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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날부터 지금까지 / 행 20:17-21, 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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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지금까지
사도행전20:17-21, 31-35
왕십리감리교회 최이우 목사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드리는 마지막 주일 예배가 되었습니다.
제가 1999년 12월 12일 주일에 여러분들과 함께 첫 예배를 드린 후 3년 3개월이 되는 주일입니다. 부임하면서 여러분들 앞에 드린 약속을 제대로 실현해 보지도 못하고 떠나게 되어 참 마음이 아쉽습니다.
부임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드린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1.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뜻을 잘 받들어 일하겠습니다.
2.교역자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을 존중히 여기며 충성하겠습니다.
3.성령충만한 예배를 통하여, 참 기쁘고 즐거우며 신앙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사는 신바람 나는 왕십리교회 교인이 되게 하는 목회를 하겠습니다.
4.오직 교회를 위하여 헌신함으로 부흥하는 교회, 본이 되는 교회,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하는 축복 받은 교회, 모든 교회의 머리되는 교회가 되게 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드리겠습니다.
돌아보니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4년 정도의 정착기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서두르지 않겠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그 때가 오기도 전에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 29일 저녁, 종교교회 기획위원회의에서 저를 담임자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이어, 2월 2일 주일 저녁에는 인사구역회의에서 청빙을 최종 결정했다고 하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그 교회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를 새로 지었다는 것과 미국 남 감리교회 선교의 첫 교회라는 정도는 알았으나, 교회를 얼마나 크게 지었는지, 교인이 얼마나 모이는지 몰랐습니다. 꽤 오랫동안 담임목사 선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과 나와 가까운 목사님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종교교회의 결정이 있은 후에 많은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중에 온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모든 것이 순조롭고, 은혜롭게 될 것이고, 왕십리교회나 종교교회가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모든 일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우리 교회 새 담임목사님 청빙도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적인 송구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도 여러분들이 제게 많은 사랑을 주셨고, 기도하여 주셨기에 그렇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속에서 지난 3년 3개월 동안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통하여 많은 것을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는, 한국교회의 다른 한 쪽의 목회 경험입니다.
왕십리에 오기 전까지 저는 광림교회에서 5년4개월, 안산광림교회 개척 12년 등, 광림에서만 17년 반을 목회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든 교회가 담임목사 중심으로 일사불난한 광림교회 같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약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끝까지 한국교회의 한쪽만을 알아서 반쪽 목사가 될 뻔하였습니다. 나에게 다른 한쪽의 목회를 경험하게 하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은,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담임목사 중심의 목회가 좋은 점이 많음에 틀림없지만, 담임자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대리자쯤으로 인식하게 됨으로 교만과 독선으로 빠질 위험한 경향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신이 결정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왕십리에서 때로는 거절을 당하고, 때로는 지연되고, 때로는 수정도 해야만 경우에 속 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도리어 내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축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고 인내할 줄 아는 인격이 배양되었습니다.
가끔 제 아내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당신 조금만 잘하면 성자 되겠어요"
결과적으로 하는 생각이지만 지난 3년 3개월이 하나님께서 다음 목회를 위하여 성실히 준비시킨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교우가 말했습니다.
"종교교회도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요"
교회 역사 103년, 제23대 담임목사, 은퇴 원로 목사님을 모시는 교회, 원로 장로님 12명, 시무장로 35명..........객관적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왕십리보다 가벼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서 그 동안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게 하시고 훈련 시켜 주셨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의 기도를 부탁 드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 일행이 선교여행을 마무리하는 장면의 이야기입니다. 1,2,3차 전도여행을 모두 마치고 항구도시 밀레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밀레도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18)
그의 사역은 공개된 것이었습니다. 목회의 어느 것도 은밀히 행해진 것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노출된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군목 훈련을 받을 때의 가르침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군에서 성직자는 노출된 신분의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병과마크가 노란 십자가였습니다. 겨울에 항공잠바나 군용파카를 입을 때에는 십자가 가리우긴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투명하게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요셉은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하나님 앞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의 목회가 그러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백일하에 다 노출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으면 안됩니다. 누가 모르겠지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일뿐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계20:12,13)
그리고 바울의 투명한 목회에 세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이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
첫째, 겸손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심장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깁니다.
둘째,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눈물은 진실과 간절함을 말합니다.
셋째, 인내였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고전13:4)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참고 견디는 가운데 사랑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복음을 가르쳤고, 회개와 믿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합니다.
1. 받은 훈계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31)
눈물로 가르친 훈계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고 하셨다.

2. 범사에 삶의 모본을 따르라고 합니다.(35)
바울의 삶은 모범을 따라 산 삶이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35)고 말씀하신 주님의 삶의 본을 따라 살면서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말만 잘하는 사람은 본받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위대한 본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은 바울을 또 본받아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앞서간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3. 사명을 위하여 살라고 합니다.(22-24)
바울 사도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삶의 목적은 사명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받은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사도행전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빌립보서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사명을 자각한 이후 그의 삶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각오로 살았다. 바울은 그것이 바로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였습니다. 예수 때문에 살고 예수 때문에 죽을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야할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공식적인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바울 사도가 밀레도에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마지막 설교를 인용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곳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지난 3년 3개월 동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겸손으로 일하려 하였습니다.
눈물로 목회하려 하였습니다.
인내로 섬기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전한 모든 말씀과 회개와 믿음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진실한 교훈을 받은 것이 있었다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따를 만한 삶의 모본이 있었다면 본 받아 사십시오. 물론 주님을 본받으려고 더욱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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