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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소금입니까? /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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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은 소금입니까?
본문 : 마5:13-16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지난 금요일 회의가 있어서 어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평소에 인지하고 있던 일이지만 왜 그리 충격적으로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분이 '요즘은 차량에 교회이름을 달고 다니면 그 차량을 긁어버린다'는 예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목사님 또 당신이 다른 곳에서 목회를 할 때 그 교회의 사찰 집사님이 동네에서 좀 까다롭게 굴었더니 어느날에는 목사님 차량이고 뭐고 백 미러를 다 부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없는 시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요즘 전도하기가 어려운 때를 맞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가 왜, 있는 것입니까? 교회에 교인들 채우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다고 말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 성도가 세상에 있는 것은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어둠이 있는 곳을 환하게 비추고 부패가 있는 곳에 방부제가 되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과연 세상에 빛이 되고 있는 지. .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바른 교회,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기만 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도들로 말미암아 당시의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사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의 힘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세상은 진짜 그리스도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문제는 분명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신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그의 설교“Almost Christian”에서 “almost”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참이아닌, 진실이 아닌 거의, 대체로, 그리스도인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진짜보다 더 좋게 보이는 가짜들이 판을 칩니다.
어떤 상품이 잘 팔리면 유사 상품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나옵니다.
신발, 의류 등 비슷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그럴듯하게 생긴 정말 값싼 물건들을 봅니다. 상표들을 보면 아디다스가 아니고 아디도스, 폴로가 아니고 팔로입니다. 어떤 제품이 히트를 치면 금방 복제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증마크를 땄다느니, AS가 가능하다느니 그럴 듯 하게 광고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싼 것이 비지떡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사종교, 유사신앙이 많습니다.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40이 넘은 어른은 어른 노릇을 잘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 노릇 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사는 답고, 장로는 장로답고, 선생은 선생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런 말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신분에 걸맞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을 부단히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짜 그리스도인입니까? 거듭난 그리스도인 입니까? 아니면 단지 일생의 복락을 위해서 교회만을 다니고 있는 명목상의 교인입니까?
'주일날 성전에 나와 예배하면 그리스도인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 안나가도 '세상에서만 바르게 살면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첫째는 주님의 날, 주님의 집에 나와서 예배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예배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신다는 확신입니다. 이 믿음 없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와 세상에서의 삶 이 두 축이 살아 있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소용이 없어 밖에 버리워 밟히게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그렇다면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마치도 아무 효능이 없는 알약을 환자에게 먹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 가짜 알약들이 수없이 수입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효력도 없는 . . .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알약과 같은 것입니다. 약을 투여하면 효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말씀을 주신 것은 세상이 그 만큼 부패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썩지 않게 해야 할 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냉장 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열대 기후에서는 소금이 하는 역할은 더욱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2. 세상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을 찾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는 맛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맛이 무엇입니까? 바로 거룩한 사랑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는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소금이나 빛은 자기를 녹이고 태워야 합니다. 소금이 부패를 방지하려면 자신을 소모시켜야 합니다. 만약 소금이 쏟아져 녹아지지 아니하면 단지 식탁 장식용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국 언론재단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종교인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언론재단이 작년7월말부터 한달여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성인남녀 1200명(18세 이상 65세 미만)을 상대로 1대1 대인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사회집단 중 종교인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는 응답은 1.3%에 그쳤습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치인(56.1%)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언론인(9.6%) 관료(9.2%) 기업인(7.5%) 시민운동가(6.0%) 법조인(3.2%) 의료인(1.6%) 교육자와 노조(각 1.4%) 순이었으며, 종교인은 군인과 함께 1.3%에 불과했습니다.
이같은 결과는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종교지도자가 드물고, 종교의 사회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사회가 종교인들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권력이 있다고, 재정이 튼튼하다고, 똑똑하다고 영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향력은 향기이며 감동이며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영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감동을 주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러셀은 세상에는 물리적인 힘, 경제적인 힘, 영향력 등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선교 2세기를 향해 영향력이라는 종교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 힘은 하나님 말씀의 실천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생활에 옮기느냐, 즉 실천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 훈련을 연마해야 세상에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J. J. 톰슨 Joseph John Thomson 1856∼1940. 영국의 물리학자.
전자를 발견함(1897)으로써 원자구조에 대한 지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공헌하여 19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밑에서 공부하던 제자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열일곱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무더기로 노벨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이 맛을 낼려면 음식속에서 녹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녹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 주장, 자기 이익을 끝까지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자체로서는 별로 사용할 곳이 없습니다.
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부패' 그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접촉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타협을 하면 그 시로 맛을 잃어버리지만 세상속에 녹아지면 그 효력을 바로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윌로우 크릭교회 빌 하우벨스 목사님은 소금은 우리의 인체에 갈증을 유발시키듯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영적인 목마름을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반드시 옆 사람에게 은혜의 목마름이 일어나게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옆에가면 '나도 기도해야지'하는 목마름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수십년을 교회다닌 사람이라도 영적인 목마름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믿은지 물과 몇 개월 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옆에가면 거룩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영적 목마름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한번 보십시오. 영적인 목마름이 일어나는 지. . . .
여러분들은 영적인 목마름을 유발시키는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순수한 믿음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소금이 왜 맛을 잃어버리는가?
불순물과 결합되면 맛을 잃어버립니다. 순수한 소금이라야만 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소금이 부패를 방지하듯이 부패한 사회와 문화와 역사 속에서 세상을 쫓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생각과 삶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패에 동화되지 않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바르고 정직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세상과 분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소금은 햇빛에 노출되면 맛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맛을 잃어버리면 길바닥에 버립니다. 또 길바닥에 버려진 소금은 맛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언제 맛을 잃어버립니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세상과 타협하면 맛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오늘날 참 안타까운 것은 소금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소금처럼 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개혁을 외치면서도 썩어가고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아담처럼 하나님을 피하여 범죄하고 화요일에는 가인처럼 이웃과 형제를 죽이고, 수요일에는 다윗처럼 간음하고, 목요일에는 아간처럼 도둑질하고, 금요일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처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토요일에는 가룟유다처럼 주님을 배반하고 또 주일에는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맛잃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유는 건강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신앙이란 어떤 것입니까? 바른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주되심의 고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하는데 주되심의 고백적 삶이 없는 것입니다. 삶속에서 언제나 내가 주인이 되어있는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주인입니다. 자기 맘대로 삽니다.
두 주인을 섬깁니다.
요일2장15절에“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주인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을 섬길 대상이 아닙니다.
눅16:13에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는 예수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가장 아름다운 관계 올바른 관계 훌륭한 관계는 주님은 내 인생에 주인이고 나는 순종하는 종이 되는 겁니다.
흔히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이렇게 믿음을 가르치고 믿음만을 강조하다 보니 생활을 덜 강조하고, 무관심하고, 마음과 입으로 외치는 믿음만을 너무 앞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생활윤리는 믿음 만큼 중요합니다. 믿음보다 생활이 조금도 덜하지 않습니다. 오른 손과 왼손의 중요성 만큼 중요합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만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름 값을 하란 말입니다.
또 사회에 대한 책임감, 역사의식, 즉 사회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개인구원 뿐만이 아니라 병든 사회를 바로 잡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할 뿐 아니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잘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사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지켜가고 발전 시켜가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둡고 캄캄하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캄캄하고 절망적입니다. 영적으로 어둠과 죽음 가운데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의 세상주관자인 사단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어떻게 해서든지 차단하려고 발악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빛의 역할은 어둠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밝게 하여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참이 무엇인지 보지를 못합니다. 어둡기 때문입니다. 온세상이 캄캄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이 세상 한복판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챤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거짓은 들통납니다. 그리고 비로서 잘못이 잘못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빛의 사명입니다. 등불은 빛을 발하기 위해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은 이기적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희생, 자기헌신, 그리고 자기 부정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참 그리스도인이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의 자기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날마다. . .
나는 과연 소금인가?라는 이 물음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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