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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 혁명이여,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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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태화 교수

역사가들은 이제 혁명은 다시 체험할 수 없는 역사 용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혁명이 일어나려면 중심 세력이 되는 시민이 존재해야 하고 핵심 강령이 확실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혁명에 목숨을 걸 만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사회의 핵이 사라져가고 익명의 대중이 늘어나는 한 혁명은 완성될 수 없는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혁명이 불가능해질수록 사람들은 혁명을 꿈꾸게 된다.

학창 시절에 배운 멋진 혁명으로는 영국의 명예혁명이 떠오른다. 그리고 7월이면 프랑스 혁명이 생각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사건이지만 프랑스 혁명을 통해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국가적 자존심을 당당히 내세우고 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왕권과 종교의 구태의연한 권력 남용으로 사회가 양분돼 있었다. 시민들은 박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사회 개혁을 시도하면서 왕권과 교회,그리고 부패 지도자들을 척결하려고 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혁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848년 독일의 3월 혁명,1917년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1949년 중국 공산주의 혁명 등 세계사에는 수많은 혁명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모든 혁명이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늘진 면도 적지 않았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산주의 혁명은 지금까지도 인류에 큰 아픔을 주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 이후 각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으로 숨진 인명은 1억명을 넘는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가 이를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혁명이 인류의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지금도 우리는 혁명을 꿈꾼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런 혁명을 말이다. 나를 위하여 이웃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런 혁명이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줄 수 있는 그런 혁명 노선이 필요한 것이다(요 15:13). 혁명 중의 혁명은 바로 예수 혁명이다. 고도의 교육과 경영,무한히 계속되는 경쟁 사회에서 혁명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의 피를 요구하는 혁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더 이상 정당한 혁명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예수 혁명의 시간이다. 정오의 의로운 태양이 비칠 시간이다. 의로운 혁명이여,어서 오소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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