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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여, 짝지와 함께 즐겁게 사십시오 / 전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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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여, 짝지와 함께 즐겁게 사십시오
전도서 9장 9절
사직동교회 / 김철봉 목사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여러분의 담임목사는 결혼주례 200번째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김 기자집사님의 장녀 이 채진양과 그의 부군이 될 정 윤락군입니다. 저는 1981년 5월 16일, 서울 신문사의 한국 프레스센터 강당에서 황 치대군과 이 정희양의 결혼주례를 처음 맡았습니다. 그 때 저의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습니다. 참고로 저가 주례한 200여 쌍 가운데 단 한 쌍이 이혼을 하였습니다. 2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한 쌍도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 한 경우도 남자 쪽이 폭력 습관을 고치지 못하여서 자매가 견디다 견디다 더 못 견뎌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한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김목사가 주례를 서면 행복하게 잘 산다는 말들을 합니다.)
결혼 주례 200번째를 앞두고 있으면서 생각되는 바가 많습니다. 어쩌든지 부부들께서 짝지와 함께 즐겁게들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모든 부부들)께서도 남은 세월들은 더욱 즐겁게들 살아가시기를 참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왜 우리 부부들은 짝지와 함께 즐겁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말씀이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허무한 생애 동안......"

공감하십니까?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정말 허무합니다. 한시적입니다. 살아 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연들입니다. 어떤 부부가 저녁 잠자리에서 다투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는 생각에 아내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날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편의 식사도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어제 저녁에 다투었던 일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물론 아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회사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이 출근길에 중앙선을 침범하여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 현장에서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출근하였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아내는 그 날 아침 남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상도 차려주지 못한 채 떠나 보냈다는 죄책감 속에서 오늘도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부부가 있습니다. 몇 년을 준비하고 기다린 끝에 겨우 직장을 얻은 남편이 첫 출근을 하던 날, 이게 웬 일입니까? 골프 연습장 울타리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데 하필이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골프공이 이 남편의 머리를 강타하고 만 것입니다. 현장에서 바로 사망하였습니다. 그 아내는 지금까지도 남편의 급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데리고 몹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정확하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허무한 세상입니다. 한시적입니다. 뜻밖에 너무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혼생활을 즐겁게 영위하라고 합니다. 어영부영 하다보면 세월이 금새 지나가 버립니다. 이 땅위에서 허락 받은 시간이 얼마나 될는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지나갑니다. 짧습니다. 헌신과 희생으로 몸 아끼지 않고 키웠던 자식들과 손자 손녀도 어느 덧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야 하니 부부는 어느덧 고독과 허전함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즐겁게 살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본문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네가 사랑하는 네 아내와 생을 즐겨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꼭 남편에게만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함께 즐겁게 살려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부부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모범 사례들을 찾아서 배워봅시다. 저는 이 방법이 가장 좋다고 확신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부부간에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아내입니다. 노아의 아내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신앙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들의 시대도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죄악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불법과 무법을 예사로 일삼았습니다. 믿는다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인간적으로 계산해보고 이득이 된다면 불신자와의 결혼도 예사롭게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 부부는 믿음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자녀들을 철저히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세 아들 모두를 믿음으로 결혼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대홍수를 예고하시면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 때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 짓는 일에 무려 120년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세 아들도 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노아의 아내는 변함 없이 무려 120년 동안 그 뒷바라지를 해내었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방주 짓는데 온종일 매달려야 했습니다. 노아의 아내는 세 자부들과 함께 쉴새없이 음식을 만들어 날라야 했습니다. 그러자면 농사도 지어야 하고, 목축도 했어야 할 것입니다. 무려 120년 동안을 말입니다. 남편과 고생을 함께한 것입니다. 홍수 후에도 끝까지 부부는 고락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노아는 950년을 살다가 별세합니다. 이 기나긴 세월동안 노아 부부는 결혼할 때 다짐했던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변치 않고, 지켰던 것입니다. 노아 부부의 사랑은 아내 쪽의 헌신과 희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입니다. 이 부부의 사랑은 참으로 각별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아내"라고 여겼다기보다 평생 누이동생처럼 사랑하고 아껴주고 돌보았습니다.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사라는 투정이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남편 나이 100살이 가까워 오는데도 자식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남편 아브라함은 어질고 어질어서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라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몸종 하갈을 억지로 남편에게 보냅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하나 태어났습니다. 창세기 16:2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아내 사래가 말한 대로했습니다." 몸종의 몸에서 남편의 아이가 태어났으니 여성으로서 사라의 심리가 예민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창세기 16:5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래가 남편 아브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고통을 겪는 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이로 보아 사라가 질투심 많은 여성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내의 투정을 받아주었습니다. 아내의 결점을 덮어 주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이 고향(갈대아우르)땅을 떠나올 때 사라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아브라함과 혼인은 하였으나 매우 어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항상 측은히 여겼습니다. 자신을 만나서 너무 많이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갈대아에서 메소포타미아(하란, 밧단아람)로, 애굽으로, 네게브로, 그리고 가나안땅으로 끝없이 먼길을 옯겨 다녀야 했으니 사라가 여성의 몸으로 얼마나 고충이 많았을까를 아브라함은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따스함과 자상함이 있었기 때문에 사라는 남편을 존경하고 신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부부의 사랑은 남편 쪽의 아량과 넓은 사랑이 그 비밀의 열쇠였던 것입니다. 창23:2은 그 점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삭과 리브가부부입니다.
남편 이삭은 아내 리브가에게 끝까지 성실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이삭의 나이 40세였습니다. 부모님이신 아브라함과 사라는 얼른 손자를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과 리브가 부부가 아들을 낳은 것은 결혼한 지 20년만인 이삭의 나이 60세 되던 해였습니다.(창25:20-26) 고대 사회에서 남자들은 자식을 빨리, 할 수 있는 한 많이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자식이야말로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얻기 위해 아내를 더 두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되고 용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내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해도 아내를 멸시하거나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소중히 여기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임신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삭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아져도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아내만을 사랑하였습니다. 아내만을 사랑하는 것은 의무이자 축복입니다. 아내 리브가는 처음부터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시집왔습니다. 이삭 쪽에서는 엘리에셀이 사람들을 데리고 리브가를 선보러 갔습니다. 엘리에셀은 처녀 리브가를 직접 만나서 철저하게 선을 보았습니다. 다양하게 테스트를 실시하였습니다. (창24:15-25) 리브가는 자신의 모든 면을 다 보여준 셈입니다. 아름다운 용모, 민첩함, 부지런함, 지혜로움, 손님들이 타고 온 약대에게까지 물을 먹여주는 섬세한 손길과 사랑이 넉넉한 본성, 깊은 우물을 겁내지 않고 내려가서 물을 퍼 올리는 용기와 담력.... 엘리에셀은 주인아들 이삭의 배필감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완벽한 규수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반면에 규수 리브가로서는 신랑감이 될 이삭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엘리에셀이 이삭의 사진을 가져올 리도 없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생긴 남자인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창24:26,27,48)만을 믿고 시집왔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삭과 리브가부부의 사랑은 "성실과 믿음"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하여 지극히 성실하였고 철저히 신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부부들이시여! 짝지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는 분복입니다. 부부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수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고생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바울사도도 이렇게 실토합니다.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7)" 창세기 3:17절에는 아예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수고와 고생"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은 인간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므로 인간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사람이 이 땅위에서 일평생 먹고사느라고 자녀 키우고 교육시키느라고 땀흘리고 수고하는 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달픈 인생입니까? 이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자 결혼을 통하여 부부 되게 하시고, 가정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가 함께 지혜를 발휘하여 즐겁게 살아가라고 축복하고 계십니다. 어떤 부부는 함께 지혜를 발휘하여 말을 채우는 퀴즈대회에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사회자의 설명을 먼저 들은 할아버지가 자기 짝지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나하고 당신하고 무슨 사이지?" 그러자 할머니는 기다릴 필요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합니다(무엇이라고 답을 했을까요?)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는 다시 문제를 설명합니다. "그것말고 그런 말이 있잖우? 두 자 아니고 넉자로 된 말 말이우!" 그러자 알았다는 듯이 할머니는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큰 목소리로 시원시원하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평생웬쑤!..." 사실 정답은 천생연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들이 짝지와 함께 즐겁게 살지 못한다면 해 아래서 수고롭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생이 너무나 힘들고 불행하고 비참하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즐겁게 살다간 신앙 조상들의 부부생활은 서로 헌신하고, 희생하고, 아량과 관용으로 그리고 서로에 대하여 성실과 믿음으로 대해준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고달픈 이 땅위에서 그 어떤 부부와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는 부부사랑을 가지고 즐겁게 살다가 갔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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