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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 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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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1-6
서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박춘수 목사  /강동교회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자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물론 전도해야 새사람이 들어오니까 부흥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사람은 우리가 넓은 땅에 좋은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환경 건물과 같은 요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배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전도해도 좋은 성전을 갖고 있어도 예배가 있어도 저는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한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힘써 하나를 지켜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될 때 부흥됩니다. 하나될 때 승리합니다. 연합은 부흥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입니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진정으로 하나되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정에서도 하나되는 삶을 온전히 체험하지 못햇습니다. 학교에서도 하나되는 삶을 온전히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에서도 하나되는 삶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교회에서도 하나되지 못한 삶을 체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초대교회때부터 교회는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집사들끼리 서로 싸워서 교회가 분열되기도 했습니다. 또 사람을 중심으로 파당이 형성되어 서로 나뉘어지기도 했습니다. 서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음식을 지키는 문제로 나뉘어져 서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현대교회도 다 나기 나름의 생각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야망과 고집과 인간의 뜻을 앞세워 얼마나 많이 싸우고 나뉘어지고 있습니까? 역사가 있는 교회일수록 오래 믿은 경험이 있을수록 교회는 오히려 부흥의 경험보다는 분열의 경험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아직 응답되지 않은 에수님의 한가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17:11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교회의 연합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연합을 강조했습니다. 교회가 한 마음 한뜻이 될 때 부흥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교회의 분열소식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년간 양육하면서 세웠던 교회입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붓을 들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엡4:3절에“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되는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습니까?


1. 왜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까? 하나됨의 근거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4절에서 6절까지에서 하나됨의 근거 7가지를 밝힙니다.
4절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절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절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여기 하나됨의 근거를 보십시오.

하나됨에 무려 7가지의 근거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 몸,한 성령,한 소망,한 주님, 한믿음,한 세례,한 하나님 아버지가 소개됩니다. 여기 7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완전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뜻이 성취되어야 합니다.여러분 교회가 하나된다는 것이 그냥 “인정”“우정”“형제애”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교회는 영적으로 하나되어야 할 이유가 있고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연합은 세상의 연합,직장의 연합,어떤 단체의 연합과는 틀립니다. 그런식으로 교회를 하나로 몰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 7가지 하나됨의 근거는 다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십니다.

우선 4절을 보십시오. 여기 4절에서는 성령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한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고 천국의 한소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음 5절은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한 주님으로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되십니다. 우리는 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례받고 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집니다. 6절의 초점은 성부하나님이십니다. 성부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 만유의 아버지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님과 성자 예수님을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요즈음 가정들이 불륜이 많아 지면서 친자확인소송을 내는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 지금 아이가 정말 나의 아이 우리 부부의 아이가 맞는가? 유전자검사 즉 피검사를 통해서 확인하여 보는 것입니다.우리가 흔한 말로 씨도독은 못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속이려고 하여도 피를 속이고 씨를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 한 가족입니까? 오늘 근거가 무엇입니까?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고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모셨고 같은 성령님을 모시고 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가족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비로 외모는 다르고 다른 집에서 살지만 하나님안에서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성령님을 모시고 한 소망을 향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됨의 근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는 그수가 많고 적음보다도 단 몇사람이 모였어도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강동교회가 앞으로 비젼을 이루어가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하는 이 영적 근거 앞에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사역하시는 예수님께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이 방안에 계시던 주님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습니다”.그러자 주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내 동생인가!“ 하셔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내밀러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하십니다.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바로 교회인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 모인 강동교회 서로가 속해있는 목장교회를 향해서 “바로 나의 가족들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씀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가족들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가족들도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2가지 극단적인 비성경적인 가족관이 있습니다.

첫째 가족우상주의입니다.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누구를 제일로 사랑하라고 합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가족우상주의에 빠진 분들은 나의 부모,나의 아내,나의 자녀를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무슨 잘못에 빠져 있습니까? 나의 가족을 허락하신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선물에 관심이 빼앗겨서 선물을 준 부모를 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을 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가족우상주의를 버러야 합니다.


다음은 가족무시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삶을 살때에 바른 신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맡기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가족 하나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는 나의 가족을 넘어선 더큰 가족 하나님의 가족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나의 가족에게 반드시 책임을 다하고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한평생 자기 가족 먹여 살리다가 인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하나님의 가족들과 하나되고 그들과 아름다운 한 가족을 이루시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신앙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2절을 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합니다.여기 4가지의 하나되기 위한 덕목의 행동이 소개됩니다.

첫째,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 무엇이라고생각합니까?
바로 “겸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장 갖추기 어려운 덕목이 무엇일 것같습니까?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를 이룰줄 압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지식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할수록 가장 찾기 어려운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은 자신과 자신의 힘과 재능을 낮게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우리 주님께서 팔복에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천국을 소유합니다.
왜그렇습니까? 가난한 마음 속에 주님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생각에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없어질 때 주님이 살아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이라는 교부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모든 덕을 담기 위한 진주그릇과도 같습니다.
벧전5:5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느니라”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자기가 부족하다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낮은 자리에 거할 줄 알고 그 낮은 자리에서 자기를 드릴줄 아는 사람입니다. 가령 사람들이 자신을 100인데 10으로 취급하여도 그것을 개의치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가장 겸손한 분으로 “본”을 보이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빌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주님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가장 먼저 배워할 삶이 겸손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겸손함으로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의 반대가 교만입니다. 겸손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면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성공의 지름길이고 교만하면 그것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번에 노무현대통령이 새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저는 취임식을 하고 이제 대통령의 집무를 하면서 언론에 비쳐진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른 대통령들보다는 겸손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선 그가 모든 취임식 행사때 권위주의 형태의 취임식 관행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취임식 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대통령 차에서 내려서 취임식 연단을 향해 걸어가라때 함께 동행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평범한 소시민들입니다. 어쩌면 가장 낮은 자들의 모습으로 낮은 자들을 섬기겟다는 그의 겸손한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상징적인 행동일지라도 그런 아름다운 시도는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초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종종 처음에는 겸손합니다. 처음 목사로 안수받을때 장로로 장립받을때 집사로 임명받을때 얼마나 겸손합니까?
그러나 자꾸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겸손이 변질되는 것입니까? 지식이 사람을 변질시킬때가 있습니다. 돈이 사람을 변질시키기기도 합니다. 때로는 명예와 직분이 나를 변질시킬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오르기전에 얼마나 그가 겸손했습니가? 자신은 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절하기까지 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 이름이 드러나게 되자 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누가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으로 교만하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역사하실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합니까? “아무도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소극적으로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뽐내지 않습니다.
비록 교회에서 아무리 수고하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고집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내 의견,내주장,내믿음이 최고라고 나타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어디를 가도 섬기고 봉사하고 섬기고 상대방을 높이면서 하나가 됩니다. 겸손으로 하나를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온유입니다.

온유란 말 그대로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하고 다스립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유순하고 자기를 잘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야생마가 잘 조련되어 길들여진 준마와 같은 상태가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야생마같습니다.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자기 혈기대로 살고 싸우고 다투고 합니다. 때로 이런 터프한 모습들을 사람들을 멋으로까지 이해하기도 합니다.
잠언서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 분노하는 사람,혈기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분열을 가져오고 싸움을 가져오게 합니다. 여러분 화를 잘 낸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신경질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옛사람이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손해입니다.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19 “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온유한 사람은 약해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이빨은 강합니다. 그러나 혀는 부드럽습니다. 어느것이 오래갑니까? 혀는 오래가지만 이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여러분 사람도 그렇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오래갑니다. 그러나 강한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특별히 교회 생활에서 무엇보다도 온유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강한지 온유한지 말을 하는 모습 보면 나타납니다. 우리가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릴때 가장 외면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 바로 말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온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실수하는 것이 하나는 함부로 말을 하고 하나는 화를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기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도의 분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최후에 주신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천국에 가면 온유한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땅에서도 하나님의 천국의 모형인 교회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저는 교회에 처음갔을 때 교회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얻은 느낌이 ‘온유하다’는 것이엇습니다. 말도 온유하고 표정도 온유하고 행동도 온유해야합니다. 그럴 때 마음을 열고 너와 나가 하나되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강동교회에 부임할 때 많은 목사님들이 저에게 해주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강동교회는 싸우는 교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교회에 가서 목회를 하려고하는가?”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과거에 혈기부리고 싸운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싸웠습니까? 모두가 교회 잘되게 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잘되기 위해서 싸웠는데 잘 되었습니까? 정말 진리를 위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혈기 때문에 싸우던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본인이 떨어져 나갑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온유해야 잘 됩니다. 날마다 우리 자신을 제어하고 주님같이 온유한 삶으로 갈 때 교회가 부흥되게 될줄로 믿습니다.


3. 오래참습니다.

하나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오래참는 인격입니다.
저는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가는데 있어서 오래참는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참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에 대해서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오래참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교회 생활을 하는데 무엇보다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하고 싶은 일 다하면 사실 이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서로 참고 기다릴때 더욱 풍성한 인생을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한 젊은이가 친구와 함께 백화점에 취직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당연히 경영부서에 보직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내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크게 실망하고 백화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젊은이는 엘리베이터를 안내하면 고객들과 쉽게 만날 수가 있어 그들의 구매 심리를 현장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알고 즐겁게 그 일을 맡았습니다. 젊은이는 얼마 안 있어 부서 책임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백화점 왕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신념과 인내는 성공의 계단이다."

여러분 영적세계에서도 인관관계에서도 인내가 최고입니다. 요즘 인내하지 못하여 쉽게 부부끼리 헤어집니다. 친구도 깊은 친구가 없고 좋은 스승과의 만남이 점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을 든 베드로를 향해 “이것까지 참으라” 하셨습니다. 칼로 나를 공격하고 죽이시는 자들앞에서도 인내하셨던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이루어지셨습니다.우리 주님은 모든 부끄러움,조롱,고난 참으셨습니다. 인내의 십자가를 지신 후에 영광의 부활을 맞이하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인내하면서 형제를 대하고 하나됩니까?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주님이 십자가에 참으시기까기하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좀 목장교회 속에서도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힘이 들어도 인내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관계가 바로 맺어지는데 사람들끼리 먼저 용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용납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자기에게 맟추려는 의도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면 싸움이 생깁니다”
성도 서로 간에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나에게 맟추려고 주장하면 싸움이 생깁니다. 자꾸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내시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자꾸 판단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누가 용납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용납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자들,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은 서로 용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평안을 위해서 이 하나됨을 힘써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왜 이 하나됨을 이룩하기 위해서 “힘써 지키라”고 교회에 부탁하는 것입니까?
“지키라”는 것은 “감시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성령으로 그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됨을 파괴시키는 대적자가 있기 때문이요 그래서 하나됨에 파괴되기 때문입니다.사탄은 자꾸 우리를 분열시키려고 합니다.그래서 교회만큼 말이 많고 싸움도 많고 분쟁도 많은 곳이 없습니다.왜냐하면 사탄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인데 교회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소리를 낼 수 있는 평등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서로 한가족입니다.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나라의 가족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강동교회라고 한 공동체로 만났습니다. 더욱 하나되는 교회를 힘써 세워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로 세워갑니까? 겸손과 온유함과 인내와 용납을 통하여 하나되는 강동교회,하나되는 목장교회를 세워서 우리를 통해서 지역복음화와 민족복음화,세계복음화를 이루는데 쓰임받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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