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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문제 너머에 있는 길을 보는 사람 /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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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문제 너머에 있는 길을 보는 사람  (성완석 목사)
본문 : 사도행전 6장 1~7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사도행전 6장 1~7절


  철들 때가 되었는데도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실망시키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부모에게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믿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마음을 실망시키고 아프게 하는 교인이나 교회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으며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나 교회가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가깝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디에 가깝습니까? 사람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기를 소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며 우리 교회가 이런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지상교회 가운데 아무런 문제없는 교회는 없어요.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났던 초대 예루살렘교회에도 넘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부흥이 되는데, 문제가 생긴 거예요. 히브리파 과부들은 잘 구제를 받는데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구제가 잘 미치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불평과 불만이 나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팔레스타인을 떠나본 일이 없고, 팔레스타인 언어인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히브리파라고 나온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헬라파라고 나온 사람들은 해외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몇 세대를 걸쳐 팔레스타인 땅 밖에서 살면서 모국어인 아람어는 잊어버리고, 당시 이방세계의 공통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월절이나 오순절의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왔다가 복음을 듣게 되고, 교회를 알게 되어서, 떠나지 않고 예루살렘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토박이들은 잘 구제를 받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구제를 못 받더라는 거예요. 그 일 때문에 신경을 쓰고 그 일에 매달리다 보니까 사도들이 기도 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일에 소홀해 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일을 맡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기 위해 일곱 집사를 뽑은 거예요. 직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눈이 되라고 주님이 세우시는 거에요. 세움받은 자리가 무엇이든지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하므로 주님 기뻐하시고, 교회가 더욱 건강해지기를 축원합니다. 

  교회 봉사를 하다보면 반드시 넘어서야 할 문제가 생깁니다. 제일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요? 안하면 그만입니다. 제일 쉬워요. 안 보면 되고, 그만 두면 됩니다. 부부간에도 문제가 있습니까? 해결하기 어렵습니까?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갈라서면 모든 문제 해결됩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문제 때문에 중단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문제의 해결에는 수고가 따르고, 고생이 따르고,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지마는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곳에 더 큰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불평이 나오고, 불만이 생길 때 본질로 돌아가는 위대한 결단, 이것이 중요합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결단이 있었기에 자신도 살고, 주변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믿는 사람이 날로 많아졌어요. 심지어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를 믿게 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동일한 은혜가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 교회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주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 되어지고, 우리 교회가 주님께 칭찬받고, 누구나 다니고 싶어하는 이런 좋은 교회, 복된 교회가 되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제가 처음 부임할 때, 5년 전에는 저보다 연세가 많았던 노년층이 더 많았습니다. 한눈에 봐도 목사가 젊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전체적으로 보면 저보다 젊은 분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가 연세드신 분들과 젊은 분들이 골고루 갖추어졌다는 말입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확실히 연령층에 따라서 취향이나 생각이 다릅니다. 목사가 목회를 해 나가면서 맞추어 나가야 할 폭이 더 넓어졌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과 취향에 100% 안 맞는 일들도 있을 거예요. 서로 보완해 나가고, 기도로 이겨나가는 곳에 주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좋은 교회 되려고 하면 먼저 내가 좋은 일꾼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의 전제조건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되어지고, 내가 주님 인정하실만한 사람되어지고, 내가 주님 기뻐하시는 자리로 나아갈 때에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고 부흥도 됩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고 하면 목사로부터 어린아이까지 계속해서 영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바꾸어지고, 변화되어 가야합니다. 완성은 없어요. 죽을 때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부터 병들게 되고 질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주님 닮아가려는 믿음의 자세만큼은 잃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는 좋은 일꾼의 표준을 말씀하고 있는데 성령충만한 사람, 지혜 충만한 사람, 칭찬받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 되야 합니다. 다른 말로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지식이나 재능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중히 여기시는 일에 쓰임받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 믿은지 오래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성령 충만하고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의 비결이 다른것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기도가 우리를 영의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살아있는 말씀을 제대로 전하고 말씀을 제대로 받으면 거기에는 우리의 속사람이 꿈뜰거리며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때 안 되는 것 같지만, 미련스러운 것 같지만, 결국은 되고야 마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야 말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지역에 세워주신 강단들이 살아있는 말씀을 토해내고 우리의 불붙는 기도의 헌신들을 통하여서 다시 한번 이 지역에 부흥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고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복된 환상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무장하면 가정의 미래가 달라지고 교회의 앞날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1790년 영국 정부에서 식민지였던 남양 군도의 하나인 피트카린(Pitcarin)섬에 나무를 심기 위해 죄수 백여명을 파송했는데, 이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반역을 일으켜 선원들과 관리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기들끼리 원주민 여자와 동거하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영국정부는 나풀레옹과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이 사건 자체를 잊어버린채 약 30년이 지났습니다. 영국의 어느 배가 우연히 그 섬을 지나다가 들러보니 섬이 지상낙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도둑이 없고, 감옥도 없고, 술도 없는, 말 그대로 천국 같은 섬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주일이 되면 모든 주민이 다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반란을 일으길 때, 관리들을 다 죽여놓고 각자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자연히 싸움이 일어났고, 싸울 때마다 중재해줄 사람도 없고 법도 없어서, 누군가가 죽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어떤 사람이 열대 식물의 즙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술을 마신 다음부터는 싸움이 더 자주 일어났고, 더 치열해진 거예요. 그래서 섬 분위기가 온통 술취하고 싸우고 죽고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애덤스라는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가 막힌거에요. 자신도 술 마시고 싸우고 살인하던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어른은 물론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소망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옛날 자기 가정이 생각났고, 떠날 때 어머니가 주셨던 성경책이 기억나서 옛 가방을 뒤져 성경을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심령이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큰 은혜를 체험하고 새사람이 된 애덤스는 자신이 체험한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바로 살기를 권하였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글을 가르쳤습니다. 무정부 상태이던 섬에 질서가 잡히고 예배당이 서고 학교가 섰습니다. 애덤스가 섬의 목사요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지옥 같았던 섬이 천국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은혜받고 달라지니까, 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니까 주변이 달라진 거예요.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멘! 지금 우리 시대가 여러 가지 면에서 바로 살기가 참 어렵지마는 말씀의 능력을 회복하기만 하면 나도 달라지고, 자녀도 달라지고, 가정의 앞날도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깨달음과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가 영권을 잃으면 그 교회에는 내리막길의 재앙이 옵니다. 점점 힘을 잃고 소멸해 가는 거예요. 우리 교회를 제일 잘 알수 있는 자리는 기도회 시간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합니다. 불편한 환경이나 피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피와 땀을 흘리면 삶의 현장에서 승리의 열매들을 거두게 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의 앞날이 이 지역의 앞날이 나의 믿음과 나의 기도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속성이라는 것이 가정도 어려울 때는 한 마음으로 열심히 삽니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남편도 아내도 힘쓰고 애씁니다. 당면한 문제를 놓고서 기도합니다. 은혜도 많이 받고 응답도 체험합니다. 그러다가 아무런 문제가 가정에 없을 때, 남편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되고, 자녀가 비뚤어지기 시작합니다. 문제를 빨리 벗어나면 좋습니다. 문제없이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맑은 날만 계속되면 그곳은 사막이 됩니다. 문제가 없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다윗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심각한 죄를 지었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가 쫓기며 고통을 당했을 때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없었을 때, 자신에게도 나라에도 어느 정도 안정이 왔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살게 되고 부하게 되고 모든 문제가 없을 때에 신앙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길을 갈때가 많았어요. 건강 문제도 그래요. 갑자기 죽는 사람 보면 신체도 좋고 건강 때문에 걱정 안 해본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을 타고난 사람들은 몸을 함부로 씁니다. 오히려 비실 비실한 사람이 오래 살아요. 몸이 한두군데 아픈 사람은 조심하고 관리하게 됩니다. 내 인생에 문제가 있습니까? 내 가정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 때문에 손해보는 인생 되지 아니하고 문제를 이겨 나감으로 더 강건해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 받으면 능력 받고 성령 충만하면 나도 행복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해 지는 거예요. 심령에 은혜가 메마르면 강팍해져서 서로 공격하고 서로 상하고 서로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큰 문제이든지 작은 문제이든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여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찮은 문제였는데 잘못 생각하여 개인의 인생이 힘들어 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고, 큰 문제가 있어도 믿음으로, 지혜롭게 잘 풀어 나감으로 더욱 든든히 서가는 가정과 교회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서로 진실을 회복하고 마음이 통하면 의외로 쉽습니다. 미국의 달라스 신학교 총장을 지낸 유명한 설교가인 척 스윈돌 목사가 한번은 "그리스도인은 교통신호부터 철저하게 지켜야한다" 설교를 했는데, 교회에서 나와 집으로 운전하다가 깜빡 다른 생각을 하면서 신호를 위반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의 같은 때 교인 한 분이 지나다가 목사님 차가 신호위반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안하지만 모른척하고 돌아갔는데, 전화가 와서 다음 날 점심 때에 만나자고 하더랍니다. 약속은 해 놓았는데, 걱정이 되어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다음 날 식당에 가보니 그 교인과 다른 교인 몇 분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목사님이 준비한 목걸이를 차고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나는 죄인입니다" 교인들이 많이 웃었어요. 그때 목사님은 다시 뒤로 한바퀴 돌았는데, 등뒤에 뭐라고 써 놓았느냐 하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나를 치라" 사람은 연약한 거예요. 잘못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변명하고, 정죄하고, 찌르고, 나누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습니다. 해결이 되지 않아요. 문제를 넘어서서 볼 것을 보고, 본질로 돌아가서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붙들어 주며, 서로 감싸주며 사는 사랑이 우리 가운데 더욱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좋은 교회 되어지는 환상을 보며, 좋은 교회의 꿈을 갖고 내가 먼저 좋은 성도 좋은 일꾼 되기 위하여 성령 충만한 사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혜로운 사람 되는 것도 축복이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 어느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깨달을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어진 시간을, 재능을 쓸 줄 아는 사람이 귀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며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기뻐하실 만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일을 위해 자기 좋을대로 살며 세월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일수록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족과 허물과 약함을 압니다. 연구하면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만 아는 사람이 제일 강합니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잠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18:2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겸손하게 분별할 줄 알거니와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칭찬 받는 사람"을 말씀하는데,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덕을 세우면서 일을 합니다. 일하면서 자신도 기쁘고 남에게도 유익한 열매를 남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일꾼, 성숙한 일꾼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일하면서 자기에게 은혜가 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은혜를 받는다면 대단한 축복입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좋은 교회 되려고 하면 내가 먼저 칭찬 받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다른 사람 탓할 것 없습니다. 내가 먼저 제물 되고 내가 먼저 믿음의 사람 되어지고 내가 먼저 주님 기뻐하시는 사람 되어지면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귀하게 사용하시거니와 사람 앞에서 칭찬 받고 유익을 끼치며 덕스럽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지금 비록 어려워도 앞날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평탄케 하시고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분명 손해인 것 같고 망할 것 같으나 살고, 오히려 유익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원치않는 시련과 고통 가운데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인물치고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욥23:10에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때로는 환란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고 영적으로 무장하게 하셔서 우리를 강한 사람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괴롭고 도저히 길이 안 보여서 태종대 자살바위를 찾아갔답니다. 그런데 그 바위가 얼마나 우악스럽게 크던지 뛰어내리면 너무 아프겠더라는 거예요. 뛰어내리지 못하고 몇 시간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데 해가 지는 겁니다.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리더라는 거에요. "너는 왜 사니? 돈이 네 인생의 목적이니?" "주님, 제가 믿음은 적지마는 돈을 목적으로 살겠습니까?" 그랬더니 "지금 돈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것 아니니?" 깜짝 놀라 생각을 해 봅니다. 사업에 휘말려서 그 문제만 보니까 너무나 괴로워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자살바위에 가서 깨달은 것이, 인생의 본질을 다시 본 것입니다. 그까짓 사업 망해서 아파트 처분하고 삭월세방으로 들어가면 어떤가?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주님이 건강 주시니 무엇을 못 하겠는가? 자살 바위 앞에서 완전히 거듭나서 돌아왔어요. 생각이 바뀌니까, 본질을 깨닫고 나니까 인생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본질을 깨닫고 나면 문제는 하나씩 해결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실한 사람이 당장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갑절로 보상하시고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죄의 세력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간절히 원하고 늘 후회하면서도 못 고치는 습관 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병원치료를 통해서 완치될 확률이 2%밖에 안 되는 가장 어렵다고 하는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까지라도 주님의 능력으로 치료되고 회복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결단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을 잃어버리고 죄의 권세에 짓눌려 사는 것이지 주를 위해 살려는 결단이 있는 사람에게는 죄를 이기고,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환경과 장애물과 문제거리를 이기고 승리 할만한 힘과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충성할수록 죄와는 멀어져요. 생활이 즐거워지고 의미가 있어집니다. 믿음이 부요해지고 튼튼해집니다. 환경 때문에, 사람 때문에, 문제나 장애물 때문에, 좌우를 둘러보고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당시 예루살렘에는 8천명의 제사장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상당수의 제사장들마저도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다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말씀이 풍성하고, 기도가 강력해질수록 믿다가 낙심해서 떠나간 사람들도 돌아오게 되고, 다른 종교를 믿던 사람들도 깨닫고 돌아오는 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왕성해지면 스님까지도 변화되는 열매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은혜받고 힘을 합하면 생각한 것 이상의 열매와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재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람이 가진 한계가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이 오대양을 누빌 때 이상하게도 많은 배들이 침몰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보니 짐을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법이 생겼는데, Load Line(적재 한계선)을 만든 거예요. 짐을 실은 배가 물 위로 올라오는 선을 긋고 그 이상은 짐을 못 싣게 하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40대 사망률이 가장 높은데, 그 이유가운데 가장 큰 것이 과로로 쓰러지는 거예요. 짐을 너무 많이 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큰 배라도 적정 한계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든지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 하는 것과 둘이 하는 것이 다르고, 셋이 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것이 시너지 효과인데, 어제도 2남전도회와 4남전도회가 나와서 주변에 나무를 심고 다듬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힘들지만 재미있게 일하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혼자 하려고 하면 며칠을 해도 다 못할 일인데,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하니까 눈에 보이는 열매가 금방 나타나더라는 거예요. 편하게 사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에요.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세가지 행복을 말했는데, 첫째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했어요. 둘째 행복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했고, 셋째 행복은 무엇인가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희망을 가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따로가 아니에요. 세번째 행복인 희망을 가진 사람은 첫째와 둘째 행복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믿음의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이 있고, 나에게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확실하게 믿는 곳에 확실한 역사가 일어나고, 분명하게 믿는 곳에 분명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같이합니다. "확실하게 믿는 곳에 확실한 역사가 일어나고, 분명하게 믿는 곳에 분명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더 확실해 지고, 더 분명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를 우리 가정과 교회에 많이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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