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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의_이중성 / 출 8: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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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_이중성 / 출 8:25-32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십자가의 길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갈등과 고민과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가정생활에서부터 직장 그리고 사회 공동체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는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주게도 됩니다.

애써 외면하려고도 하고,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도 해보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는 누구든 십자가는 있게 마련이고 또 그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드리고 예수님처럼 짊어져야지 그것을 피해서 도망간다면 인생은 굉장히 고달프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짊어지고 나가야 언젠가는 성공의 짐으로 바뀌지, 그것을 당장 고달파 벗어버리겠다고 한다면 도둑이나 강도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묘합니다. 내가 내 십자가를 저주하면 세상도 저주하게 되고 세상도 나를 저주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십자가를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도 나를 은혜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참된 축복의 길은 십자가의 아픔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 것은 마치 실과 바늘처럼 십자가의 아픔과 부활의 영광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죽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밀 알 하나가 썩여야만 많은 새 싹이 나듯이 자신 안에서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자신이 썩는 아픔을 겪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아픔을 겪어야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죽어야만 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원리를 실생활에서도 적용해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 양보와 희생은 자신을 죽이고 포기하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된 사순절 시기입니다. 우리도 지금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메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신데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려움은 요리조리 피하고 즐거움만 찾아 행복해 지려고 한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남 북 전쟁 당시 '링컨'의 북군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링컨의 안타까움을 보고 있던 그의 보좌관들이 다가와 위로하기를 "대통령이여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북군의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  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링컨'은 오히려 '절대  그러하지 마십시오'라고 기도를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말하기를 '만약에 그대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려거든 하나님께서 북군의 편에 서기를 기도하지 말고 우리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나의 편이 되어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은 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려우면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험한 인생의 삶에 승리를 원하십니까? 실패 없는 성공의 삶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안 도와주신다고 원망도 마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은 전부 여러분이 하기 탓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곁에서 떠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신앙의 순수성 

인간이 받을 수 있는 평가 가운데 치명적인 것은 인격이 갈라지고 나누어진 사람, 이중 인격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시작할 때의 마음과 그 이후의 마음이 다른 사람, 어려울 때의 마음과 편안해졌을 때의 마음이 다른 사람 등 여러 경우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가장 귀한 목표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투명한 삶을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고 찬송은 부르면서 땅 투기에 관심이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라고 찬송하면서 교회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암투하는 모습들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두렵기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 아니라 저 하늘에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건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먼저 나와 내 가족을 위하고 나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너무도 확실해 보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영성훈련을 받고 나면 자기 자신이 죽어져야 하는데, 왜 자기만 살아야 하겠다고 하는지. 아까운 마음으로 헌금을 하면서도 헌금생활 잘하는 것처럼 우쭐대는지. 성경 많이 아는 것을 자랑삼으면서 그 말씀 앞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 많은 것이 나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 가족부터 먼저 챙기는 것이 나의 현주소임을 고백합니다. 이 외에도 내 속에 있는 모든 거짓되고 순수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자백하며 다시 살아나려는 옛사람을 짓밟아보려고 앴는 사순절이 되어야 겠습니다.

바로가 희생을 허락함

본문은 파리 떼 재앙으로 인한 바로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파리 떼 재앙으로 인해 이렇게 말합니다.“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로는 너무 멀리가지 말 것과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가 이스라엘의 희생 제사를 허락하면서 타협안들을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제시한 방법대로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타협안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상사 속에 늘 있을 수 있는 유혹입니다. 이때 내가 가져야 할 태도는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변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애굽과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과정에서 바로의 이중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언제나 재앙 앞에 잠시 굴복하는 듯하나 재앙이 사라지면 다시 마음이 변절합니다. 본문 속에서 모세는 바로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기도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떠나려니와 바로는... 다시 거짓을 행치 마소서.”그러나 바로의 행동은 파리 떼가 떠나가자 또다시 바뀌었고, 이전과 같이 강퍅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바로와 같은 이러한 이중성은 우리 자신의 내면 세계에서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그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상황을 벗어나면 태도를 바꾸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구별된 존재이기에 그 진실성에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로서 나의 진실 된 행동이 타락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힘과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한 번 한 약속은 손해보는 일이 있어도 지키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는 인간은 물론 신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하는 대단히 뛰어난 미녀였습니다. 이 빼어난 미인 카산드라에게 예언과 예술의 신인 아폴론이 마음을 다 빼앗겨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카산드라는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을 주면 그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아폴론으로부터 그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언 능력을 받게 되자 마음이 변한 카산드라는 약속과는 달리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하였습니다. 화가 난 아폴론은 복수의 칼을 빼들어 카산드라가 아무리 정확한 예언을 하여도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카산드라는 조국이 아주 큰 위기에 처하는 것을 보게 되어 트로이 왕인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신하들에게 위급한 상황을 거듭 경고하였지만 아버지인 왕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오히려 그녀를 꾸짖었습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목마라고 하는 거대한 목마의 정체가 그리스군의 이동요새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안타깝게 경고하였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트로이는 비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한 번 한 약속은 손해보는 일이 있어도 지키라는 귀한 말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가치 있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소중하게 여긴 사람들은 그런 소중한 삶을 살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무너뜨린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한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지키십시오. 사소한 일에서 신뢰를 잃으면 그대가 그 친구를 간절히 필요로 할 때 그는 그대를 외면할 것입니다.

모세 당시 애굽왕 바로는 이 말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까지 어려움을 주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애굽에게 여러 가지 능력을 베풀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고 강물을 지팡이로 치니 물이 피로 변하였습니다. 이어서 개구리 이적을 행하였고, 땅의 티끌을 지팡이로 치는 것마다 온 세상이 이가 되는 이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 전역에 무수한 파리 떼가 들끓게 하여 애굽은 정말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적들을 대하는 바로의 태도를 눈 여겨 볼만합니다. 어떤 이적들은 바로의 신하들도 모세와 아론처럼 같은 능력을 발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 때는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출7:11-13). 그러다가 개구리의 재앙과 같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면 여호와께 기도하여 개구리를 자기와 그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면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8절). 그러나 바로가 다시 숨을 통할 수 있을 때 그 마음을 완강케 하여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15절). 이렇게 마음이 바뀌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모세에게 능력을 주셔서 파리 떼의 재앙을 일으키시므로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생기자 바로는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28절).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부탁까지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끔 자기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아내가 늘 가던 새벽기도에 빠지면 은근히 나가기를 재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조금 아는 바로는 자기를 위한 기도까지 부탁하였지만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의 백성들에게서 파리를 떠나게 하시니 이 때에도 바로가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31-32절). 숨통이 트이기만 하면 이렇게 마음이 바뀌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이 계속 되는 바로의 마음은 참으로 고약하기도 하고 변덕스럽기도 하는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이란 이렇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보기만 해도 꼬리를 낮추지만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자고(自高)해지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해지고 비굴해지지만 약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귀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의 흠을 보았을 때 자기보다 못한 것을 찾았다고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세상만의 모습일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보다 오히려 신자(信者)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바가 더 많습니다. 세상을, 바로를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교회를 고발하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순한 양이 되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살만하면 교만함이 가득하게 되어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그러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도 그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 앞에서 오히려 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당당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권세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언제라도 나에게 필요하면 그 사람보다 더 강한 권세를 주실 것이라는 당당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약하고 모자라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그 사람보다 더 낮아지는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어떻게 하면 내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찾아 그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서 할 일을 찾아 고민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파리와 개구리를 보내기도 하시고 물이 피가 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권능을 행하십니다.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이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살아났다가 죽게도 하십니다. 몰수히 떠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며 부흥하게도 하시고 쇠퇴하게도 하시는 일들이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 사노라면 험난한 길이 있기도 하고 평탄한 길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길들을 누가 결정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누가 좋은 일들을 보내 주시고 누가 나쁜 일들을 막아 주시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이적을 행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누가 인생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인인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복된 사람이고 모세와 아론이 가졌던 권세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오히려 더 큰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바로와 같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마음은 따로 놀고있는 것은 아닌지 내 생활은 예수를 믿는 자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내가 급할 때는 다급하게 하나님을 찾다가도 해결되고 나면 그 감사를 잊어버리곤 했던 일들을 뒤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순절 묵상

良心, 태초에 하나님이 나에게 良心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새긴 良心,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良心, 내일을 희망하는 良心,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良心, 하늘을 향해 항상 열려 있는 良心,부부의 로맨스가 있는 사랑의 良心, 만물에게 이름을 지어 다스리는 권위의 良心,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이 없는 良心, 발가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는 良心, 누가 봐도 수치스럽지 않는 良心,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투명한 良心,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보존하는 良心, 에덴을 지키는 동산지기 良心, 낙원을 가꾸는 정원사의 良心, 세상을 창조하는 빛의 良心, 태초의 良心은 하나님이다.

兩心, 어느 한가한 날 유혹이 나에게 兩心을 주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탄이 보낸 뱀과 사귀면서 갈라진 兩心,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兩心, 선악과를 따먹은 신에 도전하는 兩心, 분수를 모르는 허영의 兩心,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잘못은 있으나 뉘우침은 없는 兩心, 서로를 탓하는 변절된 兩心, 둘 이상의 얼굴을 가지고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兩心, 良心보다 이익을 먼저 챙기는 兩心, 인격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兩心, 예수님보다 세상을 좋아하는 兩心, 性의 兩心, 돈의 兩心, 명예의 兩心, 신앙의 兩心, 내 안의 나의 兩心, 교회에서와 가정에서의 兩心, 교회에서와 일터에서의 兩心, 집사 때와 장로 된 후의 兩心, 집사 때와 권사 된 후의 兩心, 신학생 때와 목사 된 후의 兩心, 선거하기 전과 당선 후의 兩心,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다”의 兩心, 인생을 드라마 하듯 사는 탤런트 兩心, 오늘 이 시대를 도배질 하는 兩心, 화인 맞은 兩心, 죽은 兩心, 하나님께 심판 받을 兩心 , 兩心, 兩心, 兩心 ...... 兩心이 너무 많아 타락한 兩心은 사탄이다.

養心, 兩心을 가진 나에게 그리스도는 養心을 주셨다. 회개하는 養心, 은혜로 회복되는 養心, 良心을 찾게 하는 養心,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養心, 성령의 열매를 맺는 養心, 말씀의 진리를 깨달은 養心 ,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養心, 소금과 빛으로 증인되어 사는 養心,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養心, 새로운 피조물의 養心, 세례 받은 養心, 사순절에 익어 가는 養心, 養心은 良心이다.

주님, 오늘 하루 주님이 내 안에 심어 놓으신 양심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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