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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 히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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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본문 : 히브리서 11:20
설교자 : 김형준
 
 
얼마 전 우리 교회 청년이 제게 재미있는 퀴즈를 내었습니다. 저는 답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맞추지 못할 것으로 알고 해답과 함께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연령대별로 여자들의 화장을 말하는 다른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10대가 화장하면 꽃단장,
20대가 화장하면 치장,
30대가 화장하면 과장,
40대가 화장하면 분장,
50대가 화장하면 위장,
60대가 화장하면 변장,
70대가 화장하면 환장이라고 한답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습니다만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서 젊음이나 아름다움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모두가 경험하는 젊음이지만 잘 간직하고 가꾸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움을 말해줍니다.

한 때 잘 살았던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힘든 유산을 물려받고 있습니다. 비단 나라 뿐 아니라 개인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때에 살면서 누렸던 귀한 것을 자녀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음은 분명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이삭의 인생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도, 이렇다 할 이적과 기적도 없는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믿음의 영웅들이 등장하는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할 만큼 특징적인 이유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을 두고, 특별히 믿음을 잇기 위해 후손들에게 축복하는 모습을 두고 믿음의 선조로 소개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았던 믿음의 유산과 놀라운 은혜를 잘못 쓰지 않고, 더욱 귀하고 존귀하게 만들어 죽을 때는 두 아들에게 물려주는 모습은 정영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가르쳐줍니다.

전쟁으로 얼룩지고 때로는 이방 세력에 의해 점령당했던 한반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45년의 역사 가운데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과 더불어 복음의 나라로 세계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는 심각한 위기 속에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유했고 누렸던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기 위해 이삭이 가졌던 믿음으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이삭의 믿음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삭이 소유했던 믿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에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따라 행동합니다. 축복의 행위도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릅니다. 자녀들을 축복하겠다는 의지나 소망으로만은 되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목사임을 알기에 이 자리에 서서 말씀을 전하고, 찬양대원들은 자신이 찬양대원임을 알기에 성가대 석에서 찬양을 드립니다.

이삭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언제 알 수 있었습니까? 창세기 22장 16절에서 18절 말씀, 자신의 죽음 직전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이삭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복을 계승한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복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창세기 26장 24절에 주님은 이삭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을 번성케 하리라” 그리하여 이삭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면서 자신이 믿고 있던 바를 알려줍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굴복하여 네게 저주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들은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자녀를 위해 복을 빌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 때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저 애굽 땅 종 되었던 저들을 이끌어 내기 위해 너를 사용해야겠다.” 하실 때, 계속해서 거절했던 이유를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는 목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어 그를 세워 주시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낼 지도자로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신을 보혈의 피로 살리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피조물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 전하시고자 계획하셨음을 알았기에 자신 있게 살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탈봇 신학교 교수 닐 앤더슨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란 단순히 용서받고 천국에 가고 성령을 받고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적 신분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은 성도이며 영적으로 거듭난 자녀이며 하나님의 걸작품이며 빛의 자녀이며 하늘의 시민입니다. 당신의 신분이 누구이냐에 따라서 당신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계속해서 증거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10절,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일을 하도록 거듭난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13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 감이니라. 너희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삭이 아들들을 축복한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았기에 가능한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인생을 마감하기 전 자녀들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인생의 여정에 고난이 많았지만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믿음으로 주저앉지 않고, 오늘 더불어 사는 가족과 이웃을 축복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비전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남을 축복하는 일은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는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할 때 그가 묻힐 땅 한 평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잘난 사람이어서 아들들을 축복한 것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닙니다. 은금을 가진 부자이기는 했지만 큰 땅덩이 위에서 그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분을 알았기에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축복하는 부모가 되셔야 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사셔야 합니다. 좀 전에 인사할 때 옆에 있는 분들에게 “평안하십시오!” 웃으며 인사했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나의 입술로 선포하는 것에 축복권을 주셨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인사한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왜 이런 확신 없는 인사가 되고 맙니까?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의 통로라는 것을 깨닫고, 선포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축복하는 삶 속에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은 이어집니다.

둘째,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이어줄 수 있었던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돌이켜 결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결단의 믿음이 바로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에 ‘에서와 야곱’이 아닌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다고 나옵니다. 야곱이 아닌 에서가 먼저 되어야 함을 알지만 성경은 굳이 ‘야곱과 에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결혼을 했으나 아이가 없었습니다. 리브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뱃속의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겁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여쭤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복중에 두 국민이 있구나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하십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둘째인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 에서를 더 좋아했고 에서에게 복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했던 이유는 에서가 사냥해 오는 고기로 만든 요리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자기 육체의 욕망과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줄도 모르고 에서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께로 갈 때가 다 된 줄 알고 에서에게 사냥해온 고기로 해주는 요리를 먹고 축복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 때 리브가는 듣고 야곱에게 말한 뒤 준비한 요리를 가지고 에서처럼 위장시킨 후 이삭에게 들입니다. 이삭은 이미 나이가 많아 눈이 멀었습니다. 이삭은 에서인줄로만 알고 축복해주었습니다. 조금 후 진짜 에서가 들어왔을 때 이삭은 깜짝 놀라 전율하며 “방금 왔다간 자는 누구냐?” 물었다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야곱이 이미 다녀간 것을 알게 된 에서는 방성대곡하며 울었습니다. “아버지, 나에게 축복해 주세요.” 그 때 이삭은 마음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삭은 받아들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복 주기를 원했던 에서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기에, 그곳에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을 떠나게 되었을 때 정식으로 야곱을 다시 축복합니다.

살다보면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보기에 저것이 옳습니다!’ 라고 하지만 하나님 뜻 앞에 나를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복을 열어갑니다.

엘리 제사장을 보십시오.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녀를 사랑함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았지만, 엘리는 돌이키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굽히지 아니했습니다. 그러자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루아침에 전쟁터에서 죽고 며느리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자신은 그 소식을 듣고 목뼈가 부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축복을 이어주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상충될 때,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뜻과 내 뜻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이것만은 안 된다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을 때 주님은 우리 삶의 결단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어가십니다.

셋째, 축복을 이어가는 이삭의 믿음은 자신의 지경이 넓어짐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을 보면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바라보던 일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바로 땅의 소유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그가 머무는 땅은 그랄로 애굽 국경지역에 있던 조그만 땅입니다. 비록 부자였지만 팔레스타인 전체에 비해 조그만 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모든 땅을 이삭과 이삭의 자손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꿈이 그에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넓은 땅이 자신의 소유가 될 것을 기억하고 미래에 될 일을 바라보며 선포합니다.

땅 다음에는 자손입니다. 그가 지금 축복하는 사람은 두 아들 뿐이지만, 이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이 될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또한 후에 올 자손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주실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에는 많은 땅을 가지지도 수많은 후손들이 있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꿈과 비전에 의지하여 그 땅과 자녀들에게 임할 것을 바라보며 축복하는 이삭은 믿음의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을 회복과 치유가 있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저는 가끔 빈 본당에 올라와 기도하며 상상합니다. 본당에 꽉 찬 성도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말씀 속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낙담하고 절망했던 사람이 다시금 인생의 의미를 찾고 질병에 걸린 사람이 낳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관계가 부서졌던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의 역사가 넘칩니다. 찬양할 때 온 성도가 일어나 찬양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지친 영혼들이 다시 힘을 얻어 자기 길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꿈꿉니다.

불가능한 이야기 같습니까? 찬양할 때 움직이지 않고 표정은 굳어있고 입술은 크게 열지 않는 성도들을 바라보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시는 하나님임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라 확신합니다. 2부 예배를 찬양예배로 드리면서 교회의 오랜 전통과 연세 많으신 장로님과 어른들을 생각하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이미 찬양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SK 주유소 땅을 보면서도 10층, 11층 건물을 상상해봅니다. 우리 교회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많은 청년들이 장소가 없어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부서를 늘리지 못하는 청년의 나래를 저 넓은 공간 속에서 펼치며 함께 모여 말씀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과 또한 선교사로 훈련 받고 나가는 등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합니다. 우리의 청소년들과 아이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왔다 갔다 하며 헤매고 있지만 빌딩이 세워질 때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꿈을 이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저 공간을 통해서 장애인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대해 왔노라고 고백하는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꿈꾸고 미리 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 때문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심을 믿는 자들이 이 자리에서 나눈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을 가지고, 각자의 가정과 직장으로 돌아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구하게 되도록 저는 기대합니다. 소망합니다. 바로 하나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비전을 보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바라보며 여러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삭이 바라본 ‘많은’ 땅, ‘많은’ 후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지어주신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처럼 양적인 땅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넓혀주시고자 하는 지경입니다. 복음의 영향력이 커지고 감사와 찬양, 축복의 영향력이 넓혀질 때에 저와 여러분을 통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놀랍고 귀한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인종 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1963년 워싱턴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today).'라는 연설로 희망을 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글을 인용하기 원합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편안한 날을 갖지 못했다. 앨라배마 감옥에 5번 투옥되었다. 내 집이 두 번 폭파되었다. 나와 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거의 며칠에 한번씩 받았다. 나는 칼에 찔려 거의 죽을 뻔 하였다. 더 이상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정직하게 말해서 나 자신이 의심스럽다. 정말 조용하게 살고 싶은 유혹을 시간마다 받는다. 그러나 이런 유혹을 받을 때마다 내가 힘을 얻고 굴하지 않는 원인은 우리 주님께서 너희가 나의 멍에를 메면 너희 짐이 가벼워 질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말씀 때문이었다. 나는 고통의 체험을 통하여 흑암이 얼마나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주님을 믿을 때 오히려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하였다. 나의 개인적인 불행은 나를 변화시키며 다른 사람을 고쳐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랑스럽게 나는 내 몸에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닌다는 말을 나는 이해한다.”

그가 가진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은 오늘 수많은 사람 속에 나눠지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신분을 기억하고 자녀에게 손을 얹고 일평생 함께하셨던 축복을 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선포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헛된 인생이 아닙니다.

내 신분이 누구인가를 다시 확인하십시오. 다시금 나의 뜻을 돌이키고 믿음의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축복의 통로로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믿음으로 응답하십시오. 더 나아가 지금은 보잘 것 없고 연약할지라도 나를 통해 이뤄질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바라보며 선포하고 증거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의 역사를 우리 통해 이어가실 것입니다. 그 일에 쓰임 받는 주인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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