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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눅 23: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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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 : 누가복음 23:39-43
제목 :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일찍이 빌리 그레헴은 이 시대 현대인들이 다섯 가지의 망상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1) 흥미, 쾌락문화를 행복의 유토피아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쾌락은 잠시는 좋을지 모르나 이후에는 많은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돈이나 많은 재물이 행복을 가져 다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삶의 편리함을 줄지는 모르나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 없이 우리 앞에 다가올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4)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5) 개인적인 헌신이나 믿음 없이도 종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큰 착각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 중에 착각입니다. 죄인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에 두 사람의 악질적인 강도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이 외경에 보면 한 사람은 디스마스라는 사람이고, 다른 이는 게스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스마스라는 강도가 구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습니까?


1. 이들은 강도였습니다.

강도라도 구원받는 것이 복음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즉,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하였습니까? 착한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강도라도 구원받는다고 말해주는 것이 성경의 복음입니다. 세상에 누가 강도를 좋아하겠습니까? 당시 극형인 십자가에 처형하여야 할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이 구원받는다고 말해주는 게 복음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에 거북스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생각부터 범죄하고 있습니다. 겉으론 거룩한 것 같고 신사같이 보이지만 실제 마음은 더럽고 추합니다. 생각부터 범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지 못한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간음이요, 탐심을 가지면 도적질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성결해야 합니다. 지킬만한 것 가운데 네 마음을 지키라 하십니다. 이 사람은 도적이라 하였으니 행동으로 남의 물건을 수없이 훔치고 강제로 빼앗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면서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도적 가운데는 1) 기회도적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11:1-5절을 보면 다윗이 기회를 악용하여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였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선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회를 선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30-37절에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기회를 악용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한적한 곳에 걸어가는 사람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을 해롭게 하였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은 기회를 회피하였습니다. 어려운 일은 하지 않기 위해 피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마리아 사람은 기회를 선용한 사람입니다. 이웃을 위해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다 드려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가까이 갔습니다.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싸매 주고 자기가 타던 말에 안장을 지워서 가게 한다는 다짐입니다. 기회 선용하는 자는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름 도적이 있습니다. 남의 이름을 갖고 내 것이라고 합니다. 열왕기하 5:2절에 게하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사의 이름으로 나아만에게 갔습니다. 엘리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언제 엘리사가 그랬던가요? 그렇게 말하지 아니 하였는데 그것을 자기가 갖고 싶어서 엘리사의 이름으로 자기가 소유하였습니다. 이후에 그가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름 도적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남의 글이나 그림을 복제하는 것 표절하는 이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이름도적입니다.

성물 도적이 있습니다. 말라기 3:8-9절을 보세요.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 도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재벌 록펠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어 미국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43세에 미국 정유 업계를 장악하였고 53세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불행하게도 알로페시아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먹는 것이라고는 우유 한 잔과 비스켓 한 조각이 그의 하루 양식이었습니다. 극도의 신경 쇠약에 걸렸고 공포증에 의하여 자기 주변에는 한시도 떼어놓지 못하고 경호원들이 지켜주어야 했습니다. 의사는 록펠러가 많이 살아야 1년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성경 읽을 것을 권면하였고 록펠러는 병상에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인생이 이게 아니로구나. 이렇게 세상을 마쳐서는 안되겠구나. 그렇게 깨닫는 순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을 정리하여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여 교회건축과 구제사업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의학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거기에서 개발한 것이 페니실린이었습니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던 그가 44년을 더 살아 98세까지 활기차게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서전에서 나는 10세에 주급 1불 50센트를 받고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 드렸더니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삶에 십일조를 가르쳐주신 대로 실천하였고 그 후 삶의 터전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나의 삶의 축복 받은 비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만이 죄인이 아니라 우리들도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복음을 발견하였으면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한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는 낮이라는 게 있고 밤이라는 게 있는데 무엇으로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제자가 대답하기를 저기 오는 사람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구분할 수 있으면 낮이고 구분할 수 없으면 밤입니다. 그렇구나. 한 제자가 말하기를 저기 동물이 소인가 말인가 알 수 없으면 밤이고 알 수 있으면 낮입니다. 다른 제자가 말합니다. 저기 서있는 나무가 밤나무인지 망고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으면 낮이고 없으면 밤입니다. 스승은 세 제자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이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르면 밤이고 이 사람이 분명 내 친구다 라고 알 수 있으면 낮이다. 여러분! 모든 사람이 내 친구이다.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다 라고 믿어지면 지금 낮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산다는 게 무엇입니까? 관계입니다. 나와 이웃과 더불어 좋은 관계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과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합니다. 예수는 내 구주이시며 내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 할 수 있으며 그분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에 그는 구원입니다.


2. 고통 중에 있기에 구원받아야 합니다.

신분으로 말하면 도적인데 도적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들의 형편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왜 그리 많은 고난이 있습니까? 무엇이 되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이 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여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 말씀입니다. 고난의 의미를 알고 해석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왜 고난이 옵니까? 세상의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라고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왜 유익합니까? 고난 중에서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회개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깨어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 이후에 반드시 축복이 있기 때문에 유익입니다. 아브라함도, 욥도 고난이라는 터널을 지난 이후에 축복의 광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의 기초공사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 왔습니까? 시편 기자의 말대로 “고난 당하는 게 내게 유익이라.”  이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서도 담대하여야 합니다. 고난 중에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초라하게 사는 노인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입니다. 가진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기쁘게 살아갑니다. 하루는 어느 분이 물었답니다. 할머니 어렵고 답답한 일이 없습니까? 그때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시험도 있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내가 당하는 어려움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기쁘게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있습니다. 고난이 있기에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3. 두 사람 강도가 다같이 예수를 비방하였습니다.(마 27:44)

군병들이 비방하였는데 (마 27:27-31) 군중들도 비방하였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도가 어찌 남을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들이 이렇습니다. 자기는 남의 말을 할 처지가 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을 헐뜯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인격적인 모독을 당할 때에 참지 못합니다. 기분이 매우 상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우리 주님을 비방할 수 있습니까? 군중들도 비방하였습니다. 이들은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남이 하는 말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행실을 통하여 예수님을 욕 돌릴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6절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였습니다. 월리엄 부드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들어다가 십자가에 못박는데 주님은 너무나 괴로워하십니다. 그걸 보는 월리엄 부드는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계속 히죽거리면서 예수님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참을 수 없어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네가 예수님의 몸에 못을 받는가라고 항의하려고 보니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 고꾸라져서 회개하고 통곡하다가 은혜를 받고 구세군의 창시자가 되었답니다.

오늘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나 자신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구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물론 한편 강도입니다.

구원의 은총은 어떻게 받았나요?


1. 자기발견입니다.

나는 마땅히 이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바로 보기가 어렵고 자기를 고친다는 게 힘든 일입니다. 누가복음 15:17절을 보면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은총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철저한 자기발견입니다. 자기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았구나. 이것이 회개라고 합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구원입니다.


2. 예수의 의를 믿어야 합니다.

안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강도도 예수는 의로운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안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미신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율법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십니다. 그런데 율법적인 설교를 합니다. 율법에 누가 감히 할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에 묻습니다. 너는 진실하였는가? 다음에는 깨끗했는가? 너는 진정으로 충성하였는가?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손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이 나타나면서 잠깐만 이 사람은 깨끗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일생동안 살아왔고 십자가 의지하고 살아왔다. 내가 그를 존중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다. 내가 그를 보증하여 주겠다 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하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가 깨우더랍니다. 그는 이후에 더 충성하는 종이 되었답니다.


3. 재림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면”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가 언제입니까? 우리 주님이 지상에 다시오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분명하게 다시 오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무려 518회 정도 나타나있습니다. 신약에만도 318회 정도입니다. 사람도 진실하다면 약속을 지킵니다. 우리 주님의 약속대로 분명 다시 오십니다. 강도노릇은 하였지만 그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재림의 주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재림에 대하여 시기를 알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모른다고 하였는데 알려고 하니까 사단에게 속습니다. 다만 깨어 있고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날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날입니다. 사모하며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성도입니다. 재림신앙을 가진 자가 구원을 얻게 됩니다.


4.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을 들은 강도는 기도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였습니까? 사람은 누구라도 기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잘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한다든지,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원합니다. 두 사람 강도가 다같이 기원하였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 게스타는 육신적인 것을 구했습니다. 너와 내가 함께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너무 귀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이가 삶을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치하는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백악관을 정치하는 집이 아닌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오늘에는 기도하는 집을 정치하는 집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반대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인류 최고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링컨에 대하여 거리 이름도 있고 명소도 링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링컨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이 무려 3,000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오늘의 시대를 보면 힘들게 보입니다. 절망스럽게 보인다고 합니다. 미국에 사는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은 위험한 나라라고 말들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내용이 육신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 내가 너무나 아파요. 고통을 면하게 해주세요. 그런 부탁이 아닙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해 주세요. 하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들 제가 두 가지를 묻겠습니다. 기도해 보셨나요? 배운 기도 남이 하는 흉내내는 기도가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기도해 보셨습니까? 육신적인 필요에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를 놓고 기도해보셨습니까? 이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가 육신을 위한 기도이면 하다가 쉽게 포기합니다. 영적인 사람, 기도의 사람은 계속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기도는 승리를 보장합니다. 루터 같은 이는 매일 새벽 두 시에 기도로 보내지 아니하면 그 날은 승리를 마귀에게 돌려주는 날이다 라고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50년 동안 말을 타고 다니면서 40만 킬로미터 를 여행하였고 4천 2백여회의 설교를 하며 2백 권이 넘는 저술한 사람 요한 웨슬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면 기도하였습니다. 건강한 사람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려면 새벽부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를 만났거든 먼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오고 실패를 체험하게 될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 전체가 흔들입니다. 그러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기도생활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하기 싫다든지,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든지 하는 말은 매우 위험한 말입니다. 기도의 힘이 생기면 인생은 승리하게 됩니다.

주님이 선언하십니다.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언급이 없습니다. 천국 가는 사람으로 선언하십니다. 천국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는 진리가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다는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민수기 21:4-9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렸습니다. 그들이 죽어갑니다.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리 뱀을 만들어 놓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바라보라 그럽니다. 바라보면 삽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평만합니다. 보는 게 쉬운 일 아닙니까? 믿음은 쉽습니다.
예수를 내 구주로 시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내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절의 말씀대로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자녀의 권세로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6:47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죄인 강도가 구원의 선언을 들으면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들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최고의 은혜를 받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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