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 / 호 6:4-11

  • 잡초 잡초
  • 527
  • 0

첨부 1


> 설교제목 :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 
> 설교본문 :  호세아 6:4-11
> 설교자  :  황요한 목사 


이번 주간은 매우 슬픈 주간입니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도, 유엔의 사무총장도, 의식 있는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도 같은 목소리로 “오늘은 슬픈 날입니다” 라며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날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뉴스를 통해서 매일매일 이라크 전쟁의 내용들을 보고 계십니다만 우리는 전쟁이 하루 속히 중단되기를 기도하고, 전쟁을 원했던 이들이 그것보다 더 지혜로운 방법이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기쁨의 소식들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소원이 있습니다. 어린이도 소원이 있고, 어른들도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소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 ?’ ‘하나님께서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는 이 지구 땅 끝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원받는 것과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랑받길 원한다고 말할 때에는 이해가 쉽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너희가 나를 좀 사랑했으면 좋겠다. 잠깐의 사랑이 아니라 변함없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6절 말씀을 보니까 주님의 마음의 소원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음을 잘알 수 있습니다. "나는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고, 제물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원한다...."

그 사랑이 너희들에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4절에 보면, 아침이슬이나 구름처럼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그러한 사랑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개가 자욱하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다가도 해만 뜨면 언제 안개가 있었느냐 할정도로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를 향한 너희의 사랑이 그런 일시적인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주님은 ‘너희가 나를 좀 제대로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꿈이 무엇인지, 그의 비전이 무엇인지, 그가 지금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나가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그 주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알아야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잘 모르면 오해가 생기고 왜곡하게 되고 비판만 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원하는 모습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 해야 합니다.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며 바로 알기 위해서 마음과 뜻을 다할 때 비로소 주님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종류의 책을 일고 있는지 알아야지요. 알아야 그가 좋아하는 CD도 사다주고, 책도 사다줄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관심과 앎이 점점 사랑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고 결국 상대방은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평안의 교회를 무척 사랑한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교회 주소가 어떻게 되는데...’ 라고 반문했을 때, ‘주소요 ?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럼 전화번호는 ?’ ‘전화번호도 잘 모르겠는데....’ 했다면 지금까지 거품을 물고 교회를 사랑한다고 했던 것들은 다 뜬구름같이 의미없는 말이 되고 말것입니다.

여러분이 친정어머니에게 "어머니,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필요할 때 전화번호부없이 전화를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분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확인하는 좋은 증거가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구체적인 정보를 내것과 같이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사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전 어제 아주 기분 좋은 문자 메세지를 받았어요. "목사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목회자를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수 십통씩 성도들에게서 받는 문자메세지가 요즘의 저를 생기 넘치게 해줍니다. 문자 메세지는 전화보다 훨씬좋아요. 왜냐하면 문자는 자동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실로 내려오시다 보면, ‘10분 일찍 헌신하기’ 포스터를 보았을 것입니다. 요즘 도서출판 규장에서 한창 벌이고 있는 이 운동은, 예배시간에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10분 먼저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자는 운동입니다. 우리 교회도 보면, 예배가 시작되고 나서 송영과 대표기도를 하고나면 비어있던 자리가 다 차게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시간으로 보면 채 5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어서 안타까움이 많았습니다. 지각하는 분들은 거의 습관적인 분들이 많기에 그 습관을 깨드리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기에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적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답니다. 주님을 향하여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기보다, 주님 앞에 옥합을 가지고 나와 깨뜨리어 발에 붓는 마리아의 행동 속에서 우리는 그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소원을 우리가 바로 알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다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그러한 에브라임과 유다의 모습, 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무시하는 것, 무관심은 상대를 향한 배려가 아니라 무시거든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의 모습을 오늘 성경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7절을 보면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내게 패역을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람은 제일 나중에 하셨습니다. 잊어 버렸다가 ‘아이고, 사람도 만들어야지’ 해서 마지막에 만드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고 사람을 제일 마지막에, 만물의 영장으로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만드신 줄로 믿습니다. 얼마나 계획을 가지고, 철저하게 배려를 가지고 지으셨는지...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물질적으로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어떤 환경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들은 부족해서 언약을 깨뜨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가진 사람이 더 한다.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사단으로 타락한 천사장, 뱀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사단이 하와에게 와서 유했다고 했습니다. 유혹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달콤하고, 장밋빛처럼 아름답습니다.

네펜세스라고 하는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은 아름다운 꽃을 자랑하는데, 벌과 나비들이 그 아름다운 꽃에 반해서 찾아오면 앉는 순간에 꽃이 오그라듭니다. 그 곤충을 녹여 먹어버립니다. 식충식물이지요. 무서운 꽃입니다. 화려하게 보이지만, 거기에 찾아만 가면 먹혀버립니다. 시라세니아라고 하는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식물은 잎에서 기가 막힌 향이 나옵니다. 그 향을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곤충들을 잡아먹기 위해 향내는 진동하는 것입니다.

하와는 뱀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왜 안
따먹니?‘ ’그것은 먹지 말라고 했어요’ ‘누가 ?’ ‘우리 남편이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했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You must die'입니다. 1%도 빈틈이 없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해들은 그 언약을 하와는 뱀에게 전하면서 "동산 중앙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고 말합니다. ‘You will die' 하나님의 의지를100%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몇%는 빼놓고 거기다가 내 의지를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작을 팰 때, 사용하는 도끼의 모양을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도끼 뒷면에 뭉툭한 곳으로 장작을 내려 팬다고 한다면, 천하장사가 장작을 패도 못 팰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장작을 다 패지요? 왜 그렇습니까? 도끼날의 예리한 날로 장작을 치면 틈이 벌어집니다. 그 틈에 쐐기처럼 박고 들어가는 거지요. 사단은 처음부터 무대포로 들어오지 않아요. 조그마한 틈을 벌입니다. 조금의 의심의 틈을, 조금의 불신의 틈을 벌여놓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향해서 의심의 틈이 조금만 있다고 해도, 누군가 쐐기를 박고, 쑥 들어오면 나중에는 건너갈 수 없는 간격이 생겨버리는 거예요.

분명한 것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아담과 하와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창세기 3장 6절 말씀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더라’ 왜? 사단이 쐐기를 박았어요. 의심의 쐐기를 조금 벌려 놓았어요. 그 틈에 남편을 통해 전해들은 확실한 주님의 말씀에 자기의 의지를 넣어 버렸습니다. ‘죽을지도 몰라’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결국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거예요. 그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 하나 먹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약속을 깨뜨린 거예요.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담을 불렀을 때 아내인 하와에게 미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여자, 그 여자가 내게 먹으라고 가져왔기 때문이지요.’ ‘너는 왜 그랬느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뱀, 그것이 내게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저 때문입니다. 제가 잘 못 됐습니다. 그렇게 책임을 질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분노하셨고, 그들을 모두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해 버렸어요. 오늘날 문제는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호기심과 탐욕 때문에 그런 거지요. 그래서 성경은 이생의 자랑을 조심하라고 그럽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질려고 하고, 점점 더 탐욕을 가지고, 세상에서 자신의 성을 쌓아 가는 겁니다.

오늘 주님께서 아담처럼 언약을 어긴다는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을 향한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언약이 생명보다 귀함을 믿으시고, 그 언약을 지키는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8절과 9절에 보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의 모습들이 또 말씀되고 있습니다. ‘길르앗은 행악자의 거울이라. 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땅에서 살인을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거예요. 원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서 이스라엘에 정착할 때 12지파를 요단강을 중심해서 좌우로 12지파의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40년동안 광야에서 듣고 훈련받은 그들이지만, 육신의 연약함을 가진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고, 심지어는 살인할 수 있고,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단강을 중심해서 좌우 편에 세 도시씩 사람을 죽였을 때, 부지 중에 살인한 자들이 그 성을 찾아가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도피성을 정해 주셨어요. 도피성은 사람을 살리는 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맛보는 곳입니다. 길르앗 라못과 세겜은 그 도피성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길르앗과 라못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이제는 살인하는 곳이요, 행악하는 도시가 되었어요. 변질이 되도, 이렇게 변질이 될 수 있습니까?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영혼을 죽이는 일을 하는 거지요. 영혼을 살리는 도시가 영혼을 죽이는 도시가 된 거예요. 더구나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에서 살인을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도자들의 타락을 말하고 있어요.

사실 이 부분은 목사로서 무척 말씀드리기 어려운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그걸 성도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 교회는 볼 짱 다 본거지요. 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우리 장로님들은 ‘장로가 죽어야 교회가 살지’, 권사님들은 집사님들은 스스로 여러분에게 그렇게 다짐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하는 말은 자신의 고집과 편견과 기득권과 이런 것을 내려놓고, 겸손과 온유로써 섬김의 종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번 서로 인사해 볼까요? 상대방의 직분이 장로님이면, 상대방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직분을 상대방에게 얘기하면 됩니다. 자신이 집사님이면, 집사의 직분을 걸고, 한번 옆사람과 인사해 보십시다. 자, 시작합니다. ‘장로가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 한번 따라해 보아요.
남이 얘기하면 기분이 나쁘죠. 만약 여러분이 저를 향해서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사는데, 이러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되겠습니까? 제가 장로님을 향해서 장로가 죽어야 하는데 이러면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상처가 되지 않고, 은혜가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기를 바라보면서, ‘그래,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살고, 하나님의 세계가 산다’

하나님께서 길르앗과 세겜에 이 행악자의 고을이 되고, 살인자의 마을이 된 이 곳을 향해서 탄식하십니다. 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다 보니까 그들은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욕심만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고, 결국은 이런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 가증한 일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도덕적인 타락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윤리가 붕괴되는 겁니다. 어디를 가도, 어느 사회를 가도, 도덕과 윤리는 땅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있다고, 이 죄악 많은 세상 속에 살지만, 그러나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우듯이 우리가 그러한 희망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나라에 20%가 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순결한 백성들이 있어요. 엘리야가 이제는 나만 남았노라고, 이제는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으로 그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서 온나라가 더럽혀 졌노라고, 이제는 사역할 의욕조차 없노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아. 이 땅에 순결한 백성이 7.000명이나 남아있어.....’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노라는 이 도덕적 타락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회를 탓하고, 구조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 인생들의 삶의 결과들을 보시면서 마지막 11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내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부모가 자식을 때릴 때, 죽으라고 때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돌이키라고, 깨달으라고, 새사람 되라고,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금 포로에서 돌이키면서, 다시금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이끌어 내시면서, 그들이 택한 백성, 거룩한 백성, 선민의 삶을 사시는 줄 기대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소원이예요. 이 소원을 여러분들이 이루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 바로 아시고 그 소원을 정말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평안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의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살리셨지만, 때때로 우리의 욕심과 유혹을 따라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인애를 원하고, 나를 바로 알기를 원하다"며 마음이 담겨지지 않은 형식적인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한 번 예배를 드려도 내 생명을 담은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을 앎으로 세상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