축헌금 드립니다"등 최대한 씀씀이를 줄여서 생명 살리기 위해 지어질 성전건축을 위해 드립시다.
사순절 기간에는 가능하면 모든 부분에 절약을 합시다. 사실 이것 또한 우리 생활에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이 고난을 감수하고 성전건축에 동참한다면 참으로 값진 사순절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고난 당해 주시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처럼, 우리가 스스로 작은 고난이라도 감수하므로 생명을 살립시다. 누구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큰 고난이든지 작은 고난이든지 따지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하고 멸망으로 향하는 불신자들을 생각하며 참여합시다.
우리가 이런 고난을 스스로 감수할 때 주님께서 더 크게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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